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한가로이 귀뚜라미 소리를 벗삼아 잘 먹지도 못하는 술 석 잔을 혼자서 마셨더니 괜스리 그대 생각에 나는 또 날 샜구려 나의 취중진담을 그냥 농담으로만 들어주오
우선 그대에게 천천히 노래 한 곡부터 불러드리겠소 그대가 그리도 좋아한다는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요
이 노래는 사실 그대도 알다시피 얼마 전에 나에게 보내주었던 아름다운 그대의 그림편지 속에 정다운 사연과 함께 들어 있었소
그전에는 가사를 몰라 부른 적이 없으나 이제 지그시 감정을 잡고 불러보니 노래 속에 초장부터 멋지게 등장하는 그때 기억 속의 10월의 마지막 밤은 그날 밤 상처받은 어느 한 젊은이에게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구려 순수한 그 젊은이의 꿈을 앗아간 안타까운 절망의 밤이었구려
그 젊은이는 아마도 그녀를 그렇게도 진정 좋아했었나 봅니다 그녀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했을때 그는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그녀도 막상 떠날려고 하니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던 것 같소 필시 뚜렷한 이유도 대지 못하고 무슨 핑게도 아닌 것을 터무니없게도 구차한 변명처럼 늘어놓았겠지요
하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답니다 처음에는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을 정도로 그녀를 놀라게 했던 그 이유는 어쩌면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도 모질게 생판 달라질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녀의 좋은 감정이 왜 시간이 갈수록 그렇게 싫은 감정으로 바뀌는지 말이요
어느 날 하루아침에 단 한 순간에 그녀의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지요 어쩌면 더 좋은 감정으로 어우러져서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었으련만 너무도 아쉽고도 애석한 마음에 그녀는 몰래 눈물까지 흘렸다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이제는 한번 돌아선 좋은 감정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으니 말이요 그 누구도 과거의 감정에 더 이상 얽매여 살 필요는 없겠지요 누구든 그리 현명하지는 않더라도 어리석은 집착만은 버려야 겠지요 그녀 자신을 위해서도 그 젊은이를 위해서도
감정은 결코 설명될 수는 없어도 그렇다고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한때는 너무 소중했던 사람이었기에 다만 그냥 싫다는 이유를 대기는 싫었겠지요
말도 안되는 횡설수설을 늘어놓으며 너무도 뜻 모를 이야기만 잔뜩 남긴 채 쓸쓸한 표정까지 연극처럼 지으며 그녀는 그렇게 훌쩍 가버렸지요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혼자 남게 된 젊은이는 기가 막혔지요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을까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지요
혹시 그때 그녀가 순간적으로 잘못 생각했다고 후회하지는 않을런지 나에게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도 그녀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을 수도 계속 빗나가기만 한 것은 그 젊은이의 오해와 억측 뿐이었지요
그래도 언젠가는 때가 되면 그녀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그야말로 엄청난 착각 속에 빠졌더라도 그것이 그의 희망으로 남아있는 한 그는 외롭지가 않았어요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그것도 한낱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자기는 멀어진 그녀에게서 영원히 잊혀진 존재라는 슬픈 사실을 그는 이제야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 훨씬 심각했지요 그는 그녀를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으니 그녀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죽어도 그녀를 잊을 수가 없다니 그것을 도대체 누가 말리겠소
해마다 돌아오는 10월이 되면 10월의 마지막 밤에 그는 목놓아 슬프게 울면서 그녀의 이름을 아직도 부르고 있으니 어떤사람이 그를 위하여 노래 한곡을 지어주며 그를 위로하였다고 하더이다
그런데 그 노래가 많은 여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많은 남자들의 애창곡이 되었으니 십중팔구 그 사람들도 다 그와 같은 쓰라린 경험들을 젊은 날 한 번쯤은 하였다고 여겨지오
친구여 ! 그대의 사랑하는 친구도 부끄럽지만 예외는 아니었다오 어쩌면 그 노래속의 젊은이가 바로 자기가 아니었는지 참으로 신기하게 여겼을 따름이었다오
친구여 ! 그대는 물론 또 다른 10월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요 그때 10월의 마지막 밤에 되새겼던 잊혀진 계절의 또 다른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그때 진정 잊고 싶었던 것이 바로 10월이란 단어였다는 사실을
그때 세상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요 누구든 제 정신이었던 사람들은 세상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그대의 사랑하는 친구도 세상을 향해 소리쳤어요 오냐 ! 너거들끼리 워카신고 천년만년 영화를 누리면서 잘 묵고 잘 살아라! 그리고 다시는 워카만은 평생 신지 않겠다고 결심했답니다
워카에 젊은 피는 식어버렸고 워카에 이상의 꽃은 시들어버렸지요 너무도 암담했던 그 시절에 그대는 차라리 세상을 잊었지요
1976년 10월 31일 또 다른 10월의 마지막 날 이날은 그대의 결혼식이 있었지요 주례를 보신 의분의 노교수는 오늘은 10월이 꼬리를 감추는 날이라고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지요 오죽하면 그 교수님도 그때의 10월이 개가 꼬리를 감추고 도망가듯이 그렇게 끝나주기를 바라셨을까요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난 뒤 그해 10월도 거의 끝나갈 무렵에 요란한 총소리는 세상을 놀라게 했지요 사람들도 많이 놀랐지만 개들도 몹시 놀란 눈치였어요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끈질긴 개들이 꼬리를 감추고 도망갈 줄 알았지요 그러나 개들은 오히려 더 사납게 날뛰며 집주인의 다리를 또 물어 뜯었지요 집주인은 이번에도 병원에 실려가서는 다만 개의 용맹무쌍함을 두려워하였지요 아무래도 세상은 개가 지켜야 한다고 어떤때는 개자랑만 하고 어떤때는 개탄만 늘어놓았지요
친구여 ! 이제 나의 술 취한 횡설수설은 여기까지요 하지만 아직 그대의 얘기가 남아 있다오 밖에 나가 찬물로 세수하고 돌아오니 정신이 한결 맑아졌구려 이제부터는 나의 진지한 얘기를 하는 것이니 그대도 오해가 없길 바라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10월의 마지막 밤은 그대는 정녕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겠지요 아마도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그날의 아름다운 기억들과 함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꿈보다 더욱 아름다운 꿈으로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보다 더욱 소중한 추억으로
그대는 이것을 오늘도 그대의 마음속에 간직하오 그대는 이것을 내일도 그대의 가슴속에 새겨두오 그대는 이것을 영원히 그대의 영혼 속에 묻어두오
그녀의 순수한 눈망울 그녀의 수줍은 미소 그녀와의 정다운 대화 그녀와의 사랑의 기쁨 그날 밤의 그 진솔한 약속 그날 밤의 그 아름다운 인연을
아름다운 친구 죽마고우 류 광희의 결혼 30 주년을 축하하며.....
친구여 ! 그대의 사랑하는 부인이자 내 세 조카의 자애로운 어머니시며 그대의 친구이자 또 내 친구이기도 한 친구 이 경우의 누이동생이며 친구 오 중관의 처형이신 이 영숙 여사와 부디 백년해로 하시길 바라며 결혼 100주년 기념식 때 잊지 말고 나를 꼭 초대해주기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