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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직장동료였다 은퇴한 지인이 말했다. 자기는 재령 이씨로 지금까지 4대봉사 원칙에 입각 제사를 꾸준히 모셨는데 너무 제사가 자주 돌아와 내년부터는 조부모 윗대는 내외분을 합쳐서 제사를 지내고 싶은데 이 사실을 이번 제사 때에 고유(告諭)를 해야 하니 나보고 고유문을 지어줄 수 없겠느냐고...... 나는 책을 들여다보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한글로 고유문을 지으시지요” 라고 무심히 말했다. 그랬더니 이 지인은 집안 어른들과 상의한 모양, 그 뒤에 나보고 국문 운운했더니 “합쳐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혁명적“ 발상인데 고유문을 한글로 짓다니 천하에 쌍놈이 할 짓이라 해서 할 수 없이 성균관의 한학에 밝은 분한테 부탁해서 지었다 했다. 그런데 우리가 죽어 저승에서 제사 때 잠간 다니러 왔는데 축문이나 고유문을 우리 아들 또는 손자들이 한자로 읊는다면 어떻게 될까.... 저승에서 이승을 드나들려면 몸이 가벼워야 할텐데 옥편이나 한자사전을 들고다녀야 할 것이다. 제사밥 한번 얻어먹으려다 짐이 무거워 저승행 열차를 놓치면 혼이 구천을 떠돌아야 할 것 아닌가? 고유문이란 문자 그대로 망자에게 알리는 글이다. 듣는 사람도 알기 쉽고 알리는 사람도 알기 쉬운 게 좋다. 축문도 마찬가지다. 굳이 한자를 고집하는 건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형식을 중시하는, 고리타분한 관습일 뿐이다. 나는 러시아에 있는데 제수거리가 마땅찮아 몇 년간 집에 있는 아들보고 대신 제사를 지내라한 적이 있는데 이 때 紙榜을 아들 기준으로 써야할지 내 기준으로 써야할지 몰라 집안 어른께 상의했더니 제사를 물리려면 정식 告諭를 해야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므로 내 기준으로 해야한다, 아들이 지내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대리인 자격으로 지내는 것 뿐이다라고 해서 할 수 없이 그 말에 따랐는데 그러다보니 아버지 제사 때는 내가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우리 아들은 “顯考處士府君神位”라 써놓고 상을 올렸기 때문에 흡사 내가 상을 받는 꼴이 되었다. 년전에는 월간지에 어떤 사람의 고민이 실렸는데 자기는 중앙부서국장으로 있다가 은퇴했는데 아들에게 자기가 죽으면 “현고처사부군” 혹은 “현고학생부군”으로 쓰라고 하면 격에 맞지않지 않느냐 즉 大夫,판서,판사,판윤 등 호칭으로 쓰도록 해야할 것 아니냐고.... 옛날 양반계급의 90 %가 관료이었을 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요새 식으로 한다면 “현고국장부군신위” “현고상무부군신위” “현고부장부군신위” 라 해야할 것인데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나는 지방도 한글로 두 줄로 “아버지(故李00)모시는 자리” “할머니(故朴00)모시는 자리” 이렇게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물론 한자를 섞어쓰는 건 찬성이다. 나는 나이롱 신자이지만 카톨릭인데 카톨릭은 제사를 허용하고 단지 神位의 神자만 빼라했는데 나는 神자가 정신 神자도 된다며 꿋꿋이 고집하다가 얼마 전부터 神자 대신 갈 之자로 바꿨는데 기회를 봐서 한글로 바꿀까 한다. 관습이란 그만큼 바꾸기 어렵다. 나아가 죽어서도 명당, 선산 고집하며 땅좁은 나라에서 묘터 구한다고 다름 사람들에게 폐끼치지 말고 화장하여 평소 좋아하던 산에 재로 묻은 뒤에 일년에 한번 아무 때나 등산 와서 소주 한잔 올리게 하는 게 어떨까(묘사 대신에)? 아니면 제사 지낼 때 괄호 안에 (故李00-팔공산신)이라 쓰게 한다면 너무 발칙한(산신과 동격이므로) 발상인가? 제사는 분명 미풍양속이고 이 때에 떨어져 있던 형제자매 친척들이 모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므로 살려야 한다. 그런데 살리려면 시대에 따라 다소의 융통성을 허용하는 게 길게 살아남을 제도로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우리도 내년이면 환갑! 벌써 묘자리를 정해놓은 동기도 있다 들었다. 죽을 때 미련 없이 가는 게 최대의 행복! 명당을 찾지 말고 한 줌 재라도 베풀고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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