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절절하게 온 힘을 다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깨진 항아리를 연못에 던지듯, 온몸을 던져 자신의 목숨을 거부하고 세상의 삶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가?(안중근 같은…..). 한세상을 움직이겠다는 말이 공허하게, 혹은 코미디처럼 들리는 세상이다. 사나이 대장부라는 말이 왠지 어울리지 않는 세상. 사내란 그저 월급 타고, 가족 부양하고, 착한 아버지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세상이다(그것 역시 보람찬 일이긴 하지만, 왠지 성에 차지 않지 않은가). 이제는 만주 벌판을 달리는 준마와 같은 사내들이 다 사라져버렸다. 일산에 사는 늙은 선배는 한때 말했다. 만주 벌판을 달리는 말은 마구간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늙은 선배도 언제부터인가 술을 먹다가 밤 11시가 되면 마구간으로 서둘러 돌아가는 마구간의 말이 되어버렸다. 이렇듯 세상과 사내들의 삶이 자잘하게 쪼개지고 무너지고 가치 있는 일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바뀌어버려서인지, 우리는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대의를 향해 길을 떠나는 삶 자체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이상 신동아에 실린 원재훈 시인의 글) 사나이의 마음을 들끓게 하는 노래가 있다. Ich hatte einen kameraden…..가사는 독일시인 Ludwig Uhland 가1809년에지었고,1825년 Friedrich Silcher 가 작곡했으며.독일 제 3제국시절 즐겨불리던 노래인데 가락은 웅장하고 동료애를 피끓게 하는 점에서 오리지날 화랑도 정서에 딱 알맞는 노래기에 이하 동영상을 퍼올린다. Ich hatt' einen Kameraden,Einen bessern findst du nicht.Die Trommel schlug zum Streite,Er ging an meiner Seite|: In gleichem Schritt und Tritt. :|Eine Kugel kam geflogen:Gilt's mir oder gilt sie dir?Sie hat ihn weggerissen,Er liegt zu meinen Füßen|: Als wär's ein Stück von mir :|Will mir die Hand noch reichen,Derweil ich eben lad'."Kann dir die Hand nicht geben,Bleib du im ew'gen Leben|: Mein guter Kamerad!" :| In English I once had a comrade,you won't find a better one.The drum was rolling for battle,he was marching at my side|: in the same pace and stride. :|A bullet flew towards usfor him or meant for me?It did tear him away,he lies beneath my feet|: like it was a piece of me. :|´want to reach his hand to me,while I reload my gun."Can't give you my hand for now,you rest in eternal life|: My good comrade!" :|
이 노래를 부르며 침공한 독일군에 맞서 싸운 러시아군인(정확히는 쏘비에트러시아군)을 위한 노래에는 우리도 잘 아는 모래시계의 주제가 “백학”이 있다. 쏘련은 전승국이면서도 군민 사망자가 2000 만에 달할 정도로 연합국 중 인명 피해가 제일 컸다. 서부 전선으로 출발하는 “벨라루스키 역”은 그래서 죽으러가는 아들을 울음으로 보내는 러시아 어머니들의 가슴에 피멍을 만드는 열차역이었다. “백학”이란 노래도 그래서 우렁찬 군가라기보다는 애절한 감상이 든다.이하에서 가사와 노래를 소개한다. 희생된 소련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서, 다케스탄 출신의 소련(러시아) 계관시인인 라술 감자토프 (Rasul Gamzatov)가 지은 시에 얀 프렌켈 (Yan Frenkel)이 작곡하여 러시아의 국민 가수인 이오시프 코브죤 (Iosif Kobzon)이 부른 노래이다.
음... 음.. 음... 가끔씩 나는 그들을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잠들은 병사들이 잠시 고향 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하얀 백학으로 변해버렸다네 그들이 저 아득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날아다니며 우리 모두에게 슬픈 노래 들려주고 있네 하늘 바라보며 말을 잃어야 하는지? 음... 음... 음... 날아 가네 지친 학의 무리들 날아 가네 저무는 안개 속을 무리 지은 대오의 조그만 틈 새 저 자리가 혹시 내 자린 아닐까 때가 오면 저 백학 무리와 함께 나도 저 회청색 안개 속으로 흘러가리 지상에 두고 온 당신들 이름 하늘 아래 새처럼 목 놓아 부르며 음... 음... 음... 가끔씩 나는 그들을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잠들은 병사들이 잠시 고향 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하얀 백학으로 변해버렸다네 음.. 음... 음...
최근 어느 책을 보니 스탈린과 히틀러는 절대적 독재자이면서 전자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알아 쥬코프 원수에게 전쟁을 일임해서 이겼고, 히틀러는 자기가 모든 걸-전쟁까지도- 다 안다고 나서다가 졌다는 얘긴데…일리가 있지만 사실은 독소개전 초기, 러시아국민들은 독일군이 진입해 와 “이제부터 가게도 스스로 가질 수 있다.” “농사도 자영으로 할 수 있다” 식으로 공산치하에서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 인민들이 모두 독일군을 환영했다. 그런데 얼마후 이 환상은 “Deutche uber alles” 라며 게르만을 특등민족, 슬라브족을 3류민족으로 취급하자 모두 독일에 등을 돌리고 Partizan이 되어 곳곳에서 싸우는 바람에 독일의 주요 패인이 되었다. 히틀러가 “인민은 물이요, 군은 고기다”라고 말한 모택동보다는 한 수 아래인듯… 스탈린은 독재자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무섭게 실천한 사람이다. 큰 아들은 공군으로 독일과 공중전에서 사망했고 둘째아들은 육군으로 독일군에 포로가 되었다. 독일군은 정식으로 사람을 보내어 그 아들(계급이 중위 정도였다)과 독일 야전군 사령관으로 러시아에 포로가 된 장군과 바꾸자고 제의 했다. 스탈린은 “ 소대장과 장군을 맞바꾸는 것은 원칙에 안 맞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독일군은 스탈린의 아들을 총살형에 처했다.
[나도 한마디]
이원근
지욱이가 유도 얘기 하니 함께 땀흘리며 뒹굴던 그 시절이 그립구나. 박선생님은 엄격한 유도사범이자 공포의 영문법교사셨지. 그 덕에 우린 유도는 물론 영어공부도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었지. 박선생님의 유도후 정신교육, 영문법시간의 전광석화의 기사떼기 세례 등 옛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구나. 지욱아, 보고 싶다.
지욱아, 잘 지내고 있나? 이렇게 장문의 글과 동영상을 올리는 걸 보니 여전히 건강하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구나. 왜 그렇게 멀리 러시아에서 터를 잡고 이렇게 지욱이를 한번 보는 걸 어렵게 만드는지? 하여간 하는 일 번성하고 늘 건강하길 기원한다. 좋은 글도 계속 올려주길 바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