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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別(이별)
간밤에 비 그치자 묵향(墨香)은 잠이 들고 거문고 줄을 잃고 창가에 기댔는데 고운 임 피리 소리는 홀로 담을 넘누나 대나무 그림자는 담벼락에 부서지고 매화꽃 짙은 향기 찻잔에 가득한데 멀리서 우는 물새는 떠날 때를 아느니 장부(丈夫)의 품은 뜻은 문갑 위에 놓아두고 붉은 마음 빈 가슴에 베갯잇도 젖었는데 혹여나 서운해 할까 돌아눕지 못하네
만남도 옛일이요 이별도 옛일이라...
봉영(峰瑩)
봉영(峰瑩)의 칠언배율(七言排律) 이별(離別)
夜雨初晴墨氣眠 琴絲已斷倚窓前 佳人獨笛聲踰苑 竹影微搖碎壁邊
梅馥猶濃盈茗椀 水禽啼遠告歸年 恐君生恨難回首 不易丹心濡枕筵
長夜深沈情轉切 呑聲嗚咽淚如泉 丈夫懷志安頭在 會散由來摠古緣
夜雨初晴 墨氣眠;(야우초청 묵기면)
밤에 비 그치고 날이 개니 먹의 향기는 잠이 들고
琴絲已斷 倚窓前;(금사이단 의창전)
거문고 줄은 이미 끊어져 창문 앞에 기댔는데
佳人獨笛 聲踰苑;(가인독적 성유원)
고운 님이 홀로 부는 피리 소리는 동산을 넘는구나
竹影微搖 碎壁邊;(죽영미요 쇄벽변)
대나무 그림자는 미풍에 흔들리며 담벼락에 부서지네
梅馥猶濃 盈茗椀;(매복유농 영명완)
매화 향기는 아직도 그윽하게 찻잔에 가득한데
水禽啼遠 告歸年;(수금제원 고귀년)
물새들이 멀리서 지저귀는 소리는 돌아갈 때를 알리네.
恐君生恨 難回首;(공군생한 난회수)
그대에게 한이 생길까 두려워 차마 고개 돌려 바라보지 못하고.
不易丹心 濡枕筵;(불역단심 유침연)
변함없는 붉은 마음은 베개와 대나무 자리를 적시네.
長夜深沈 情轉切;(장야심침 정전절)
긴 밤이 깊어갈수록 정은 더욱 간절한데
呑聲嗚咽 淚如泉;(탄성오열 루여천)
소리 내지 않고 흐느껴 우는 눈물은 샘처럼 흘러내리네
丈夫懷志 安頭在;(장부회지 안두재)
장부의 품은 웅지(雄志)는 책상 머리에 두었으니
會散由來 摠古緣;(회산유래 총고연)
만남과 헤어짐은 모두 옛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로다.
AI 감상평
이 한시는 비 개인 밤의 고막한 풍경을 시작으로 이별을 마주한
장부(丈夫)의 애절한 슬픔과 체념을 정교하게 그려낸 수작입니다.
동양적인 절제미와 자연의 정취를 통해 헤어짐의 슬픔을 억누르며,
이별의 아픔을 담담하게 수용하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공간적 배경과 고독의 심화 (1~2구)
夜雨初晴 墨氣眠 (야우초청 묵기면):
밤비가 갓 개어 사위가 조용해진 가운데, 서향(書香)을 뜻하는
묵기(墨氣)마저 잠들었습니다. 시인의 내면적 정적이 시각과 후각의
결합으로 차분하게 시작됩니다.
琴絲已斷 倚窓前 (금사이단 의창전):
거문고 줄이 끊어졌다는 것은 정든 님(知音)과의 인연이
다했음을 암시합니다. 홀로 창가에 기대어 선 화자의 쓸쓸한
실루엣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감각적 대비와 깊어지는 슬픔 (3~6구)
佳人獨笛 聲踰苑 (가인독적 성유원):
아름다운 이의 홀로 부는 피리 소리가 정원을 넘어옵니다.
보이지 않는 상대의 슬픔이 청각을 통해 화자의 공간으로
침투합니다.
竹影微搖 碎壁邊 (죽영미요 쇄벽변):
바람에 대나무 그림자가 흔들리며 벽 위에서 부서집니다.
흔들리고 조각나는 화자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투영한
묘사가 탁월합니다.
梅馥猶濃 盈茗椀 (매복유농 영명완):
매화 향기는 여전히 찻잔에 가득합니다.
이별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자연(향기)은
화자의 슬픈 처지와 완벽한 대비를 이룹니다.
水禽啼遠 告歸年 (수금제원 고귀년):
멀리 물가에서 새가 우니 비로소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잊을 정도로 깊은 시름에
빠져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별의 절절한 묘사와 비장미 (7~10구)
恐君生恨 難回首 (공군생한 난회수):
그대에게 한이 생길까 두려워 차마 고개를 돌려 바라보지도
못합니다. 상대를 향한 깊은 배려와 절제가 돋보입니다.
不易丹心 濡枕筵;(불역단심 유침연):
변함없는 붉은 마음은 눈물이 되어 베개와 대나무 자리를
적십니다. 슬픔을 억누르려 하지만 신체적으로 배어 나오는
슬픔은 감출 수 없습니다.
長夜深沈 情轉切 (장야심침 정전절):
깊어가는 긴 밤, 그리움과 정은 오히려 더 간절해집니다.
呑聲嗚咽 淚如泉;(탄성오열 루여천):
소리 내지 못하고 흐느껴 우는 눈물이 샘처럼 흘러내립니다.
소리 없는 오열이 독자에게 더 큰 먹먹함을 줍니다.
🌌영원한 고독과 연(緣)의 체념 (11~12구)
丈夫懷志 安頭在 (장부회지 안두재):
장부가 품어 왔던 큰 뜻은 책상 머리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의를 위해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떠나야 함을 고백합니다.
會散由來摠古緣 (회산유래 총고연):
만나면 헤어지는 법(회자정리)은 본래 예로부터 정해진
인연의 법칙임을 깨달으며 시를 맺습니다. 슬픔의 극한에서
오는 초연함과 체념이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2. 종합 감상평
시각과 청각, 후각의 섬세한 조화, 비가 갠 후의 고요함(시각),
끊어진 거문고와 담장을 넘는 피리 소리 및 새소리(청각),
그리고 찻잔에 감도는 매화 향(후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이별의 슬픔을 직설적으로 쏟아내지 않고 주변의 서정적인
풍경에 투영하여 슬픔의 깊이를 더욱 심화시킵니다.
내면적 갈등과 절제;
'장부회지(丈夫懷志)'와 '단심(丹心)'을 언급하며 대의나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이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암시합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면서도 상대방이 마음의 상처(한)를 입을까
염려하여 뒤돌아보지 못하는 절제된 감정선이 돋보입니다.
달관과 수용의 미학;
마지막 구절인 '회산유래 총고연(會散由來 摠古緣)'은 불교의
'회자정리(會者定離)' 사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헤어짐 역시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오래된 인연의 섭리'로
수용하고, 슬픔을 초연함으로 승화시키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이 시는 '절제된 비장미'가 핵심입니다.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呑聲嗚咽),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難回首) 정인(情人)의 인내와
매화 향기, 부서지는 대나무 그림자 같은 미려한 배경 묘사가
어우러져 이별의 아픔을 한층 더 격조높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7년 6월 동기홈피에 올린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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