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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TE에 얽힌 얘기 경북 중학교 때 얘기다. 그 때 이 병진(?) 선생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개병대(해병대) 출신으로 1.2미터 정도의 쌈빡한 나무작대기를 가지고 다니시면서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못하면 손바닥이나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무림최고수의 봉술을 구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불경스럽게도 "개병진"이란 별명을 붙여 본명보다 별명을 더 자주 사용했었다. 영어문법,독해, 다 정통하셨으나 발음은 Accent는 정확하면서도 Intonation은 서양식보다는 동양식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그런데 어느날 수업시간이었다. 책을 읽다가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출석부를 보고 이름을 불러 일으켜 세운 뒤 그 뜻을 물으셨고 모르면 교탁 앞에 나가 두들겨 맞아야 했는데, 물론 사전을 보는 건 급지 되었고 예습을 해 와야 봉술의 피해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본문을 읽어나가던 중 DATE란 단어가 나왔다. 관례대로 한 사람 씩 호명되어 뜻을 물으셨는데, 어떤 친구는 "만남" 어떤 친구는 "사귐", 어떤 친구는 "산보"등등 사춘기 아이들이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답변을 했는데 그 때마다 "머리에 소똥도 안 마른 놈들이..."라는 질책을 맞으며 몽둥이 뜸질을 당했다.그런데 갑자기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이 지옥,(욱자를 잘못 읽으셨다.) 데이트가 모야? 데이트?" "데"자에 악센트가 들어가야하는데 "이"자에 악센트가 들어갔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1초 ,2초, 3초,4초 공포의 일각일각이 심장의 요란한 박동소리와 함께 흘렀다. 그때 들릴락 말락 가는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날짜, 날짜............" 내 뒤에 앉은 동작빠른 친구가 내가 일어나면서 선생님과의 시야가 차단된 틈을 이용하여 잽싸게 사전을 꺼내 그 단어를 찾은 것이었다. 아마 그 잠깐의 틈을 이용하여 사전을 꺼내고 D자 부위를 찾고 ate를 더듬어 그 뜻을 읽은 뒤, 다시 사전을 접어 책상 밑으로 넣으려면 그 친구의 동작은 0.4초에 권총을 뽑았다는 게리쿠퍼나 버트랑카스터보다 더 날렵해야 했으리라... 그 친구가 나를 도우려 했는지 그 다음 차례에 본인이 호명될까봐 두려워서 컨닝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귀가 번쩍 뜨여 "날짜!"라고 우렁차게 一聲을 질렀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렇지! 알려면 이지옥이같이 제대로 알아야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엉뚱한 생각을 해?"라고 하시면서 앞전 대답한 친구들을 다시한번 일격씩 가한 뒤에 자리로 돌려 보내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시간부터 선생님은 두어번 엉터리 대답이 나오면 곧장 나를 호명하셨기 때문에 나는 곤욕을 치르며 예습을 해 와야 했다. 그러나 덕분에 나의 영어실력 향상에는 큰 기여를 한 분으로 기억된다. 여학생과 빵집, 중국집에 같이 있다가 발각되면 최악의 경우 정학을 각오해야만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2) 스탈린의 다른 면모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은 우리는 스탈린 하면 독재자, 또는 나쁜 인간으로만 인상이 박혀 있으나 이곳 러시아 현지에 와서 신문, 잡지를 읽어보니 의외로 다른 면도 있었다. 그에게 딸 스베틀라나 말고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첫째 아들 야코브는 2차 대전 중 참전하여 포병으로 싸우다가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독일군들은 그가 스탈린의 아들인 것을 알고 페테르부르그 공략 중에 소련군에게 포로가 된 독일군 야전군 사령관 파울로스와 맞바꾸자고 제안 했다. 부하로부터 보고를 들은 스탈린은 한참 생각하더니 "안돼, 사병을 사령관과 바꿀 수는 없어."하고 거절하였다. 야코브는 이 바람에 독일군들에 의해 총살당했다. 스탈린은 이 아들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 없었던지 고향인 그루지아의 풍습대로 검은 샤쓰를 평생동안 공식, 비공식 자리를 불구하고 입고 다녔다. 스타린의 둘째 아들 바실리 역시 2차 대전 때 조종사로 참여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웠으며 종전 후 스포츠위원장의 자리에 있었으나 1953년 스탈린이 죽자 체포되어 횡령혐의로 8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감옥생활을 하다 출옥한 다음 해에 죽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는 그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챙긴 바가 없고 가난한 선수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힘을 다했으며, 2차 대전 참전 시에도 스탈린 아들이란 티를 내지 않고 소탈하였고 동료들에게 의리의 사나이란 별명을 들을 정도로 위험에 빠진 동료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 생명을 무릅 쓴 케이스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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