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범용이가 그저께 2019년 8월 20일 향년 70세로 갑자기 심장병으로 타계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해는 친구 도명이 심장병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다행히 응급수술 및 후속조치가 잘 되어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범용이가 우째 졸지에 변을 당하게 되었는지 아직 자세한 정황은 잘 모르겠으나 저도 심장이 별로 좋지 않은 터에 그저 황망하고 가슴이 쓰리고 먹먹하네요. 저는 이 친구 역시나 지난번 광우처럼 심장병을 앓고 있었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 또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우리 오공 친구들이 알게 모르게 다들 한두 가지 지병들을 거의가 갖고 있는 듯하여 세월은 참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네요. 그렇게 열심히 산에도 다니고 정정하던 친구들이 어느날 갑자기 하나 둘 병마에 쓰러지는 걸 보니 우리 인간의 능력이 너무도 제한적인 것 같고 노쇠현상에 따른 육신의 나약함에 대해 통분한 생각도 듭니다. 범용이는 제가 1989 - 91년까지 과테말라 첫 이민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와서 부산에서 4년간 취업을 하고 있다가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부득이 대구로 옮겨와서 5년 가까이 살면서 식당, 옷가게 등 작은 자영업과 라오스, 베트남 등 동남아를 상대로 무역회사를 운영할 당시 우리 동기들 중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로서 제 사무실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으며 옛날 제가 서울 영등포유통 광우 주유소 사무실에서 얻어먹었던 짜장면, 짬뽕, 군만두 등 중국요리의 몇 배는 범용이가 자기 점심으로 해결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 뿐인가요?. 아예 대경통상 고문자리를 꿰차고 제가 거래처에 접대할 일이 있거나 라오스에서 바이어들이 왔을 때도 범용이는 늘 술상무를 자처하고 참여를 했지요. 제가 대구 오기 전보다 자기 체중이 무려 10 kg나 늘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범용이는 일찌기 대우 대구지사장직을 끝으로 직장생활을 접고 약간 몸이 좋지 않은 제수씨를 지극정성으로 케어하며 향토 대구의 발전을 위한 정성 경제문화 연구소를 자택 거실에 차려놓고는 사실상 백수의 백전노장으로 유유자적하며 지냈는데 경제적으로 별로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본인의 주식투자 연구실적이 상당한 성과를 발휘하여 예컨데 삼성전자 주식이 초장에 천일사나 태광 에로이카보다 못한 몇 천원으로 바닥을 길 때 매입하여 그후 20년 만인 IMF 때 매각할 때 보니 거의 60배 가까이 오르는 등 주식투자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지요. 그후 그 주식이 작년 2018년에는 280만 원까지 거의 2천배나 오를 줄은 꿈에도 예상을 못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당시 IMF 때는 대기업들이 다 망하는 줄 알고 큰일났다 싶어 그나마 본전의 60배나 오른 가격으로 팔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겼지요. 그 놈의 IMF 때 저도 회사를 또 말아먹고 2차로 과테말라 이민을 나와서 지금까지 20년 넘게 살고 있으면서 범용이와는 초장에 자주 국제전화도 하면서 안부를 묻곤하다가 나중에는 맨날 같은 말만 되풀이할 수도 없어서 근래 10년 가까이는 서로 적조하게 지냈지요. 여기 과테말라 공항과 여러 공공기관, 대형 쇼핑몰에 설치되어 있던 일제 소니 대형선전 TV들이 일제히 철거되고 대신 삼성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되었고 스마트폰은 삼성이 애플 아이폰을 능가하여 단연 1위이고 자동차도 현대, 기아가 도요다를 누르고 판을 친다는 정보도 알려주었건만 범용이가 이를 잘 활용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범용이 조부모 명의로 일제시대 갖고 있던 논과 밭, 산지 등에 당시의 소작농들이 사실상 점유, 사용하고 있는 부동산들을 다시 찾겠다며 시간 날 때마다 대구근교 시골 구석구석을 범용이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소작농들의 후예들과 심하게 쌈박질까지 하며 다투었던 일도 생각나는데 결국 그 재산들을 다시 찾았는지 어쨌는지는 지금 모르겠네요. 현탁이한테까지 가서 법률상담을 했다는 걸 마지막으로 들었는데 아마도 전부 황이 됐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참으로 자애로우셨던 범용이 어머니의 살아 생전 모습도 눈에 선하고 장례식 때 고향 선산 묘지까지 따라가서 차디찬 산바람이 세차게 불어 감기도 걸리고 몸살까지 앓았던 기억이 나네요. 좌우당간 저의 5년 가까운 대구생활은 범용이로 시작해서 범용이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통 대구의 추억은 날이면 날마다 맨날 범용이와 함께 먹고 마시고 돌아다닌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네요. 그런데 그저께 대구의 도명이 카톡으로 정범용 사망소식을 전해주었을 때 한동안 멍~하게 하늘만 쳐다보며 망연자실했지요. 집사람이나 저의 아이들도 범용이 아저씨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상당히 충격을 받고 정말 슬퍼할 것 같군요. 비록 이국만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늙으막에 서로 흉허물 안 보고 격의없이 의지하고 지낼 수 있는 좋은 친구를 이 세상에서 더는 만날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오늘 범용이의 타계소식에 저절로 북받치는 안타깝고 슬픈 심정을 우리 오공 친구들 모두에게 토로하고 싶어서 대충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친구의 장례식에도 못 가고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 과테말라에서 마침 환하게 떠 있는 달빛이 비추는 책상머리에서 친구의 이름을 다시 불러 봅니다. 범용아! 부디 편안히 잠들어 있다가 나중에 혹시 좋은 데서 둘이 함께 깨어날 수 있다면 이생에서 못다한 정을 다시 오롯이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한잠 자알 주무시게...
과테말라에서 봉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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