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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홍욱(이상봉 동기 부인) (한뫼회) 중국 雲南省 여행기 (여강, 옥룡설산, 곤명) (여행 기간 : 2025. 4.9 ~ 4.14 ), (20명=남13+여7, 하나투어) 2025. 4. 9(수) ●중국 운남성 곤명(昆明:쿤밍 Kunming)으로 날아가다. 콜택시를 불러 창원역에서 KTX로 광명역에 도착, 역 구내에서 간단하게 콩나물국밥으로 점심을 먹은 후 공항버스로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북쪽으로 올라올수록 봄은 더디 오는 듯하다는 느낌이다. 창원에선 거의 지고 있는 개나리가 공항 가는 길엔 샛노랗게 흐드러지게 피어 봄의 전령사가 되고 있다. 비가 조금 내리는 듯하더니 이내 개었다. 인천공항에서 남편의 서울 친구들과 반갑게 만나 인사를 주고받으며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었다. 나는 지난 2019년 12월 이집트 여행 이후 5년 만의 여행이라 더 설레이기도 했다. 6시 40분 발 대한항공으로 곤명공항에 10시 30분쯤 도착(현지 시간 한 시간 늦음). 호텔에 도착하니 거의 12시, 씻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새벽 2시 쯤. 오늘 하루는 이동하는데 시간을 거의 보낸 것 같다. 곤명 공항에 내리자 가이드가 나와 카네이션 한 송이로 우리를 맞이했다.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타고 가이드 김샘(김성엽)의 인사와 안내를 들으며 중황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이곳 운남성은 남한의 4배 정도의 크기이고, 곤명시 인구는 800만 정도로 서울시 인구와 맞먹으며, 중국에는 56개 소수 민족이 있는데 여기 운남성에 26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고, 차마고도의 발원지라며 간단하게 여행지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이렇게 첫날은 집에서 출발하여 곤명 중황호텔로의 이동으로 중국 곤명-여강 여행은 시작되었다. 2025. 4.10(목) ●여강(麗江: 리장 Lijiang)으로 이동하다. 잠이 오지 않아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5시에 일어나 여강으로 갈 준비. 7시 호텔 출발. 버스로 곤명역에 도착했다. 여기 곤명시가 해발 1,850m 고지대. 열차는 고속열차라고 하나 고지대여서 최고 속도가 190km라고 한다. 곤명에서 여강까지 운행하며 무정차 열차인데 4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곤명역에 이르니 사람들로 인산인해. 곤명시는 인구 800만. 서울 인구와 맞먹는 인구가 모여사는 곳이니 붐빌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광도시여서 역도 어마어마하게 큰데 사람도 어마어마. 역대합실이 이렇게 복잡한 건 정말 처음이다. 옆 사람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이며 제대로 발디딜 틈조차 없다. 지금은 명절이 아니니 주로 관광객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뉴스로 보던 중국 명절의 하나인 춘절(春節)에 고향으로 이동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이 이상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떠밀려 다니는 우리 모습이 사람 대접보다는 짐짝 취급 당하는 느낌. 중국에 다녀온지 10 여 년 지나는 그사이 중국은 너무나 많은 변화와 발전을 한 느낌이다. 이 상황을 보며 우리나라의 승차 시스템이 얼마나 그립던지. 수 년 전 일본 여행을 하다가 신칸센 열차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도 개찰구에서 역무원이 한 사람마다 승차권에 '찰칵'하고 구멍을 뚫어 개찰하고 통과시키는 걸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가는 나라라는 인식이 강할 때였는데 한 사람씩 직접 승차권을 확인하는 시스템이어서 놀랐던 것이다. 그때 우리는 free pass. 이 와중에 검열은 또 얼마나 심하게 하는지 비행기 탑승할 때보다 더 심하게 짐검사를 한다. 비행기 탑승에도 통과되었던 조그만 과도가 검색에 걸려 압수당했다. 막상 개찰구를 지나 열차에 탑승하니 이상하게도 열차 안은 좌석이 텅텅 비어 있다. 객차가 몇 개가 연결되었기에 이렇게 여유가 있는지. 4시간 30분 동안 여유롭고 쾌적한 분위기의 열차여행이었다. 바깥에 펼쳐진 풍경 또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평화로운 정경이 펼쳐졌다. 열차 안에서 바라다 본 주택은 옛 가옥이 현대식 건물로 많이 바뀌어 마을을 형성하고 있으며 드문드문 현대식 주택 사이로 고가(古家)가 보인다. 무너져내린 옛집들도 많이 보인다. 시골에도 고층건물이 즐비하다. 산 사이 시골 군데군데 소규모 공장들도 들어서 있다. 산 중턱에 만리장성처럼 길게 철망이 쳐져서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눈에 띈다. 왜 이렇게 많은 철망을 쳐 놓았는지. 우리나라가 급격한 산업화로 옛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처럼 여기 중국도 급격한 변화 속에 내던져진 것 같다. 여강으로 가는 길은 거의 터널 통과로서 아마도 길고 짧은 터널을 수 십 개는 지나온 듯하다. 여기도 봄은 찾아와 산들이 온퉁 신록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위치로는 북회귀선이 지나가는 곳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남쪽이지만 해발고도가 높아 지금의 우리나라 계절과 비슷해 보인다. 외국여행을 하며 이렇게 느긋하게 여유롭게 열차로 이동하는 것도 처음인데 나쁘지 않다. 여강 가는 열차, 우리가 탄 10호 차는 95석 좌석에 우리 20명과 중국인 10 여 명만 타고 가는 듯하여 조용하고 여유가 있어 쿤밍역에서의 정신없던 상황이 상쇄되는 기분이다. 어젯밤 못 잔 잠을 자라는 가이드의 조언이 있었으나,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이 말똥말똥하여 앞으로의 일정이 졸음으로 힘들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된다. 차창 밖을 보니 따리 얼하이호 (大里 洱海湖)(면적 249km2, 해발 2000m) 옆을 지나간다. 바다처럼 넓고 사람의 귀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참을 지나고 긴 터널을 너댓 개나 지났는데도 호수는 계속된다. 중국 제2의 호수로 길이가 40km, 동서 평균 길이 7~8km이며, 호수의 남쪽 끝은 메콩강으로 흘러가는 양비강에 이른다고 한다. 키르키스스탄의 바다 같은 이시쿨 호수를 본 이래로 그 다음 가는 크기의 호수를 본 것 같다. 들판에는 새 모종을 내고 있는 농부의 모습도 보인다. 드디어 12시 반쯤 여강역에 도착. ●식사 후 호도협(虎跳峽: Tiger Leaping Gorge) 차마고도(茶馬古道) 미니트레킹을 시작 빵차라고 불리는 6인승 미니밴을 타고 경사도가 70도(?)는 되어 보이는 위험천만인 길을 구불구불 한참을 시멘트 포장길로 올라가니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차에서 내려 조금 걷다보니 차마객잔(茶馬客棧)이라 쓰인 곳에 옥룡설산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 바라보는 옥룡설산은 이탈리아 돌로미티산을 연상케 하며 그 보다 훨씬 높고 웅장한 바위산이다. 거대한 바위산의 모습에 압도된다. 인간이 얼마나 미약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다. 여기서부터 차마고도 미니트레킹을 시작한다. 한 때는 무역로(운남성에서 네팔, 인도에 이르는 무역로)였던 이 길이 지금은 등산객의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환영받는 길이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해발 2,300m 높이.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은 그 옛날 중국 무역 상인들의 상업루트인 차마고도의 일부로 나귀를 몰고 오갔던 그 길을 그 당시의 기분을 잠시나마 느껴보며 걸었다. 아래를 보니 까마득하고 아찔한 기분이 든다. 집도 사람도 아주 작아 개미 크기만하게 보인다. 중간중간 김샘이 준비한 간식 달콤하고 따뜻한 커피, 달콤새콤한 오렌지로 목마름을 해결하였다. 1시간 반 정도 트레킹을 하고 대기한 빵차를 타고 하산. 호도협으로 이동. 일행 중 거금의 찬조(권봉일 1000$) 덕분에 유료(왕복 70위안)인 에스컬레이터를 4단계 타고 아래 전망대에 내려가 굉음의 물소리에 압도당하는 호도협에서 거세고 빠르게 흘러가는 물살을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장엄한 물살이다. 옥룡설산과 합파설산(哈巴雪山) 을 양 옆에 끼고 급류가 흐르는 17km 협곡으로 양자강 상류인 금사강(金沙江)이 흐르는데, 우리가 보는 이 곳은 금사강 흐름 중 폭이 좁아서 호랑이가 뛰어 넘는 협곡이라는 호도협(虎跳峽)이다. 여강을 찾는 필수 코스 중 하나인 것 같다. ●호도협을 떠나 샹그릴라(香格里拉: Sangrila)로 이동 (중전고성:中甸古城). 이곳 샹그릴라는 해발 고도가 3,200m 고원지대이다. 이동 중 조금씩 고도가 느껴질 정도로 머리가 띵하다. 샹그릴라 고성(중전고성)에 어둑어둑해질 무렵 도착했다. 이곳 중전고성은 티벳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는 티벳 전통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일행들은 샹그릴라고성으로 올라갔으나 남편과 나는 올라가지 못했다. 고산증세로 머리도 지끈거리고 속이 메스꺼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본 중전고성은 야간 조명으로 휘황찬란하다. 거대한 종탑이 보인다. 광장에서는 버스킹도 하고 전통복장을 한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飮酒歌舞를 즐기는 민족은 우리 민족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가이드(김샘)와 함께 있으면서 침향 한 알을 주어서 먹고나니 메스끄움은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잠시 후 저녁 식사로 야크 고기와 돼지 고기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나는 속이 편치 않아 야채 위주로 먹었다. 이곳 샹그릴라는 티베트 문화권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으로 과거 마방 상인들의 고된 여정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쉼터였다고 한다. 푸른 협곡에 펼쳐져 있는 마을의 원래 이름은 중뎬이었다고 한다. 차마고도의 시작점으로서, 이 곳을 지나면 고도가 너무 높아 나무가 없다고 한다. 1933년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이 발표한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지명 샹그릴라는 평생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누리는 유토피아이다. 소설 속 그곳이 바로 티베트 쿤룬산맥에 있는 라마교 사원 공동체로 신비한 이상향인데 이곳을 모델로 했다는 설이 있다. 중국 정부는 1977년 이곳 중뎬을 소설 배경인 샹그릴라로 발표하며 개명하였다. 그 효과는 어마어마하여 눈 앞에 보는 것처럼 세계적 관심사가 되어 굉장히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한단다. 나도 2,000년대 초 '잃어버린 지평선'을 통해 샹그릴라를 알게 되어 꼭 한 번 오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다. 고산증세가 있어 올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중 드디어 지금 여기 샹그릴라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 여느 마을이나 다름없다. 동심을 파괴하는 삭막한 마음 탓일까? 이상향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게 아닐까 싶다. 저녘 식사 후 호텔로 이동, 휴식. 2025. 4.11 (금) ●호텔 조식 후 납파해(納帕海: Napahai)로 가다. 호텔에서 30분 가량 버스를 타고 가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초원이 펼쳐진다. 이곳이 해발 3,266m 초원인 납파해이다. 여기서는 큰 호수를 해(海)라고 한단다. 우기(雨期)인 7~9월 여름엔 반 정도가 호수로 변하고 건기에는 목초원이다. 지금 시기는 4월이니 당연히 호수는 아니고 넓디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넓은 초원에 타르초가 세워져 있고말과 야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야크 한 마리는 한화로 500만원 정도로 소 한 마리 값과 맞먹는 다고 하였다. 타르초가 여기에는 원뿔 모양으로 오방색(赤-불, 綠-물, 白-공기,바람 黃-땅, 靑-하늘) 깃발로 장식하여 세워져 있다 (참고: 우리의 오방색은 靑, 紅, 黑, 白, 黃) 오방색 깃발인 타르초는 정화와 축복, 윤회와 해탈, 재앙 방지와 공덕 쌓기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타르초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티벳 불교의 정신적, 종교적 전달 수단으로 불교적 신앙과 철학이 담긴 상징물이다. 산꼭대기 사찰 등지에도 많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서 일행 중 옵션으로 말을 타며 초원을 달리는 기분을 만끽하는 분들도 있었다. ●납파해를 떠나 송찬림사(松贊林寺: Song Zan Lin Monastery)로 향하다. 버스에서 내려 저만치 높다랗게 위치한 송찬림사를 향해 가파른 200 여 개의 계단을 숨이 차게 올라가면 금빛 찬란한 화려한 건물 송찬림사가 나타난다. 여기는 해발 3,300m 고지대라고 한다. 송찬림사는 1679년 제5대 달라이라마에 의해 건립된 유서 깊은 사원으로 문화대혁명 당시 일부 소실된 부분을 재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티벳 라싸의 포탈라궁을 모방하였기에 작은 포탈라궁으로 불리는 이곳은 운남성 최대의 티벳불교 사찰이다. 송찬림사는 친중 티벳사찰로 망명정부를 이끄는 달라이 라마 대신 베이징의 판첸 라마를 추앙한다고 한다. 가이드 김샘 설명으로는 송찬림사는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의 스승을 모시고 있다고 하는 좀 낯선 종교이다. 금빛 찬란한 대전과 승려들의 면학전, 관세음보살전 등 이어지는 건물이 웅장하다. 우리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하면서도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부처님이 중생을 굽어보고 있는 형상이다. 건물 내부는 촬영 금지였으나, 조용하고 고즈넉하게 명상을 하며 일신을 수양할 수 있는 분위기라기보다는 좀 번잡한 분위기랄까(?) 너무나 큰 거대한 부처님상과 그 옆, 밑으로 빽빽하게 앉은 많은 부처님들, 많은 오방색 휘장 장식 등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너무 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정신적 안정과는 거리가 먼 종교적 분위기인 것 같았다. 그 와중에 한 쪽에 앉아 계신 스님 앞에 10위안을 헌금하고는 세례(?) 같은 의식을 받고 묵주도 받았다. 이런 아이러니가? 그래도 그 순간은 순수한 마음이 되고 경건한 마음조차 들었다. 이런게 종교의 힘인가? 가이드 김샘의 설명에 의하면 사찰 정면에서 멀리 산자락 끝으로 언덕진 곳이 天葬(우리는 鳥葬 이라 함)터라 한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장례 문화이다. 시신을 독수리가 물어갈 수 있게 그곳에 조각내어 둔다고 하는데, 부모형제의 시신을 조각낸다고 생각하니 일순간 부관참시 같은 좀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과 지역문화의 특성 아래 고유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니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아니다. 장례 문화에 있어서는 매장(埋葬)이나 최근의 화장(火葬) 문화인 우리와는 전혀 다른 문화임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다. ●사찰을 나와 이곳 소수민족의 민가 장족 이장댁 방문 및 수유차 점심식사. 이장댁이라 해서 장족 고유의 독특한 문화를 엿볼 수 있겠구나 기대를 했는데 거의 실망 수준. 현대식 가옥으로 화려하고 거창하게 지어진 새 가옥에 겉으로 보기에는 무늬(?)만 장족의 문화를 간직한 것으로 보였다. 이장댁은 식당을 겸하여 운영하고 있어서 여기서 점심 식사를 했다. 집안에 부처님 사진을 모셔놓은 사당이 있어서 종교적으로 티벳불교를 믿고 있구나~~. 음식 문화로는 유목민 생활의 식문화인 수제 치즈, 수제 야쿠르트, 고유의 수유차(차에 소금과 버터를 넣은 차. 우리의 미숫가루차 맛 비슷), 등이 고유 문화를 간직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긴 겨울을 견딜 수 있게 천창(天窓)과 사면이 유리로 마감되어 온실효과를 극대화하였다. 안온하고 따뜻한 실내에 다육이 등 다양한 식물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 실내가 싱그러운 느낌이 들었다. 곤명 등의 대도시를 포함하여 어딜 가도 집이나 상점 앞에 다육식물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다육식믈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이장댁에서 점심식사로 수유차, 수제 야쿠르트, 수제 치즈, 각종 전통적인 수제 빵(칭커빵: 여러가지 빵 종류로 달콤한 맛, 싱거운 맛, 짭짤한 맛 등 다양한 종류), 밥. 닭고기, 비계만 있는 돼지고기 수육, 야채 등 푸짐한 점심 밥상이 차려졌다. 돼지고기 비계 수육을 보니 옛날 백두산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딘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더니 돼지고기 수육이 나왔다. 그런데 전부 비계덩어리였다. 이걸 어떻게 먹느냐고 항의했더니, 수육으로는 최상품을 내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주인장이 되레 화를 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추운 지방에서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열량 많은 음식이 최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주인장의 말이 헛된 말이 아님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오늘 이 비계수육도 주인장의 배려가 담긴 음식임을 생각하며 한 점 먹었다. ●전신 마사지 후, 흑룡담(黑龍潭)공원과 여강고성(麗江古城: Lijiang Old Town) 관광. 점심을 배불리 먹고 2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샹그릴라를 떠나 여강으로 돌아왔다. 여강에 오면 고산증세가 싹 사라진다고 한다. 남편은 아침에 고산약도 먹고 그 동안 적응도 되고해서, 해발 3200m 고지대인 상그릴라, 송찬림사 등과 이장댁까지도 컨디션이 좋았었는데, 점심 식사 후 버스에 타자마자 차 흔들림에 차멀미와 고산증이 겹쳐서 그런지 완전히 탈진하여 몸을 가누질 못했다.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질 못하고 버스 뒤쪽의 빈자리로 겨우 이동하여 옆에 앉아있는 친구의 허벅지를 베고 내내 누워 있다가 여강에 도착할 무렵에야 회복되어 본자리로 돌아왔다. 이곳도 고도가 높지만 샹그릴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아서 샹그릴라에 적응된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 같다. 여강으로 돌아와 시원하게 전신 맛사지를 받고 찾은 곳이 흑룡담공원. 흑룡담은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이 모여 호수를 이룬 곳이라고 한다. 공원이 정자 등 건축물과 자연이 어우러져서 아담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청나라 때 조성된 공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 휴식을 취하는 공간인 것 같다. 고대 나시족의 건축물도 있고 나시족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동파박물관이 있다. 옥룡설산이 저녁 노을 속 멀리 멋지게 보인다. 앞으로 찾게 될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 저녘은 버섯 샤브샤브를 먹었으며, 일행 중에서(정연수) 부부 6팀에게 메밀차를 선물하여 고맙게 받았다. ●저녁 식사 후 여강고성 데이 & 나이트 투어에 나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여강고성은 고풍스런 건축물과 낭만적 분위기가 어우러진 소수 민족 나시족의 성벽없는 고성이다. 옛 나시족 양식의 상점건물들 사이로 흐르는 작은 개천과 아름다운 돌다리를 중심으로 각종 가게가 늘어서 있다. 가게 간판에는 漢字, 나시족의 언어인 상형문자(동파문자), 영어 이렇게 3개 언어로 표기되어 있어 이색적이다. 나시족은 동파교를 믿으며, 요즈음 고유언어인 동파문자는 젊은이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 점점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 고유문화가 또 하나 사라져가는구나~~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 달 전에 시진핑주석이 다녀갔다고 하며 방문기념비를 세워 놓았다. 일본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에니메이션 '센과 이치로의 모험'이 이곳 골목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니 골목골목 누벼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음식과 카페가 있는 거리를 작은 개천 건너 바라보며 걷다가 우산을 골목 공중에 걸어놓은 일본인 상가같은 우산 거리를 둘러보았다. 우산거리는 장인들이 모여 있는 거리 같았다. 야경은 마치 동화속 마을같이 아름다웠다. 잠시 둘러본 다음 음악이 있는 라이브주점 거리로 갔다. 온통 유리로 가게를 훤하게 보이게 열어놓아 안이 다 보이며 음악 또한 요란스럽게 다 들린다. 이런 곳도 있나 하고 깜짝 놀랐다. 여기가 공산주의 사회 중국이 맞나? 놀람을 더해가며 우리 일행은 시내를 따라 양편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카페 중 예약해 둔 ‘사쿠라 카페’로 들어갔다. 라이브 무대로 우리 음악을 많이 연주해 주었다. 흥이 많은 분들은 음악에 맞춰 그동안의 스트레스도 풀고 끼도 맘껏 발산하며 그야말로 흥겨움을 쏟아내는 시간을 가졌다. 1시간 동안 미친듯이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관방호텔 가든빌라로 왔다. 저녁 늦게 들어와서 새벽에 떠나야 하는 호텔인데 마음에 드는 호텔이다. 주위 경관도 좋아 보이고 건물이 2층으로 나지막한 것도 마음에 들고, 객실도 널찍하니 여유가 있다. 좀더 머무르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여유를 즐겼으면 했는데, 어두컴컴한 새벽에 떠나 제대로 보지도 못하니 좀 아싑다. 2025. 4. 12(토) ●빙천(氷川)세계 케이블카로 옥룡설산(玉龍雪山: Jade Dragon Snow Mt.)에 오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조식을 하고 6시에 버스를 타고 여강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 풍경구인 옥룡설산으로 출발 하였다. 날씨 여하에 따라 케이블카가 움직이지 않으면 못 가는 곳이란다. 케이블카를 타야 오를 수 있다는 곳이니 날씨가 좋기를 간절히 바랐다. 몇 년 전 투르키예 여행 중 카파도키아 열기구를 타러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했는데, 현장에까지 가서 좋지 않은 날씨로 인해 열기구가 뜨지 않아서 끝내 열기구를 못 타고 도시락만 먹고 왔던 아쉬웠던 기억이 떠올라 이번에도 조바심을 했다. 다행히도 이번엔 일단 케이블카를 탈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일행 중 3분은 대체코스인 운삼평으로 가고, 나를 위시한 나머지 모두는 빙천세계 케이블카를 타고 4,506m까지 올랐다. 옥룡설산은 나시족의 성산이며 여강(麗江)에 머무는 여행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5,596m 높이의 설산이다. 히말리야산맥 끝자락에 만년설을 이고 있는 여강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강의 주인공이 이 옥룡설산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여명이 터 오는 산 위 불빛이 반짝이는 곳이 우리가 가는 곳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까마득하게 보인다. 저기까지 가나? 케이블카를 타고 7분 정도 올라가면서, 한편으로는 설레이고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4,506m 케이블카 정류장에 내렸다. 18년 전에 구채구와 황룡에 간 적이 있다. 그때 고산증세로 너무 고생을 해서 죽을 뻔 했던 기억이 떠올라 불안불안했다. 구채구 공항(해발 3500m) 의무실에서 링겔 주사를 맞으며 고산증세가 없어지기를 기다리던 순간도 있었다. 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불안감은 최고조다. 아침에 고산증세 약도 복용하고 산소통도 준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으니 괜찮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한 발씩 내디뎠다. 다행히도 산소는 가끔 마셨지만 고산증세는 나타나지 않고 앞으로 한 발 한 발 잘 나아갔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저께 샹그릴라에서 고지대에 대한 적응이 되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양 옆으로 1m가 넘게 쌓인 눈을 보며 한 계단씩 오르는 기분은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전체 17명 중 7명만이 드디어 올라갈 수 있는 최정상 4,680m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남편이 계단을 다 세어 봤는지 827계단이라고 한다. 운무로 인해 정상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남편은 못내 아쉬워했지만. 배낭에 준비해 간 정상에서 나눠 마신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의 맛! 최고였다~~. ●람월곡(藍月谷)에 이르다. 옥룡설산을 뒤로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와서 대기한 버스를 타고 람월곡으로 이동하였다. 옥룡설산의 눈이 녹아 흐르는 계곡물에 비친 달빛이 푸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雪山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모아 계단식 인공 구조물로 막아서 해발 2855m 위치에 만들어진 호수가 위에서 아래로 5개 정도 되었다 (백수호, 남월호, 경담호 등). 눈이 녹아 아름다운 에머럴드빛 호수다. 옥빛 물의 아름다움을 구채구에 비교하지만 구채구 수준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이색적인 아름다운 풍경에 많은 예비 신랑 신부들이 예쁜 포즈를 취하며 웨딩 사진을 군데군데서 찍고 있다. 여기도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람월곡을 나와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식당에 이르러 보니 일행 중 한 분이 안 보인다. 카톡과 전화로 연락하여 한참 뒤 합류하였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모두들 걱정했지만 그래도 길눈이 밝은 분이라 조금은 덜 걱정했던 것 같다. 모이는 장소를 잘못 알아서 좀 헤매신 것 같다. 산중 점심이라 반찬이 제일 부실하다며 가이드가 별도로 김치를 서비스했는데, 우리가 볼 때는 그런대로 진수성찬이었다. ●인상여강쇼를 관람하다. 점심을 일찍 먹고 빨리 입장해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데, 우리는 많이 늦어져서 야외공연장의 한 쪽 귀퉁이에 앉았다. 정확한 시간에 시작한 쇼를 가이드의 이어폰을 통한 설명을 곁들여 감상하였다. 날씨가 차츰 어두워지더니 급기야 비가 내린다. 입구에서 받아온 비닐 우의를 뒤집어 쓰고서 빗 속에 앉아 관람하였다. 멋진 뒷배경인 옥룡설산은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인상여강쇼는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소수민족의 대서사극이다. 500 여 명의 소수민족이 참여하는 대형공연으로 조명도 지붕도 없이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나시족을 위시한 16개 마을의 10개 소수민족과 자연이 어우러진 모습, 차마고도를 오가는 마방의 말안장 연기와 상인들의 모습, 커다란 보이차 바구니를 메고 힘든 노동에 시달리는 생활력 강한 나시족 여인네의 모습(남자는 놀면서 밤일만 잘해주면 되고, 여자가 힘든 일을 다하는 것은 팔자소관이라함), 나시족 남자들의 술마시고 춤추며 노는 술문화, 나시족 남녀의 명절, 제사, 결혼식 등에서의 춤문화, 전체가 총출동하여 “우리는 춤추러 왔다”하며 추는 왼발춤, 나시족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고무제천의식 등, 소수민족의 다양한 삶의 애환을 고유의 고음을 내는 창법으로 독창, 제창, 합창과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시족 여인네의 고달픈 삶의 모습을 볼 땐 눈물이 핑 돌았다. 同病相憐의 심정이었나(?) 아니면 동정심과 애련의 마음이었나(?) 좌우간 순간적이지만 좀 착찹한 심정이었다. 현지인들을 배우로 기용 연출하여 나시족에게 일자리를 창출하고, 또한 소수민족의 참여를 통해 그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어 그들 스스로 소수민족의 고유문화를 지키게 하였으며, 예술적으로도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많은 관광객 유치에도 성공한 대형쇼를 만든 장예모 감독은 여러모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천년의 향기를 간직한 차마고도의 쉼터 속하고진에 들르다. '높은 봉우리 아래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옥룔설산 밑에 위치한 성벽없는 고성 마을이다. '丹鳳含書'라 쓰여진 일주문으로 들어가니 주로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가게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도 차마고도를 오가는 상인들의 쉼터였으리라 짐작되지만 지금은 음식, 茶, 옷, 음식재료, 말린고기를 파는 거리, 그외 술가게, 예술거리, 한약재료가게, 세공예가게 등, 삶과 밀접한 다양한 가게들로 구성되어 마을이라기보다 작은 시장같은 느낌이다. 우리말로 쓰여진 간판이 있는 포토샵이 있어 눈길을 한 번 더 주었다. 자유로이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기웃하였다. 이 지역의 대부분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위에,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서 소변을 변기 밖으로 흘리지 말라는 뜻으로 써붙여 있는, “向前一小步, 文明一大步”라는 글이 상당히 흥미롭다고 남편이 알려주었다. 여기서 나와 식사 후 저녁 7시 38분 발 고속열차를 4시간 여 타고 여강에서 쿤밍으로 이동하였다. 비가 조금씩 부슬부슬 내렸다. 2025. 4. 13(일) ●다시 곤명(昆明:쿤밍 Kunming)으로 되돌아 오다. 처음 묵었던 중황호텔로 돌아와서 하룻밤을 보냈다. 쿤밍은 고도 1,860m에 있는 고원도시이다. 봄의 도시(春城), 꽃의 도시로 불릴 만큼 사계절 기온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날씨라고 한다. 에어컨이 필요없는 짧은 여름, 난방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되는 따뜻한 겨울로 추운 날은 며칠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 제일 큰 화훼단지가 이곳 쿤밍에 있다고 한다. 버스에서 바라본 시내에도 온통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은 건조한 날씨와 자외선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토양이 담배 재배에 알맞아서 중국에서 제일 큰 담배 공장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쿤밍시 재정 수입의 80% 는 담배 재배 수입이란다. 이를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지만 내 생각에는 조금 아쉽다고 해야 하나? 금연이 대세인 지금 시점에서는 말이다. 또한 고산지대여서 약 효능이 뛰어난 고산천마 등의 약재가 많이 나온다고 하며, 그래서 중국에서 제일 큰 제약회사도 이곳에 있다고 한다. 또 고산지대에 기후가 좋아서 마라톤, 육상 등의 국가대표선수촌도 여기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기릴 만한 유명한 두 분이 계시단다. 한 분은 중국 국가(國歌)(의용군 행진곡으로 중국 애국가)를 작곡한 작가가 이곳 출신이라고 하며, 일찍 요절했다고 한다. 또 한 분은 정화(鄭和) (1371~1433)로 중국 문화를 세계에 전파한 명나라 때 인물이다. 정화가 대항해 지도자로 발탁된 것은 무슬림이지만 유교와 불교를 접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서양의 마르코 폴로에 견줄 만한 인물이라고 세계사 시간에 배운 것 같다. 콜럼부스보다 100 여년 앞서 대항해의 길을 연 명대의 환관이자 군인으로 알려져 있다. 명나라 영락제의 명을 받아 아시아는 물론 남아프리카까지 진출하여 중국의 세력 확장, 외교를 넓힌 인물로 꼽힌다. ●세계 최대 규모의 종유석 동굴인 구향동굴(九鄕洞窟)을 구경하다. 가이드의 설명과 머리 조심, 발 조심하라는 주의사항을 들으며 九鄕洞窟로 이동하였다. 곤명은 구향동굴과 석림 두 가지를 보러 온다고 하며, 구향은 9개 소수 민족의 고향을 의미한다고 한다. 지하 50m 아래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동굴 탐사가 시작된다. 세계 최대규모의 종유석 동굴로 바깥 세상이 보였다가 지하로, 또 지상이 나타났다가 지하세계로 세 번이나 들락날락하면서 기나긴 동굴로 통과하는데 2시간 이상 걸리는 3Km 정도의 큰 동굴이다. 동굴 내에 계곡물이 흘러 쌍폭포를 이루는 자웅폭포, 계단식 논처럼 생긴 연못, 신전, 신녀궁 등 다양한 이름이 붙여진 종유석 동굴이다. 우리나라에도 종유석 동굴이 많이 있는데, 아기자기 예쁜 모습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다양한 종유석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구향동굴은 규모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장대하고, 폭포와 계단식논 모양 등이 많지만, 단점으로는 석순이 날카롭고 모양이 좀 별로이고, 계단이 많고 죽은 동굴이라고 가이드가 얘기했다. 동굴 관람을 마친 후 리프트를 타고 원래의 입구로 돌아왔다. 리프트를 타고 가면서 보니 원시인이 살았던 장소로 표시해 놓은 옛 삶의 터전이 눈에 들어온다. 아득한 먼 옛날 여기에 인류가 살았다는 흔적이란다. ●세계 최대 카르스트 지형인 석림(石林)으로 이동하다. 석림은 2억 7,000만 년 전 바닷 속에서 융기한 석회암 바위기둥이라고 한다. 수 억 수 백 만 년의 시간과 자연이 빚은 걸작인 석림은 대석림과 소석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石林이란 명칭처럼 다양한 모양의 거대한 바위 숲이다. 대석림 중앙에 173계단을 올라가 망봉정에 올라 석림 전경을 조망도 하고, 전동차에 나눠 타고 주변 전체를 순환하였다. 소석림에서는 금처럼 아름다운 처녀의 전설을 가진 ’아스마 바위’도 보았다. 인간의 편의에 따라 여러가지 다양한 이름이 붙여진 바위에 그 사연도 구구절절이다. 비슷한 규모의 토림(土林)도 있다 하니, 미국 서부의 브라이스캐년을 떠올리게 하며, 다만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할 뿐이다. ●운남성 특산물인 보이차(普洱茶) 도매 시장에 가다. 운남성의 주된 지역 특산물이자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보이차 시장에 들렀다. 보이차는 운남성 보이지방이 원산지라고 하며, 흑차(黑茶)로 후발효차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부드러워지고 깊어진다는 차다. ‘인유다장(人裕茶莊)’이라는 간판이 있는 보이차 상점에 들러 가게 주인으로부터 보이차 생산과정, 종류, 효능, 마시는 방법, 다도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구매는 각자 알아서.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한식으로 삼겹살 파티를 했다. 삼겹살이 국산 삼겹살만큼 고소하고 연하고 맛있었다. 나오는 반찬도 신선하고 좋았다. 이번 여행의 총무로 수고를 하시는 김용휴 씨와 또 한 분의 생일 파티를 겸하여 모두가 함께 축하하며, 포도주를 곁들인 풍성한 식사로 이번 여행의 마무리를 지었다. 남편이 집에서 담궈 가져온 매실주도 내놓아 함께 나눠 마셨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처음 찾는 여행지인 만큼 사전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곳 자연과 사회.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부족한 사전지식과 짧은 시간의 여행을 통해 전부를 알기는 어렵지만 모르던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 이번 여행의 수확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2025. 4. 14(월) 어제 밤 11시 30분 곤명 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 기간 내내 너무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좌석에 앉자마자 불편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잠에 골아떨어졌다. 비행 중 식사가 나왔으나 입에도 못 대도록 잠이 쏟아졌다. 비몽사몽 간에 새벽 4시 30분 경 무사히 인천공항에 내렸다. 한뫼회 회원들과 못내 아쉬워하며 그동안의 정들었던 여행을 마무리하는 작별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공항 1층으로 내려가 광명역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그사이 며칠 전 갈 때 보았던 모습과는 사뭇 계절이 달라졌다. 막 피기 시작하던 벚꽃이 활짝 피었다. 며칠 사이 강풍이 불며 4월답지 않은 쌀쌀한 날씨에 일부 지역은 우박이 쏟아졌다는 뉴스다. 쿤밍에서도 도착한 4월 9일보다 어제가 이상기온으로 기온이 많이 내려가 쌀쌀하게 느껴졌었다. 출근 시간이어서 차가 조금 밀렸지만 7시 20분 쯤 광명역에 도착하여 KTX를 타고 창원 집으로 향했다. ●
4박 6일간의 이번 여행을 통해 이런 생각을 해봤다. 몇 년 전 와서 본 중국이 아니로구나~~ 가는 곳마다 급속하게 발전한 모습이 깜짝깜짝 놀랄 정도이다. 또한 가는 곳마다 웅대한 대자연 앞에 감탄하였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새삼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너무나 똑똑한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나에게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키르키스스탄, 라오스 여행, 지리산, 속리산 산행 때 만났던 분들이 많이 있어서, 낯설지 않은 분들과의 여행이라는 생각에 스스럼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낯가림이 많은 나로서는 참 다행한 일이었다. 어느새 모두 70을 훌쩍 넘어선 적지 않은 나이에 이번 여행의 지나칠 정도의 빡빡한 스케쥴을 소화하기엔 사실상 버거운 일정이 아닐 수 없었다. 해발고도 2,000~3,500m 인 지리적 특성을 지닌 이곳 운남성 곤명, 여강, 샹그릴라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짐을 챙겨서 허겁지겁 조식을 하고 양치조차 못한 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살인(?)적인 빡빡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전원이 아무 문제없이 모든 이 일정을 소화해서 완수했으니 우리 모두가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신 회장단의 많은 노력과 수고에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를 칭찬합시다~~. 어느덧 인생의 절정기를 지나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하는 이 순간, 그래도 싱그러운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에 마음 맞는 친구들과 격없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졌음에 감사하며 이 순간이 앞으로의 삶에 활력소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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