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낮 일년 전에 먼저 떠난 우리 동기 박기현 전 아주대 의무부총장 1주기 추모예배에 다녀왔다. 유가족, 친지, 친구, 제자들이 집에 모여 고인의 덕을 기리고 아쉬워하는 시간이었는데 뜻밖에 뉴질랜드에 계시는 허영근 형님의 형수께서도 오셔서 추모의 마음을 같이 나누었다.
7,8년 전이던가 영근 형이 뉴질랜드에서 선교활동 중 갑자기 중풍인지? 암인지 쓰러져 한국에 와서 어려웠을 때 고인이 긴급히 아주대병원에서 수술하도록 도와서 완쾌되신 후 돌아가신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은 건강하게 열심히 사목활동을 잘 하고 있다며 형수님께서 꼭 뉴질랜드로 놀러오라며 명함을 전해주었다.
생전 의업에 철저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비인후과 특히 중이염 연구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매진하였고 너그러운 인정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주었던 친구... 초등부터 고등까지 또 대학때 같이 하숙까지 하며 오십여 년의 정을 나누었던 죽마고우로서 추모의 념을 금할 수 없었다.
다행히 유가족들이 하느님에 의지하여 꿋꿋이 지내면서 고인의 모교에 장학금을 기부하였고 고인의 뜻을 지켜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한결 놓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친구에 대한 존경의 마음도 일어났다.
기현아 ! 이제 천국에서 주님 옆에서 편히 쉬며 이 혼탁한 인간세상이 앞으로 더욱 건강해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기 바란다~
백록 7대 손병학
이 글은 경고 51회 박기현(옛날 이름은 박주우) 전 아주대 의무부총장 1주기 추모예배를 다녀온 손병학(경고 51회, GM 자동차 고문) 군이 학창시절 청록회원들의 친목모임인 백록카페에 올린 글인데 허영근 동기의 최근 얘기가 나와서 2007년 7월 글마당의 제 글을 다시 찾아 읽어보았더니 감회가 새롭네요. 아주 각별했던 친구였기에 불현듯 보고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추억에 젖게되어 이 글을 또 올려봅니다.
친구 영근이
허영근 하면 우리 동기들 중에서 혹시 나처럼 율 브린너를 연상하는 친구가 더러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율 브린너의 트레이드 마크인 윤이 반지르르한 빡빡 대머리와는 거리가 한참 멀지만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에서처럼 까만 머리 가발을 하고 나온 모습이라든지 황야의 7인에서처럼 까만 모자를 노상 쓰고 있는 모습만 염두에 둔다면 둘의 이미지가 아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도 빈틈이 없어 보이는 예지적인 형형한 눈빛과 얼음처럼 냉정한 표정 가운데 가끔 야릇하게 비웃는 듯하면서도 따뜻하고 소탈한 해맑은 미소 그리고 잘도 빠진 늘씬한 몸매에서 풍기는 탱탱한 긴장감에 어우러진 늠늠한 기상과 멋진 걸음걸이...등은 율 브린너가 아무래도 내 친구 영근이를 벤치 마킹 그대로 쏙 빼다박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도 늘 우리 경고 50동기 친구들 가운데서 영근이가 가장 멋있고 박력있는 준수한 용모의 남자로 꼽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태권도 5단의 무예와 ROTC 장교 출신으로서 산악게릴라 야간유격훈련 및 공수특전 스카이다이빙으로 다져진 강철같은 다부진 체력으로 제대 후 곧바로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에 특채되었던 영근이가 당시 가끔 비번 때 멋진 양가죽 잠바를 걸치고 청바지 차림으로 고모부가 오너였던 명동 엘칸토 구두매장 근처에서 마치 율 브린너처럼 뚜벅뚜벅 폼을 잡고 걸으면 그 골목에 갑자기 벌떼처럼 모여든 황신혜 비슷하게 생긴 여우같은 아가씨들로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황당한 소문도 있었는데 특히 영근이 옆에 다가온 이뿐 아가씨들이 한결같이 하이힐 뒤축이 갑자기 부러진 시늉을 하면서 비틀거리며 쓰러지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영근이가 잽싸게 허리를 끌어당겨 부축해주며 구두는 튼튼한 엘칸토 구두를 사 신으라고 그랬다나 마나...ㅋ ☏♪♪ (☜ 삭제요망 ) 그때보다 한참 뒤돌아가서 대학시절 방학때 대구에서 우연히 심심풀이 미팅 파트너로 서로 만났다가 서울 대구간 그야말로 불꽃 튀는 열애 끝에 결혼까지 성공한 제수씨는 우리 경고 후배의 누나로서 내 딸과 우연히 성과 이름도 똑 같은데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에다 후덕하기로 말하자면 지금 대구 사는 진구 엄마와 진배 없는 분이지만 한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성격이 몹시도 적극적이고 활달하여 가령 그분의 추진력과 박력을 축구공에 비한다면 남편의 율 부린너 박력은 한낱 거시기 땅콩에 불과하다고 그때 누군가 말했지 아매.. 나도 가끔 영근이 하숙방에서 방주인을 웃목으로 밀어내고 따끈한 아랫목에서 달콤한 새벽잠에 젖곤하였는데 갑자기 벼락치듯 밤차 타고온 암행여사(♡)가 출두하여 한자락 웃목은 커녕 아예 마루로 내쳐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구의 대궐같은 공주방을 놔두고 하필이면 왜 좁아터진 행당동 골방에까지 쳐들어와서 주무시길 좋아하셨는지? 그것도 남의 새벽잠마저 빼앗아 자면서... 나의 원망과 눈총은 아예 그분의 새벽 해장거리도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분의 친정은 불교 집안이었으나 결혼 후에 시댁의 기독교에 입문하여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교회를 잘 다니셨던 분인데 남편과 새벽기도 같이 갈 시간에 느닷없이 청와대에서 비상호출이 떨어져 불려가는 불상사를 더는 봐줄 수가 없다 하여 남편을 일언지하에 설득하더니 결국 내 친구가 차실장의 간곡한 만류도 저버리고 끗발 좋았던 경호실을 떠나 한산한 한전으로 직장을 옮기게 만들었고 그후 얼마 안 있어 10. 26 궁정동 사건이 터졌으며 차실장 이하 많은 옛 동료들과 위로는 최고위층 각하께서 한꺼번에 운명하셨으니... 이런 스토리는 이미 우리 동기들이 익히 들어 아는 바이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얼마 후부터 교회를 안 다닌다거나 다니면서도 온갖 허접스런 일에 탐닉 내지는 분주하기만 했던 나같은 세상친구들로부터 남편을 구출하고 격리해야겠다는 제수씨의 의지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우리 친구들 모임에 영근이란 이름이 슬슬 눈치를 보게 되었고 마침내 완전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다. 그때 카드라방송의 뉴스에 의하면 허집사가 장로가 되고부터는 완전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맨날 교회 일에 헌신적이 되었으며 교회내 영적 형제자매들과 돈독한 관계를 엮고 맺느라 허접스런 세상친구들은 더는 만나볼 새가 없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측이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고 보고되었다. 그래서 나도 아예 연락을 포기하고 지냈는데 한참 또 세월이 지나고 어느날 영근이 가족이 모두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버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저 망연자실 멍하니 날아가는 비행기만 쳐다볼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나도 그동안 별 우여곡절을 다 겪은 후에 현재 영근이보다 더 멀리 떨어진 후진 나라에 와서 산지도 10년이 넘었고 작년 이맘때쯤에야 뉴질랜드로 이민갔던 영근이가 결국 신학박사 과정을 끝내고 목사가 되어 현지인 목회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그만하면 나름대로 꽤 성공했구나 싶어 축하도 해줄 겸 전화통화라도 한번 시도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에 근 20년 만에 드디어 영근이로부터 먼저 전화가 걸려온 것이 희한한 일이었다. 나와 같이 한때 영근이의 허접스런 세상친구로 분류되었던 아무개 대구시장을 취임축하겸 격려인사차 방문했다가 내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나 뭐나... "야! 니는 동기 홈피에 생전 안 들어가 보냐?" 고 했더니 아직 인터넷 같은 거 할 줄 모른다고... 도대체 뉴질랜드가 과테말라보다 얼마나 더 후진국이길래... 그러고 보니 역시 뉴질랜드 살다가 요상하게도 혼자 슬그머니 한국에 들어와 김해 촌구석에서 박스포장공장을 경영하는 서원이도 여태 컴맹이라 카드구만. 서원이가 오랫만에 나한테 전화를 했길래 어쩌다 시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태양을 먹고 별을 토하는 바위..." 어쩌구 하는 멋진 시를 몇 편 써놓았는데 "이 나이에 가리늦게 문단에 등단하기도 영 쑥스럽고 그냥 경고홈피 글마당에 올리고 싶어도 컴맹이라 못한다." 고 한탄하면서 "우짜면 좋노?" 그러길래 "야! 니는 비서 아가씨도 없냐? 홈피주소 갈쳐줄테니 받아 적어라!" 하고보니 이 또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나도 작년 이맘때는 겨우 유딩에 불과 했고 지금도 초딩 수준이거늘 저나 나나 다 도토리 키재기가 아닌가? 우리 친구들 컴퓨터 실력들이 다들 왜 이 모양인고? 진짜 경고 나온 거 맞나? 어쨋든 영근이와 그때 목소리로나마 반갑게 해후하였고 내가 소현이 결혼식 참석차 한국에 가야하니 그때 보자고 했더니 자기는 또 현지교회 선교일정 때문에 곧 뉴질랜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억수다발로 안타까워 하였다. 그래서 당시 한국에 미리 들어가 있던 우리 집사람과 소현이만 영근이 식구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제수씨는 소현이를 보자마자 어쩌면 아빠와 그리도 똑같이 생겼느냐고 감탄하였고 우리 집사람은 윤희가 제 아빠를 너무도 쏙 빼닮았다고 탄복을 하였다니 과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해야될지... 사람은 가도 작품은 남는다고 해야될지...
오늘 아침 동기홈피 게시판에서 영근이의 뇌종양 수술소식을 접하고 그쪽 밤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가 몇시간 전 병원으로 전화를 했더니 윤희가 받았다가 아빠를 바꿔주는데 필경 다 죽어가는 목소리일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영근이가 너무도 밝고 명랑한 어투의 큰 목소리로 "야! 문송아! 나 이제 정말 살아난 것 같다." 라고 말해주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제수씨도 전화를 바로 바꾸어 달래더니 "이제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조만간 꼭 한번 만납시다." 그러다가 우리 식구도 아예 다 뉴질랜드로 이사와서 함께 살자고 권유하였다. 나는 돈이 없어서 거기서는 못 산다고 말했더니 자기 집이 워낙 크고 널찍해서 몇 식구 함께 살아도 전혀 불편하지도 않을 거라고 하면서 단지 뱅기값만 있으면 식구들 데리고 마 퍼뜩 오이소 그러시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린데 싶었더니 얼마 전에 내가 러시아에 살다가 쭈글쭈글한 노인이 되어버린 지욱이한테 그대로 했던 말이 아니던가? 우째됐든 다 고마운 말씀(그냥 덕담이든 뭐든...)이라고 여기고... 동기 여러분! 이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그래도 아직도 병상에 누워있는 영근이가 더욱 힘을 낼 수 있도록 위로의 전화 한통씩 부탁드립니다. 하루속히 툭툭 털고 일어나서 친구들과 삼겹살에 쐬주나 한잔~♪♪ 영근이의 빠른 쾌유를 다 함께 기원하면서...
봉영
허영근이 율 부린너면 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동기도 있을 듯... ♪
2011년 국제의학회의 참석차 뉴질랜드에 갔던 (고)박기현 전 아주대
의료원장(경고 51회)의 방문을 받고 기뻐하는 허영근 부부의 모습.
이 글은 2007년 7월과 20015년 5월에 쓴 글을 하나로 모은 것입니다
[나도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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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허영근
2026-07-14
봉영(峰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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