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동기들 몇몇이 키르기즈스탄을 보고싶다는 논의가 있었는데 그게 구체화되어 김대식 추진 위원장을 중심으로 내년 7월 방문단이 구성되고 있다. 김대식 위원장은 여러모로 중앙아시아 전문가라 관심있는 분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인도 전에 간간이 이 글마당에 소개 글을 올렸지만 차제에 요약 소개 글을 올려 관심있는 동기들께 도움이 되고자 한다. 우리가 같이 강원도에 수학여행을 간게 1967년이던가? 어언 50년..... 기왕이면 인생 마지막 수학여행이라 여기고 다수가 참가하면 좋겠다.
== 고선지 장군의 꿈과 한이 어린 키르기즈스탄==
1. 오래된 민족 키르키즈스탄은 구소련에서 독립한 나라지만 史書에는 오래 전부터 등장한다. 기원전부터 있던 나라로 5세기까진 烏孫國으로 불리웠고, 그때도 말이 흔했던지 말 1000 필을 한 나라에 보내면서 대신 공주 하나를 달라해서 강도옹주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강도옹주는 중국에서 올 때 뽕나무 묘목과 누애씨를 몰래 들여와 양잠을 퍼뜨렸는데 지금도 키르기즈 서남부에 가면 아름드리 뽕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바이칼호와 파미르고원 사이에서 오가며 때론 한나라와 동맹을 맺고 흉노를 치기도 하고 그 지배하에 들기도 했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이유가 이릉이라는 장수를 비호했다 해서인데 사실 이릉은 그냥 항복한 게 아니고 흉노원정군이 몰살하고 5000 여명만 남았을 때, 옥쇄를 각오하고 결사대를 조직 흉노군에게 다 죽고 자신도 화살에 맞아 의식을 잃었는데 흉노왕이 적이지만 기특하다 여겨 끌어다 살려내어 공주 하나와 결혼시켜 부족 중 하나를 다스리게 했는데, 이 다스린 나라가 키르키즈스탄이다. 키르기즈스탄을 둘러싸고 있는 천산산맥에는 포베다봉(7439m,승리봉이라는 뜻)과 유명한 칸텡그리봉(6995m)이 있고, 남쪽 천산산맥에는 최고봉이 “레닌봉(7134m)”이 있다. 저 유명한 한혈마(汗血馬)도 키르기즈스탄 서남부 Fergana가 원산지이다. 한혈마라 불리우는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학설이 있지만 이 말은 피하 지방질이 거의 없어 땀을 흘리면 핏줄이 비치어 흡사 피를 흘리는 것 같다는 설이 유력하다. 기원전 104년 한무제는 결국 이 말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다. 5년여에 걸친 전쟁에서 군사 4만이 죽고 겨우 말 수십필을 얻었지만 대승이라 자축하고 시까지 지었다.
2. 고선지 장군의 나라 서기 751년 7월말에 벌어진, “탈라스”(비슈켁에서 직선거리로 220km서쪽) 전투는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 탈라스 전투의 발단은 서역 40국에게 “중국왕”으로 알려질 정도로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의 광대한 영토를 스스로 정복하고 다스리며 막강함을 과시하던 고선지 장군이 이 지역 일부의 반란을 토벌하려고 대규모 원정군을 일으키자 반란국은 이슬람국가들에 도움을 요청했고,이에 이슬람 제국들은 연합군을 조직 “지아드 이븐 살리흐”를 수장으로 하여 709년 부하라, 712년 사마르칸드를 점령했다. 그 전까지는 당시 이슬람 측 역사서인 이븐알시르의 “완전한 역사(1231년)”를 보면 고선지는 “중국산맥의 제왕”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서역의 제국 “아무도 그들에게 적수가 없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드디어 탈라스에서 양군이 맞아 대격전을 치루게 된다. 이때 고선지가 서정한 루트는 지금의 우르무치에서 Koktal 까지 천산산맥을 한번 넘고 이시쿨호를 따라 전진한 다음 또 천산산맥의 수사미르분지를 넘어 탈라스 평원으로 진출한 것으로 보이는데, 대부분 산들이 해발 2000m를 모두 넘는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은 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 거리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중국군 10만, 이슬람군 10만이 나흘 간에 걸쳐 대격돌한 이 전투에서 고선지의 중국군은 5만이 죽고 2만명이 포로가 되었다. 그 전까지 연전연승하던 고선지는 이 패퇴로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귀경 후 무인으로선 최고직인 右羽林軍大將軍까지 승진하지만 그 뒤 안록산의 난 때 환관 변영성의 참소로 처형된다(755년). 이 때 고선지의 중국연합군이 승리했더라면 탈라스 서쪽으로부터 카스피해를 거쳐, 지중해까지는 무인지경, 唐이 그야말로 세계제국이 되었을 것이다. 탈라스 전투가 고선지 장군으로선 애석한 일이지만 그 때 당나라가 대제국이 되었더라면 신라는 괴로움을 당했을지도…..아무튼 이 때 포로가 된 중국군들 중에 제지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종이제조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소위 “사마르칸드 紙라고 명명되어 서양에서 학문의 대혁명을 가져왔다. 종전에는 종이대신 양피지를 사용했는데 코란 한권을 출판하는데 새끼양 300 마리를 잡아야 했으니 책의 대중화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3.역사 기원전부터 바이칼 서부, 예니세이 강 상류, 삼림지대의 수렵민 집단으로 생활해 왔다. 중국에서는 견곤(堅昆)이라함, 본래는 이란계 유목민, 정확히는 사카계 스키타이유목민이었을 것으로 추측됨. BC 4 세기 남하 烏孫(삼족오, 고구려와 관련?)국 건설--- 오손馬-西極馬 흉노와 때론 동맹/ 또는 대립, 흉노 동서 분열 시 西흉노 질지선우를 도움 대완국 유연(柔然)-AD 5 세기 돌궐 위구르 제국(AD 745~840)의 한 부족 AD 820 카칸칭함/AD 840 (위구르 멸망)~924 키르기즈대제국 전성기(북; 톰스크/남;티베트/동; 바이칼/서;카스피해) AD 924 거란;야율아보기 침입(카라 기타이), 다시 北遷. 이때 거란이 강성하여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중국을 China라 안 부르고 "기타이"라 부른다. AD 1218 몽골(2子 차가타이칸국) 티무르제국(1370~1507)/AD 16~17세기 현 지역으로 돌아옴. 코칸드제국(1709~1876,우즈벡 족) 일부 러시아 령(알렉산더 2세) 1924.10 카라-키르기즈 자치공화국/.1991년 소련에서 독립 아스카르 아카예프 2005년 튤립 혁명 아카예프 독재정권 축출 바키예프 등장. / 2010년 오툰바예바의 주도 다시 봉기/2011년 12월, 중앙아시아 최초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대통령 등장.2017.11 신 대통령 취임. WTO 가입, 중앙아 유일 민주정부. 경제질서 안정 주산업; 말
4. 개요 국 명 키르키즈스탄, 키르키즈공화국(Kyrgyz Republic) 위 치 ;아시아 대륙 중부. 예로부터 서역이라 불리던 곳의 관문 면 적 199,951 km² (대한민국-남한: 99,720 km²) 기 후 ㅇ 대륙성 기후 - 1월 평균기온: -4℃C - 7월 평균기온: 25~27℃ - 평균 강우량: 약 400㎜ 수 도 비쉬켁: 100만명 인 구 600 만 주요 지방 및 도시 ㅇ 7개 주 - Chui, Issyk-Kul, Osh, Batken, Talas, Jalal-Abad, Naryn ㅇ 2개 중심도시: Bishkek City, Osh City 인 종 키르키즈 71.7%, 우즈벡 14.3%, 러시아인 7.2%, 고려인 0.3%, 기타 6.5% (2011 년 기준) 언 어; 키르키즈어(주), 러시아어(공식, 2001) 종 교; 이슬람교 75%, 러시아정교 20%, 기타 5% 정부형태 대통령중심제(임기 5년).중앙아시아에서 드문 민주정부 국가원수 수론베이 젠베코프(2017.11월 24일 선거로 취임)
5. 주요 관광지 아시아의 스위스라 불릴 정도로 천헤의 자연관광지. 주요 관광지; 이시쿨호(충청남북도 면적). Ala Archa(국립공원, 눈표범등 각종 희귀동물 서식지),Sary Chelek(유네스코 지정 생태보존구). KaraKol(거대한 스키 리조트) 이번에 위 관광명소를 모두 답사 예정. 아래에 유튜브 동영상 중 짧은 것만 소개 합니다. <이시쿨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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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문송
여기랑 비슷하네. 거기 치안이 좋고 청정국가라는 것이 마음에는 든다. 여기도 상춘의 나라여서 기후조건은 최상... 다만 치안이 엉망이라 늘 불안한 것이 단점... 근데 문제는 생활대책... 여기는 생활비가 나오는 옷가게가 있는데 거기서는 뭐하고 사나.. 그냥 놀고 먹을 형편도 아니고.. 결론은 역시 포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