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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軍隊이야기> 6월11일 대학교 ROTC 11기 동기생들과 학교를 졸업한지 딱 30년만에 해후를 하였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그때 그 시절이 다시금 가슴에 차올라와 오늘 여기에 한자 적는다.누구나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이라면 젊은 시절 끝도 없이 하곤하였던 그 군대 이야기를 말이다! 1973년 무더운 7월인가 8월인가 모든 교육을 끝내고 휴전선에서 약 8km 남쪽에 있는 155MM 곡사포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그 당시 그 곳은 여기저기 풀이 사람의 키 만큼이나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내가 짐을 푼 낡은 막사도 너무 초라하고 낡아 무언가 음산하기 짝이 없어 "정말 전방이구나!"하는 느낌이 뇌리에 깊히 파고 들었고, 밤에는 그야말로 전등 불하나 보이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고 그 어두움만큼이나 무거운 정적이 나의 주위를 마치 깊은 深淵에 빠진 것처럼 제압하고 있었는데 부임한 그날 밤, 쏠쏠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야간 소총사격 훈련에 따라나선 나의 기분은 군화에 치득치득 달라붙는 진흙만큼이나 언짢았고 축축한 습기,잘 보이지않는 풀밭길,무언가 익숙하지않은 묘한 분위기가 이곳에서의 나의 앞날을 불안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는 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밤만 되면 휴전선에서 쏟아지는 북한 女軍 동무들의 으시시한 육성 선전방송이 여기까지 들렸다"하는 이야기에 敵이 지척에 있음을 깨닫고 더욱더 비장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 다음날 내가 처음으로 지시 받았던 임무는 우리부대 바로 밑을 휘감아 도는 한탄강 지류--정말 이강은 아름다웠다.물이 너무나 푸르고 속의 흰모래가 환하게 들여다보여서 쳐다만 보아도 마음이 깨끗해지고 특히 가을에는 맞은 편 절벽의 단아한 단풍과 함께 그 물 빗깔이 더욱 돋보여 나의 마음을 설래게 만들었는데 군대생활하는 기간 내내 하루라도 내려다 보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내 마음의 유일무이한 안식처이었다 --변에 하기휴양소를 설치 하는 것이었는데 이때는 나도 어떻게 일을 해야할지 전혀 알수 없었던 터이라 선임하사들이 하는 것을 지켜만 보았는데 그 과정이란 대략 제초작업,평탄작업,숙소(텐트)설치 순이었는데 몇일 병사들에게 삽과 곡괭이 그리고 낫을 들려 작업을 시키니 나중에는 그럴듯한 "야외 하기휴양소"가 만들어졌는데 굳히 "직접원가"(direct cost)를 따져보면 병사들에게 하루에 밥 세끼 먹인것 밖에는 없어서 "참으로 사람의 힘이란 상당한 것이구나 !"하고 속으로 감탄하였다. 이일 이후 조금 있다가 부대가 "국군의 날" 행사 참여를 위하여 서울로 떠나버려--이 때도 정말 고생하였다."낡은 장비를 전부 새걸로 만들어라!"는 요상한 명령때문에 몇일 밤을 설쳤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여의도에서 완전히 새것으로 전부 지급되었다 한다.말하자면 헛고생만 한 것이었다--부득히 내가 잔류병력을 지휘하여야 하였는 데,이때 부여받은 임무가 비가 오나,눈이 오나 소총 사격훈련이 가능한 "전천후 사격장 건설" 이었다.병사들의 중지를 모으고 이런저런 고민 끝에 한 2주 걸려 만든 사격장이 "아주 잘 되었다"--이때 들은 칭찬의 감탄사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신참 쏘위가 이럴 쑤가...!.--하는 부대대장의 평가와 과단성있는 그의 결단(?)으로 현지에 배치 받은지 아마 한달 인가 한달 반만인가는 잘 모르겠으나 "일주일 포상휴가"를 받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는데 이 때의 나의 기분이야 말로 정말 천국에 간 느낌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마 이것이 ROTC 11기 동기생 중에서는 최초의 포상휴가였다고 나는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렇지만 본대가 돌아온 후,나중에 눈치를 챘지만,내가 만든 "전전후 사격장"의 객관적인 평가는 별도로 치더라도 우선 여의도에서 죽어라고 고생한 참모들과 포대장들의 기분도 기분이었겠고--여기서는 훈련시 잘 못하면 장교든 병사든 그 자리에서 몽둥이로 막 얻어맞았다 고 한다--"편안하게 부대에서 잔류하면서 포상휴가까지 갔다" 하는 자체가 대대장의 마음에도 그렇게 들지않았던 모양이어서 뒷 기분이 썩 좋지 않게 되었는데 지금도 확실히 이야기하지만 이 포상휴가에 대하여 부대대장과 나 사이에 일체의 뇌물이나 야합이 없었던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 .또 일년 뒤 다른 대대장이 새로 와서 알게되었지만 이때의 대대장은 비교적 병사들에게 휴가를 주는 일에 대하여는 사고 발생을 우려한 탓인지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 분이었다. 아무튼 이 이후로도 나는 자주 이런 류의 작업에 동원되었는데 무슨 "대민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인삼밭 개간도 몇군데나 해주었고 사령관 서울 자택에 보낼 정원석 채집 작업도 몇번이나 해주었다. 1975년 제대하는 해 봄에는 월남전에서와 똑같이 "대포를 360도 전방위 사격할 수있도록 진지를 새로 구축하라! "하는 명령이 내려와 그해 2월 말부터 공사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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