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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일대 장관이었다. 서울 가까이에 이런 좋은 곳이 있는데, 여태 무엇을 하느라고 찾아오지 않았던가?...이 글은 우두산 고달사를 다녀 온 "鄭 淳台의 國寶紀行 20"의 몇 구절이다. 알고 나서면 동네 뒷산도 名山이고, 이웃 절간도 名刹이라던가. 혹시 한번 찾고저 나설 친구들께 알림삼아, 어제 高雲에게 보낸 메일을 게시판에 올립니다. =================================================== 高雲, 얼마전 春雨 글에 등장했던 高達寺의 얘기일세. 먼저, "廢墟는 廢墟대로 아름답다"는 副題가 달린 아래의 글을 옮겨보네. ... 月刊朝鮮 국보 답사팀(?)은 趙甲濟 편집장 등 무려 다섯 명이나 成群作黨(성군작당)하여 高達寺(고달사) 터 浮屠(부도)를 보러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마침 휴일이어서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목적 때문에 답사팀의 인원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었다.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1-1번지에 소재한 高達寺는 KBS TV의 인기 역사극 「太祖 王建」(태조 왕건)으로 다시 한번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극중에서 대단한 카리스마의 인물로 미화된 弓裔(궁예)가 등극 전의 떠돌이 시절에 중이 되기 위해 처음으로 落髮(낙발)을 했던 절로 口傳되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浮屠라면 이름난 승려의 유골을 안치한 탑인데, 高達寺 터 浮屠의 주인공은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것이 국보 제4호로 꼽혔다면 대단한 미술사的 가치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여주는 조선왕조 최고의 聖君인 世宗大王의 英陵(영릉:능서면 왕대리 山 83-1번지)과 孝宗의 寧陵(영릉:英陵과 500m 상거함), 그리고 남한강변의 절경에 위치하여 영화나 TV드라마의 로케이션 장소가 되는 神勒寺(신륵사)로 이름난 고장이다. 英陵을 모시는 사찰인 神勒寺에는 국보는 없지만, 보물 225호 多層石塔(다층석탑), 보물 226호 多層塼塔(다층전탑), 보물 230호 大藏閣記碑(대장각기비), 보물 228호 普濟尊者石鐘(보제존자석종), 보물 229호 普濟尊者石鐘碑, 보제존자석종 앞 石燈, 보물 180호 祖師堂(조사당) 등이 집결된 「寶物天國」(보물천국)이다. 이곳들과 高達寺 유적을 잘 묶기만 하면 여주는 수도권과 가깝게 연결되는 大문화관광권을 조성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조선왕조 때 이미 폐허화된 高達寺 터는 뜻밖에 여주 사람들도 가는 길을 잘 몰랐다. 우선 남한강변에 있는 여주읍내의 음식점 「여주쌀밥집」에 들러 길도 묻고 요기도 하기로 했다. 여기서 일행 중 한 사람은 7000원짜리 쌀밥을 무려 두 그릇 반이나 먹어 치워 일행의 기를 팍 죽여 놓았다. 一等米(일등미)로 평판이 높은 여주쌀로 지은 뚝배기밥과 고추장으로 버무린 콩나물무침이 이 음식점의 자랑거리였다. 옛 속담이지만 「배가 부르면 조선총독부도 눈 아래로 보인다」고 했던가. 답사팀은 기세좋게 읍내에서 큰 다리를 건너 북내면으로 진입했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神勒寺로 가는 길이며, 高達寺로 가려면 좌회전하여 북서쪽으로 난 37번 국도를 20리쯤 올라가다가 율촌 마을에서 우회전하여 88번 지방도로를 15리쯤 달리면 오르막길로 접어드는데, 그 중간 오른편으로 고달사로 가는 진입로가 있다. 안내판이 손바닥만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진입로를 따라 1km쯤 들어가면 기품 있는 420년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몸통 둘레가 2.2m다. 이것 하나로 이곳이 결코 만만한 땅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여기서 下車하여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모롱이 하나를 돌아서면서 숨이 막힐 듯한 기쁨을 느꼈다. 그 곳은 궁궐이라도 들어설 만한 넓은 대지 위에 역사의 현장 高達寺의 폐허가 벗은 그대로 펼쳐져 있다. 「속곳」도 입지 않은 高達寺의 속살을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일대 장관이었다. 서울 가까이에 이런 좋은 곳이 있는데, 여태 무엇을 하느라고 찾아오지 않았던가? 뒤늦게라도 여기에다 내 발자국을 남길 수 있게 된 데 감사했다. 거기에는 옛 高達寺의 주춧돌 등의 遺構(유구)가 깨알같이 널려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걱정스러웠다. 왜냐하면 「북내면 상교리 411-1번지 일대 유적 복원·정비를 위한 학술조사/조사기간 2000.11.1」이라고 쓰인 안내판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유적을 복원한답시고 숱한 문화재를 왜곡화하거나 천박스럽게 改惡해 왔던 바보짓을 거듭해 왔던 것 아닌가. 폐허는 폐허대로 아름답다. 여기다 날림으로 무엇을 세우고 울긋불긋하게 색칠을 해놓으면 우리는 역사의 본전을 잃을 뿐만 아니라 드디어는 뿌리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 아닌가? 高達寺 옛터는 國寶 하나에 寶物 셋을 품고 있는 민족문화의 보고다. 우두산(473m)의 너른 품을 독차지하고 있는 高達寺는 통일신라의 전성기인 景德王(경덕왕) 24년(764)에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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