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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뫼회 6월 산행 안내(양평 부용산)
이름   김용휴 등록일   2014-05-30 오후 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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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한뫼회원, 그리고 동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4월 중국 해외산행을 무사히 다녀왔고 5월에는 동기회주최 계족산 합동야유회에 많은 회원들과 영부인들이 성황리에 다녀왔습니다.

요번 6월에는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부용산(366m)으로 한뫼회에서는 처음으로 갑니다.

아직 5월인데도 32도를 넘나드는 한여름에 가까운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심신을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남한강 물줄기를 거슬러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멋진 우리 山河를 조망하면서 걷는 동기간의 화합과 우정을 나누는 산행에 한뫼회원들은 물론 평소 한뫼회에 관심이 있는 동기들과 영부인들의 많은 참석을 기대하고 앙망합니다.

아울러 금번 산행으로 100회 산행의 금자탑을 세울 이대용 회원에게 영광의
금뱃지를 수여할 예정이오니 많이들 참석하셔서 축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산행 안내-

*일 시: 2014년 6월 08일(일) 오전 09시 00분(시간엄수)

*집합장소: 전철 왕십리역 중앙선 용문행 3호차 1번문 앞

*목적산: 부용산(366m)(경기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이동계획:

09:00 왕십리역 중앙선 용문행 3호차 1번 탑승문 앞 집합, 인원 파악
09:20 왕십리역 출발
10:40 신원역 도착 산행 시작
12:00 부용산 정상도착 휴식과 간단한 간식
12:30 하계산 도착 중식
13:00 중식 종료 후 하산 출발
15:00 양수역 도착
15:30 두물머리 순두부 식당에서 식사
17:00 식사 종료후 양수역 출발 해산

*산행코스: 신원역-몽양기념관입구-신원1리 부용산 입구-샘골고개-부용산정상-하계산-양수역

*산행거리 및 시간: 약 6km, 약 4시간 예상

*준비물: 중식,간식,식수,우의 등 산행 장비 각자 지참


회장 김용휴 010-5584-0833
총무 임병호 010-3838-0255
등반대장 김진희 010-6274-9344


<추서>

부용산이란?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용문산에서 분기하여 마유산~소구니산~농다치고개~마현~청계산~형제봉에서 두물머리로 이어지는 한강기맥이 남한강변을 지나면서 마지막으로 솟아올라 남쪽의 검단산과 마주보는 산이 있으니 부용산(芙蓉山 366m)이다.

부용은 연꽃을 말한다.
산이 푸르고 강물이 맑아 마치 연당(蓮堂)에서 얼굴을 마주 쳐다보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남한강을 끼고 펼쳐지는 6번국도의 용담대교 풍광은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한강기맥 등산로와 전망대가 잘 갖추어져 있고 인근에는 몽양 여운형생가와 기념관, 한음 이덕형의 묘, 정창손 묘, 이준경 묘 등이 2013년 개설된 물소리길과 연결되어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정상의 부용산성(芙蓉山城 또는 ‘신원리부용산성’이라 한다)은 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방어에 사용되었는데 개군면 상자포리에 소재한 파사성(婆娑城)과 상응교신(相應交信)하여 용진을 방어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래로 남한강 이북과 남북한강의 강물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일원이 한눈에 조망되어 수로를 이용해 이동하는 적군을 감시할 수 있는 요새이다.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산의 평탄한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어 전체적인 형태는 동-서를 장축으로 하는 타원형으로 작은 규모의 산성이다.

성 내부는 동․서로 양분되는데 동쪽이 5m정도 높고 그 위에는 규모가 큰 고분이 한 기 있다.

성벽은 거의 붕괴되고 일부만 남아 있다.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장대석을 깔고 다듬은 돌로 정연하게 쌓은 반면, 윗부분은 다듬지 않은 돌들이 고르지 않게 쌓여 있다.

고분 아래 평지에는 근래에 헬기장이 조성되었고, 서쪽 부분에는 개인 묘지도 있고, 전망데크도 설치되어 있다.

산과 산성에 관한 기록은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상부에는 부인당이라는 당집이 있었다고 하는데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

고려 때 한 왕비가 시집간 첫날밤 방귀를 뀌어 이곳으로 귀양 보냈는데 왕비가 잉태하여 왕자를 낳았다.

유달리 총명한 왕자는 커서 도성으로 올라가 매일 돌아다니며,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 먹을 수 있는 오이씨를 사라”고 외치고 다녔다.

차차 소문이 퍼져 급기야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임금이 소년을 불러 물으니 그 소년은 “분명 이 오이씨는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은 밤사이에 아무도 방귀를 뀌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왕은 그 아이가 자기 아들임을 알았고 왕비를 불렀으나 궁궐로 가지 않고 이곳에서 살다가 죽었는데, 그 무덤이 산 정상에 있는 고분이라는 것이다.

산에서 땔감을 취하든가 성안에서 우물을 발견하면 곧 죽는다 하여 마을사람들은 이 산에 오르는 것이 금기시되어 왔다.

삼국시대 때 관방(關防)용으로 축성했지만 통일이 되어 쓸모없게 돼 언제 다시 쓸지 모르게 되자 일반의 출입을 막아 산성을 감추려는 의도가 숨어있던 것은 아닐까?

임란에 다시 쓰기까지 기록도 없이 묻혀있던 부용산성, 이제는 덧없는 세월과 함께 성은 허물어져 옛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전설만이 남아 주변의 선경(仙境)을 즐기는 전망대가 되었다.

1592년 4월13일 왜군 선봉대 1만8700명이 700여 척의 병선에 나누어 타고 쓰시마 섬의 오우라 항을 출항하여 부산포로 쳐들어왔다.

후속부대를 더하여 총병력 약 20여만명인 왜군은 동래성을 함락하고 3조로 나누어 서울을 향해 북진했다.

좌도(左道)와 중로(中路)의 군사는 문경(聞慶)에서 합류, 조령(鳥嶺)을 넘어 충주(忠州)로 침입하였다.

충주에서 다시 둘로 갈라진 왜군 중 한 진이 여주에서 강을 건너 5월1일 양근(지금의 楊平)을 경유하여 용진(龍津 두물머리 부근의 북한강나루)을 건너 경성의 동로(東路)로 진출하니 왜군은 부산 상륙 18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임진왜란의 발발부터 서울점령까지의 경과다.

그 후 조선군의 처절한 저항과 의병들의 활약으로 일본군은 개전 1년여 만에 창원 이남으로 퇴각하였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인해 일단 일본으로 철수하였다.

양평은 임란 초기 왜군이 서울로 진격하는 통로가 됐고 서울과 평양 등을 점령했다가 퇴각하기까지 1년여 동안 왜군에 의해 분탕을 겪는 등 심한 침탈을 당했다.

철수했던 왜군이 1597년 1월에 정유재란을 일으켜 1598년 11월에야 끝이 난 임진왜란은 7년간이나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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