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우수 경칩을 지나 3월 중순 따스한 햇살 속에 맞이한 봄날, 남녘에서 들려오는 매화 소식에 학창 시절의 매화 시조 한수를 옲어 보오만...... 그러다 꽃샘 추위로 심술도 부리며 더디 오는 봄도 있기도 하오만, 계절의 봄은 언제나 어김 없이 오는데, 어찌 마음의 봄은 상기 아니 오느냐 이황(李滉) 퇴계(退溪)선생님은 매화(梅花)를 끔직히도 사랑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기생 두향이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전 친우 박문송이가 설중매를 통하여 멋진 영상과 배경 음악을 깔아서 무드있게 그 고귀하고 애잔한 사랑을 구구 절절히 올려준 바가 있었다. 퇴계 선생님과 기생 두향의 만남은 퇴계 선생님이 단양 군수로 부임한 48세 때였으며 그때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님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하고 매화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녀가 퇴계 선생님의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와 같은 모습으로 닥아왔었던 것 같다. 그러나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이 퇴계 선생님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에 만남이 이루어 진지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운 마음 뿐이다.』 死別已呑聲(사별기탄성) 生別常惻測(생별상측측)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음이여...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화답으로 두향이도 시 한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때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님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 선생님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 하였다고 한다. 선생님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 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 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 했다는 증거였다. 퇴계 선생님의 한편의 시 속에 매화에 대한 숭귀한 애정과 사랑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하겠다 『 前身應是明月 (전신응시명월) 幾生修到梅花 (기생수도매화) 』 『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 퇴계 선생님이 단양을 떠날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있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올 봄 매화를 볼 기회가 있으면 두향의 사랑을 생각하고 한 번 유심히 바라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