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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이등진 EXODUS,유랑군단,청산리
이름   이지욱 등록일   2009-11-26 오후 4:25:00
e-mail   leejiuk@online.ru
내용
1.엑소더스

스위스 한 구두 수선공 집의 다락방에 하숙, 도서관에만 오가며 그 누구의 주목도 관심도 끌지 못한 한 중년의 사나이가 러시아에 돌아와 그 위력을 과시하던 제정러시아를 뭉개버린1917년 10월 혁명!
한 사나이가 지구를 향하여 한 발을 쏘았고, 이제 온 세계가 붉은 혁명의 불길이 자국에 번질까 노심초사 했다.

이에 미국,프랑스,영국을 비롯 자본주의 열강들은 위협을 느껴 아직 성립한지 일천한 소련에 대해서 군사출병을 하게 되며 한때 30만 군에 이르렀다.
특히 일본은 다른나라와의 협약을 무시하고 2개사단 7만3천명의 대군
을 파견하였다. 이들은 국내 반혁명 세력과 연대,1919년 봄에는 러시아 전 국토의 85%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와같은 세계적인 간섭은 COMMUNISM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COMMUNISM은 이제 사람들의 심장에 불을 확 지피는 그리하여 그 흥분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종교가 되어버렸다.
"신을 부정하는 종교" 그것은 종교가 아님에도 그 이상의 열정을 불러 일으켰으며 레닌,트로츠키,몰로토프는 대대적인 선동공세에 나섰다.마침내 인민들은 물불을 안 가리게 되었고 이들의 전투력에 연합세력은 패퇴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과 미국 등은 사태를 파악하고 신속 철수해 버렸으나 일본은 시
베리아라는 광대한 땅 덩어리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군대를 증파했다.
(다음은 열국간섭과 짜르황정복고주의자들을 쳐부수자는 당시 선전영화)


다음은 당시를 묘사한 도큐멘터리 (시리즈 3/4)



한편 공산주의,그리고 유물론에 반대하는 러시아내의 반혁명세력은 옴스크에 집결하였는데 이는 해군제독 출신 알렉산드르 콜챡크가 영국의 지원 하에 독립정부를 세웠기 때문이다.

(콜챡크의 사진-영화 Admiral에 그의 스토리가 일부 소개 되었다)

이 반혁명 세력은 한때 볼가강까지 세력을 확정하는 등 기세를 떨쳤으나 노도처럼 밀려오는 붉은 군대에 밀리고 밀려 마침내 옴스크에서 도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1월 중순에 떠난 그 무리는 자그마치 125만명! 그 중 3분의 2는 부녀자,아이들을 포함한 민간인들이었다.
조조의 대군을 피해 유비를 따라 형주로 장판교로 줄줄이 피난하는 행열, 아니면 대장정이라 일컫는 모택동의 도주 행열에 비견할 수 있으나 그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고 더 비극적이었다.
그들의 행열의 목적지는 머나먼 동쪽 15000 km 떨어진 블라디보스톡이었다.
한 겨울의 이곳 기온은 평균 영하 20도 최저 49도 이다. 이 혹한을 굶주린 아이들,4000 명의 수도승을 포함한 125만의 무리가 걸어서 걸어서 동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오로지 신만을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던 추위는 며칠 후 영하 60도 까지 내려갔다. 그리고는 오르지 않았다.
시베리아에서도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강 추위였다.

이 정도 기온에서는 여러가지 기현상이 이러난다.
약한 바람이 불어도 사람이 토한 김이 얼음가루로 변해서 날아
가고 또 그런 곳에서 구보라도 할라치면 토한 입김이 서리가되
얼굴 전체를 덮기 때문에 호흡을 할수 없게 된다. 고무는 얇은 유리
같이 부스러져 버린다.
눈물을 흘리면 눈물이 그대로 얼어붙어 눈물을 더 흘리면 눈을 얼음렌즈로 덮어버린다.
새들은 나는 즉시 날개쭉지가 얼어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진다.
새들이든 사람이든 오직 둥지만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추위에 특히 강한 몽고말도 움직일 수 없다.
땀이 그대로 얼음이 되어 온 몸을 얼음덩이로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갔다.
"자지 마시오! 애들을 깨우시오!"
목청껏 외치는 선도들의 소리가 쇳소리를 내는 바람결에 들렸지만 그렇게 외치는 사람도 드디어는 천근처럼 덮히는 눈까풀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쓰러지고 그리고 죽음이 따라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가야 했다.
동으로 동으로...... 무의미한 발걸음을 본능적으로 번갈아 떼어놓고 있을
뿐이었다. 걷는 게 아니라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내리는 눈은 하늘과 땅을 뒤덮어 이들 순교자들의 옷에 얼어붙었다.

지옥의 행진 속에 일행의 숫자는 나날이 줄어들었다. 노보 니코라에브스크시 근방에서 하루밤사이에 20만명이 동사했다. 소리도 무덤도 없이.....

2월이 다갈 무렵 중간목적지인 이르크츠크 근방에 이르렀을 떄 처음의 125만명은 25만으로 줄어 있었다. 100만명이 얼어죽었다.
25만명은 그래도 희망을 가졌다. 이르크츠크에 도착하면 따뜻한 물과 빵을 들고 기다리는 그들의 동료, 첵코 병사들이 있으리라.....그리고 거기서부턴 열차로 블라디보스톡까지....
그러나 운명은 이번에도 그들을 등졌다.
그때까지 그들 편이었던 4만 2천명의 체코군들이 돌아서서 붉은군대편에 섰다는 것이었다.(2항에서 별도 기술)
이제 남은 방법은 또다시 도보로 얼어붙은 바이칼호수를 건너 동진하는 것 뿐이었다.
완전히 탈진했지만,그러나 마지막 힘을 쏟아 바이칼호를 횡단하기로 하였다.
길이 636 km, 폭 80 km, 면적 31494 km², 깊이 1637 m로,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민물호수이며,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 그 광할한 호수는 두께 3미터의 얼음으로 덮여있었다.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그러나 이번에도 아니었다.
기온이 다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하 69도로 내려 갔다.
이런 온도하에서는 그 어떤 가죽옷이나 털도 소용이 없다.
호면은 눈을 부시게 하는 윤활제를 바른 거울보다 더 매끄럽고 반들거렸다. 그 위를 25만명의 살아있는 망령(亡靈)들이 움직이며 자빠지며 기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한 부인이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그쪽을 바라보자 한 부인이 어린애를 출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나오자마자 어미와 함께 얼어죽었다.
이렇게 하나 둘씩 모두 얼음덩이가 되었다.

25만의 얼어붙은 시체--그들은 몇달동안 거기에 있다가 이듬해 여름이 되어 눈이 녹자 모두, 최대 수심 1600 m의 물속으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니 한 사람의 예외가 있었는데 니콜라이 바이코프라는 군인 대위로 극동까지 탈출하여 만주 백두산 속에서 사냥을 하며 여생을 보냈고 몇권의 책을 남겼는데 백두산호랑이를 주인공으로 한 "위대한 왕"이 유명하다.

2. 유랑의 군단-체코 군단

1차 대전 당시 헝가리-오스크리아 제국군으로 참전했다가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거나 탈영병으로 구성된 4만2천 명의 체코군은 1917년 5월, 석방교섭을 통해 용병 조직으로 재탄생됐다.
체코의 독립이라는 희망을 안고 러시아군과 함께 동부전선에서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혁명 후에 러시아가 전선에서 발을 빼자 연합군과 체코 임시정부는 이들의 송환을 요구했지만, 그들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던 볼셰비키 정부는 서부지역의 불안한 상황을 우려해, 기막힌 꾀를내어 이들을 시베리아 끝 블라디보스톡으로 보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가도록 하는 방안을 세웠다. 그리하여 시베리아 철도편으로 동진을 시작한 그들은 1918년 5월, 첼랴빈스키에서 사건에 휘말린다. 협약에 의해 송환되는 헝가리군 포로들과 대규모 충돌이 일어난 것. 시당국이 사태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이들은 무장해제를 시도한 불셰비키군을 물리치고 마침내 바이칼 지역 최대도시인 이르쿠츠크까지 점령했다.
러시아 내륙 깊숙한 곳에서 뜻하지 않게 곤란에 처한 이들을 구하기 위해 연합군 측은 콜차크의 백군과 체코군단을 연계시켰고, 미국은 5만 정의 모신-나강소총을 블라디보스톡으로 보냈다. 일본군이 블라디보스톡에 상륙한 것도 이런 상황의 일환이었다. 콜차크에게 체코군은 주축병력이 되었지만 기실 체코군의 제일 목적은 타국의 내전을 위한 외인부대 역할이 아니라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전투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고 시베리아 철도를 장악하면서 동진을 계속했다


(영화 ADMIRAL속에서 고립된 콜차크를 구하기 위해 이르쿠츠크로 진격하는 체코군단의 용감한 모습- 볼셰비키군을 맞아 총탄도 다 떨어졌지만, 군악대를 앞세우고 착검 전진하면서 적군을 혼비백산케 하는 장면)

그러나, 콜차크의 옴스크 정부를 지원하던 연합군이 하나둘 손을 떼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백군이 급격히 기울어지자 그들은 콜차크에 반란을 시도하며 이탈했다. 이에 콜차크를 따르던 위의 피난민들은 바이칼호를 횡단하는 모험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콜챠크 수중에 있던 제정러시아의 황금 500 톤은 첵코군을 거쳐
혁명군 측에 넘겨졌으며 대신 블라디보스톡까지의 자유통행권을 얻어냈다. (여기 황금 500 톤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중간에 버려졌다는 설, 바이칼호에 가라앉았다는 설 등. 그러나 일부가 첵코군에 의해 처분되었슴은 확실) 수천 량의 무장 화차군단으로 불어난 이들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세력과 투쟁해 나가면서 마침내 1920년 9월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그리고 일본, 미국을 거쳐 신생 독립국으로 탄생한 고국 체코로 돌아갈 수 있었다. 2년 여에 걸친 2만4천km 대장정의 끝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운명의 장난처럼 이 체코군들은 무장해제 직전
,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항일 독립군과 만나게 된다. 독립군은 이들에게서
소총 1,200정과 기관총 6정, 박격포 2문과 탄약 80만 발 등을 구입했고(아마 싸게 샀으리라), 이 신식무기로 무장한
독립군은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격멸할 수 있었다.
이 최신 무기들이 없었다면 김좌진 장군은 대승을 거두긴 힘들었을 것이다.


(청산리전투그림)

시베리아를 횡단하던 개썰매(개종류를 Syberian Husky라함)



[나도 한마디]
베드로2  수십번 실패 후 결국 구소련 때는 물을 채워 수영장으로 사용. 공산정권 붕괴후 교회를 다시 세우자 아무런 문제없이 건물이 섰다. 2009-12-01 오전 11:54:00 x

베드로  첫번비데오 처럼 혁명후 교회는 모두 허물었다. 이 교회도 허물었으나 그 자리에 다른 건물을 세우려다 실패 2009-12-01 오전 11:51:00 x

박문송  콜차크의 백군이 줄행랑치지 않고 적군에 맞서 죽기 살기로 싸웠더라면 한반도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콜차크가 해군제독이었던 게 유감이다. 2009-11-30 오전 1:05:00 x

LENIN  위 첫번 째 비데오에서 안경쓰고 콧수염 달고 악을 쓰는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영구혁명론"의 "트로츠키"이다 2009-11-28 오후 6:00:00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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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등진 EXODUS,유랑군단,청산리 2009-11-26 이지욱 2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