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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한민국 태극기 !
이름   열린마음 등록일   2011-06-16 오후 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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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대한민국(大韓民國) 태극기(太極旗) !






1. 우리나라 맨처음 국기 이름은 '조선국기(朝鮮國旗)'

우리나라의 국기가 맨 처음 만들어졌던 조선왕조 시대 때에는 나라의
이름인 '조선'과 함께 '조선국기'라 불렀다. 당시 조선왕조를 나타내는
국가의 명칭이 '조선'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후 1897년 고종황제가 「달력은 명시력(明時歷), 국기는 태극기,
즉위일은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로 한다고 천명하므로써 조선왕조의
국기 명칭이 비로소 태극기로 정식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태극기라는 명칭의 유래

'태극기'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 때부터였다. 18세기 말엽 조선왕조는 관리
들의 당파 싸움과 부정부패로 말미암아 나라 꼴이 허약해기기 시작하였다.
이런 기회를 노려오던 일본은 마침내 1910년 조선왕조를 송두리채 빼앗아
갔다.





격분한 애국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으로 일본에 맞섰다.

1919년 3월 1일 정오에 맞춰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과 함께
전국적으로 대한독립 만세 운동를 펼치기로 하였다. 이날 참여한 모든 국민
들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손에 손에 '기'를 들고 나오기로 하고, '기' 제작을
하였는데, 그때만해도 일본 당국은 '태극기' 보다는 '조선국기'로 알고 있어서
국기 이름을 일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로 부르자고
약속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일본 경찰은 탑골공원이며 종로거리이며
동대문 성벽까지 가득 메운 인파들이 그렇게도 많은 태극기를 어디서 어떻
게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매우 당혹한 나머지 태극기를 든 사람이라면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팔뚝을 자르는 등
천인 공노할 끔직할
만행을 저질렀다.





< 상해임시정부 태극기 : 독립기념관소장 >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 애국지사들은 중국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만들고, 국기를 바라보며 독립 의지를 불태웠다. 해방되기
3년전인 1942년 3월 1일에는 한국 임시정부수립 23주년 3.1절 선언문을
발표하였는데, 거기에 국기이름을 '태극기'로 정하고 그 존엄성을 명문화
하였다.


6월은 호국(護國) 보훈(報勳)의 달 !




< 불원복 태극기 >



전남 구례군의 고광순(1848∼1907) 의병대장이 항일운동을 하면서 사용한 태극기
이다. 태극기 위에 "불원복(不遠復)" 즉 "머지 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라고
써 넣은 글씨에서 알수 있듯이 항일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3. 태극기 변천사

우리나라 국기는 1882년 최초로 만들어진 이후 숱한 시련과 수난 속에서도
그 뿌리와 정신만은 굳건히 지켜왔다. 특히 일제 36년 동안이라는 잔인한
세월을 거치는 동안 그 육신은 비참하게 찢기었어도 '태극기' 그 이름만은
고이 간직해왔다. 이런 과정속에 존재 하기 위해서 여러 모습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되었다.







□ 1단계 태극기




1882년 10월 2일자 일본 동경발행「시사신보」에 소개한 최초의 태극기모습과
맨위에「조서국기」라는 캡션과 함께 4괘안에 음(청) 양(적)의 위치를 지정한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최초의 태극기 4괘는 현재의 「건」「곤」「감」「이」

☰, 건乾, 천天 ☷, 곤坤, 지地
☵, 감坎, 수水 ☲, 리離, 화火


태극기와는 달리 「손」「간」「진」「이」

☴, 손巽, 풍風 ☶, 간艮, 산山
☳, 진震, 뢰雷 ☲, 리離, 화火


4괘가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는 1882년에 수신사 박영효일행이 일본을 방문 할 때
고종 황제로부터 허락받은대로 배안에서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록은 있
으나 당시 그렸다는 태극기모습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웠으나 태극기연구가
송명호(시인. 필명 송명)씨가 115년만에 일본 동경도립중앙도서관에서 조선에
처음으로 국기가 만들어졌다는 기사와 함게 태극기 그림이 실린 시사신보
(1882.10.2.월요일)를 발견, 이사실을 1997년 8월 15일 언론에 공개하므로써
115년만에 그 발자취를 찾아내게 되었다.

괘의 모습은 현재의 태극기와 상당히다르고 음방과 양방의 배치도 좌우 대칭
되어있다. 실물이 아니기때문에 최초의태극기의 원형에 대해서는 아직 미확인
된 상태이다.


□ 2단계 태극기




1885년 고종황제가 당시 외무담당 미국인 데니씨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 1897년에 세워진 독립문에 조각된 태극기와 유사하다. 실물로써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이다. 현재는 원형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중이고 복제품
은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있다.


□ 3단계 태극기




1896년에 발행한 독립신문 제호에 도안된 태극기.독립신문의 제호 태극기는
발행될때마다 그 모양이 다르게 되어 혼란을 초래했다.

4괘와 태극문양의 배치가 고정되지 않고 여러 형태로 바뀌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태극기 제작에 관한규정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한가지 특징은 태극 문양의 머리 부분에 눈이 없다는 점인데, 이것
은 머리 부분에 눈이 있는 중국의 태극문양(주역문양)과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
게 구분하고 있다.


□ 4단계 태극기




1900년 파리 박람회 장소에 게양하였던 태극기. 3단계태극기와 함께 혼용되어
사용된 격동기 때의 태극기로 특징으로는 유연한 곡선의 음방(청색)과 양방(홍
색)이 좌우로 배치된 것과 4괘가 귀퉁이에 있지 않고 열십자 방향으로 배치된
점이다.

4괘가 각 모서리에 배치되지 않고 십자형(+)으로 배치된 태극기로 그 숫자는
많지 않지만 한때 이런 형태의 태극기도 사용했던 것 같다.


□ 5단계 태극기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 제2호로 공표한 대한민국 국기. 지금의 태극기
도안이 되기까지에는 42인의 국기시정위원회의 수차례 의논과 우여곡절을 겪
고나서 결정되었다.

당시 해방과 함께 새로룬 국가가 탄생하였으니 국기도 새로운 도안으로 만든
것이 어떻겠는가는 논란이 가장 두드러졌으나, 일제 36년동안 일본에 항거하다
가 순국한 애국지사들이 태극기를 가슴에 묻고 조국의 광복을 빌었으니 그분
의 넋을 달래고 또 갈라진 남북이 통일되면 한반도 전체의 의견이 수렴된 국기
를 만들 기회가 있으니 도안과 4괘의 이치가 다소 논란이 있드라도 일제 36년.
동안 가장 많이 그려지고 사랑하였던 현재의 태극 도안대로 국기를 결정하기
로 하였다.


4. 국기 제정 공표 : 1949년 10월


국기시정 위원회를 구성 5가지 도안을 두고 15 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한 심사 검토를 거친 진통끝에 우리국기보양회의 도안을 최종적
으로 채택 하였다.






1945년 8월15일 일제로 부터 해방이 된지 3년, 1948년 8월 15일 후일 통일 대한
민국을기약하고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한지 1년뒤 이때 까지도 여러 종류
로 태극기 도안으로 대한민국 국기가 정립 되지 않아 , 법령으로 대한민국 국기
제정이 필요 하였다.

1949 년에서야 42 인의 국기시정위원회를 구성하고 15 차례의 회의와 진통의 우여
곡절 끝에 대한민국 국기가 정해지자 비로소 10월15일 문교부 고시 제2호로 국기
제작법을 공표하였다.

당시 해방과 함께 새로룬 국가가 탄생하였으니 과거의 전례를 모두 무시하고
대한민국 국기도 새로운 도안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대두 되었다.

일제 36년동안 일본에 항거하다가 순국한 애국지사들이 태극기를 가슴에 묻
고 조국의 광복을 빌었으니 그분의 넋을 달래고 또 갈라진 남북이 통일되면 한
반도 전체의 의견이 수렴된 국기를 만들 기회가 있으니 일제 36년동안 가장 많
이 그려지고 사랑하였던 태극이 들어 있는 5가지 도안을 두고 15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한 심사 검토를 거친 진통끝에 우리국기보양회의 도안을 최종적으로
채택 하였다.


□ 제1안 - 구 황궁소장 태극기




□ 제2안 - 문교부 제시안




□ 제3안 - 우리국기보양회 제시안




□ 제4안 - 이정혁 도안




□ 제5안 - 독립문 태극기 문양





최종 결정된 국기 모양은 우리국기보양회에서 제시한 제3안이었는데, 결정 당
시 4괘와 음양 배치가 주역의 이론에 맞지 않아 논란이 있었으나 그런 것에 구
애받기 보다는 1882년 최초의 태극문양 국기를 만들었을 때나, 상해임시정부에
서나 순국선열 애국지사들이 주로 사용하였던 태극기 모양들을 종합해볼 때 주
역에 치우지지 않고 오히려 독자적으로 태극문양을 응용하였다고 보아 제3안
의 도안을 국기로 삼자고 했다.



5. 태극기 도안의 의미





5-1. 흰색바탕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의미함


5-2. 원

원이란 선으로만 동그랗게 둘러 쌓인 모양을 말하며 크기는 달라도 모양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항상 둥그랗고 어느 곳을 축으로 하던지 돌고
돌아도 항상 제자리로 돌아 오는 속성처럼 낮과 밤이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생명을 지켜주는 우주의 섭리를 의미

태극문양 의미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파랑색 음(陰)과 빨강색 양 (陽)으로
하늘과 땅의 의미도 있지만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



5-3. 4괘의 의미


1) 건곤 양괘는 무궁한 정신


건 괘는 하늘(天), 봄(春), 동(東쪽, 인(仁)을 뜻하며, 기면의 왼쪽 부분에
"건"괘를 배치한다. 곤 괘는 땅(地), 여름(夏), 서(西), 의(義)를 나타내며,
기면은 오른쪽 아랫 부분에 "곤"괘를 배치한다.


2) 리감양괘는 광명의 정신이다.

리" 괘는 해(日), 가을(秋), 남(南), 예(禮)를 뜻하며, 기면의 왼쪽 아랫
부분에 "리" 괘를 배치한다.
감" 괘는 달(月), 겨울(冬), 북(北),지(知)를 나타낸 것이요, 기면의 오른쪽
윗부분에 "감" 괘를 배치한다.


3) 괘를 부를 때 흔히 『건곤감리』

라고 부르는데, 괘의 의미 즉 동,서,남,북 또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보아
『건곤리감』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






< 일제 36년을 지내고 광복을 기념하여 건립된 천안 독립 기념관에 태극기 >






한국환상곡 Symphonic Fantasia Korea

배경음악 ' 한국환상곡 Symphonic Fantasia Korea '은 우리나라 국가 애국가를
작곡한 세계적인 음악가 안익태 선생님의 작품으로, 우리민족의 영광과 수난을 함께
묘사한 대 서사시로 크게 네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첫번째는 한국의 전통음악을 토대로 한 서정적인 부분으로, 서두에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전 관현악의 울림으로 장엄한 고조선의 개국을 알리고, 이어서 아름다운 조국
강산을 묘사하는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르고, 거기에 우리의 민요가락이 여러가지
악기소리로 나타나 평화를 사랑하는 순박한 한민족의 심성을 묘사한다. 때때로 타령
조의 멜로디가 섞이면서 농민들의 춤사위를 표현하기도 한다.

두번째는 일제의 압제하에서 신음하는 조국의 암울한 모습을 묘사한 부분으로,
이토록 평화롭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을 이 강산을 침노한 일제에게 짓밟혀,
곡상은 무겁고 침통하게 흐르고 만다. 평화롭던 민족의 가락은 끊어지고 일제에
항거하는 투쟁은 계속되나 수많은 애국 지사들의 죽음으로 진혼의 슬픔이 계속된다.





세번째는 드디어 광복의 기쁨을 맞는 애국가의 합창 부분으로, 이 부분에서
안익태 선생은 자신이 작곡한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합창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애국가가 조를 달리하며 소리 높이 울려 퍼질 때 그감격은 말 할 수 없는 감격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다.


네번째는 6.25 동란으로 인한 처절한 동족간의 싸움을 묘사한 부분으로
한반도는 6.25 동란으로 인한 전화에 휩싸이게 되고 선율은 또다시 슬픔으로 바뀐다.

전통 아악의 정취가 울려 퍼진 뒤에 드디어

" 무궁화 삼천리 나의 사랑아, 영광의 태극기 길이 빛나리.
금수강산 화려한 나의 사랑아"


하고 외치면서 만세 소리와 함께 한국환상곡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독립기념관 푸르른 하늘에 펄럭이는 태극기 >



한국환상곡은 안익태 선생이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착상하기 시작했고 필라델피아
음악학교를 졸업할 때(1932년) 1부가 완성되었지만 연주되지 못했고, 독일로 건너가
(1936년) 애국가를 작곡한 후 후반부에 애국가를 합창으로 삽입하여 에이레의 더블린
에서 비로소 초연(1938년) 되었다.

한국 환상곡에는 선생의 스승인 리하르트 쉬트라우스의 조언이 많이 포함 되어있고,
해방까지는 합창부분까지만 연주되어 오다가 6.25 동란 이후 제4부 (전쟁부분) 를
추가시켜 현재의 곡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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