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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시흥(詩興)으로 비롯된 치졸한 나의 시작(詩作)에 대해 문학을 전공한 딸이 보내 준 시평(詩評) 내지는 감상문(感想文)을 몇 몇 독자는 흥미있게 보아 줄 것 같아 글마당에 올려 봅니다 그리고 딸의 조언(助言)대로 내 글을 계속 게재(揭載)하는 것은 더이상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읍니다 아까운 시간을 버려가며 내 글을 순수한 우정 차원에서 읽어 준 동기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빠의 시를 읽고 (전반부 생략) 암튼 아빠가 쓴 시는 맨처음에 올린 `가을이 오면`부터 잘 읽어 봤는데 잘 썼더라. 엄마는 왜 좋은지도 모르겠대 아빠랑 엄마가 서로 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 ㅎㅎ 일단 시를 읽을 때 무슨 의미인지, 주제는 무엇인지 구구절절 따지는 건 옛날식의 낡은 접근법이고, 시의 화자를 작가와 동일시하는 것도 독자가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고 봐, 따라서 작가가 어떤 시를 썼을 때 그 시는 현실적 인간으로서의 작가 자신과도 분리된 것이고, 어떤 뚜렷한 교훈이나 메세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어떤 뚜렷한 장면이나, 그 장면을 보여주는 데서 오는 이상한 분위기 그 자체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내가 읽어보니, 아빠가 쓴 시들은 언어적인 감각이 떨어지지 않아. 사실 문학적인 글을 오랜 세월 동안 쓰지 않아서 무뎌졌을 수도 있는데,아직도 독특한 미적 감각이 살아 있더라. 특히 행마다 음절이나 초성이 비슷해서 시각적 청각적인 효과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왠지 읽으면서 한 편의 시처럼 느끼게 되는 거야 그런 시어를 조합하는 능력은 분명히 타고나는 재능이지. 나는 `가을이 오면`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 그런데 또 분위기상으로는 4편의 시들이 모두 외롭고 쓸쓸한 심정인 것 같애. 엄마는 왜 이렇게 청승맞은 시를 쓰는지, 아빠가 심정이 어떤지 궁굼해했지만 내 생각에는, 나도 글을 쓰게 되면 분명히 내가 쓴 글이지만 사실 그 글 자체가 나와 분리되어 버리는 경험을 하곤 하거든. 현실적인 삶을 사는 박소현이 쓴 글이 아니라 박소현이라는 자아의 일부분에서 나온 글이기 때문에 가상적으로 짜여 있고,왜곡되어 있기도 해. 그래서 가령 홈페이지 같은데 써놓은 글을 보고 엄마아빠가 실제로 받아들여 걱정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하지. 원래 글에서는 보다 과장되고 드라마틱하게 표현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아빠가 쓴 시이지만 그게 100% 아빠의 심정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오류라고 생각해.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의 시는 외롭고 쓸쓸하게 느끼면 되는 거지 아빠의 현실 삶이 외롭고 쓸쓸하다고 생각하면 확대 해석이겠지. 물론 아빠가 작가로서 그런 심정을 느끼고,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시를 쓸 수 있었긴 하지만. 암튼 난 아빠가 이렇게 시를 멋지게 쓰는 걸 처음 봐서 매우 놀랐어. 물론 현대시의 프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부족한 면을 찾는다면, 묘사법이 대체로 고전적이고 얌전해서, 따라서 참신한 점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빠 세대와 같은 경북고 동창들이 보기에는 이렇게 잘 쓰기도 어려울 거야. 게다가 아빠는 학생 시절 이후로 문학 관련 글을 거의 접하지 않았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능과 감각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건 참 놀라워. 단 한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글마당이 아빠 글로만 도배되어서 (게다가 비슷비슷한 제목으로!) 시는 좋지만 아빠 혼자 너무 글마당을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봐.... 동창들이 바쁘지도 않냐고 핀잔할지도 모르니까. 글마당에 올리는 것은 이제 좀 천천히 쉬었다 하는 게 좋겠어. 그리고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은 사람을 풍요롭게 하니까, (엄청 피곤하게도 하지만) 아빠가 때로 쓰고 싶을 때 쓰는 시들을 올리는 홈페이지나 블로그 같은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아빠도 이제 인터넷을 조금씩 사용하니까, 엄마 블로그에다 메뉴 하나를 만들어서 써도 되고... 아빠가 시를 쓰는 것을 즐겨하는데,글마당에 못 올리게 되면 답답할 거 아냐. 암튼 다른 사람들도 글마당에 자주 글을 올리면 괜찮은데, 현재는 거의 아무도 안 올리고 아빠만 올리고 있으니까, 참 안타깝네. 아빠가 내 감상을 원한다고 해서 몇 자 생각나는 대로 써봤어. 엄마는 내가 시가 좋다고 하니까 `왜 좋은데? 주제가 뭐야?` 라고 물어봐서 제대로 대답을 못 해줬어. 어떤 좋은 시든 소설이든 그림이든, 이것이 좋다! 라고 생각이 들기만 하지 왜 좋은지 이유를 대기가 힘들어. 또 두 작품이 비슷한 수준의 퀄리티를 가졌다면, 주제가 뚜렷한 작품은, 주제가 모호한 작품보다 항상 한수 아래로 들어갈 수밖에 없거든. 아빠 덕분에 나도, 미적인 것들을 나름대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마워. 사실 예술과 같은 형이상학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도구적 의미 (그것으로 돈을 번다든지,명예를 얻는다든지) 이외에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되어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살아가는 데 가장 충만한 것이기도 해. 이제 밤도 늦었으니 내가 좋아하는 시를 한 편 적어보고 자야겠어. 아빠도 알겠지만 기형도의 유명한 시야.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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