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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동초
이름   봉영(峰瑩) 등록일   2009-08-24 오후 2: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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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이 나라 국가발전과 민주화를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분이며 그가 이룩한 빛나는 업적은

길이길이 후대에 칭송되어 마땅합니다.









남정씨에게











그리움



고진숙 詩, 조두남 曲






기약없이 떠나가신 그대를 그리며

먼산위에 흰 구름만 말없이 바라본다



아~~ 돌아 오라 아~~ 못오시나

오늘도 해는 서산에 걸려 노을만 붉게 타네





귀뚜라미 우는 밤에 언덕에 오르면

초생달도 구름속에 얼굴을 가리운다



아~~ 돌아 오라 아~~ 못오시나

이밤도 나는 그대를 찾아 어둔길 달려가네











    남정씨! 안녕~ ♪ 그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상을 당하여 온 국민과 함께
    애도하느라 이 노래의 가사를 진작에 올리지 못한 점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다행히 어떤 친절한 아저씨가 고맙게도 댓글로 올려놓은 것을 보았습니다만...
    어디까지나 "가사도 올려주시와요~♪♬"라는 애교 넘치는 남정씨의 교지는
    누가 봐도 본인에게 하명한 것이 문맥상 너무도 자명한 사실로 인정되기에...
    암튼 문제는 이 노래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선구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주옥 같은 명곡을 작곡한 조두남 선생이 최근 친일 애국지사로 밝혀졌는데...
    그에 관한 간략한 이력과 문제점들을 참조하시고 앞으로도 계속 그 곡들을
    애창 내지는 애청을 해도 되겠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조두남(趙斗南: 1912- 1984 ) 선생은 평양 태생으로 6세 때부터 작곡공부를
    시작하여 11세 때 가곡 <옛 이야기>를 작곡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답니다.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한 뒤 만주 용정 등지에서 이름난 음악가로 활동하다가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서울로 이주했으나 6.25 전쟁이 터지자 마산으로 가서
    정착하였습니다. 선생은 작곡가겸 피아노 교육가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고
    예총마산 초대지부장, 경남문화상 심사위원, 한국음악협회 고문 등을 지내며
    한국 음악계의 원로로서 지역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합니다.
    선생은 서정적이며 우리 민족 고유의 장단이 어우러진 민족주의적인 노래를
    많이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표작으로는 가곡 <선구자>, <그리움>,
    <제비>, <접동새>, <뱃노래>, <산>, <산촌> , 오페레타 <에밀레종> ,
    피아노곡 <환상무곡> 등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 근대음악계의 거목으로서 후학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지만
    근자에 이르러 그의 과거 일제강점기 때의 친일행적과 관련하여 불미스런
    논란에 자주 휩싸이게 된 바, 최근 모든 진상이 명명백백히 드러나고부터
    마산의 '조두남 기념관'이 '마산 음악관'으로 개칭되는 수모를 당했으니..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 한성대 총장)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조두남이 과거 일제에 협력하여 만주일대의
    대표적인 친일문인 윤해영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징병제를 찬양하는
    <징병령만세>와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을 낙토로 찬양한 <아리랑만주>를
    작곡했으며 친일가요 <황국의 어머니>를 창작, 발표하는 등 친일행위가
    뚜렷하다고 밝혔으며 이어서 당시 윤해영이 만주국의 군인들을 모집하기
    위하여 만주국을 찬양하며 작사한 <용정의 노래>를 해방 후 일부 가사와
    제목을 바꿔 <선구자>라는 독립군 노래로 둔갑시켰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히야~ 이쯤 되면 조두남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데 앞으로 조두남의 노래를
    불러야 되나? 말아야 되나? ...요거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소만...
    침략군 나폴레옹을 위해 작곡한 베토벤의 영웅교향곡도 따지고 보면...??
    나치 독일의 승전을 찬양하며 수많은 콘서트를 지휘했던 카라얀은 뭐고??
    과연 이런 경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덮어버릴 수는 없겠는지??
    하긴 예술이고 뭐고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먹고 살기 위해서 부득이한
    경우였다면 어쩌겠는가?? 물론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신하고
    침략자에 빌붙은 인사들은 단연코 용서받을 수는 없겠지만...한가지 예로서,
    자신의 애지중지하던 바이올린을 잡혀서 독립선언문을 인쇄하는 자금을
    대었고 일제치하 우리 민족의 가련한 처지와 울분을 표현했다 하여 일제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봉선화>의 작곡가인 홍난파 선생도 1937년에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41년 늑막염(고문 후유증이 아닐는지?)
    으로 44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할 때까지 일제에 협력하는 노선에 가담하여
    많은 친일 애국(물론 당시의 애국은 황국신민으로서의 애국)가요를 작곡,
    지휘를 맡게 되었고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조선음악협회의 평의원으로서
    적극적인 친일행각을 벌인 경력이 있어 결국 친일파의 오명을 뒤집어 쓴들
    어쩔 도리가 없지만 그것이 다 일제의 모진 고문과 강압에 의한 것이라면?
    당시 독립군에 적극 가담하여 무장투쟁을 벌이지 않은 일반 대중들 가운데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지 않은 자가 몇이나 될까요?
    하여..조두남의 경우 <선구자>는 그 죄질이 나빠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보아하니 우리 친구들 아낙들이 미우나 고우나 지금의 낭군한테 시집 오기
    전부터 간직했던 정서로서 희한하게도 여지껏 그토록 사무치게 남아있는
    애틋한 <그리움>이야 애시당초 무슨 죄가 있겠냐...?? 싶네요.(끝)











바리톤 김성길


베이스 이인영


안산 시립 합창단


바이올린 연주곡


















[나도 한마디]
박문송  혼란스럽다 마다...가곡 선구자는 국민 모두가 가장 애창했던 노래였지. 이 노래 부르면서 만주국이나 일본놈을 찬양했던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던 공로를 인정해서 표창은 못할망정...그리고 해방된지 몇년인데...아이고~ 답답하네. 2009-09-02 오후 10:51:00 x

도명(濤鳴)  친구여 ! 이즈음 한국 사회에서는 인물에 대한 당대에 역사적 평가는 물론 기존의 역사를 무조건 뒤집어 버리는 역사 재평가등 역사사적 평가를 서두르다 보니 무척 혼란스럽고 갈등이 많구나. 조두남 선생의 선구자는 나의 애창ㄱ고이기도 한데 ..... 2009-09-01 오후 1:14:00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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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동초 2009-08-24 봉영(峰瑩) 1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