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30일 학창시절,주위 사람들로 부터 자주 들었던 華陽,淸道,雲門을 大邱에 들린 김에 큰 마음먹고 짬을 내어 기어코 다녀오게 되었다.
대구에서 남쪽으로 곧장 달려가 눈 앞에 가로 막힌 큰 산을 옛길 八助嶺을 통하여 넘어서면 華陽,淸道로 가는 좁은 길이 눈 아래에 가물가물 펼쳐진다. 양쪽 나지막한 산들 사이로 난 이 길은 한여름의 찌는듯한 무더위 속에 막걸리 술이라도 익는 듯 부글부글 잠겨 있었고 달려가는 도중 도처도처에서 벼 익는 내음,그리고 향긋한 복숭아 내음이 쉴 사이없이 나의 마음을 그윽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우측 길 옆 君子亭 蓮池에서는 바람에 가득 흔들리는 분홍 연꽃과 푸르고 큰 연잎 그리고 이를 따라 물결치듯 스며나오는 蓮香이 마치 나를 古代의 한 작은 佛國으로 인도해 주는 듯하였다.
비록 앞뒤가 산으로 막혀 있지만 그래도 벼농사에 적합한 충분히 넓은 華陽 벌판에 이르러 淸道川을 가로지르면 근대에 들어 철로가 淸道로 뚫리기 이전까지만 하여도 고대로 부터 오랫동안 이 곳이 바로 옛 농경사회의 중심지이었음을 석빙고,화양읍성 등의 유지를 굳이 둘러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가 있어서 넓고 평평하고 아주 잘 관리 된 요즘의 복숭아 과수원들을 보며 시절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雲門의 산세는 둥글 뭉실하면서도 너무 우람하여 마치 "경상도 보리 문둥이 아지매"들의 몸매를 닮은 듯 그 후덕한 분위기를 아낌없이 연출하고 있어서 첫눈에 매우 놀랐는데,그 다음날 아침 일찍 울창하고 오래 된 松林 길을 거쳐 雲門寺에 들어가 보니 보존하고 있는 보물도 보물이지만 이 도량(道場)의 넓고 평평한 터와 규모를 보고 더욱더 놀라게 되었다. 어떻게 한 산의 계곡 안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을 수 있겠으며 도대체 이런 곳에 궁궐 처럼 크고 많은 건물을 지어 놓은 절이 어디 달리 또 있을까? 하고 아무리 찾아보려 하여도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우락부락한 嶺南을 가로 베고 누워있는 雲門山(해발 1,195M)의 산세는 특별하여 구름 덩어리가 노상 출입을 하는 곳이라 이런 큰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으리라고 나홀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이 우리나라 비구니들의 가장 큰 道場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니 그 오묘함이 절로 마음에 와 닿고 또한 이 산세와 함께하는 이 지방 여성 분들의 넉넉하고 큰 度量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하겠다.
雲門寺에서 다시 雲門嶺을 넘어 迦智山(해발 1,240M)의 碩南寺로 가파르게 올라서니 이곳 또한 비구니들의 작은 도량이라 이렇게 높은 곳까지 와 닿는 그 분들의 마음은 어떠한 것인지 나로서는 측량할 길이 없지만 산 이름 그대로 산봉우리 가파르게 높히 서고 마루에 걸터 앉아 그곳을 바라보는 한 젊은 비구니의 옆 모습이 어느덧 迦智山 모습을 그대로 닮아 가는 듯하여 발길을 돌리는 나의 마음을 잔잔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부디 부디 成佛하소서....!
내려오는 길은 마치 보리 문둥이 아지매들의 풍부하고 완만한 가슴,허리선을 타듯 느릿느릿 한참 동안 그 풍만한 여유감을 만끽하였는데 도중에 密陽 表忠寺로 가는 안내판이 보여서 잠시 고민하였으나 대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집사람과의 약속 시간을 고려하여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국도 24번에서 국도 25번으로 갈아 탄 뒤,淸道,華陽을 거쳐 되돌아 와서 다시금 君子亭 蓮池 앞에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람에 흔들려 은근히 蓮香을 풍겨내는 분홍빛 연꽃과 푸른 연잎 사이 사이를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가 한마디의 말도 그리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 대신으로 분홍빛 桃香 그윽한 이곳의 복숭아를 몇개 사들고 이번 짧디 짧은 여행을 못내 마무리 하였다. 물론 언젠가 다시 大邱에 들리게 되고 또 다시 짬이 난다면 이번과 똑 같은 길을 다시 한번 돌아볼 것을 다짐함으로써 무언가 아쉬운 듯한 내 마음을 미리 달래 놓는 것을 나는 잊지 아니하였다.
2010년 8월21일 씀
***오늘은 너무 더워서 아침 일찍 북한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어쩌다 5년전 그때의 일이 생각이 나서 무슨 더위를 먹은 탓인지 "우선 일단 글로 적어나 두자!" 하는 객기가 생겨 불현듯 一筆한다.사실 그동안 한번 더 華陽,淸道,雲門에 가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저렇게 세월만 가고 말아서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이제는 조금 자신이 없어지게 된 것도 한편으로 작용하였다고 본다. 오래 전의 일을 5년이나 지난 오늘 비로소 쓴다는 것이 상당히 어줍기는 하나 여러가지 복잡하였던 당시의 느낌들이 오히려 단순하게 머리 속에서 그간 나도 몰래 정리가 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니 오히려 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華陽,淸道 출신의 동기 분들도 몇 분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이 고장에 관한 글을 그곳 사정을 잘 모르는 外地 사람인 내가 쓴다는 것도 좀 마음에 걸리는 바, 혹시 글 내용 중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더라고 "더위 먹었겠거니..."하고 넓은 雅量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한마디]
봉영
춘득아! 반갑다. 청도자랑 할라면 좀 넓은데 가서 해라. 서역 실크로드 여행기도 좀 올리고.. 그라고 난 현풍노인 땜에 졸지에 청도파가 됐는데 우야마 좋노? 난 류대인과 같은 대구역 굴다리 북두칠성 칠성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