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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천등산 >
이태전 2008년 4월 15일 서울 대구 50회 동기들은 합동 산행을 풍광좋은 천등산을 다녀 왔었지.
그날이 음력 3월 15일이라 맑고 푸르름의 청명(淸明)을 지나, 보름후면 여름으로 들어선다는
입하(立下)를 앞둔 성춘의 절기 화창한 봄날, " 울고 넘는 박달재 " 가 있다는 충북 충주시
산척면과 제천시 백운면 사이에 하늘을 오른다는 천등산(天登山)을 등정 하였었다네.
* KBS 한국방송의 인기프로 《가요무대》가 2005년 방송 20돌을 맞아 가장 많이 불려진 노래를
조사해 발표 했을 때, 방송 횟수 전체 1위를 "울고넘는 박달재" 차지 했다는 구먼.
" 천둥산 박달재를 ~ " 노랫말 가사로 늘상
'천둥산'
인줄로만 알았더니만 .....
천등산( 天登山)은 천지 조화설을 담고 있는 '천부경(天符經 )' 의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하는 첫 번째 천(天)의 천등산(807m)이며, 천등산의 남쪽으로 5 km 거리에 인등산(人登山:667 m)이
있고, 다시 남쪽으로 지등산(地登山:535 m)이 나란히 있다.
옛 선인들은 천등산, 지등산, 인등산을 삼등산(三登山)이라 불렀으며, 임진왜란 때는 정감록의
예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이 산으로 피난을 했다고 하는 명산이라 한다.
( *
천부경
: 천제(天帝) 환인(桓因)때부터 구전(口傳)된 글이다.)
천등산(天登山) 산행중 전망대에서 연분홍 진달레 참꽃 가지너머
저멀리 제천시 백운면 대월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 산오름길에 만난 노오란 제비꽃 >
< 천등산 사랑산 고개의 " 박달재 " >
유명한 대중가요 '울고넘는 박달재'의 노래 가사속 천등산을 넘는 재는 '박달재' 가 아니라 ,
천둥산을 넘는 고개는 '다릿재'
이고, 충주쪽으로 좀 더 올라가 만나는
사랑산 고개가
'박달재'
이고 보니,
천등산은 '다릿재'를 가슴에 품고 있으며, '박달재는 '사랑산'을 넘어
가기 위한 고갯길이라 .....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
노래 가사는 역시 천등산보다 천둥산이 더 진국맛이 나네 그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가슴이 터지도록
<박달재의 구전 전설속 박달도령과 금봉이 형상 조각>
부엉이 우는산골 나를 두고 가는님아
둘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넘는 눈물고개
돌뿌 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임아
반야월이 노랫말을 붙인 ‘울고넘는 박달재’는 1948년부터 ‘국민 애창곡’으로
사랑받아 온 노래다. 천등산은 충주의 ‘삼등산(천등산·지등산·인등산) 가운데
으뜸가는 산이다. 이들 세곳의 산은 각각 ‘천지인’의 형국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하늘을 오르는 천등산이 세곳에 있다.
하나는 경북 안동 서후면 태장2리의 천등산(574m),
하나는 전남 고흥군 고흥읍의 천등산(550m)
그리고 충북 충주시 산척면과 제천시 백운면 사이에 있는 높이 807m의 천등산이다.
우리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가요 '울고넘는 박달재' 는 충북의 천등산 마루에 충북 제천군 백운면과 봉양면을 가르는 박달재가 있다.
- 옮긴글-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본문 中 - 조용호 저 출판사 이룸 -
울고넘는 박달재의 천등산 얘기를 들려본다.
천등산 마루에 충북 제천군 백운면과 보양면을 가르는 박달재가 있다.
남한강 물길 타고 인근 청풍에 올라온 각종 일용품이나 옷가지를 등에 지고 명월,주천,
주천, 평창, 대화, 진부, 방림, 봉평같은 강원도 땅을 돌며 생계를 꾸리던 봇짐장수들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다.
신라가 망한뒤 비운의 경순왕이 새 군주 왕건에게 나라를 내어 주기위해 피눈물을 뿌리며
넘던 고개요, 조선조에는 비정한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영월로 유배될때
넘던 고개다. 비운의 시인 김삿갓이 영월땅 처자를 버리고 기약없이 유랑의 길을 떠나던 고개요
한말에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돌부리에 차이고 뒹굴며 숨을 곳을 찾아 힘겹게 넘던 고개가
천등산 박달재 이기에 그래서 '울고넘는 박달재' 이던가
<박달재의 박달도령과 금봉이의 형상 조각>
아니다.
박달재 고갯마루 휴게소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박달' 이라는 도령이 '금봉'이라는
처녀가 만들어낸 제법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박달재의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이 고개는 본디 이조 중엽까지 천등산과 인근 지등산의 두영마루라는 뜻으로 '이등령'
이라 불리었는데, 과거를 보러가던 영남의 도령 박달과 고개 아랫마을 평동의 한 처자
금봉이가 애틋한 사랑을 하다 죽음으로 끝을 맺은 연후, 박달재로 불리었다는 것이다.
그 안내판은 한껏 솜씨를 부린 누군가의 작문에 힘입어 구전 전설속 이루지못한 사랑의
애절함이 가슴깊이 파고 든다.
지은이 조용호
는 1961년 전북 좌두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신문학과를 졸업
했으며, 민용 연구회 사묵구장(1988)을 역임했다. <세계의문학> '98 가을호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고, 한국 문화예술인들의 삶을 담은
< 돈키호테를 위한변명 > (문어당,1994) 을 펴내기도 했다.
세계일보에서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 추기 (追記) : 백발회 한뫼회 천등산 합동 산오름 사진 >
이 태전 2008년 4월 무자년(戊子年) 5학년 그때 그 시절 젊었을 때? 그 모습을 김용휴 동문이 담아 두었던 앨범 사진을 찾아 올려 봅니다.
< 천등산 다릿재 >
< 천등산 산행 들머리 >
< 천등산 소봉 돌탑 >
< 천등산 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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