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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구자
이름   봉영(峰瑩) 등록일   2009-09-04 오후 2: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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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 가에 밤새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조두남의 선구자.. 60년간 겨레를 속여 온 親日노래..

    선구자에 얽힌 작곡가 조두남의 대 국민 사기극..


    이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서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로
    시작되는 조두남 作曲 윤해영 作詩의 “선구자”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노래말의 내용이 장엄하기도 하거니와 곡에 나오는
    “말 달리는 선구자”는 바로 만주벌판을 누비던 독립투사를 연상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민주화 시위현장에서 동지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이 노래를 부르면 은근히 콧등이 시큰해 졌던 기억이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곡 선구자가 이렇게 자리매김 되도록 일조한 작곡가 조두남의
    회고록이 완전히 날조된 것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조두남이 말하는 선구자의 진실..


    조두남의 회고록 [그리움]에 의하면 이야기는 19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두남이 목단강의 싸구려 여인숙에 기거하고 있을 때
    윤해영이란 사람이 찾아와서 선구자의 가사를 주며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을 염원하고 민족의 구심점이 될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 하며 가사를 전해 주었다고 기술하였습니다.
    조두남이 그의 이름을 물으니 그는 자신의 이름이 윤해영이란 것을
    밝히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기술하였습니다. 그 날 이후 조두남은
    ‘윤해영의 행방을 여러 차례 수소문 했으나 끝끝내 찾을 수 없었노라’고
    그의 행적을 신비로 포장함으로서 자신의 선구자를 미화하였습니다. .




    조두남의 회고가 거짓임이 드러나다..


    1932년 목단강의 싸구려 여인숙에 홀연히 나타나 조국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 달라며 선구자의 가사를 전해주고 종적을 감춘 신비의 독립시인
    윤해영을 조두남은 다시 만난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의 말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증인이 등장한 것입니다.
    바로 중국 길림성에서는 꽤 알려진 음악가인 김종화씨입니다. 그는 조두남이
    단장으로 있던 고려악극단원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였습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1944년 만주 흑룡강성의 녕안시의 녕안극장에서 있었던 조두남의
    신작 발표회에 윤해영이 나타났을 뿐 아니라, 그날 발표된 곡 들이 선구자의
    원작 이라 할 수 있는 ‘용정의 노래’ 뿐 아니라 윤해영이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목단강의 노래’ ‘산’ ‘아리랑 만주’등의 신곡을 발표하였는데 그날
    발표된 곡 대부분이 윤해영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었다고 증언 하였습니다.
    선구자의 가사를 전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는 ‘윤해영’은 계속해서 조두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이 드러난 것 입니다.




    선구자의 作詞者 윤해영..


    그런데 왜 조두남은 선구자의 작사자인 윤해영을 1932년 여인숙에서 만난
    이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만 했을까요 ?
    바로 윤해영이 당시 만주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일제를 찬양하고 옹호하는
    작품활동을 하던 친일시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일제가 만주침략을
    노골화 하고 있을 때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소극적으로 일제를 옹호하던
    다른 문인들과 달리 그는 적극적이고도 열성적으로 일제를 찬양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만주 최대의 친일단체인 ‘오족협화회’의 간부로 활약하면서 ‘만주
    괴뢰정부’를 찬양하는 [낙토만주]를 공공연히 외친 유일한 문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두남 자신도 ‘스파이와 오드르’ 라는 악극을 작곡하였는데
    그 내용이 스파이가 설치니 일본인들은 조심하라는 친일 악극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두남은 자신의 친일행적을 은폐하기 위하여 윤해영과의
    관계를 숨길 수밖에 없었고 한 술 더 떠서 해방 이후 자신과 윤해영의
    행적을 미화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가곡 선구자 무엇이 문제인가 ?


    가곡 선구자는 원곡이라고 할 수 있는 "용정의 노래"에서 비롯됩니다.
    원래 "용정의 노래"는 만주를 떠도는 유랑민의 애환을 표현한 서정적인
    노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광야에서 말 달리는 선구자 같은 내용으로 개작하면서
    오늘날의 선구자가 되었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 [선구자]라는 말이 독립투사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윤해영이 만주괴뢰국을 찬양한
    [락토만주]란 시에는 [선구자]란 말이 등장하고 당시 선구자가 어떤 의미로
    쓰여지던 단어였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오색기 너울너울 락토만주 꿈꾼다.
    백방의 전사들이 너도 나도 모였네
    우리는 이 나라의 복을 받은 백성들
    희망이 넘치누나 넓은 땅에 살으리

    (중략) ...

    끝 없는 지평선에 오곡금파 금실렁
    노래가 들리 누나 아리랑도 흥겨워
    우리는 이 나라에 터를 닦는 [선구자]
    한 천년 세월 후에 천야만야 빛나리

    이 낙토만주에서 [선구자] 란 말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선구자란
    독립운동을 하는 선구자가 아니라 만주국의 건국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선구자라 지칭한 것이며 당시 만주에서는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선구자가 아닌 [산사람]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오족이란 일본. 조선. 만주. 몽골. 한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윤해영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일제의 나팔수였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곡 [선구자]를 부르며 콧등이 시큰해야 할 이유가 없었으며
    광야에서 말달리던 선구자를 동경해야 할 이유는 더 더욱 없었던 것입니다.

    일찍이 문익환 목사님은 조두남의 선구자가 이러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평생 [선구자]를 부르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도 ‘일송정
    푸른 솔에 말달리는 선구자..’로 우리의 가슴을 비장하게까지 했던 이 노래가
    지난 60년간이나 이 나라의 백성들을 속여 온 조두남에 의해 날조된 거짓
    노래임을 인식하고 다시는 이 노래를 부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얼마나 많은 다른 친일 매국노들이 자신들의 친일 반민족
    행적을 은폐하기 위하여 애국자의 껍질을 뒤집어썼을까?” 하는 의문에
    다시 한 번 가슴이 갑갑해 집니다.

    * 이 글은 Daum 블로그 <한토마 논객 "라이의 사랑방">에서 옮겨옴.







    나는 위의 글을 읽어본 후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가곡 선구자를 다시는 불러서는
    안 되는가? 하고 고민했으나 친구 도명의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나의 모습이고
    또한 우리 친구 동기들도 거진 다 마찬가지로 황당하지 않겠는가 싶어 이 문제를
    다시 한번 나름대로 심사숙고하며 이모저모 따져보니...

    해방된지 65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과거의 뼈아프고 슬픈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친일파를 색출하고 응징해야 마땅하다는 발상에는 일면 순수하고 긍정적인 면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세계화를 지향하는 고성장 산업화시대에 즈음하여
    세계굴지의 경제대국들과 맞서 국가의 사활이 걸린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조국현실로서는 분명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고 국민 총화단결을 저해하고
    국론을 분열시켜서 사회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조장할 우려가 많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바...

    우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어도 반드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관에 의한 재판상의 형벌로써 죄를 묻는 것이지 마구잡이 마녀사냥하듯이
    개인의 변호권을 박탈한 채 인신공격과 여론재판을 통하여 특정인의 과거행적에
    어떤 혐의사실만으로 부당한 판정및 불이익처분을 한다거나 사회로부터 왕따를
    시킨다는 방법부터가 잘못된 일이 아닐는지?
    아버지를 반동분자로 고발하여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는 북한 공산당 교육을 받은
    자식들이 있다는데 그놈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는가?

    일제치하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일신의 안녕과 목숨마저 던지고 분연히 일어선
    독립투사들의 빛나는 업적을 우리는 영원히 칭송해야 마땅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일반 대중들은 속 마음이야 어떻든 겉으로야 다 일제의 협력자들처럼 보였겠지...
    친일...?? 서슬퍼런 왜놈들의 총칼 앞에 누구는 더 하고 누구는 덜 하고... 경중을
    따져서 벌을 줘야 한다면 벌 주는 사람들은 그 시대에 과연 살아봤기나 했는가?

    사람의 존엄성은 곧 하늘과 같으며 각자의 마음 즉 내면세계는 우주와 같다.
    누가 감히 개인의 속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서 그의 사상을 검증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예술가의 정신세계에서 비롯된 예술작품들의 진정성은 오로지 예술적
    기준과 가치에 의해서만 평가받을 뿐 예술가의 현실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는데...
    예술가의 사회활동과 예술작품을 하나로 몽땅떨이식 평가는 더욱 말이 안된다.
    개인적으로 어쩔 수 없는 극한상황에서 변절자가 되고 만 예술가들의 응어리진
    회한과 눈물이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승화될 가능성을 누가 배제한단 말인가?
    나는 일제시대 그 암울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지배자로 우쭐대며
    군림했던 일본놈 쪽바리들보다 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여 조선인들의 영민성과
    기개를 드높였던 수많은 예술가, 문인, 학자, 체육인, 교육자 및 장사꾼들의
    숨은 업적도 결코 후손들이 부정적인 시각만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바...
    그들 인재들이 없었다면 해방 후 이 나라가 제대로 건국이나 했겠으며 6.25 때
    김일성 공산당에 끝까지 맞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탱이나 했겠는가?

    따라서 앞으로 어떤 특정인의 행적과 관련된 평가는 반드시 그가 속한 직업에 따라
    전문적인 소양과 식견을 가진 집단에 의해서 즉 문인,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가들에
    대한 평가는 문화예술인들이, 체육인은 체육인들이, 교육자는 교육자들이.. 하지만
    정치가만은 오로지 국민들이..(맨날 엉뚱한 분란을 일으키는 분들이라)..처럼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괜히 자기 분수도 모르고 남이 카드라 하는 선동에만 현혹되어
    함부로 인신공격에 나서서 멀쩡한 사람 바보로 만드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친일파를 열심히 찾아내어 비판하는 부정적인 사고보다 독립군의 가족들과
    후손들이 어찌 사는지 들다보고 격려해주는 긍정적인 사고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또한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므로 모든 개인의 사회적 활동과 외부적인 의사표현은
    국민의 뜻에 따라 합의되고 제정된 법률로써 정한 범위 안에서 시행함이 마땅하니
    나는 앞으로 가곡 '선구자' 외에도 '봉선화' '가고파' '고향의 봄' '희망의 나라로'
    '애국가' 등등... 친일파로 분류된 인사들의 노래들을 불러서는 안 된다는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계속 이 노래들을 애창 내지는 애청할 생각임을 밝혀 둔다.

    봉영













아래 사진은 안익태 선생을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증거물로 제출한 것으로

1942년 독일 베를린에서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일장기를 걸고 만주국을 찬양하는 '만주국'이란 곡을 지휘하는 안익태 선생의 모습.













어이구야~ 베를린 필하모니 교향악단을 지휘하시다니..일본놈들이 멸시하던 조센징이

세계무대에 혜성같이 나타나 이름을 올리고 유럽전역을 순회하며 지휘자로 명성을 떨친

안익태 선생이야말로 세계에 한국인의 긍지를 드높였던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던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니 교향악단을 이끌고 한국환상곡을 지휘하는 안익태 선생...

이 장엄한 곡 후반에 나오는 애국가를 듣고도 감동은 커녕 배가 아픈 인사들이야말로

골수 친일파 혹은 대한민국을 해꼬지하고 싶은 공산당 무리라고 보면 틀림없을 듯...





서양음악의 자존심 악성 베토벤이 섰던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 교향악단의 지휘대...

안익태 선생을 친일파라고 모독하는 인간들은 저기 맨 뒷줄에라도 앉을 수 있을려나?

맨날 입으로만 애국을 부르짖고 사회분란만 조성하는 정치건달들이 무슨 낯짝으로...??





안익태 선생이 스페인 귀족의 딸과 결혼했다고 친서반아파로 매도하는 인간은 없나?





故 안익태 선생 부인 로리타 안(왼쪽 세번째)과 딸 레노아 안(왼쪽 끝), 외손자 미겔 안

(왼쪽 두번째) 등 유족들이 서울 문화관광부에서 애국가 저작권을 양도하는 기증서를

정동채 장관에게 전달하였다. 이로써 애국가의 저작권은 정부에 귀속됐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이를 악물고 세계신기록으로 골인하는 손기정 선수..

그가 시상식때 가슴에 일장기를 달았다고 친일파라는 얼빠진 인간들도 있다 하니...





시상대에 오른 1위 손기정 3위 남승룡.. (2위는 영국인) 두 선수의 슬픈 표정...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의 표정을 읽지 못하는 인간들이 친일파 운운하다니..









동아일보 일장기 말살사건...친일파 인촌 김성수 선생도 할 말이 많으실 듯..
.
동아일보가 밉다고 이런 역사적 사진에서 동아일보 글자를 지워버린 양심은 또 뭔지?







선구자




윤해영 作詩, 조두남 作曲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 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 가에 밤새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선생은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나 28세를 일기로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불과 6개월 남겨놓고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할때까지

청정한 마음으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으며 그의 주옥같은 삶을 투영한

참으로 아름다운 시(詩)를 남겼습니다.






    1948년 윤동주의 유작 31편이 실린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되었다.

    1968년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유작 '서시'가 새겨진‘윤동주 시비(詩碑)’가 건립되었다.

    1976년 유족들이 보관했던 시 116편을 추가하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3판이 간행되었다.

    1992년 일본 도시샤대학에 친필 '서시'와 일본어 번역본이 새겨진 시비(詩碑)가 건립되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선정하였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그의 작품은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색과 식민지시대 억압받는 지식인의 고뇌와

    진실한 자기성찰의 의식이 잘 담겨져 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나도 한마디]
test  test 2026-08-08 오전 3:16:00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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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  * 2026-08-08 오전 3:16:00 x

test  test' 2026-08-08 오전 3:16:00 x

test  test 2026-08-08 오전 3:16:00 x

봉영  선생님께서 두눈이 다 오른눈 같았으면 조두남처럼 살았겠고 왼눈 같았으면 히로히도가 일찍 죽었겠지요.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고문을 받다 순국하신 선생님의 눈빛은 우리들 마음에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고 있습니다. 2009-09-09 오전 2:16:00 x

김남정  윤동주 선생님은 화면에 손으로 가려가며 보니 , 왼눈은 무섭고 오른눈은 착하고 바르고 총명하시네 2009-09-07 오후 9:16:00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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