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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와 가족 사이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을 거다. 집안 어른께 ‘가족’과 ‘식구’의 차이가 뭔가를 물었다. 그분은 나에게 “식구는 그저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사람 모두를 뜻하는 거고, 가족은 함께 살지 않아도 한 아버지 아래서 나온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니 ‘식구’보다는 ‘가족’이 더 중요한 거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말씀인즉슨 ‘식구’, 즉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란 ‘피’를 나누지 않은 하인이나 식객도 포함되므로 그리 중요한 의미가 아닌 반면, ‘가족’은 함께 살지 않아도 한 피를 나눈 사람들을 뜻하므로 ‘식구’의 개념보다 그 가치가 상위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난 그저 두 단어의 ‘차이’를 물었을 뿐인데 그 어르신은 두 단어의 ‘우열’을 분명히 가르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참으로 무서운 말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악법인 호주제 폐지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고 이 땅에 들어와 살고 있는 수많은 외국인들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일이 다 이처럼 ‘식구’의 개념을 천시해서 생기는 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린 모두 ‘단군의 자손’이니 ‘식구’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난 우리가 단일민족이란 말을 믿지 않는다.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삼면은 바다요 위로는 대륙에 닿아 있으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은 우리가 어찌 한 아버지, 한 어머니에서만 이어져 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섞여도 한참 섞였을 것이다. 국내 입양이 아직도 양지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도 어떻게 ‘남의 아이’를 키우는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 얘길 들으면서 난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가 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아니던 사람도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이어야 맞다. 남남이 만나 가정을 이루듯 부모를 필요로 하는 아이와 아이를 필요로 하는 부모가 만난 것도 똑같은 ‘가족’으로 봐야 마땅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꽃이 되어주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얼마 전 아이의 혈액형이 자신과 아내 사이에선 결코 나올 수 없는 형이 나왔다고 몇년을 그 아이와 아내를 학대하자 ‘결백’을 주장하던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동반자살을 한 일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혈액형 검사가 잘못된 거였고 남편은 그제야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한다. 남자가 여자를 학대한 이유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하지만 ‘남의 자식’을 제 자식인 줄 알고 키운 것이 억울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태 사랑으로 키워 오고 온갖 정이 다 들었을 아이까지 학대했을 리가 없다. 기껏 자신에게 와서 ‘꽃’이 됐던 아이를 ‘남의 자식’이란 생각 하나로 어찌 갑자기 미워할 수 있는지 …. 또 하나. 세 살배기 아이가 출산 때 병원에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고 도로 ‘바꿔’달라고 생떼를 쓰는 부부를 봤다. 도로 물릴 게 따로 있지 …. 어떻게 자기 핏줄이 아니란 이유로 3년을 살붙인 아이를 물건 바꾸듯이 바꿀 수가 있는지…. 우리 부부에겐 지금 네 살짜리 딸아이가 있다. 우린 그 뉴스를 보면서 만약에 우리가 저 경우라면 어떨까를 생각해 봤다. 남편의 정자와 내 난자로 인해서 태어난 ‘그’ 아이가 지금은 어디 있을지 궁금하긴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된 이 아이와 ‘바꿀’ 수는 없는 거다. 난 나의 친정 부모를 그리고 내 딸아이를 ‘식구’의 의미로 사랑한다. 피를 나눴다거나 성씨가 같다는 이유가 아닌, 생각만 해도 콧등이 시려오는 사랑으로 채워진 기억 때문에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게 ‘꽃’이 되었기 때문이다. (덧글;‘한겨레’라는 제호도 상당히 배타적인 말일 수 있다. ‘단군의 자손’이 아닌 사람은 신문을 보지 말란 뜻인가 이참에 제호를 ‘한 식구’로 바꿈이 어떨는지. 이 땅에 들어와 사는 이상, 우리 집에 들어와 사는 이상, 다 ‘한 식구’인 것을….) 오지혜 배우 ............................................................................................... (그래서 예수님과 틱낫한 스님이 '먹는 것'을 그렇게 강조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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