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경칩이 지났건만 때 아닌 50 년만에 폭설로 잠시 주춤 거리던 봄은 이제는 찾아 들여는가 봅니다.
지난 3월 14일(일) 백발회 228회 봄맞이 산행지 경북 의성의 금성산을 등정하고 왔습니다. 본인으로서는 지난 해 10월 만추의 칠보산행 참가후 5개월만에 참가하여 신임 백발회 고재욱 회장님에게 출석 인사도 드리고 처음 찾아본 금성산 산행을 의미있게 하고 온 멋진 하루 였습니다.
우리 동문중에는 의성이 고향인 친우들도 있으리라 의성은 태백의 힘찬 줄기와 낙동강이 감돌아 흐르는 지역으로 옛 삼한시대부터 부족국가인 조문국(召文國)의 숨결이 서려 있으며, 마늘 농사가 잘돼 전국 1위 생산량을 자랑하는 경북 북부에서 가장 너른 안계평야에서는 황토쌀이 특산물로 인기가 높은 곳이지요.
금성산(金城山) 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과 가음면에 걸쳐있는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31m 이며, 의성읍에서 28번 국도를 따라 영천방향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솟아 있다.
이곳은 과거 중생대 백악기(약 7천만 년 전) 화산 폭발에 의해 형성되어 화산 분화구가 꺼져 내려앉은 칼데라(화산 함몰체)로 오랜 세월의 풍화와 침식을 받아 화산의 밑둥치만 타원형으로 남아 있다. 서쪽으로 금성산이, 동쪽으로 비봉산(672m)이 위치하고 있다.
금성산은 가마와 비슷하다고 하여 가마산이라고도 부른다. 내륙분지에 솟아 있는 산으로, 의성군의 명산으로 꼽힌다. 사화산(死火山)으로, 한반도 최초의 화산이다. 백악기에 화산이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때문에 정상에 1,000 여 평의 평지가 남아 있다. 마주보고 있는 비봉산(飛鳳山:672m)과 함께 절경을 이루고, 울창하게 우거진 숲은 소나무·갈참나무·신갈나무 등의 수목이 주를 이룬다. 화산 폭발의 흔적인 정상의 평지는 천하 제일의 명당자리로서 이곳에 조상묘를 쓰면 당대의 만석꾼이 되지만 주변 지역은 3년 동안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지금도 주민 들이 남몰래 땅을 파헤친 흔적이 곳곳에 있다.
금성면이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의 도읍지였던 탓에 산 속과 인근에는 석탑을 비롯한 귀중한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정상 북쪽에는 조문국 시절에 세운 것이라고 추정되는 높이 4m, 넓이 2∼4m의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유정(惟政)이 왜군과 싸우던 곳이기도 하다. 산 속에 흩어져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200여 기는 경상북도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남녘으로 부터 전해지는 봄 소식중 매화 개화가 으뜸이라 할수 있겠지요 3월이 되면 경남 김해 공고의 60년이 넘은 고목의 매화 등걸과 양산 통도사의 홍 매화의 명성으로 전국의 사진 작가분들이 불원천리 멀다않고 찾아들 오지요
지난해 3월 김해 공고에서 담아본 매화 입니다. 아래 홍매화는 양산 통도사의 금년 3월의 매화 영상으로 부산의 전문사진작가 작품입니다.
봄 맞이 산행이라 꽃 구경을 하고 싶었으나 산행내내 할미꽃도, 민들레꽃도, 개나리도 만나볼 수 없었지요
금번 금성산 산행 사진을 나름의 순서데로 정리하여 올려 봅니다. 마음이 동하시면 댓글을 달아 보심은 어떠 하실는지.....
으로 정하고 산행은 시작 되었으나 실제로는 예정된 코스로 하지 못하고, 봉수대 못미친 지점에서 중식을 하던중 가는 빗줄기에 점심을 빨리 끝내고, 일기가 불순하다는 명목으로 급기야 제1코스로 바꾸어 하산(下山) 하다보니 너무 이른시간에 산행을 마쳐지는 형국이 되어 .....
금성산 정상을 좀 지난 포인트에서 중식을 한후 포항에서 올라온 김지홍 동문이 오늘 산행에 합류하여 오랜만의 만남에 우정 어린 해후를 하였다.
산을 탄다면 금성산과 비봉산을 함게 등정하는 제 4코스정도 하면 훌륭한 산행 종주 코스가 될성 싶다.
포항에서 출발한 김지홍 동문이 우리 산행코스의 역으로 시작하여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1시경에 조후 하였다. 중식을 마칠즈음 갑자기 비가내려 부랴 부랴 짐을 챙긴후 당초 목적지 였던 봉화대를 포기하고 하산하려는데 저편 바위등선을 가로질러 오는 낯 익은 얼굴이 있었으니 포항에서 정형욋과 개업을 하고 있는 김지홍 동문이다.
아침에 우리 산행에 참가하려 금성산에 왔지만 산행코스가 우리와 역순으로 올라 왔기에 봉화대에서 혼자서 점심을 들고 금성산 정상으로 오르던길에 우리와 조후하여 이하 산행을 함께하며 오랜만의 해후한 덕담어린 우정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친구 김지홍 동문! 반가웠네만 본인의 부주의로 떠날 때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하여 아쉬웠다네.
< 용문정 갈림길에 만난 포항 김지홍 동문과 함께 >
< 봉수대는 가보지 못 하고 하산길에 접어 들었으니 >
< 오늘의 포토제닉 ( photogenic) 금슬좋은 홍상식 동문>
< 박태기 동문의 산행 모습이 마치 수련하는 道人의 모습으로 비쳐진다 >
금번 산행 완주를 위하여 박태기 동문은 지난번 수술후 나빠진 건강을 추스리기 위하여 단단히 체력 단련을 하였다고 한다.
친구여 ! 건강 관리 잘 하여 오랫동안 함께하는 산행길 되었으면 한다네 !
< 용문정(龍門亭) 유초각 (惟肖閣) >
하산 길 금성산 산행 출발지 주차장과 가까워 올 즈음 만난 유초각(惟肖閣), 금성산 산행들머리에 위치한 고풍스런 사당이 있었으니....
달리 안내문도 없고 무척이나 궁금하여, 사당 외곽에 설치된 철문을 열고 경내로 들어가 보았지만 역시 달리 안내문도 보이지 않았다.
초계문신[招啓文臣] 이희발[李羲發]이 전원생활을 즐기던 용문정[龍門亭] 운곡[雲谷] 이희발(1768~1850) 선생이 전원생활을 즐기며 학문을 닦던 곳이다. 금성면 수정리 금성산 들머리 용문곡[龍門谷]에 위치하고 있다. 용문이란 정자 이름에는 용이 솟구쳐 오를 용소[龍沼]가 저수지로 변한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다. 정자 초입에는 이희발 선생의 하사 도상[下賜 圖像 : 정조 때의 우수한 초상]이 봉안된 영각[影閣] 유초각[惟肖閣]이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반 규모의 팔작 기와집의 현존 건물은 세월이 흘러 퇴락한 것을, 1924년 후손 이홍[李鴻]이 개축한 것이다. 주위로는 방형의 돌담을 둘렀으며, 앞쪽에 사주문[四柱門]이 있다. 평면은 어칸의 2칸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 앞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고, 나머지 3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운곡선생은 충간공 자암 민환[忠簡公 紫巖 民환]의 후예로 자는 우문[又文], 호는 운곡,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1795년(정조 19년)에 문과에 급제, 규장각의 초계문신으로 발탁 되어 육재경학[六載經學]과 용학강의[庸學講義] 4권을 지었고, 「주서고시(朱書故시)」 두 권을 편찬한 것이 홍재전서[弘齋全書]와 성조찬경의[聖朝贊經義]에 수록되어 있다. 공은 임금에게 참다운 유신[儒臣]으로 인정받았다.
벼슬은 지평, 장령, 집의를 거쳐 영해와 영월부사, 한성우윤, 순조말에 사간원 대사간, 헌종초 승지, 만 80 세에 병조참판을 지내고 지중추부사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 갔다. 1849년(현종 15년) 형조판서가 되고, 다음 해 (철종 원년) 정월 16일에 83세로 돌아갔다. 시호는 희정[僖靖]이다.
< 금성산 산행을 마치고 산행 지도 안내판 앞에서 멀리서 함께한 김지홍 동문과 함께 >
< 산행을 마치고 주자창 산행안내판 옆 정원 돌계단에서 후미 그룹을 기다리며 .... >
뒤쳐진 후미 그룹을 기다리다 주차장 건너편 공원을 둘러 보았다. 의성군에서 삼한시대 조문국 부족국가 왕관과 기마상 그리고 공룡조각상등으로 문화공원을 조성 해 두었다.
< 공용 조각상 앞에서 >
< 공룡 조각상앞에서 >
본인의 내자이자 한결같은 마음으로 내조 해준 고마운 하나비 결혼정보 이영숙 원장
< 산행의 일정을 소화해준 백발회애마 마이크로 버스 >
< 3월 꽃집에서 만나 본 '라란큐러스' >
푸레지오에 둘러쌓여 고귀한 기품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이 꽃의 꽃말이 ' 사랑하는 그대여 !' 라고 꽃집 여사장이 들려준다.
아름다운 글과 시와 음악과 영상이 잘 어우러진 한편의 종합예술작품을 올려준 광희야, 광희의 작품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과 생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마력이 있소이다. 고재욱 회장과 성정경 총무의 새 백발회호의 거침없는 전진과 변함없는 순항을 기원하네. 백발회원들아, 우리 4월에 또 환하게 웃으며 만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