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2월 22일은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冬至날 인데다 묘하게도 음력으로는 11월 29일 그믐날 즉 달(月)이 없는 날이어서 그야말로 "캄캄한 밤"이 되리라 싶어 며칠 전부터 이 날은 서해에 나가 日沒을 보고 그리고 이 밤을 가지고 다시 東海로 달려가 12월 23일 日出—순수 太地曆으로 보면 이 날이 새해의 설날(元旦)이다--을 보리라 마음을 먹고 이리저리 계획을 세웠는데 막상 이 날에는 여러 가지로 心事가 어지러워 결국은 강행을 하지 못하였다.
12월 23일,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의 일이 너무 서운하여 망설이고 망설이다 "다음 기회를 위해서라도 미리 가는 길이라도 알아 나두자" 하여 일단 마음을 달래고 나섰는데 오늘따라 시야가 썩 좋지 못하여 나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다. 목적지는 일단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華城郡 宮坪里" 海邊쪽으로 정해두었는데 이는 일단 여기서 다시 동해로 빠지기도 쉽고 또 언젠가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한 濟扶島에 잠간 들렸다 돌아오는 길 도중에 "華城八景 宮平洛照" 라는 안내표지를 본 기억이 있어서 “아마 경관도 좋으리라…” 하는 기대감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
이윽고 제부도가 얼마 안 남았다는 표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막 고개를 넘어 산길을 내려오는데 우측 옆으로 "唐城"이라는 안내판이 보여 순간적으로 "아직 일몰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여유 있으리라.." 판단하고 급히 차를 돌려세워 "唐城" 좁은 길로 들어섰다.
사실 나는 이 "唐"이라는 글자에 대하여는 오래 전부터 묘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에도 "唐津"이라는 곳이 있지만 일본에서도 대마도 바로 건너편에 "唐津" 이라는 똑같은 지명이 있고 또 이 "唐" 이란 물론 당연히 중국의 "당나라"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외국"이라는 뜻의 형용사로 주로 사용되고 있어서 아마 우리 忠南의 "唐津"도 오랜 옛날에는 외국 특히 중국과의 해상 무역이 성행했던 곳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옛일에 대한 애틋함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이 워낙 낮아(九峰山; 높이 158m) 한두 구비 돌아드니 바로 서쪽 성벽에 맞닥치었는데 여기서 내려보니 몰려오는 잿빛구름 아래 구불구불 들어온 서해가 보이고 다시 한 구비 우측으로 올라서니 벌써 정상부 북쪽 성벽이었다. 이곳에서 다시 무심코 밑을 내려다 보는 순간, "아! 바로 이 산 밑이 옛날 삼국시대 이전부터 중국과의 오랜 해상 무역의 중심지 였구나!"하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그것은 지금은 이 산과 바로 앞에 보이는 산 사이의 평지가 전부 논밭이지만 서쪽 입구 쪽으로는 지금도 빤히 보이는 바다가 그 옛날에는 틀림없이 이 산 밑에까지 물이 들어와 배들이 즐비하게 정박하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예로부터 끊임없이 바다를 막고 막아 논밭을 만들어 온 서해안 간척사의 例를 빌어 소리없이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이곳 산성의 길이가 총 15km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 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를 방증하고 남음이 있으리라... 그 옛날 이런 규모의 산성 공사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이다.
나는 여기서 다시 "唐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잠시 圖上 工夫를 간단히 해보면 이곳 남쪽으로 牙山灣 바다 바로 건너편에는 "唐津","唐津浦","漢津" 등의 지명이 보이고--일본식 발음으로는 신기하게 전부 "가라쯔" 라고 한다. 즉 "무역항" 이라는 뜻이다--또 서쪽으로 약 25km 해상에는 청일전쟁의 신호탄이 울린 "豊島" 가 보이며,삽교호 쪽으로는 고종 황제의 조부인 남연군의 묘소,그리고 청일전쟁 때 陸戰이 벌어진 "素沙벌",그리고 북쪽으로 약 10km에는 대원군이 중국으로 끌려갔던 "馬山浦"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아산만 깊숙이 曲橋川을 따라 白岩里로 들어서면 우리의 聖雄 忠武公을 모신 "현충사"와 "묘소"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여기서 알아 차렸다. 충무공께서 임진왜란 때 이 나라를 구하신 힘이 이 아산만의 출렁이는 바다에서 오랜 옛날부터 조상 대대로 끊임없이 물려받고 갈고 닦아온 “고도로 축적된 바다에 대한 지식”에서 나왔다는 것을... 어찌 늦깍이(32세)로 무과에 급제하고 처음에는 육군에만 종사하셨던 분이 그렇게 해전에 달통하실 수 있었을꼬...? 아산만 특유의 엄청난 간만차(6.1m~9.6m)에서 나오는 거세고 거센 潮流를 이미 능숙하게 다루어온 우리의 지혜를 어찌 왜적들이 당할 수 있었겠느냐? 소년시대부터 이곳 牙山을 익히신 충무공께서는 단 한번의 승리도 적에게 허용하지 않으셨다
아산만을 둘러 싼 이런 역사적 사실은 이 일대가 자고로 우리나라의 해상 교역의 중심지로서 격동의 역사를 겪어온 살아있는 현장임을 말해주고 요즘 이곳에서 중국으로 가는 페리가 다니고 철강 및 자동차 관련 회사들이 몰려와 부단 없이 조업하고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
[나도 한마디]
제목
등록일자
등록자
조회수
唐城憂國
2003-12-28
姜孟勳
597
Copyright ⓒ1998 경북중고제50회동기회 All rights reserved. 연락처 : 010-6210-7016 E-Mail : shinisone@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