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바야흐로 디지털이 대세이다. 밥도 디지털로 끓이고 편지도 몇 자 꾹꾹 눌러 SMS 또는 전자메일로 보내면 된다. 보는 것, 먹는 것, 입는 것의 세탁, 다 디지털이다.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살다가 인생의 후반에 겨우 디지털에 휩쓸렸다.
근데 디지털에는 영혼이 없다. 0 과 1 의 천문학적 회수를 되풀이하여 답을 찾아내고 영상을 만들어내고 열을 발생하고 문자를 구성한다. 빠른 대신 멋이 없다. 디지털은 아무리 발달해도 영혼이 없기에 위험하다.
나는 지구 종말설은 믿지 않지만 인류 종말설은 믿는다. 아마 인류멸망의 원인은 지진, 해일, 홍수, 운석충돌, 자북(磁北)의 이동 등 외부요인이 아니고 디지털이 극도로 발달해 인간이 디지털에 지나치게 의존해 일어나는 대형재앙으로부터 일 것이다.
유아기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아이들은 왠지 0과 1, 흑과 백, 적과 동지 이런 것만 알고 타협, 기다림, 인내, 상호존중 이런 데 약한 것 같다. 퇴근 때 좌석버스를 타 보라. 전부 아이폰, 스마트폰, 최신 폰을 들고 영상감상, 게임, 문자보내기에 바빠 눈을 아래로 깔고 있다. 그러니 70노인이 서 있어도 자리 양보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버스를 타면 먼산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있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끄덕끄덕 조는 사람, 차 내를 두리번거리는 사람 등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
디지털로 보내고 받는 메일은, 가슴 조이며 기다리던 편지를, 어느 날 우체부가 하얀 눈 위에 펄쩍 던져놓은 것을 두근거리며 뜯어보는 아날로그 시대의 정겨움이 없다. 디지털 전기밥솥은 가마솥에 불을 때며 오손도손 말장난을 하다 누룽지를 만들어 먹는 재미가 없다. 디지털로 타임을 맞춰 누르면 나오는 커피는 아날로그시대에 처녀가 섬섬옥수로 저어, 날계란을 띄워주는 모닝커피의 풋풋한 맛이 없다. 디지털 보일러 시대에는, 쇠죽 솥에 불을 때면 새벽에 구들이 따뜻해오는 것을 등으로 느끼는 따사로움을 경험할 수 없다. 디지털 문자로 보내는 사랑의 고백에는, 戀書를 들고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며”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무는” 조마조마함과 야릇함이 없다. 디지털로 하는 안부문자는 시집 간 딸이 잘 지나는지 궁금하던 차, 어쩌다 그 지방을 다녀온 사람을 통해 전해 받은 “어머님 뎐상서………”로 시작되는 한지를 읽어 내려가는 정감이 없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속도 하나를 얻는 대신. 신비함, 다정다감한 감정, 오손도손한 정겨움, 기대감, 조아림, 긴 생각, 그리고 영혼을 잃어 버렸다!
[나도 한마디]
한사노바
맞다! 디지털 세대들이 보는 야동은 화끈하기는 하지만 방인근의 고금소총, 금병매 처럼 흥건히 음탕함과 해학이 없다. 혹 디지탈 세대들이 조루증에 걸려 대한제국의 인구감소로 이어질까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