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적힌 데서 연유되었다. 풍악(楓嶽)이라는 속칭이 있으나, 승려들이 ≪화엄경≫에 근거하여 금강산이라 불렀기 때문에 이 이름이 고정된 것 같다.
최고봉인 비로봉 (1,638m)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오봉산, 옥녀봉, 상등봉 , 선창산, 금수봉, 서쪽에는 영랑봉· 용허봉(룡허봉), 남쪽에는 월출봉, 일출봉 차일봉, 백마봉, 동쪽에는 세존봉 등이 솟아 있다.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등 계절별로 금강산의 별칭이 널리 사용된 것은 대체로 조선후기 무렵이며, 풍악산과 개골산은 가을과 겨울의 특징을 반영하여 불린 이름이고, 쑥이 무성하다는 뜻을 가진 봉래는 신록이 우거진 여름에 비유하여 여름산의 이름 으로, 금강은 꽃피는 금강산의 화려함을 봄에 비유하여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풍악, 개골산처럼 경치가 아름다운 명승으로서의 이미지를 생각하여 붙인 이름에서 부터, 불교식 이름인 금강산, 그리고 신선사상에서 유래한 봉래산 등 다양한 이름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지금은 불교식 명칭인 금강산이 공식으로 사용 되고 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 2절 가사가 일부 바꾼 사연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단을 보낼 때 정보부와 KBS 등 당국이 적십자사 여성대표의 건의에 따라 2절 가사중 '더럽힌지 몇몇해' 를 '못 가본지 몇몇해' 로 '짓밟힌 자리' 를 '예대로 인가' 로, '우리 다 맺힌 원한' 을 '슬픔' 으로,
1985년 남북예술단 상호방문 때 평양에 간 성악가 이규도 교수(당시 이화여대 음대 학장)는 고친 가사대로 연습은 했지만. 6·25 때 아버지를 따라 월남한 사람 으로서 평안남도에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 당하다가 내려왔는데, 신분보장도 돼 있겠다, 고친 가사대로 도저히 부를 수 없다고 결심했다.
모란봉극장 무대에 올라간 소프라노 이규도 교수는 '짓밟힌 자리, 우리 다 맺 힌 원한, 더럽힌지 몇몇해' 등 원래 가사 그대로 불러 제켰 답니다. 그리고선 혹 있을지도 모르는 보복이 두려워 예술공연단 일행이 평양시내 관광에 나설 때 합류하지 않고 호텔방문을 걸어 잠근채 꼼짝달싹도 안했다고 합니다.
[나도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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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금강산
2012-02-01
도명(濤鳴)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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