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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멸사봉공(滅私奉公) |
| 이름 |
봉영(峰瑩) |
등록일 |
2011-06-12 오후 1:59:00 |
| e-mail |
mariscal24@naver.com |
| 내용 |
멸사봉공(滅私奉公)

























중국의 백만대군이 못한 것을 한국의 한 청년이 해냈으니 참으로 장하도다.

카이로 회담에서 처칠은 한국에 대해 미-영-중 3국의 신탁통치를 제안하였으나
장제스는 이를 일축하고 한국의 독립에 대한 약속을 선언문에 넣자고 주장하여
이를 관철시켰다. 누구 때문이었을까? 무엇 때문이었나? 역사는 분명히 말한다.

윤봉길 의거 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장제스는 임시정부를 할 일 없는
망명객들이 내부투쟁이나 일삼는 파락호집단으로 여기고 한 푼도 돕지 않았다.
그런데 수통 폭탄 한방으로 일본 침략군 사령부 이동체를 일거에 섬멸하였으니
그제서야 장제스는 물심양면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돕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신시절 의문의 추락사로 사망한 장준하 전 국회의원과 한국 젊은이들의 영원한
스승이자 사표로서 존경을 받았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광복군 시절의 모습.






김구 선생 암살 당시 방첩대 소속 육군포병 중위 안두희

암살의 배후로 알려진 김창룡 방첩특무대장(후일 중앙정보부장과 같은 직책)은
일본 관동군 헌병대 오장 출신으로 수많은 독립지사를 체포 고문하여 처형했던
친일파로 악명이 높았으며 해방 후에는 반공전사로서 이승만의 총애를 받았다.

여순 반란사건 당시 남로당의 비밀조직 간부였던 박정희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김창룡은 백선엽 등 만주군맥을 동원해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하였다.
그때 박정희는 전향하여 군부내 남로당 조직을 고변했고 천여 명 좌익계군인들이
처형되었다. 혹자는 이 일로 6.25 때 우리 국군이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진충보국(盡忠報國) !! 멸사봉공(滅私奉公) !!





아!! 어쩌랴..호국선열들의 뜨거운 민족정기(民族精氣)여..!!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역사(歷史)여..!!
Mozart - Requiem For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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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등록일자 |
등록자 |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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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사봉공(滅私奉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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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2 |
봉영(峰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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