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내용보기]
제목   한강
이름   봉영 등록일   2021-12-15 오전 10:54:00
e-mail   jamespama@hanmail.net
내용






한 강













    한 많은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는

    어젯밤 이슬비에 목 메어 우는구나

    떠나간 그 옛 님은 언제나 오나

    기나긴 한강 줄기 끊임없이 흐른다



    나루에 뱃사공 흥겨운 그 옛 노래는

    지금은 어디 갔소 물새만 우는구나

    외로이 나그네는 어디로 가나

    못 잊을 한강수야 옛 꿈 싣고 흐른다










































원로가수 심연옥 씨는 1928년 12월생인데 두 달 전 미국 뉴저지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셨다. 향년 93세. 고 심연옥 씨는 1957년에 고 백년설(본명; 이창민, 1914-1980) 씨와 결혼을 하자마자 곧 두 분이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하여 1959년에 침례를 받아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 이 두 분이 여호와의 증인이 되신 해 즉 내가 종로초등학교 3년 때 이미 2년 전인 1957년부터 여호와의 증인이 되셨던 나의 어머님께서 종갓집 둘째 며느리로서 그동안 크고 작은 모든 제사를 한사코 거부하셨기 때문에 집안 어른들의 진노를 사게 되어 마침내 집에서 쫒겨나서 동성로 친정집에 가실 때 당시 5형제 중 둘째인 나만 데리고 가셨다. (그뒤 딸 셋을 더 낳아 8남매가 됨 ㅋ) 나는 그때부터 학교도 잘 안 가고 맨날 외갓집에서 놀기에 주력했는데 당시의 외갓집은 먹을 것도 풍성했고 외조부님께서 약령시와 염매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객주와 양조장을 경영하셨기 때문에 집이 워낙 크고 방들도 많은데다 뒷뜰에는 나무도 많고 정원이 넓어서 내가 숨어서 만화책이나 보며 먹고 놀기에 아주 적격인 곳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님이 뒷뜰에 있던 내 아지트까지 찾아와서 우리집이 종로초등 바로 뒤에 있었는데 멀리 동인동으로 이사를 갔다면서 이제 더는 종로초등은 못 다니고 다른 학교 즉 동인초등으로 전학을 가야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와 어머님을 찝차에 태워 동인동 새 집으로 가셨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별거생활이 이로써 정리가 된 것이다. 그때 이후로 아버님께서는 집안 어른들에게 어머님은 당연히 제사와 상관없는 분으로 인정을 해달라고 하셨고 제사지낼 동안에 어머님은 유령인간으로 취급되셨다. 내가 아버님 살아계실 때 아버님이 노래하시는 걸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어머님은 노래를 자주 부르셨다. 주로 일본노래를 많이 부르셨지만 한국가요로는 유독 백년설 씨의 나그네 설움, 고향설과 심연옥 씨의 한강을 즐겨 부르셨다. 어머님은 백년설 씨의 첫번째 부인이시며 슬하에 1남 3녀를 두셨으나 1955년 결핵으로 요절하셨던 경북여고 동창생이신 이한옥 씨는 물론이고 1957년 백년설 씨와 심연옥 씨와의 결혼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분들이 어머님과 같은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버님에게도 여러번 얘기를 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나의 아버님은 일제 때 대구 사범학교를 나오시고 해방후 지금의 경명학원의 초대 재단이사장과 중학교 교장을 역임하셨고 서당 훈장을 하시며 유림으로 지내셨던 조부님의 영향으로 유교를 철저히 신봉하셨지만 나중에 어머님으로부터 소개받은 백두현 부장검사 출신의 여호와의 증인과 성경공부를 하신 후 결국 1992년 침례를 받으시고 여호와의 증인이 되셨다. 그후 장로로서 많은 역활을 하셨고 2008년에 어머님이 미국에서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실 때까지 두 분이 함께 전시간 봉사 및 정규파이오니아를 오래 하셨다. 1926년생이신 나의 아버님은 2014년 88세로 이삼일만에 돌아가셨는데 나는 불효막심하게도 두 분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다. 나는 오늘 이 글을 올리면서 내가 그토록 싫어하고 반대하였던 두 분의 종교를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를 하게 되었고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나의 아내와 함께 두 분께 진실로 송구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을 전하면서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2018년부터 우리 부부도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대충 나의 친구들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담담히 고하고자 한다. 그리고 내가 가리늦게나마 매일 성경을 열심히 살펴보고 절실하게 깨달은 바, 성경은 진실로 하느님의 말씀인 동시에 최고 진리의 보고(寶庫)이며 여호와의 증인이야말로 이 말씀을 가장 밀접하게 따르는 종교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으니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아! 부디 나의 말을 만홀히 여기지 말고 이제 남은 세월을 각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봉영

아래는 1963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은퇴공연을 하였던 백년설 씨의 동아일보 신문기사와 대구의 향토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동순 영남대 국문과 명예교수의 글 가운데 일부이다.








"삶의 누적된 피로와 고통의식 속에서도 백년설 선생은 항상 밝고 부지런하며 꼿꼿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 무렵 아내 심연옥과 함께 어느 특정한 종교이념에 심취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종교적 활동을 통하여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고, 기도와 묵상의 시간에 철저했습니다. 곰곰이 돌이켜보노라면 그동안 최고의 인기가수로서 이룩했던 화려한 영광과 추억들, 지위와 인기까지도 종교적 실천과 근면성에 비하면 덧없는 물거품이라 여겼습니다. 말하자면 종교적 이상주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지요. 동시에 과거의 영화로웠던 기억을 되새겨보노라니 지금보다도 현저히 가치가 떨어지고 거기에 큰 기대나 정신적 비중을 둘 필요가 전혀 없다는 관점에 도달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난 시절과의 결연한 단절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우리 초등학교 다닐 때 자주 흥얼거렸던 노래...

여보세요 미스김 안녕하세요~ 여기는 청파동 청년 박이요~

지나간 일요일은 약속한대로~

하루 종일 극장 앞에 비를 맞으며~

기다리게 하였으니 고맙습니다~

남백송과 심연옥이 듀엣으로 불렀던 '전화통신'이란 노래를

나는 다시 들을 수는 없지만 그 가사가 옛날생각 많이 나게 하는 것 같네요.




































[나도 한마디]
이름 내용 비밀번호 [등록]

제목 등록일자 등록자 조회수
   한강 2021-12-15 봉영 1171
     거두 절미하고... 2021-12-16 봉영 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