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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正과 新正> 참으로 오랫동안 구정이냐 신정이냐 시끄럽고 부담스러웠는데 요즘은 사회적으로 일체 이런 문제에 대하여 왈가불가 말이 없을 정도로 당연히 구정을 설날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구화 바람이 이 땅에 불어와 일제시대 때부터 구정을 없애고 신정을 세우려던 위정자들의 약 80년간에 걸친 오랜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1988년 드디어 구정이 신정을 공식적으로 누르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이것은 "전통 민족문화의 승리"이고 어떻게 보면 요즘 회자되는 “세계화”에 역행하는 퇴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당시 나의 치졸한 생각으로는 조금만 더 인내하여 농촌 인구가 한 5%선으로 감소되고 동시에 우리 세대가 사라지고 “도시 제 3세대”가 이 사회의 주류를 이룰 때 즈음이면 약 1세기 간에 걸친 이 긴긴 노력이 결실을 이룰지도 모른다 하고 판단하여 그 중도하차를 한때 안타깝게 여기기도 하였다. 이웃 나라 일본은 어찌 되었든 오랜 역사 동안 사용하여 왔던 음력을 몰아내고 즉, 脫亞하고 양력을 확립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는지라,이러다 보니 OECD회원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만이 구정을 중시하는 東亞細亞的 나라로 남게 되었고 또 이것은 우리가 역시 지정학적으로는 일본까지는 확실하게 들어온 西歐文化와 오랜 옛날부터 너무나 엄연하였던 中華文化의 틈바구니 사이에 묘하게 놓여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통일신라 시대 이후,중국식으로의 創氏改名과 함께 일본보다도 훨씬 더 급격하게 진행되었던 “문화의 중국화”가 16세기 경부터 슬슬 불어오기 시작한 西風에 조금씩 흔들리다가 드디어 개화와 함께“문화의 서구화”로 방향을 틀어 무섭게 달려가기 시작하였는데,아마도 우연인지 모르겠으나,요즈음은 날로 강해지는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 증대와 함께 다시금 그 물 꼬리를 중국 쪽으로 슬며시 바꾸어 나가는 어떤 전환을 이 "舊正新正"사건이 시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과연 중국은 앞으로 이 구정과 신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또 우리의 돌아가신 조상 귀신 분들도 역시 陰氣가 너무나 충만하셔서 앞으로도 굳이 음력 설에라야 차례상을 받으러 오실 것인지도 참으로 궁금하다 하겠다. **부산에서 약 40여 km 밖에 안 떨어진 가깝디 가까운 이 일본이라는 나라도 옛날부터 당연히 중국 한자 문화권의 영향 하에 놓여 있었지만 우리보다는 문화의 중국화가 덜 진행이 되어 좀더 독자적인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왔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견해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人名과 地名,그리고 보통명사의 한자를 읽는 법이 굳이 중국어 발음이 아니라 일본 고유의 말(口語)을 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豊臣秀吉을 “도요 도미 히데 요시”로 읽는다든지 또는 大阪을 “오오 사카” 그리고 私를“와타구시”,山을 "야마"로 읽는다든지 하는 그런 것--"서라벌"을 그 뜻에 따라 "慶州" 라고 한자로 표기는 하되 결코 한자 음인 "경주" 라고는 발음하지 않고 계속 "서라벌" 로 읽는 것과 같음--들인데,만일 이런 판단이 타당성이 있다고 한다면 통일신라 시대 이전 우리 문화의 원 모습이 실제 어떠하였는지 하는 것은 오히려 오늘날의 일본 문화에서 더 잘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新羅,高句麗,百濟를 실제 그 당시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불렀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도 이 한자의 일본식 발음—시라기,고꾸리,구타라--에서 유추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2004년 1월 24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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