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내용보기]
제목   무식하면 용감하다!
이름   이지욱 등록일   2012-01-06 오후 2:54:00
e-mail   rtiger992001@yahoo.co.kr
내용
문송이가 년말 수금을 위해 치안이 불안한 지역을 돌며 생업에 몰두하는 모습!
충분히 상상이 간다.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웬만한 위험은, 그게 설사 죽음에 연결될 수 있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우리 민초들의 팍팍한 현실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여기에 실어본다.
--------------.-----------.------------
그때는 러시아 모라토리움이 터지기 직전이었으니 아마도 1998년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러시아에서 지금의 노가다업을 하기 전인데, 한국산 원단을 콘테이너로 수입해다가, 주로 러시아 봉제공장들에 공급하고 일부는 소매상들에게 위탁판매를 했다.
근데 그 중 L이라는 부인이 한번도 내게 원단 값을 지불하지도 않고, 갑자기 가게 문을 닫고 종적을 감추었다.
위탁판매란 항상 수금 리스크가 있어 당초 거래시에 충분히 신용상태를 점검해야 하는데, 현지직원 말을 믿고 처리한 게 어쩌다 보니 그런 결과가 되어버렸다.
장사를 계속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지불불능 문제가 생기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처럼 통째로 물건을 “먹튀”하는 건 드문 케이스라 금액은 만오천불 상당으로 많지 않았지만, 행위가 괘씸하여 찾아 나서기로 했다.
우선 계약시에 첨부한 L부인의 Passport 복사본을 살펴보니 주소지가 “첼랴빈스크” 어디어디로 나와 있었다. 첼랴빈스크는 아시아와 유럽을 경계짓는 우랄산맥의 남쪽에 자리한 도시로 모스크바에서 2000 여 km 떨어진 곳이다.
비행기표를 알아보니 한달 내에는 표를 구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열차표를 샀는데, 36시간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탔다. 기차 내부는 보통 “구뻬”라 부르는 칸막이가 있고 문이 달린 아래 위, 4인용 침대가 있는 침대칸과, 침대가 없이 앉아 가는 공간의 객차로 구분되어 있었다. 구뻬에 타고보니 늘그수레한 노인 두명이 먼저 앉아있었고, 좀 있으니 중년여인 한 사람이 들어왔다.
한국에서 열차를 탔을 때 서울-대구간 통일호를 대여섯 시간 탔지만 지루한 줄 몰랐는데, 처음 몇 시간 차창을 스치는 바깥 풍경을 보며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며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몇 시간이 지나니 지루해서 몸부림이 나기 시작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내 옆 노인은 열심히 십자말 풀이를 하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게 그 십자말풀이가 인쇄된 신문지를 쓱 내밀며, 한 곳을 가리키더니 이게 무슨 단어 같냐고 물었다.
나는 당시 러시아 말을 좀 했지만, 십자말 풀이를 할 정도의 실력은 안 돼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그래도 유심히 들여다보니, 그 단어는 영어에서 유래된 낱말이라 금방 답을 말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이 노인은 그게 내 본 실력인 줄 알고 계속 질문을 해 댔다. 그러나 그 후론 한 단어도 더 맞추지 못해 내 실력은 금방 들통이 났다.
밤이 되니 침대차에서 잘 준비를 하는데 남녀가 섞여 있는 칸은, 여자는 여자들 끼리 남자는 남자들 끼리 잘 수 있도록 자리 교환을 하는데 차장이 중개역할을 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 교통정리가 안 된 자리는 생면부지의 남녀가 같은 칸에서 문을 잠그고 자기도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36시간을 꼬빡 열차에서 보내고, 첼랴빈스크에서 내려, 시내지도를 한 장 산 뒤 주소를 찾아 나섰다. 집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교외에 있는 5층짜리 아파트였다.
초인종을 누르니, 문이 반쯤 열리더니 한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며 누구냐고 물었다.
한 말라깽이 여자아이가 할머니 뒤에 따라 나와 서서 맑고 커다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데 그 표정이 더없이 천진난만했다.
“모스크바에서 왔다”니까 “또 모스크바에서 오셨냐?”면서 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깐 들어가도 되느냐 물으니 문을 열고 낡은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썰렁한 집안 분위기가 한 눈에 먹고 살기가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딸이 무슨 사고를 냈나요?” 묻는데 솔직히 말을 할 염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거래를 해 오던 사이인데 오래 연락이 없어서……”
흑차를 마시며 할머니 치마 뒤로 자꾸 숨는 어린 아이의 초췌한 모습을 바라보다 얼른 집을 빠져 나왔다. 내가 한국에서 러시아로 떠나오고 난 뒤로, 내 집에 일어났을 집안 분위기를 현실로 본 것 같아 가슴이 아리었다. 인근 가게에 들려 식료품 몇 가지와 쵸코렛 상자를 사서 도로 할머니에게 전해 주고 거리로 나서니 허탈했다.
돈 받으러 36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왔다가 맨손으로 돌아서다니….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본전 생각이 났다.
“에라, 우랄 산맥까지 왔으니, 우랄 산맥에나 올라보자!”
나는 서점을 찾아 지도를 찾았다.
북극해 부근에서 남쪽 카자크스탄까지 길게 뻗은 우랄 산맥, 그 중에서도 나는 첼랴빈스크와 북쪽으로 200 여 km 떨어진 에카테린부르그와의 사이를 살펴봤다.
나는 첼랴빈스크 방문 후 에카테린부르그로 가서 그 쪽 대리점을 방문한 우리 직원과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당일치기로 등산을 하려면 북한산 정도의 높이가 적당할텐데 생각하며 지도를 살펴봤다.
있었다!
“에고쟈”란 산이었는데, 600m쯤 되어보이고 첼랴빈스크에서 70여 km, 에카테린부르그에서 남으로 15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부근이 나온 정밀지도를 찾았으나 없고 50 만분의 1 지도가 고작이었다. 5km 거리가 1 cm로 표시되니 등산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방향이나 알려고 구입했다. 지도에는 그 부근이 “자연보호구역”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자연보호구역이라면 경치도 괜찮겠구나 생각했다. 인근에는 큰 호수가 여러 개 있었고 지역 이름은 “키시팀”이라 표기되어 있었다.
운동화를 한 컬레 산 뒤, 허름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았다. 러시아에서는 자가용 영업이 불법이 아니므로 지나가는 차를 아무거나 잡고 흥정하면 된다.
내게 걸린 차는 출고한지 30년이 넘어 보이는 낡은 러시아산 “볼가”였다.
기사는 젊은 친구였는데 얼굴이 선해 보여 흥정을 시작했다. 지도를 보여주며,
“여기까지 갔다가, 내가 저녁 7시까지 내려오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 뒤에는 다시 150km를 달려 에카테린부르그로 가야하고 당신은 빈차로 이곳까지 돌아와야 한다. 얼마냐?”
그는 한참 머리를 굴리다 얼마라고 했는데, 내 생각으로 왕복 450km 거리인데 너무 싸게 불렀다. 그래서 20% 더 얹어주마 하고 출발했다.
시가지를 벗어나니 양쪽에 빽빽한 숲 가운데로 아스팔트 길이 나 있는데 차량통행은 많지 않아 2~30분 만에 마주 오는 차량이 하나 둘 눈에 띨 정도였다.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다 내리다를 한 시간 너머 반복한 끝에 자그만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다” 라는 말에 내리고 보니 노인 한 둘만 눈에 띠었다. 꼭 저녁 7시까지 여기로 와 대기하라고 기사에게 신신당부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산행의 시작은 대략 수성못의 열배쯤 되는 호수를 4분지 1 가량 모퉁이를 도는 것으로 시작했다. 호수가 커서 못이 잔잔하지 않고 철썩철썩 파도가 일고 있었다.
낚싯군이라도 있을 법한데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지도로 산 위치를 대략 눈짐작하고 언덕을 오르는데 곧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기떼가 덤벼들었다. 가지고 간 타올을 휘둘러 쫓았지만 금새 다시 달려드는데 숫자가 급격히 불어
수만,수십만,아니 수백만 마리가 되는 것 같은 일개 군단 병력이 목,팔,머리 할 것 없이 무차별 공격을 해댔다. 멀리서 보았으면 내가 아마 시커먼 구름을 머리와 어깨에 이고 가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몇 시간이나 걸었을까? 지도로는 도무지 정상이 어느 쪽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산길이 비탈이 아니라 평지와 언덕의 연속이라 내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갑자기 대학 2년 때 같은 집에서 하숙 하던 동기 허철군의 일이 생각났다. ‘허철이가 친구 몇 명과 제주에서 한라산 등반하겠다고 건빵 몇 봉지와 음료수를 가지고 출발했다. 중간에 초원지대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는데 길을 잊고 뱅뱅 돌다가 다른 등반팀을 발견하고 따라가면 정성이 나오겠지 하고 뒤따라 갔지만 나중에 올라간 게 아니라 도로 제주시로 내려왔더라….’
불안한 마음으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숲에서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허리에 칼을 차고 있는데 문자 그대로 관우의 청룡언월도와 꼭 같이 생겼고 자루만 짧을 뿐 칼끝이 발목까지 왔다.
도망칠까 말까 망서리고 있는데 벌써 상대방과 나와는 10 여보 사이로 가까워졌다.
생김새가 불량하지 않아 먼저 말을 걸었다.
“에고자 봉우리가 어느 쪽입니까?”
상대방은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나도 그 쪽으로 가니 따라 오란다.
별 수 없이 따라야 했다. 걸으면서도 만일 저 자가 내가 돈이 많은 외국인으로 생각하고저 청룡도를 빼내 한번 휘두르면 내 목이 댕겅 날아가는 건 순식간! 그러면 나는 이 우랄 산 이름없는 숲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산중백골이 되겠지…… 갑자기 내가 모스크바 사무실에 행선지를 정확히 알려놓고 출발하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내가 우랄 산맥 이름없는 곳으로 스며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운전기사는 내가 정해진 시간에 안 나타나면 그냥 가버릴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죽는다 한들 누가 알리요?
나는 청룡도의 사나이와 몇 보쯤 떨어지면 청룡도를 최초로 휘두를 때 칼부림의 영역에서 벗어나 뺑소니를 칠 수 있을까 가름해봤지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5보 이상 간격을 두어야 하는데 상대방이 말을 시키니 자꾸 접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근접방어 전략으로 바짝 붙어 있다가 상대방이 칼을 빼려 했을 때 몸싸움을 벌려 칼을 못쓰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중학교,고등학교 때 배운 유도 5급, 태권도 5급 실력이 도움이 될려나…… 좀더 호신술을 배워둘걸 하는 잡생각도 떠올랐다.
“그런데 웬 모기가 이렇게 많아요?”
내 질문에 나뭇군이라 말하는 그는(청룡도는 나무 자르는데 사용한단다),
“아 오늘이 트로이짜(러시아 정교회 축일 중 하나, 5월 중순)인데 원래 트로이짜 전후에 모기가 제일 극성을 부린답니다. 그리고 모기들이 외지인 피를 훨씬 더 좋아하지요”
얘기를 자꾸 나누며 두리번두리번 그 남자의 표정을 살피니 순진한 촌부로 순박한 심성이 드러나 저윽이 안도감이 들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그 사나이는 갈림길에서 우측을 가리키며,
“나는 왼쪽으로 갑니다. 당신은 오른 쪽으로 한 30분 가다가 오르막길로 계속 가면 에고자 정상입니다”
하였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베낭에서 준비해온 통닭을 꺼내 반 토막으로 갈라 나눠주고 사과도 한 개 주었다.
혼자 길을 걸어 한참을 가니 언덕길이 나타났다. 거기서부터는 모기가 사라지고 어디선가 산들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마침내 산 정상이 보였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사방이 온통 이름 모를 형형색색의 꽃밭으로 변했다.
한뼘 크기의 온갖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나를 반기는데 나는 어디선가 음악의 선율이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렇다! 천국의 정원! 그곳이 바로 이런 모습일 게다!
드디어 정상에 섰다!
얕은 구릉 너머로 내가 지나왔던 호수가 손에 잡힐 듯 하고 그 사이에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흰구름이 솜 뭉치 마냥 동동 떠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잊고 털썩 꽃이 만발한 풀밭에 주저 앉았다.
대동강 모란봉 부벽루에 오른 시인 金黃元이 첫구절,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点点山을 읊고 더 할말이 없어 붓을 꺾어버렸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 광경, 이 기분을 어떻게 말로 글로 표현한단 말인가……?
나는 취한 듯, 꿈을 꾸는 듯 몽롱한 상태에서 그 자리에 마냥 앉아 있었다.
‘여기서 영영 주저앉아 떠나지 말까? 한 줌 흙이 될 때까지……’
하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러다 바람이 나의 꿈을 깨웠다. 시간을 보니 내려가야 할 시간이 지났다.
서둘러 기사와 약속한 장소로 내려가니 8시가 다되어 가는데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에카테린부르그로 향하였다.
그 뒤 몇 년 동안 그 山에 관한 기억은 길게 내 뇌리 속에 남아있었는데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1957년 9월 29일, 이곳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7등급)가 나기 전엔 최대의 끔찍한 원자력 사고로 기록된(6등급) 재앙이 일어났던 것을(미국 드리마일 원전사고는 5등급)…….. 이 사고는 바로 옆인 핵처리시설 오조르스크에서 일어났으나, 이 비밀 도시가 지도에 나오지 않아, 바로 붙은 키시팀의 이름을 따서 “키시팀 사고”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방사성 구름은 800 제곱 킬로미터의 지역을 오염시켰으며 소련당국은 1주일 후에야 영향지역의 만 명에게 대피령을 내렸으며, 오염된 지역의 흙을 굴을 파서 묻어놓고 울타리로 못 들어가게 하였다. 이 지역을 가리켜 "지구의 무덤"이라고 불렀다. 정부에서는 이 지역을 “동우랄 자연 보호지역”으로 위장시켜 이 오염된 지역에 접근을 금지시키고 비밀로 감추었다.
아마 내가 갔을 때는 40 년이 지났으니 방사능은 아주 미약했으리라.
방사능을 내가 맞았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내가 체험한 것은 “천국의 정원”이었을 뿐…
원효대사의 일이 생각난다. 원효와 의상이 구법을 위해 당나라로 가려고 요동지방을 헤매다 길을 잃고 지쳐 밤중에 노숙을 하며 타는 갈증으로 다 죽어갈 즈음, 머리맡의 감로수를 마시고 부처님께 백배 감사 드리고 잤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그 바가지 물을 보니 해골에 빗물과 뇌수가 고여 섞인 물이더라…..
그렇다고 해서 그 전날 “감로수”의 의미가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깨달음을 얻은 원효!

(위성으로 본 오조르스크 핵처리시설)

택시는 에카테린부르그로 계속 달렸다. 중간에 딱 한번 멈추어 쉬었는데, 거기는
한쪽으로는 “유럽” 다른 쪽으로는 “아시아”라고 쓴 커다란 팻말이었다. 즉 아시아 대륙과 유럽대륙이 여기서 동서로 갈라진다는 팻말이었다.
에카테린부르그는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가족들이 유폐되었다가 볼세비키들에 의해 지하실에서 총살된 걸로 유명한 도시이다.
저녁 10 시 넘어 도착한 나는 미리 약속된 “이세티”호텔로 갔다. 이세티란 이름은 도시를 지나 흐르는 강 이름을 딴 것이란다. 거기에는 우리 회사 직원인 O양이 미리 와 있었다. O 양은 금발에 육감적인 여성으로 간단히 말하면 마를린 몬로와 비교하여 하나도 안 빠지는 몸매를 갖추었다. 금발에 화사하게 웃는 모습은 오히려 마를린 몬로를 능가했다.
마를린 몬로는 일본을 방문 시 한 군데서 마사지를 받았는데 그곳에서 치모(恥毛)한 가닥을 흘렸고 이의 분석을 근거로 금발이 가짜라는 게 밝혀졌다지 않는가.
O 양은 반갑게 맞이 하면서 내가 Check in 절차를 밟으려니 방이 딱 하나밖에 남은 게 없어 그 방에 자기와 내가 같이 자야 한단다. 내가 주위의 다른 호텔도 알아봤냐 물으니 알아봤는데 없단다. 방에 올라가보니 욕실을 사이에 두고 방 두 개가 붙어 있는데 중간에는 같이 쓰는 탁자도 놓여있고 방 하나의 크기는 7~8평 정도 되 보였다.
우리는 같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업무얘기를 마치고 칵테일 바로 가서 술도 제법 마셨다. 그런데 O 양이 가끔씩 야릇한 눈웃음을 짓는 게 내 심장 박동을 불규칙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우리는 방으로 올라갔다.
누가 먼저 샤워를 할까 정한 뒤, 그녀가 먼저 샤워를 하고 내가 나중에 샤워실을 쓰기로 했다. 내 차례가 되어 몸을 씻고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칵테일 바로 내려가 맥주를 몇 병 더 사가지고 와 홀짝거렸다.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남녀가 한 방에서 지낸다는 게 이렇게 설렐 줄이야…..
나는 마침내 옆방으로 통하는 문을 슬며시 밀었다. 짐작했던 대로(?),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O양의 침대로 다가갔다. 창문으로 스며든 달빛이 희끄므레 드러난 그녀의 허벅지를 비추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던 손이 허벅지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내겐 엄연히 한국에 두고 온 처자식이 있다. 지금 너는 조강지처를 버리려 하는 건가? 이 처녀를 책임질 수가 있나? 아니면 닥터 지바고처럼 두 여자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가로 늦게 한편의 로망을 남기려 하는가?”
번민하던 나는 슬그머니 내 방으로 돌아왔다. 맥주 한 병을 다시 비웠다.
“아니 내가 뭐 칸트 선생이라도 되나? 지고한 도덕율을 고수하며 살아야 되나? 하룻밤의 객고? 그건 옛날 학창시절 종로 5가에서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를 부르며 만취한 후 발생한 장한몽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나는 다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침대 옆에 서니 내 거친 숨소리를 나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 아예 홑이불을 다 걷어차고 두 다리 사이가 보일듯한 속옷이 반쯤 올려진 채 누워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제 그녀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숨을 쉴 때 마다 그녀의 젖무덤이 부풀었다 줄었다 하는 게 보였다. 나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다시금 칸트의 도덕률과 로망을 가장한 육욕의 불길이 내 안에서 맹렬한 격전을 벌었다. 그러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맥주를 다시 한병 비웠다.
그리고 다시 옆 방으로 진입했다. 이날 밤 나는 이런 식으로 7~8 회 전진과 후퇴를 거듭했다. 그러나 끝내 승리를 한 건 칸트의 도덕율도, 사이비 로망도 아니요 갑자기 몰려온 피로와 너무 많이 마신 술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나는 내 방에서 쓰러져 골아 떨어져 버렸다. 즉 최후의 승자는 “잠귀신” 이었다.
이튿날 눈을 뜨니 햇살이 창문에 비치었고 O 양은 밥 먹으로 내려가자고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전날 밤을 생각하니 만일 그녀가 그 상황에서 팔 한쪽만 뻗쳤어도 나는 남녀상열지사를 일으키고 말았으리라 생각이 나, 쓴 웃음이 나왔다.
O양과는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침대열차 안에서 네 사람이었던 승객이 새벽에 중도 역에서 빠져나가는 바람에 다시금 갇힌 야음의 공간에서 둘이 남았으나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얼마 뒤 나는 O양이 처녀가 아니라 이미 한 남자와 사실혼 관계로 동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참고로 러시아는 사실혼에 대해 관대하며 법률혼과 동일한 지위를 인정하고, 교회도 이에 대해 관대한데, 그것은 정조관념, 풍기문란이 원인이 아니라 인구감소를 막자는 게 큰 이유이다.
그 동거남은 나중에 집 목욕탕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다. 즉 나는 처녀가 아닌 유부녀를 범할 번 했던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마약조직의 하수인인 그녀의 남편과 육혈포 한 자루 씩을 들고 “황야의 결투”를 벌이거나 달구벌 검객 대 시베리아 검객의 대결로 불리울 일대 칼부림을 벌였을 것이다. 참고로 러시아는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삼각관계에 이르른 때는 결투로 종결 짓는 예가 흔하다. 저 유명한 시인 푸쉬킨도 아내를 두고 삼각관계에 있던 단테스 드 헥케른과의 결투에서 37세의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여담이지만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란 푸쉬킨의 시는 왜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있는 걸까? 고등학교 때 동네 목욕탕, 이발소를 가면 이 시로 만든 액자가 반드시 붙어있고, 신동 제실에서 정해방이와 고시공부 할 때 밥 먹으러 다니는 농가에도 이 액자가 붙어있었다……
그 몇 달 후 나는 정말로 간발의 차이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뻔 하였다.
그날은 한국에서 온 한 방문객을 밤늦게 한 기차역에서 지방으로 떠나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배웅하기 전, 시간이 많이 남아 둘이서 750 cc짜리 보트카 한 병을 다 비운 게 화근이었다. 바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주위를 어슬렁거렸다(이게 바로 독신의 문제점, 가족이 있으면 빨리 돌아 갈텐데…). 그러다 전봇대에 붙은 A4 반쪽만한 흑백사진이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반나의 몸으로 춤추는 여자의 사진과, 러시아어로 “Private Dance! Comfortable Place, Not Expensive!” 그리고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아하! 아늑한 곳에서 아리따운 무희의 춤을 감상하며……’ 상상력이 발동하여, 당시 등장하지 얼마 안 되는 모빌폰을 꾹꾹 눌렀다.
그랬더니 전화 상대방은 번지 수를 얘기하며 어디 어디를 돌아 오란다. 쉽게 그 장소를 찾았다. 좀 있으니 어둠 속에서 스카프를 단정하게 맨 여인이 닥아오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5분쯤 걸으니 한적한 농가였다. 자그만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마루에 붙은 방에는 할머니 한 분이 희미한 전등 밑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여인은 그 옆방으로 들어갔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조명이 어두워 침침했다. 나는 권하는 소파에 앉았다. 그 여인은 맥주 두 병을 가져와 마시라고 권했다. 나는 마시며 그 여인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녀는 잠깐 목욕을 하고 나서 춤을 출테니 기다리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겉옷을 벗고 문을 나서는데 얼핏 눈에 들어온 그녀의 종아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털이 부숭부숭… 그녀는 아니 그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가 문을 닫자마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탈출해야 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나는 문을 밀쳤지만 밖으로 잠겨 있었다. 반대편 창문으로 가서 열려 했지만 못을 박아 놨는지 열리지 않았다. 식은 땀이 났다.
나는 다시 문으로 다가가 낮으막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그랬더니 천만다행, 할머니가 밖에서 문을 열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아주 급하다는 시늉을 해 보이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쏜살같이 그 집을 빠져 나왔다.
그 얼마 뒤, 나는 사무실에서 현지 직원이 이것 보라며 건네주는 현지신문을 보았다.
거기에는 대서특필로 “엽기적 살인사건! 이미 8구의 시체 발견!” 이라는 특보와 함께 범인의 사진이 게재되었는데 바로 그놈이 아닌가? 장소도 똑 같고….
기사를 읽어본즉 이러 했다. 범인은 밤늦게 열차 역에 도착한 먼 지방에서 오는 여행객들에게 “호텔 반값도 안 되는 싼 숙소가 있다. 식사제공”으로 유혹하거나, Private Dance로 유혹한 뒤 살해하여 금품은 취하고 시체는 집 정원에 암매장 했다…..

모스크바의 9개 기차역, 최종목적지 이름을 따라 역이름을 지었고 총연장 86000 km 이다

이상에서 나는 세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먹물을 먹은 자의 용기는 믿지 못한다(결정적인 순간에 망서린다)”
“흔들리는 남자여! 항상 목을 조심하라”(특히 뒷목을……)
그리고…….. “무식하면 용감하다”

[나도 한마디]
타키투스  러시아 속담에 알콜이40도 미만이면 술이 아니며,영하 40도 이하가 아니면 추위가 아니며, 4000km 이내는 距離가 아니란다. 나아가 4번 이하의 sex는 처녀성 인정에 문제 없다더라(최신속담), 환언하면 5번 이상 자보지 않으면 내 여자라고 주장할 수 없는 셈. 2012-01-07 오후 3:42:00 x

이원근  지욱이의 흥미진진한 얘기는 두 편의 단편소설을 방불케 하면서도 실화인지라 좀 섬뜩한 느낌도 드네. 혼자 해외배낭여행 갔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기사를 가끔 본 기억이 나는데 이런 경우에 그렇게 되나 싶네. 지욱이의 끈질긴 절제력과 민첩한 판단력은 가히 사나이답네. 부디 멀리서 옥체보존 하소서. 2012-01-07 오전 11:35:00 x

봉영 . 
이렇게 재밋고 오묘한 철학적 에세이는 첨 본다. 노벨문학상 강추!!
지욱도사님! 成佛 하소서~
2012-01-07 오전 1:40:00 x

이름 내용 비밀번호 [등록]

제목 등록일자 등록자 조회수
   무식하면 용감하다! 2012-01-06 이지욱 66011
     무식하면 용감하다! 2012-01-09 서대교 2653
     涅槃과 無我之境 2012-01-12 이지욱 2793
     우랄산맥에서 사라진 의문의 9 인 2012-01-24 타키투스2 2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