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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두 절미하고...
이름   봉영 등록일   2021-12-16 오후 12:10:00
e-mail   jamespama@hanmail.net
내용
우리 오공 친구들에게 고 심연옥 씨의 인생체험담 중 일부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분의 경험담을 읽어보면 마치 나의 어머님이 나에게 들려주셨던 당신의 여호와의 증인 종교입문에 관한 일화와 여러가지 과거의 신앙생활에 얽힌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하며 일제시대와 6.25 동란 등 당시의 우리 부모님들이 공통으로 겪었던 시대적 애환들을 통하여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도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일깨어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다들 편안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내용이 너무 길어 앞부분은 생략한다. 혹시 전체를 보기를 원하면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주면 좋겠다.

(상략)

그러던 중 1.4후퇴로 또 다시 모두 남쭉으로 후퇴를 하기에 이르렀다.

군부대의 쓰리코타로 몇가족씩 태워 부산으로 내려가 배판사라는 아주 부잣집에서 집을 내주어 얼마동안 부대에서 주는 양식으로 지내다가 다시 옮겨 대구로 가게 되었다.

대구 키네마 극장앞에 분장실을 단원들 내무반으로 사용하고 가족들은 민간인 집에서 방을 얻어 생활하도록 해주었다.

그곳에서 생활을 위해 레코드 취입을 하여 [아내의 노래], [한강] 그리고 [도라지맘보]등을 내놓았다.

전쟁시에 그것도 피난 생활을 하는 와중에 취입 시설도 불충분한 상태에서 레코드를 찍어냈으니 지금 생각하니 방음 장치도 없는 방에서 가마니를 깔고 벽에도 걸어놓은 모든것이 엉성한 상황에서 만들어낸 작품들이라 모든게 엉성할 수 밖에 없었다.

무대에서 부르고 , 라디오 방송에서 노래를 유행시켰지 레코드판으로는 대중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나의 연예인 생활은 전쟁과 난리속에서 이리저리 떠돌면서 보낸시간이 많았다.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하는 일들을 겪으며 어떻게 살아야 옳은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는 일을 많이 겪은 셈이다.

우리 음악선생이었던 강준희 씨는 목사의 집안의 장남으로 신앙 생활을 착실하게 해왔고 지방 공연 때도 교회당이 보이면 들어가서 기도를 하곤 하였다.

나에게 교회에 나가라는 말은 가끔 하였으나 하느님에 대해서 구체적인 말은 한번도 하지 않아 못 들어봤다.

몇년 동안 집을 떠나 피난 생활을 하다가 서울이 수복되었다고 하여 이제 서울로 돌아가 그동안 비워져 있던 집으로 돌아와 지내게 되었다.

이제는 국방부 문관으로서의 생활은 끝내고 어느 연예단에 전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당분간 그렇게 자유롭게 지내게 되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김해송씨는 북쪽으로 납치되어가고 이난영씨는 홀로되어 옛날 멤버들이 옛정을 생각하여 전에 상연했던 프로를 재상연하기로 하고 시공관에서 공연을 가졌었다.

그러던 어느날 대구 방송국 국장이 찾아와 나에게 출연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다음달에 대구 키네마 극장에서 올스타쇼를 대구 방송국 주최로 하게 되는데 나와달라고 하여 한달 후에 내가 대구에 가게되었다.

그곳에서 [백년설]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분도 나를 만나자 여사로운 눈으로 보는 것 같지 않았고 나도 그분을 만나자 아주 가까운 가족분을 만나는 것 같이 낯설고 어색한 만남이 아닌 친근감을 주는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었다.

나에게 접근해 오는 태도가 다른 연예인들이 접근하는 것과 달리 품위있는 태도로 참으로 믿음직하고 무슨일이든 의논하면 진지하게 대해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10일간 공연하는 동안 대화도 많이 나누어서 서로의 가정 형편도 알게되고 또 내가 그동안 격어온 이야기를 통해 동생들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충실한 누나로 살아왔음도 잘 알게 되었다.

또 한편 나는 그분이 겪어온 이야기를 통해서 그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대중들로 부터 인기를 얻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예사로 보지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그사람들은 자신이 받는 캐런티의 몇분의 일 밖에 않되는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는게 너무 마음에 걸려 쌀값이나 막걸리값이라도 나누어 주어야만 하는 인정스러운 점과 보통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이속있는 사람에게 잘보이려고 할텐데, 이분은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고 인정을 베푸는 것이 남달라 보였다.

그리고 인기있는 남자들은 여자 문제가 복잡하기 쉬운데 이분은 윤리관이나 도덕관이 반듯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여자보다는 건전한 남자 친구가 많았다.

무대 공연이 끝나면 남자팬들이 요리집으로 초대하여가게 되면 술자리를 하게되고 기생들이 사귀어 보려고 접근해오면 도망쳐 나오는 것을 인간승리로 생각하며 한참 젊은 나이를 건전한 정신으로 살아온 멋진 남자이셨다.

10일간 공연을 마친후 자신이 연주단을 구성하여 호남지방으로 순회할 계획을 세워서 날보고 거기 합세하지 않겠냐교 교섭을 해왔다.

그 당시 어디에 전속으로 소속되 있지 않았기 때문에 OK하여 함께 지방공연을 하게되었다.

이분은 단원들에게 대우를 잘 해주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서로 그 단체에 끼고 싶어들 했다.

프로를 진행하는 사회자로 김희갑씨가 하게 되었고 음악 담당은 이재호씨와 황문평씨 그리고 가수로는 백년설씨 진방남씨, 심연옥, 박재란, 김옥희, 코메디언으로는 서영춘, 백금녀를 간판으로 하고 그외 몇몇의 출연자들과 약 한달가량 함께 보냈었다.

그런데 돈을 벌려고 하는게 아니라 단장인 백년설씨는 마음이 엉뚱한데로 쏠리기 시작하여 연주단을 핑계로 심연옥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만족할 뿐, 단체는 사업부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신경을 안쓰는 것이었다

사업을 맡아보는 사람이 미리 각 극장에서 돈을 당겨쓰고 도망가버리는 일이 생겨 결국 단체를 계속 이끌고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단체를 해산 시키는데 단원들에게 그동안 출연한 개런티를 주기 위해서 자신의 집인 대구로 일단 일행을 데리고 온 다음 여관에 들게하고 돈을 마련하여 나누어주어 보내고 제일 출연 요금이 큰사람인 김희갑씨와 나만을 남겨두어 몇일만 더 기다려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다.

돈을 받기위해 여관방에서 기다리는 빚장이 신세가 되었다.

나는 너무 기분이 상해 돈을 집으로 붙여달라고 하고 집으로 빨리 가고 싶은데, 백 단장의 말이 늦어도 이삼일이면 돈이 되니까 참고 기다리라며 못가게 막았다.

저녁이 되니까 김희갑씨의 방에서 백 단장과 술상을 벌이고 있고 나는 혼자 이궁리 저궁리 하면서 빠져나갈길을 모색하여 잠을 못자고 있는데 건너방에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떠들썩 하더니 두사람이 어느듯 조용해졌기에 살그머니 그방을 들여다 보니 세상모르고 다 골아 떨어져있었다.

나는 갑자기 차비라도 있으면 이밤에라도 빨리 집으로 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들어 벽에 걸린 백 단장의 바지 뒤주머니의 돈 뭉치를 꺼내 차비가 되는 액수만 세어서 갖고 나머지는 도로 주머니에 넣어 살살 짐을 싸들고 그 여관을 나왔다.

그때가 새벽 5시라서 밖은 캄캄했다.

대구역으로 향해 갔지만 기차 시간이 오후 1시니까 그동안 기다려야할 곳을 찾아야 하였다.

역앞에 수복여관이라고 하는 곳에 일단 짐을 들고 들어갔다.

잠을 못잤기 때문에 들어가자 바로 잠들어 버렸다.

잘자고 일어나서 기차시간에 맞추어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짐을 들고 나오려는데 내 신 한짝이 안 보여 여관 사람을 큰소리로 책망하고 있는데 백 단장이 나타났다.

그동안 백 단장과 김희갑 씨가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옆방이 너무 조용해서 아침인사를 하려고 노크를 하는데 아무 기척이 없어 여관 주인에게 물어보니 새벽에 짐을 들고 나갔다고 하여 그 길로 두사람이 허겁지겁 시내 여관마다 샅샅이 뒤졌으나 보이지 않아 많은 걱정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역앞에 있는 여관만 하나 더 가보자고 해서 막 들어서 보니 현관에서 반가운 얼굴이 보여 안심하였는데 무슨 문제인지 큰소리로 여관사람과 옥신각신하고 있어서 백 단장은 들어서자마자 무슨일이냐며 문제를 거들어 주어 혼자 난처했었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시비를 잘 가려주어 여관 주인이 구두 값을 물어내게 해주므로 속상했던 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길로 백 단장은 나를 짚차에 태워 양화점에 가서 구두 한 켤레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호소했다.

오늘 저녁에 꼭 돈을 만들어 올테니 내일 기차로 가라면서 하루 저녁을 더 묵도록 하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말을 믿고 여관에 들어와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기다리듯 저녁내내 눈이 빠지도록 백 단장을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아 속았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새벽이 되서야 돈을 가지고 나타남으로 다시 반갑게 맞이하였다.

이제 돈도 받았고 1시에 기차를 타면 모든 문제는 끝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백 단장이 타고온 짚차에 짐을 싣고 역을 향해 출발하게 되었다.

멀지도 않은 역인데 짐때문인지 차로 배웅하겠다고 하여 순진한 마음으로 올라탔다.

그런데 역앞에서 세우지 않고 역을 지나쳐 계속 달려가기에 아니 왜 역을 지나치느냐 고 물었는데도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자꾸 앞으로 달려갔다.

낯선 운전수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고 침묵 속에서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할 것인지 연구를 하면서 한참동안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동화사라는 관광객들이 놀러오는 곳에 도착하였다.

남이 보면 애인사이로 두사람을 보겠지? 아무 반항도 없이 차에서 짐을 내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에 발을 당구면서 그동안의 자신이 나에게 느낀 감정을 서서히 풀어 놓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껏 아버지같은 분 또는 믿음직한 오라버니 같은 분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 왔는데 그만 그런 믿음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면서 남자란 다 도둑이라더니 백 단장도 별 수 없이 응큼한 사람이었구나 하고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여기서 내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어쩌면 강제적으로 대쉬해올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염려가 되어 지혜롭게 이 자리에서 잘 빠져 나가기 위해 머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백 단장의 심정을 잘 이해하겠다고 하면서 집에 가서 어머니께 잘 말씀을 드려서 허락을 받도록 해보겠다고 말하여 마음을 안심시키고 나를 안전하게 집에 보내주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일단 성공했다.

그때 백 단장의 심정은 세상을 얻은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의 심정은 그날 저녁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해보겠노라고 말을 한 것이지 사실은 결혼의 대상으로는…. 처녀로서 아이들이 넷이나 되는 한 아버지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상대인데 감히 욕심을 품다니, 참 엉뚱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을 바짝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듯이 ‘절간에까지 끌려온 내가 야수에게 먹히지 않을려면 비상한 꾀를 부려야 한다.

어제까지 나는 당신의 인격을 존경해왔는데’, 오늘 밤의 당신의 행위에 따라 존경하던 마음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그렇게 되면 다시는 나를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여, 한방에서 그간에 못다한 서로가 지내온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을 뿐, 아주 신사적으로 깨끗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대화 내용이 아주 진지했고 더욱 인격적으로 믿음직한 면을 보여주었다.

새벽이 되어 눈을 좀 붙이고 난 후, 대구역으로 배웅을 해주면서 “좋은 답을 기다린다”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보내주었다.

집에와서 어머니에게 의논하니 대번에 반대하셨고, 나도 생각할수록 그분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짙어져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백 선생은 김희갑 씨를 파견하여 “아주 이상적인 방법이 있다”면서, 아이들은 외할머니가 손자들을 맡기 원하고 아이들도 그러기를 원하니, 대구에 고아원을 외할머니께 맡기고 자신만 서울에 와서 우리 식구들과 살겠다는 생각을 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동생들이 많은데, 그들을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양육하고 교훈하는데는 젊은사람보다는 오히려 인생 경험이 많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나 적극적으로 나왔다.

김희갑 씨는 “백 선생이 쓴 일기장을 보았는데, 너무나 심연옥 씨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담겨있었고, 자기가 존경하는 분의 이 진실한 마음을 꼭 알리고 싶어서 왔다”며, “연옥씨의 고결한 마음을 잘 알고, 그 마음을 지켜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이분이”라며 설득을 시도하였다.

나는 서서히 두 사람만의 행복만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동생들 문제로 염려가 되는 나에게는 서로에게 필요한 입장이다보니, 백년설 씨가 적격이란 생각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대구의 아이들은 외할머니가 맡아서 키워주신다니까, 그 문제도 이상적으로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점점 백 선생이 원하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며, 인격적으로 존경해왔었고 그분도 나를 잘 알고 사랑하니까 행복하게 잘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결혼 상대로 괜찮을 것이라고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

진리를 알게된 계기

결혼한지 얼마 안 되어서 공연 연습을 하는 날에, 무용수 중 한 사람인 양정자라는 친구를 오랫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그 시절에는 요즘과 달리, 체격이 마른 것보다는 살이 통통하게 찌는 것을 부러워할 때였다.

그런데, 양정자가 키가 크고 늘신한 체격인데, 그 전보다 살이찌고 보기 좋아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에게 다가가 어떻게 해서 살이 쪘는지 물어보았다.

그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하니까, 그는 “그 비결을 가르쳐 줄테니, 공연 연습이 끝난 다음 지하 다방에서 만나자”고 했다.

연습이 끝나자 부지런히 지하 다방에서 그녀를 만났더니, 그는 큰 손가방에서 잡지 2부를 꺼내서 나에게 주면서 “이 잡지에 그 비결이 있으니 집에 가서 잘 읽어보라”고하여, 기쁜 마음으로 집에 와서 바로 읽어 보았는데, 아무리 열심히 찾아봐도 그 비결이 발견되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예루살렘이 어떻고, 이스라엘이 어떻고 하는 내용으로 머리만 지끈지끈하여 살찌기는 커녕 오히려 더 마를 지경이라서 잡지를 그냥 접어두고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런 어려운 내용을 읽고 살이 찌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으로 매우 궁금하였다.

몇일 후에 그 친구가 우리 집에 찾아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재방문을 온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대뜸 물었다.

“어떻게 너는 그 잡지를 보고 살이 찔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 머리가 복잡해지고 살이 더 마르겠던데”라고 하니, 그녀의 말이, “처음에는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었지”라고 하면서, “걱정하지마”라고 일단 안심을 시키더니,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잘 믿으면 다 천당에 간다고 하지?”하고 묻길래, “그럼, 너는 다르게 믿니?”라고 되물었다.

그녀는 바로 성서를 꺼내면서, “성서를 공부해보니까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살아서 천당이나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에스겔 18:4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죽으면 영혼 자체가 죽는 것이라고 했고, 전도서 9:5을 보면, 죽은자는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다”는 기록도 보여주면서, “그러므로, 아무런 의식이 없는데, 무슨 천당과 지옥이 있겠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나는 우리 음악 선생이신 강 선생은 목사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장로교인으로 신앙이 두터워, 매일 기도생활하시는 그분이 이런 성구들을 알고 있는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하여, ‘그 선생을 만나서 물어보고 양쪽의 말을 들은 다음, 어느쪽의 말이 성서적인지 알아보아야겠다’고 작정했다.

다음날 그 선생댁을 찾아가서 대뜸 “선생님은 천당에 가실려고 교회에 나가시지요?”라고 물었더니, “그럼”하고 대답하시길래, “그럼, 천당간다는 구절을 보여주세요. 내 친구에게 보여주게요. 그 친구는 에스겔 18:4에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 자체가 죽는다고 한 기록을 보여주던데, 선생님은 영혼이 천당에 갈 것으로 믿으신다니,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알고싶네요.”라고 하니까, 그 선생은 성서를 보여주는게 아니라, “다시는 그 친구를 만나면 않돼. 그런 사람은 이단이니까, 큰일난다!”하고 하시길래 내가, “이단이 뭐에요?”하니까, 그 선생은 “마귀교란 말이야. 그러니, 절대 상종해서는 않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내 친구가 마귀교에 있다면 더욱 만나서 성서를 올바로 가르쳐 주어야지,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지요.”라고 하니까, 그 선생의 말씀이 “마귀교는 끄는 힘이 강해서, 네가 자꾸 만나면 너까지 빠지게 된단 말이야! 그리고, 그 사람들은 성서에 자기네가 필요로 하는 구절은 뽑아쓰고 필요하지 않는 것은 지워버리는 사람들이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친구가 나에게 성서 구절을 보여줄 때, 더러 줄친 부분들이 있었던 것이 떠올라, ‘그럼 그 밑줄친 것은 혹시 성서를 지워버리는 것이었나?’라는 의심이들어, 그날은 그냥 천당에 간다는 구절도 못 본채 집으로 돌아왔다.

몇일후 내 친구가 다시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친구에게 “너희는 혹시 성서를 필요한 것만 뽑아쓰고 필요치 않은 것은 지워버리니?”라고 물으니, 그녀는 곧바로 “그럼 않되지. 성서는 ‘일점일획’도 가감해서는 벌을 받게 되어있다면서, 계시록 22장 18절과 신명기 4:2, 잠언 30:5,6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면 너의 성경에 줄쳐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중요한 것 표해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음악 선생이 잘못 알고 있구나’ 생각하니, 누군가가 잘못 알고 전해준 것을 믿고 오해하고 계신 것이라 여기고, 그 선생에게 다시 가서 “어떤분이 그런 말을 했는지 그분에게 잘못알고 있었다고 일러주세요. 내 친구에게 알아보니까 성서는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성서에서 보여주더라구요.”라고 말했다.

그 선생은 또다시 “왜 그런 사람을 자꾸 만나냐”고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내가 기대한 것은 그 선생이 내가 전해주는 말을 심각하게 듣고, 자기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이 오해였음을 깨달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한 술 더해 그 선생의 말은 “그들은 예배를 볼 때, 젊은 남녀가 나체로 진행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혹시나 내 친구가 그런 것에 빠져들어갔나’하는 염려와 의심이 들게되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몇일 후 친구가 방문왔다.

그래서, “너희들은 어떻게 집회를 보니?”라고 물었다.

친구말이 “교회하고는 다르지, 여기는 정말 성서연구 단체야. 교회는 목사 한 사람의 설교를 듣고 끝나지만, 여기는 사회자가 문답식으로 된 성서 보조서적으로 질문하면, 청중석에서 손들고 대답함으로, 체계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한 시간 진행하고 성서 공개강연 55분 동안에는 성서 구절을 20개 이상 찾아보게 하는 그런 집회라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예배이지.”라는 친구의 말을 듣게되니 전혀 그 선생이 말해준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젊은 남녀가 따로 모이는 집회는 없니?”라고 했더니, “그렇게들 중상을 하는데, 그와는 정반대로 이 조직은 약혼한 사이라 하더라도, 단둘이 밤에 있을 때는 방문을 열고 있어야지, 만약 문을 닫고 단둘이 있는 것이 발견되면 제명처분시키는 참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조직이란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강 선생에게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 소식을 전달했다.

여전히 그 선생은 화를 내면서 “왜 그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고 일러주었는데, 자꾸 만나며 나한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거야?”라고 말하며 책망을 했다.

나는 그 선생의 인격에 대해 크게 실망을 하고, 그 이후로는 일절 찾아가지 않았다.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남편에게 들려 주었더니, 그분은 “종교란 다 그런거야.”하며 가볍게 넘겨버렸다.

그 이유는 “어려서부터 종교심이 있어서, 교회도 다녀보고 불교도 알아보니 모두가 비즈니스 행위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 못된다고 결론을 내려버리고 오히려 동양 철학을 연구하여 나중에는 주역을 배우게 되고, 자신과 남의 사주를 보는데 흥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날 하루는 남편이 집에 있을 때 양정자 친구가 방문을 하였다.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한테 들은바 있었기 때문에 남편은 내 친구를 보자 바로 “나한테 전도할 생각 말게나. 나는 교회도 불교도 다 졸업했으니까. 그냥 내가 사주를 봐 줄테니, 생년월일이나 알려주지?”라고 말했다.

내 친구는 서슴치않고 “언제 그런 걸 배우셨어요?”하면서 생년월일을 알려주었다.

좀 있다가 “사주가 나왔는데, 부부궁이 안 좋구나.”라고 남편이 말하니까, 양정자가 “맞아요. 저는 이혼했어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그런데 좋은 것은 명이 길다.”라고 하니까, 친구는 손뼉을 치면서 “어쩌면 그렇게 잘 맞추세요? 저는 영생할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지구의 운명은 주역에는 안 나오지요? 성서에서는 앞으로 지구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인지 예언되어 있답니다.”하니까, 남편께서는 교회에서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라면서 다음에는 더 높은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청하는 것이다.

몇일 후, 홍석표 형제를 모시고 친구가 찾아왔다.

그런데, 말끝마다 그 형제는 성서를 펴서 보여주니까, 남편은 “아니 말씀마다 성서에 이렇게 말했다고 하시는데, 성서에 있으면 다 믿습니까?” 그 형제는 “그럼요.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니까요.”라고 하니까, “하느님이 쓰시는 것을 보셨습니까?”라고 남편이 묻자, 그 형제는 “하느님이 쓰신 것을 보아서가 아니라, 성서를 조사해보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확실한 증거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남편은 “이제부터 성서 없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지식을 가지고 토론 하십시다.”라고 말했다..

그 형제 역시 “그럽시다.”라고 하면서 성서를 치우고 세상 정치 돌아가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세상이 의롭지 못하고 불의가 행세하는 세상을 한탄하게 되었고, 매주 만날 때마다 성서가 아닌 협회 간행물 중 그날 가졌던 대화와 조화되는 소책자나, 특히 일본어 [깨어라]잡지 등을 건네주면서 “우리가 알고자하는 대답이 여기 나오니 읽어보시라”고 남겨 놓고 가곤했다.

남편은 그분이 두고 가신 잡지나 소책자를 열심히 읽더니, 이 세상의 불의가 하느님에 의해 제거되고, 의만이 존재하게 된다는 그 말씀이 성서에 정말 있는지 궁금하게 되어 결국은 성서를 장만하여 8개월간 성경없이 토론한 끝에 성서를 연구하자고 우리쪽에서 신청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 종교가 인류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보다는 정직한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오히려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위선적인 행위를 정말 하느님이 계시다면 하느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들을 그냥 보고만 계실리가 없을 것이고, 인간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불의를 깨끗이 청소하신다는 말씀이 너무 마음에 들고, 진정으로 성서에 들어있는지 검토해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을 내게 되었다.

1957년 8월부터 정식으로 성서공부를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토론한지 1년 7개월만인 1959년 2월 14일 우리 두 사람은 침례를 받게 되었다.

다음은 성서공부를 하던 중에 있었던 일화다.

하루는 남편이 홍 형제 (연구 사회자)에게 부탁하기를 “언제이든 호별방문 봉사 하실 때 제가 따라가서 보았으면 하는데요.”라고 하니까, 그 형제분이 쉽게 “그렇게 하시지요.”해서 따라나선 경험이 있었다.

나는 남편이 다녀와 뭐라고 평가할지 기대와 염려가 가득하였다.

이것이 진리라고 느꼈지만, 차마 나 자신도 호별방문을 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다녀와서 하는 말씀은 “이 사람들이 진짜로 성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며, 매우 흡족해 하셨다.

남편은 고향인 경상북도 성주에서 16-17세의 시절,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경험이 있었는데, 무슨 의문점을 목사에게 질문을 하면 성서적으로 답해주지 않고, “믿음이 약하구먼, 기도를 열심히 하면 깨닫게 된다”고 핀잔을 받았는데, 그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친절하게 집집을 방문하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서를 펴서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을 보게되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신다.

어려서부터 종교심이 있어서 그동안 여러 종교를 알아보면서 만족을 얻지 못했는데, 이제야 참 종교를 발견하게 되었다면서,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때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씩 성서연구를 하고 집회 참석도 정규적으로 하며 담배 피우는 것도 딱 끊고 성서 교훈을 생활에 적용하면서 가족들에게는 물론 친구들에게도 성서의 말씀을 전하는 데 열심을 내게 되었다.

= 아래는 아들인 이길영 형제가 덧붙인 글 =

아버지는 생전에 당신의 신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곤 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흔히 선망의 대상이 되는 많은 것들을 다양하게 누려보았지만, 정말 나의 생명을 바칠만한 가치있는 길은 십대에 교직자의 위선을 보고 교회를 떠난 후 수십년 후에 다시 접하게 된 성서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의 창조주의 본뜻을 알게된 후 나는 비로소 나의 인생의 목적을 갖게 되었고, 죽어도 여한이 없는 길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따라서 너희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인 성서의 진리를 따르는 길을 선사하고자 하고, 그 길을 따르는 나의 삶을 너희들에게 남겨주고자 한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자녀들에게 이 점에서 순수하게 언행일치의 삶을 보여주셨음에 나는 감동하고 너무도 자랑스럽다.

나는 아버지가 은퇴를 선언하셨던 1963년에 태어난 6남의 막내로서, 아버지의 연예계 활동을 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한 손에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한두 번 은퇴 후 라디오나, 텔레비젼에 초대받아, 아버지 옷자락 잡고 따라가 보았을 때, 텔레비젼에서 보던 유명한 사람들이 아버지를 알아보고 깍듯이 선배로 모시는 것을 보며 많이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더이상 인기를 누리지도,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도 않은 생활을 하고 계시는 것에 대한 애석함, 그리움, 자존심 상함 등을 한번도 보이셨던 기억이 나에게는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셨고 나와 그외 남매들에게 다정하시면서도 엄하게 가정교육을 베푸셨으며 이중성을 보이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던 분이셨다.

나는 그것이 내 자신이 60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돌이켜보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볼 때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나의 어머니도 순수한 삶을 사신 면에서 아버지와 동일한 가치관으로 일관하셨던 분이셨다.

내 자신의 연륜이 중년을 넘어가면서 부모님의 연예계에서 남기신 유산과 도달했던 경지를 더 잘 알게 되면서 그분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은 한없이 깊어간다.

부모님은 우리 자녀가 볼 때, 분명히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초점을 맞춘 생활을 영위하셨다.

아버지는 평소 50-60시간의 야외봉사를 하셨고, 나는 아버지가 사회하시는 성서 연구와 초대받아 가셨던 공개 강연에 자주 따라다녔다.

어머니도 정말 생산적인 봉사자이셨다.

어머니와 수년 후 함께 앉아 어머니가 호별에서 찾아서 연구를 사회하여 침례를 받도록 도왔던 분들의 이름을 적어보았다.

18명의 자매들이었고, 그분들이 인도한 가족 성원들을 감안하면 무척 많은 분들을 진리 안으로 인도한 셈이다.

물론 내가 감상과 환상에 빠져서 마치 그분들이 어떤 초인의 경지에 있었던 분들이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처럼 단점과 빈자리도 물론 있으셨다.

그러나, 남보다 자신이 더 낫다거나, 남을-특히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무시하거나, 인기와 재물, 재능, 명예 등에 무게를 두는 일 등에서 놀라울 정도로 연루되지 않는 좋은 특성들을 자녀들에게 삶을 통해 보여주셨다.

따뜻한 인간성을 집안팎에서 발휘하셨다.

나는 두분의 슬하에서 자라며, 그분들이 사회에서 갖게된 명성대비 윤택한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경제 수준 속에서 자랐지만, (물론 성장기 어린시절 그랬던 생활이 이해가 안 가고, 윤택한 가정들을 어느정도 부러워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들의 인격, 신앙, 인생 행보, 가치관들의 고귀하고도 자랑스런 유산을 훨씬 더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도 한마디]
청해  좋은 글에 감사! 2021-12-22 오후 12:24:00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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