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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관악산에서의 행복한 하루(5/25/03) 어제 5월 25일은 5월의 네째 일요일이지만 이달 둘째 주 일요일의 전날과 당일에 대구에서 열렸던 “사랑과 우정의 잔치”와 “제31회 경맥제 대구에서의 행사”관계로 연기되어, 동기들 소모임 중에서 현재 가장 많은 동기가 참여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활성화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 모임인 서울 한뫼회의 5월 정기 산행일로서, 내가 혼자서 어느 정도 많이 다닌 편인 관악산에서의 한뫼회 5월 정기 산행이 있은 날이다. 관악산을 내 개인적으로는 별일 없으면 주말마다 찾아갔다 오곤 했은 지가 벌써 수 년째, 그곳 길은 길눈이 밝은 편이 아닌 나라도 비교적 잘 아는 편이라고 말해도 그것이 거짓말이 되지 않는 곳이다. 서울대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동기회 게시판에 공고되어 있는 9시 모임 시간에 맞추어 갈려고 집에서 싸준 도시락과 물을 준비하여 작은 우산을 들고 보슬비 오는 날씨 속에 서둘러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구로 주공아파트에서 150번 버스로 남부순환도로를 타고 신림역에 내려 다시 서울대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서울대 입구의 버스정류장에 9시 10분전에 도착하였으나 아는 얼굴들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장소를 잘못 알았는가 싶어 관악산 입구 매표소 광장에 갔다가, 한참을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다시 원래 약속 장소에 가니 회장 남순대, 이상현 동기부부, 기자 구자호, 전임 총무 이희성이 있었고, 교수 이원근 동기를 합하여 모두 7명이 되었다. 금년 들어 평소의 산행 인구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지만, 산행일자가 늦게 잡힌 점,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 등에 비추어, 그리고 우천 중임에고 불구하고 진정으로 산을 좋아 찾아나선 사람들로 모인 것에 합격점이라고 회장은 자평하고 “럭키쎄븐”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인원으로 장소를 옮기기 시작했다 9시 30분이 되어서야 이제는 이 모임장소에서 떠나도 나중에 오는 친구가 같이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어, 희성이가 당일 하루 임시총무로 하기로 하고, 다시 매표소 입구로 가면서 아침 먹지 못한 친구를 배려하는 회장의 제안에 따라, 순대가 아닌 오뎅 집으로 가서 김밥과 오뎅을 두 그릇 시켰고 그기에 장수 막걸리를 종이 컵에 한잔씩을 걸치니, 약간의 바람이 있고 비가 부슬비가 약하게 뿌리는 날 산행에 나서는 분위기와 합쳐 조금은 들 떤 기분이 들었다. 관악산 입구 광장에는 날씨 탓으로 그렇겠지만 평소의 북적대는 사람수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4월 중순의 연초록 이파리 들이 진초록으로 변해진 5월의 마지막 주에 비까지 내리고, 빗방울이 달린 나무와 풀은 더욱 청초하게 보였고, 바람이 나무를 건드리고 지나가면 우두둑 빗방울이 우박 퍼붓듯 지나갔고 차가움이 살갗에 닿아왔다. 오늘의 산행의 경유지로 일단은 원효, 의상, 윤필 삼 성인이 수도했었다는 삼성산의 삼막사를 지나 가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이 들 7인 중에서는 이곳에서는 아무래도 내가 제일 길을 잘아는 것 같아,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는 갈림길에서는 자연스레 내가 앞장을 서게 되었다. 제2광장을 지난 철쭉동산에서 제1야영장과 삼막사쪽의 국기봉의 사이의 능선길이 아닌 계곡 길을 따라 산행이 시작되었고, 늘상 산에 오면 얘기되는 것의 하나이겠지만, 관악산과 같이 "악"자가 들어가는 산에는 돌이나 바위가 많다는 얘기에서부터, 역시 건강과 관련된 이야기가 단연 얘기사항 중의 하나였다. 친구 중에 아침을 간단히 빵을 먹고 왔다는 한 친구의 말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좋아하여 먹는 빵에는 장기 일이 소요되는 수입된 밀가루에 방부제가 섞여있어 먹어서 득 될 것이 없다는 얘기하며, 그렇게 치면 우리가 안심하고 먹을 음식이 없다는 얘기, 특히 오늘따라 내가 가방에 넣어 몇 개 가져온 것인 오이는 농약을 치지 않으면 수확이 힘들어 농약 투성이로 껍질을 매매 씻어 먹더라도 해결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니고, 심지어 깍아서 먹어도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 그러나 우리 몸의 면역성을 키우기 위해, 역설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적절한 곳에 길안내 표시가 없어, 이정표라는 단어가 퍼뜩 떠오르지 않아, 이제 기억력도 많이 사라져, 예컨대 탈랜트의 이름과 얼굴이 연결이 안되어 부부간의 대화에서도 이름을 내뱉지 못하지만, 서로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먹고 이심전심으로 "으으"라는 말로 통한다는 것, 이제 과거와는 달리 1000분의 1초를 놓치지 않고 순간적으로 감각적으로 가장 적합한 사진 촬영 순간을 놓지 지 말아야 하는 등 기억력, 순발력의 감퇴 문제 등으로 다같이 나이 먹어가면서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들 또래의 문제를 재삼 확인하면서 숨이 가빠지는 소위 깔딱 고개 밑에서는 쉬어서 가면서 얘기 꽃을 피웠다. (이하 2012. 5. 26 복구함) 삼막사로 가는 길목에서 제1야영장과 삼막사 방향의 국기봉으로 가는 고개에는 산채 비빔밥, 선지피 국밥, 막걸리를 사발로 파는 장사들이 몇 군데 진을 치고 있었는데 오늘 따라, 부슬비가 오는 관계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아서 인지, 그 파는 자와 사먹는 자의 시끌 벅적하게 북적대는 자리기 비워있어 허전하였다. 산에 오는 재미 중에는 이런 것도 한몫을 차지하는 것인 데. 삼막사 근처의 국기봉에서 삼막사로 내려가는 밋밋한 쉬운 시멘트 길보다는 삼막사 뒷편으로 올라가는 비탈 길인 뒷길을 택하여 능선으로 올라섰고, 445미터의 삼성산 정상 근처에 있는 삼막사 뒷편의 능선에서 바로 마주 보이는 건너편의 관악산의 629미터(나는 항상 87년 민주화의 629선언을 생각하고 그 높이를 연상 기억한다)의 연주대가 눈앞에 나타나고, 비 내림의 걷힘을 알려주는, 구름 끼인 먼데 하늘의 한구석이 훤하게 뚫리면서 한없는 상쾌감을 안겨주고 마주한 산의 자락과 능선이 산뜻하게 반듯하게 자리잡은 모습은 마음을 안정시켜주었고, 아아... 하고 보는 이의 찬탄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였다. 능선에서는 바람이 비교적 많이 부는 것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구자호 친구의 모자가 바람에 날렸고, 절벽 밑으로 떨어졌으면 어떻게 걷어 올리지 하고 걱정 했던 순간, 곧 그렇지 않아 다행으로 확인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큰 바위가 가까이 있는 곳에서 바람을 피하여 멀리 평촌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넉넉치는 않았지만 우리 7인 자리 잡기에는 그런대로 불만족이 없는 곳에서 자리를 폈다. 그곳에서는 입구에서 구입한 돼지 족발과 김밥, 가져온 콩밥과 약간의 불고기, 된장, 고추장 고추, 상추 등과 막걸리 2병과 소주와 1병, 적었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즐거울 수 있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 하듯이, 항상 우리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던 전문가 수준의 친구가 빠져있어도, 나름대로의 웃음 주는 남순대 회장의 입담이 와 닿았고, 회장 왈 어느 지난날 완만한 고개 길이 있는 언덕에서(장소 이름을 까먹었다),고갯길을 넘어 오던 택시가 마침 중앙선을 침범하여 마주 오던 경찰차와 충돌 직전 끼익 급정거를 하여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기사 양반이 경찰을 끌어내려 폭력을 행사하고, 교통이 마비된 곳에서 내린 구경꾼은 죽여라 죽여라 합창하듯이 응원하고 결국 경찰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는 데, 10년 묶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 모두 후련해 했다는 마치 무용담 같은 이야기며, 씨의 입에서 유래했다는 단어 이야기, 좋은 뜻으로는 씨 보자기에서 유래했다는 단어 등 순수한 우리말 풀이도 우리를 고개 끄떡이게 하였고, 한편 88 올림픽 때인가 혼자서 촬영공간을 독차지 하다시피 하여 다른 기자의 공간이 없어 자리를 양보 받고자 후배 기자들이 아무리 영어로 설득해 보아도 소용 없었던 일을, 미국기자에게 가서 말을 나누고 결국은 우리말로 너 죽고 싶나 하였더니 결국 막무가내이던 기자가 결국 겁을 집어 먹은 후 보따리를 싸고 물러갔으며, 후배들이 그 기자를 물러가게 한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다는 구자호 친구의 얘기도 구수했다. 그리고 이상현 동기의 부인 방여사를 포함한 우리들 모두의 호흡이 대체로 잘 맞았고 구김이 없는 편안한 가족적 모임이었다. 동기회 홈페이지에 올려진 “사변둥이 잔치는 끝났다”는 둘째 줄에서 “홍학이 춤을 추면 멋쩍은 백학도 우쭐대는 한마당 굿판이더라.”는 대구 모교 운동장에서 동기 부인들이 붉은 체육복을 입고 손에 손잡고 빙글빙글 돌던 모습을 홍학이 춤을 추던 것으로 묘사하였다는 얘기를 하면서 시작 동기 및 노트를 들려주던 남순대 회장의 시에서 나는 잔치가 끝난 후에도 아직 남은 흥분, 안타까움, 애잔함, 그리움, 인생, 세월, 우정 등을 잘 압축하여 담은 구도가 잘 잡힌,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변하여 지금도 눈에 선하고, 귀에 쟁쟁거리는 시를 저자가 직접 낭독하고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을 나는 큰 복으로 생각했었다. 약간의 바람이 불고 설렘의 부슬비가 흩날리던 삼성산 정상 바로 아래서, 친구와 같이 점심을 나누는 기회에, 술이 있고 웃음이 있는 가운데 아무 떼나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인 시인 남회장 본인의 직접 낭독은 압권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점심을 마치고 뒤로 가면 망월암으로 가는 길이요, 앞으로는 삼막사를 향하는 길목에서 비에 적어 축축한 오솔길을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여 내려오는 도중, 본 절과 약 200 미터 내지 300미터가 떨어진 곳에 있는 삼막사 소속의 칠성각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석벽에 새긴 3존마애석불상(이름이 정확한지 다음에 확인해야 겠다)이 새겨져 있고 그 석벽을 안고 칠성각이 세워져 있다. 이조 영조 때 1762년 중수라고 했든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기 자호는 삼배의 큰절을 올렸다. 나는 바깥에서 그냥 허리 굽혀 3번 합장만 하였다. 그 10여 미터 앞에는, 귀두 모양의 남근모습의 바위와 사랑의 표시 모양의 여근의 바위2개가 5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서로 떨어져 서 있고, 많은 선남 선녀들이 득남 득녀를 위하여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고 지나 갔으리라 생각된다. 마침 여기를 지나가던 등산객이 여근에 물이 고여있다(빗물이 고였다)고 하면서 자세한 설명을 하여 모두들 한바탕 웃고, 그곳에서 같이 간 전문가 친구가 일행을 위하여 속된 말로 사진을 한판 박아주었다. 거기서부터 삼막사까지는 어떤 시주가 하였는지는 몰라도 200미터 300미터 정도의 길을 화강암 돌로 계단을 만들어 오고 가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어 오고 가는 사람마다 돈이 많이 들어 갔겠다고 그리고 좋은 일을 위해 돈을 가치 있게 썼다고 한마다 씩 하고 지나가곤 했다. 삼막사에 와서는 대웅전 맞은편에 새로이 긴 주춧돌 위에 신축 중이던 건물을 보면서 유식한 회장은 시를 쓰려다 보면 건축 양식에 대하여 좀 알아야 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배흘림 기둥(기둥 양끝이 가늘고 중앙부분이 배뿔 때기처럼 튀어 나왔다)이 착시 현상을 방지하여 멀리서 보면 바르게 직선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고 지붕은 팔자지붕(?) 등 어떻고 저떻고 하여 설명도 하였고, 유고수의 문화 유적 답사기가 생각나는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던가. 이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면서 근처 나무의 수령이 몇 백년 일까 얘기가 나오고 더불어 꽤 수령이 되었을 것으로 얘기되는 용문산의 은행나무 등이 생각나게 하는 나무의 연령으로 한참 이야기했다. 오늘 산행을 이름 지을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인 이 삼막사에서 주방에서 누군가가 시루떡인가 아니면 팥고물이 덮힌 찹살 떡 인가를 몇 조각 얻어와서 부처님께 공양한 것인지는 몰라도 한 쪼각 씩 맛 볼 기회를 가졌다. 비가 오지 않은 일요일에는 12시부터 이곳에서도 국수 내지는 비빔밥을 얻을 먹을 수 있는데, 오늘은 비가 왔는 데다가 2시가 가까워 져 있어서 산행인이 이곳에서 음식을 맛볼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였다. 이제는 오늘의 중요 지점을 통과하였으니 이제 되돌아 가는 길만 남았다. 호암사를 비껴서 금천구 시흥동에 위치한 벽산 아파트를 지나 시흥대료 한양 아파트 근처에 가면 오늘의 최종 종착역이 되는 셈이다. 삼막사에서 되돌아 가는 길은 순탄한 시멘트 길을 택한 후에, 다시 삼막사에서 가까운 곳의 국기봉 근처에서 방향을 틀어 제1야영장이 있는 쪽의 능선 길을 따라 걸었다. 여럿이 가면서 길 실수를 할까 봐 또 다시 물어보고 또 가는 길에 혼자서 가는 아주머니를 보고 친구 중의 한 사람은 우리 때문에 길이 막혀 빠르게 가지 못한다고 길을 비켜주라고 했고, 또 한 친구는 왜 우리 뒤를 따라오느냐고 애교 썩인 시비도 걸면서 계속 웃어댔다. 다행히 흔히 말하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는 호암사 근처의 샛길로 빠져 경인선고속도로로 연결되는 벽산 아파트가 보이는 바로 도로 앞까지 다 내려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문득 입구가 보이지 않아 잠시 당황하였으나, 길은 길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하에 곧 도로로 연결되는 샛길을 발견하여, 인도로 내려섰고 다시 안양 방향의 벽산 아파트 쪽으로 약간 후행하여 경사 가파른 길게 넓게 뻗힌 벽산아파트를 관통하는 대로를 따라 시흥사거리를 향하여 모두 지친 몸을 이끌고 반쯤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 갔다. 아침 10시 경에 시작한 걷기가 점심 먹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지금 4시가 거의 다될 때까지 걸었으니 4시간 반 이상의 걸음에 지침은 당연지사리라.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분명 오늘 즐거운 산행을 더욱 즐겁게 마무리 지을 수순의 하나로서 일정에 넣어진 것일 게다. 우리는 남 회장의 인도 하에 시흥 사거리를 한참 지나서, 남 회장께서 정신적으로 아끼고 보듬는 동반자로 생각되는 그녀와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전통 민속 주점을 찾아 갔다. 이곳은 인사동의 전통 민속 주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 근처에는 호프집은 많으나 전혀 없는 전통 민속 주점을 열게 되었나 보다. 이곳은 5층 건물인 데, 3층에는 민속주점, 5층에는 뮤직댄스 ? 등등 1층에서 5층까지 술집과 음식점, 놀이점이 다 같이 모여 있어 흔히 말하는 원스탑서비스가 가능한 점이 특색이라고 했다. 그녀와 동업지분이 얼마냐고 누군가 웃으면서 물었으나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우리가 찾은 이 주점은 그 상호를 “최진사댁 셋째 따님의 집”(그런 것 같은데 정확한 지 모르겠다)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었고, 대학 시절 유행하여 많은 이들이 즐겨 불렀던 것으로 기억되는 조영남의 히트곡이 생각나 반갑게 상호를 크게 중얼거렸더니 남 회장은 자기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칠복이는 아니라고 했다. 많이 마셔도 다음날 숙취가 없이 깨끗하다는 동동주와 맛있는 파전, 알탕, 묵 등을 시켜 먹으면서 먹거리와 소담으로, 그리고 어릴적 시골의 고향집에서 보던 옛날 집안의 도구 등이 균형있게 배치되어 있어 손님을 편온하게 만드는 분위기 잇는 집에서, 미각이 청각이. 시각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한 친구가 딴 친구의 친구의 약간 나온 배를 지적하면서 배흘림 모양의 기둥에 대해 비유적으로 풀이하였다. 친구 들의 주제는 아무래도 건강에 관한 것이 많아서, 그 중에서도 건강에 모종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보이나 아직 검증되지는 않은 지하수로서 일종의 특수한 신비의 물에 대한 예기, 지하 1만 미터 이하의 고밀도 암반수 이야기, 물의 분자 구조에 대한 얘기나 일주일에 적어도 5시간 이상 유산소 운동이 필요하고 등산은 일주일에 두번 이상이 좋다는 건강 얘기 등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엊그제 같던 “불혹”의 나이를 지난 지가 십 수년, “지천명”의 나이도 두 서너 해 지나갔고 이제 “이순”의 나이를 향하여 열심히 가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마음은, 친구 동기들의 근황과 추억 속의 원황 등을 화제로 삼으면서 아무튼 다 같이 친구가 잘못되어 마음 아파할 때, 친구인 우리도 같이 마음 아파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경우가 없기를, 적게 발생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고, 그리고 각자의 뜻하는 바 목적을 달성하기를 시샘 없이 바라고 있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의 주점에서의 정담이 끝났어도 그것으로는 최종의 마무리가 안되는 가 보다. 교수 이원근 만이 먼저 사정상 빠지고 나머지 6인의 동기들은 근처의 노래방을 향하여 또 나아갔다. 그렇다. 이곳에서는 나훈아의 사랑, 하늘에서 잠자는 운운 조용필의 친구여, 사이먼과 가아펀클의 Hello, darkness my old friend로 시작되는 사운드 오브 사이런스, 개똥벌레, 아름다운 것들 등의 노래 등이 선보이고, 마지막으로 해바라기의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를 끝으로 합창하고 오늘의 한뫼회 5월의 정기 산행의 대단원의 막을 내려졌다. 이상현 부부와 나는 가까운 시흥 전철역으로 갔고, 나는 갈아타기 위해 구로역에서 내리고, 친구 부부는 2호선으로 연결되는 곳 아니면 적당한 곳에서 내려 분당으로 가기 좋은 곳에 내렸으리라. 난 산행을 할 때는 만보기를 차고 다니는데, 오늘 약 근 28,000보가 되었고, 적어도 산행에서 마지막까지 25,000보는 되었으리라. 1보에 60센티미터로 계산해도 대충 15킬로미터 약 사십리를 걸은 셈이다. 내가 집에 들어간 시간은 대충 10시반 내지 열한시가 되었을 것이다. 어제 하루는 좋은 소풍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복한 하루였다. 친구들이여, 반짝이는 눈으로, 건강한 몸으로, 2003. 5.26. 동기 영환이가, 어제 산행과 관련한 생각들이 사라지기 전에 퇴근 후 시간을 잡아 두서 없이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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