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러시아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한국인 목사 등 300 여명 중 절반 이상이 러시아 당국의 비자발급 거부로 강제 귀국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오자마자 귀국해야 했던 몇몇 목사들, 또는 평신도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 일부는 러시아정교회에 대해 너무 편파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즉 이들은 러시아정교회를 이단, 내지 유사종교로 생각하면서 이를 믿는 러시아인들을 하루 빨리 이단의 늪에서, 혹은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제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있었다. 그런데 정교회(正敎會) 혹은 영어로 orthodox라 부르는 뜻은 “정통” 혹은 “正說”이란 뜻이다. 즉 러시아 정교 등 소위 동방정교는 자기네 들이 “정통 기독교”라 주장하는 것인데 여기는 일리가 있다. 1. 동방정교가 카톨릭과 다른 점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역사학자 액턴(1834~1902)이 남긴 이 名言은 정치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이지만 원래의 유래는 교황의 절대권을 빗대서 한 말이었다. 카톨릭은 알다시피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어 로마 교황청이 최고 우위에 있다. 그런데 동방정교회는 로마 가톨릭의 교황청처럼 초국가적인 조직이 있지 않으며,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처럼 국가별 또는 민족별로 각각 별도의 체제가 갖추어져 있으며, 각 지역의 교회는 나라를 주된 단위로서 신앙과 정신과 전통을 공유하여 서로 독립성과 자주성을 인정하면서 느슨한 제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니 정교끼리 서로 견제가 되어 카톨릭처럼 교황의 부패가 원인이 되어 종교혁명이 일어나거나 전쟁에 개입하는 愚를 범하는 예가 드물었다. 다음의 교회역사를 보면 왜 정교회가 “정통”을 주장하는지 알 수 있다. 예수의 승천 후 그 제자들에 의해 또는 후계자들에 의해 직접 세워진 교회는 안티오키아(바울이 세움), 알렉산드리아(마르코가 세움),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네곳이고 이 네 곳이 총대주교구로 정교의 원형이다. 그 뒤 로마 교회가 생겼지만 베드로와 바울이 이곳에 묻혔을 뿐 제자들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지만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되면서 총대주교구가 성립되었다. 7세기에 사라센제국이 강성해지면서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의 세 총대주교좌를 포함한 지역은 무슬림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인정되었지만, 2급 시민의 취급을 받았다. 이로써 기독교권에 남은 총대주교좌는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만이 되었지만 동로마 황제의 거처이기도 한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권위가 더욱 강해졌다(서로마는 이미 5세기에 멸망). 6세기에 콘스탄티노플에 건설하기 시작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은 오늘날에도 세계 최대급의 크기를 자랑한다. 800년에 로마 교황이 프랑크 왕 샤를마뉴 대제를 ‘로마 황제’로서 대관식을 치르게 하여, 동로마 제국으로부터의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라틴어 성경을 발행, 독자적인 교리 발전을 재촉하여, 두 교회의 교리상의 차이는 현저하게 벌어졌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분열을 가져온 것은, 1204년의 제4차 십자군 원정이었다. 소년 십자군 명목으로 2만 명의 소년,소녀들을 모아 노예로 팔아버린 걸로 악명높은 이 4차 십자군 원정에서, 예루살렘 성지회복을 위해 일으킨 유럽 다국적군사집단은 엉뚱하게도 예루살렘이 아닌 콘스탄티노플을 점령, 무자비한 약탈과 학살을 해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산적토벌 한다고 장정들을 모아놓고 이웃 마을에 사는 사촌 집을 약탈한 셈이다. 이 때문에 생긴 정교도들의 반(反)로마 가톨릭 감정과 거기에 따른 동•서 교회의 결별이 결정적이 되었다. 그 뿐 아니라, 또, 1453년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공격받았을 때에는동로마 측이 오스만 터어키의 철통 같은 포위망 속에서도 두 척의 배를 파견 원군을 요청했음에도 사전 약조와는 달리, 원군을 파견하지 않고 멸망하게 내버려 두었다. 요즈음도 형제간에 트러블이 생기면 ‘쫄딱 망해 거지 다 되는 꼴을 즐감”하며 장례식장에도 코빼기를 안 내비치는 S모 재벌도 있지 아니한가? 아래사진;(콘스탄티노플 공략을 위해 70 척의 배를 강에서 산으로 끌어올리고, 다시 바다로 내리는 작전을 지휘하는 술탄 메메드 2세);
2.오, 신이시여, 당신의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학살이 저질러졌나요?" "오, 자유여, 너의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죄악이 저질러지고 있는가." 이 말은 프랑스 혁명 당시 “사롱”을 열어 온건파 지롱드 당을 이끌던 “잔 마리 플리퐁” 여사가 단두대에서 목이 떨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런데 불교나 다른 교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보면 신에게 이 말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8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시에 기독교도들은 어린아이들을 나무 말뚝에 꽂아 불에 굽고 팔다리를 찢어 죽이며 신의 이름을 빌어 잔혹함과 만행을 저질렀다. 1099년 7월 15일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무슬림과 유대교인 14만 명을 학살했다. 1532년 11월 16일 잉카제국이 에스파냐(스페인)에 의해 역사 속에서 사라지기 전날 스페인의 프란체스코 피사로는 안데스 고원을 넘어와 회담에 응한 잉카 국왕 아타우알파를 '십자가와 성경 모독죄'로 체포하고 잉카족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하였다. 1618~1648 년 사이에 일어난 30 년 전쟁은 같은 크리스토를 신봉하는 신교와 구교들끼리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강탈을 벌였다. 사진; (성 바톨로뮤의 대학살 그림); 히틀러가 600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것도 따지고 보면 예수를 구세주가 아닌 선지자라는 견해 하나 차이로 유태인을 청소 대상으로 본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종교의 창시자들은 절대 “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죽여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웃을,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가르친다. “나를 믿지 않는 자는 지옥 불에 떨어지리라”고 하지도 않으신다. 가르침을 왜곡하는 자들은 언제나 권력을 아귀에 쥐고 싶어하는 후계자들이다. 그들은 내세의 복을 가르치라고 위임 받았지만 언제나 현세의 권력을 탐한다. 그래서 현세는 자기들의 믿음으로 통일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을 너무나 빤히 들여다보시는 神은 일부러 크리스토, 모하메드, 부처님을 내보내 천하를 3등분 하신지도 모른다. 지구가 하나의 교로 통일되는 날, 그날부터 로마 교황청이 저지른 실수의 몇 배 되는 재앙이 지구를 덮칠지도 모른다. 3. 러시아 정교의 발전 전술한 바 대로 정교는 국가마다 제 각각의 권위를 가지고 발전한 탓에 초국가적인 힘으로 지배한 로마 카톨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부패하고 역사상의 실수를 덜 저질렀다. 물론 러시아 제국 말기 “라스푸틴”이란 괴승이 황실을 휘저었지만 고려 말 신돈 정도의 수준이었다. 9세기 경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선교는 주로 슬라브 민족 지역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때 비잔티움 제국의 선교사 키릴루스와 메토디우스 형제는 문자가 없는 언어인 슬라브어를 위해서 문자를 고안해 성서나 기도서를 슬라브어로 번역했으며(키릴 문자의 원형) 그들이 번역한 슬라브어를 교회 슬라브어라고 하여 오늘도 슬라브어권의 교회에서는 이때 번역된 성서와 기도서가 성찬예배를 집전할 때에 사용되고 있다. 1453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후, 모스크바는 ‘정교회의 마지막 보루’를 자처하였다. 또 1547년 이후, 모스크바 대공은 러시아 황제(차르)라 자칭하였으며, 수도 모스크바는 ‘제2의 로마’,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다 외관상 보기에 카톨릭은 십자가 성호를 그을 때 상하좌우의 순으로 긋지만 정교회에서는 상하우좌로 긋는다. 동방정교회에서는 2차원적인 그림인 이콘 공경 즉, 이콘에서 묘사한 삼위일체 하느님과 성인들에 대한 공경을 중시하여 오늘날까지 그 형식 그대로 신앙 전통을 지켜오고 있으며, 화가에 의한 자의적인 변경 은 용납되지 않는다. 모스크바 서쪽 30km 지점쯤 숲속을 헤쳐가면 “이스트라”라는 마을이 나오고 “New Yerusalem”이라는 곳에 예루살렘성을 그대로 본떠 만든 城과 교회가 있다. 중동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갔다 온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예루살렘 초기 고성은 허물어져 볼 수 없다 하는데, 그 원형을 보고 싶으면 여기로 가서 보면 된다. 16세기에 건축되었다 하니 아마도 동로마 멸망 후 그 향수에서 비롯 지은 게 아닌가 한다. 사진;(멀리서 본 뉴 예루살렘 성) 성 안쪽 사진;(성 안에 있는 교회) 사진;(뉴예루살렘 안내판, 맨 및 8번에 이스트라 강(일명 요단강)이라는 글이 있다. 사진; (나는 러시아에 있는 10 여년 간, 매 년초 즈음 다국적 순례단 두목을 자처하며 이들을 이끌고 성지로 향했다. 눈 덮인 원시의 숲을 25~30km 헤매며 걷는 것도 즐겁다)
나폴레옹도 동상걸린 러시아에서 얄궂은 순례단을 이끌고 행군하는 지욱이를 보니 눈물겹다. 어데가나 두목노릇을 한다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그만 접고 여기 따뜻한 남쪽나라에 와서 우리 당구나 치면서 살자. 마침 경호도 온다 카던데 셋이서 쓰리쿠션 돈따먹기 하면 재밋지 싶다. 냉장고에 아이스께끼도 많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