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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03 북한산에서의 우리들의 발길과 숨길 들 <한뫼회 제79회 북한산 산행기> 1. 잡소리 누가 이 바쁜 시간에 영양가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닌 이 지루하게 긴 글을 읽겠는가. 정말 단박에 한 눈에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고 들려줄 수 있고 냄새조차 맡을 수 있도록 하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우둔한 생각을 해본다. 안 그래도 이번 산행 중에 예정에도 없이 우리들끼리 회식 도중 자연스레 열린 산중 음악회에서는, 백문이 불여일견으로 피사물을 적절하게 포착하여 동기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어 동기들이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하는 대구의 권창근 동기를 모셔와 이 즐겁고 엔도르핀이 팍팍 솟구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도록 부탁했으면 좋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었다. 그래, 날씨 뿐만 아니라 세상이 점점 추워져 가는 이때, 동기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월요일 아침에 올려진 대구동기들의 경산산악회 회원들과 합동 산행의 사진을 보면서, 어제의 산행을 하면서 느낀 발길과 숨길을 살펴 우리가 살아가는 또 다른 한 면을 주마간산 식으로나마 보여줄 수 있게 된다면 그 또한 시간 낭비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똑똑치 못한 주제에 풍족치 못한 퇴근 후 시간을 내어 어줍잖은 글짓기를 해본다. 바쁜 자를 위하여 소제목도 붙여 그것만 보아도 대충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상상은 할 수 있으리라. 혹자는 이런 글을 왜 글방에 안올리고 번지수가 다른 여기에 올렸느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지난 일요일에 행해진 한뫼회 산행의 보고라면 괜찮을 듯 싶다.. 모두들 서로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잠시 이곳에 들러 영양가 없는 음식도 먹어보자. 어찌 항상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만 먹고 살 수 있겠는가. 그런 것 있으면 내가 먼저 먹지. 친구들은 산행을 통하여 몸이 지치기도 하나 오히려 단련이 됨으로써 곧바로 활력을 되찾고 마음의 재충전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보다 많이 많이 참석하여 건강도 다지고 우의도 나눠가며 더욱 추워지는 세상을 잘 견디며 지낼 수 있는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설이 길어졌다. 각설하고. 2. 천고마비의 계절의 이 아침에 동기들 집결지인 구파발 역을 향해 7시 반을 약간 지나 집을 나서니 모처럼 티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9시 못 미처 찾아온 3호선 구파발역 분수대에서는 산행을 위하여 북적 거리는 사람들을 축하라도 해주려는 듯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뿌려지는 물보라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물보라 사이로 먼저 와서 기다리던 김세일 등이 손짓하여 불렀고 오중관, 유석종이와 함께 그곳으로 다가갔다. 잠시 10여분 동안에 하나 둘씩 모여든 동기들로 서로 인사하고 악수하며 사방을 둘러보아도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몇 주 만에 맞이하는 화창한 휴일의 산행의 좋은 가을 날씨를 모두 반기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청명한 날씨다. 오늘은 잘하면 20명도 모일 수 있겠다는 섣부른 개인적 기대를 걸어 보았으나 동기 16명과 김종곤 동기의 부인이 홍일점으로 참석하여 모두 17명에 그쳤다(참석자 명단은 말미에 있다). 지정된 시간보다 늦게 와서 남을 기다리게 하는 일이 없었던 산 사나이 이희성(우리끼리 중에서는 평균 산행 수가 제일 많은 월 5-6회 산행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짐)의 마지막 도착을 기다려, 박창기 총무가 회비를 거두며 인원수룰 파악함으로써 집결은 끝이 났다. 3. 차 타는 것도 전쟁 /짐짝 버스에서 용을 써 힘을 뺏어도 먼저가서 버스정류장에 줄을 서서 미리 기다리던 선발대 일행과 마지막 팀이 합류하여 오늘 산행의 출발점으로 잡은 밤골 매표소 입구를 경유하는 거의 만원이 된 버스를 올라 탔다. 이산가족이 되지 않도록 무리하게 올라탄 17명의 대식구 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까지 더 이상 태울 수 없을 때까지 버스에 태워지는 것이 신기했다. 짐짝처럼 꾸역 꾸역 실려져 콩나물 시루같이 빽빽한 차 안에서는 몸의 요동이 수월치 않았고 통로가 막혀 하차하기는 정말 죽기 아니면 까무라 치기 식으로 대단한 공격적 밀침이 아니면 도저히 내릴 수 가 없는 지경이었다. 차가 요동쳐 흔들리면 옆 사람의 옆구리나 등을 껴안지 않고는 대책이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해방된 마음으로 잠시 고생이면 행복 시작인 듯이 이러한 풍속도를 약간은 즐기는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로 한 20분 차 안에서 시달린 후 효자비 다음 지역에 하차하였다.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탈진되었다고 말로는 투덜대면서도 전형적 가을 날씨에 반가운 친구들과 삼삼오오 매표소 입구로 향하면서 발걸음은 가벼웠고 즐거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하 2012.5.26 복구) 4. 몸 풀기/입 풀기 동기들로서는 처음인 미답의 좋은 코스를 소개하고 항상 웃음지어 안내하는 구상교와 거의 매번 앞줄보다 몇 발자국 앞서가는 유석종, 이대용이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뒤이어 회장 남순대는 앞서가고 뒷서오는 친구를 중간 쯤에서 대 식구의 이동 속도를 조율하고, 인사동에서 샀다는 손가락 크기의 물고기 형태의 작은 피리를 첫 선보이면서 숲길을 휘리리 휘리리 휘리리 반은 장난으로 반은 신호로 타잔의 아-아-아-를 연상시키면서 가끔 식 분위기를 돋구었다. 일행은 물 흐르는 계곡의 옆길을 따라 숲속을 걸으며, 폭포도 보고 시냇물 인지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는 정수된 물인지는 몰라도 안내하던 구상교가 권하는 바람에 그냥 두손으로 물을 떠 마셔도 보고 하면서, 바위와 돌을 끼고 돌면서 아래로 흐르고 굴러 떨어지며 좔좔 소리 내어 흐르는 계곡의 힘찬 물소리 속에 또 가는 가을을 꼭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는 듯 쉴새 없이 울어대는 벌레소리를 즐기면서 그 소리에 우리의 음성이 파묻히지 않도록 그 음성을 높여 가며 경사지어 오르는 걸음에 숨이 가빠오지도 않은 지 끊임없이 조잘거렸다. 그 이야기들이란, 1959년 어린 시절 무서웠던 그 유명한 태풍 사라호보다 더 강한 풍속으로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 매미,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넘어진 부산항만의 초대형 크레인 흉한 몰골, 미국 동북부까지 휩쓸고 올라온 막강한 허리캐인의 위력, 지구 온난화의 지속으로 속출되는 기상이변, 시베리아 벌판의 장래는 좋은 쪽과 나쁜 쪽, 어느 쪽으로 변화할 지에 대한 견해로 설왕설래, 큰 바위도 떠내려가게 만드는 계곡물의 엄청난 힘에 놀라고, 그것이 더 치명상을 초래한다나. 서울에는 지근에 가까운 산이 있으나 일본 동경은 어떠한 지, 일행에게 걸려온 휴대폰 전화를 받으라면서, 십 년전에도 써 먹었을, 그것은 유통기한도 없는 지, “여보게, 전(젖통, breast)나왔어요, 뭐 존(一八六의 결합어, penis)나왔다고,” 하면서 웃기고. 어디 가면 수수(조)껍데기로 담았다는 술(고량주가 되는가? 모르겠다만)이 있는데, 조 껍데기 주(술)는 한자로 조피주(粗皮酒)가 되는데, “조ㅅ삐주”로 또 더 진전하면 “조ㅅ뻬이주”로 바뀐다고 하며 웃겨주면 우리는 나쁜 것 하나씩 둘씩 얻어 배운다 술이 세고 참석률이 높은 편인 한 동기는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에 참석하느라 오늘 산행에는 빠졌다나, 한 친구는 산상에서의 판소리 창이 있다고 듣고 대학동기와의 모임도 사양하고 여기 왔다나, 사실은 이름있는(왕년에?) 70대 노인을 초대하여 산상에서의 창을 듣는 기회를 갖는 것을 회장 단은 생각을 하고 안을 내어 본 모양이다, 하지만 70대 노인을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 북한산에 모셔서 그 산상에서의 실행 생각은 발상은 산뜻하나 그 노인에 대한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 오늘 코스를 제안자의 반대 의견을 받아들여 물거품이 되었나 보다. 나이 들어가면서 국민가수 이미자의 흘러간 유행가도, 국악인 김영임이 부른 정선아리랑 같은 민요도 가슴에 진하게 닿아오는 것은 우리가 늙었다는 표시인가, 반대로 성숙해졌다는 이야기인가. 5. 뒤 처진 자를 위한 앞선 자의 배려의 부족/ 처진 자의 악순환 어느 산행이나 앞서 가는 자가 있고 뒤 처지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선두그룹에 합류하는 것이 산행에 수월하다. 앞선 자는 자신의 숨 길보다 발길이 앞서면 발길을 멈추어 후진이 올 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앞선 자와 너무 처져 있어 앞선 자를 따라 잡고자 무리를 하다 보면, 숨길 보다 발길이 앞서게 되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낙오하기가 쉽고 일행에 부담을 주게 된다. 오늘 코스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숨은 벽”을 향해 가까이 갈수록 나는 오늘따라 앞선 자와 속력을 맞추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땀은 방울방울 이마에 솟아 흘러내려 눈은 따갑고, 한 방울씩 걸어가는 지면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발을 옮긴다. 몇 번씩이나 쉬어가면서 숨을 고르고 하면서 정말로 주저 않고 싶었다. 뒤 처짐은 체력의 약화 탓인가. 일행 중에는 꼴찌를 도맡아 하는 친구가 있는 데 오늘은 참석 치 못했다. 이제 누군가가 그 꼴찌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자기보다 쳐진 자가 있을 때는 그래도 마음의 여유가 있을 테지만 이제 자기 뒤에 처진 자가 없을 때에는 마음은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앞서 가던 친구는 후행 하는 친구들이 나타날 때까지는 이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휴식을 취하며 기다려 준다. 그러나 막상 쳐져 오던 친구의 모습이 보이면, 꼴찌 친구가 쉬어서 숨을 고를 시간도 주지 않고 이제 이 친구가 왔으니 가자 하고 멈추었던 발길을 재촉한다. 뒤에 오는 자가 사실은 제일 힘들어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기다리느라고 시간을 까먹었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죽을 힘을 다하여 뒤 쫓아 왔으나 숨 고를 시간만큼도 기다려주지 않고 가버리는 친구들이 야속하지만 또 쫓아가야 하면서 힘은 더욱 빠지고 마음까지 바빠지면 산행은 더 이상 즐거운 걸음이 되지 못하고 심지어는 낙오하여 일행에 폐를 끼치게도 된다. 오늘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다. 종이 컵에 막걸리 한잔으로 힘 빠져 할 리는 없는 터에, 그 동안 앞서 있을 떄 말로만 그랬지 실감하지 못했는데, 내가 뒷줄에 처지다 보니, 그리고 내가 그 당사자가 되고 보니 처진 자에 대한 앞선 자의 배려는 좀더 깊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6. 숨은 벽, 무엇이 숨었길래 그러나 힘들지만 용케도 낙오하지 않고 올라선 숨은 벽이 보였을 소위 숨은 벽 능선의 근처의 바위에 서서 멀리 아래로 보이는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성냥갑 같은 흰 아파트 집단촌은 일산 신도시 지역이라고 한다. 맑은 하늘에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누구는 멀리 개성이 보인다고 했었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거의 꼴찌 줄에 처져 힘들게 올라간 곳을 숨은 벽 능선이라고 불러도 좋을 지 모르겠다. 그것 말고 따로 숨은 벽 능선은 그 위에 있다면 이곳은 숨은 벽 근처에 있는 능선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에 숨어 있다는 칼날 같다는 숨은 벽, 지금은 거기서 멀리서나마 숨은벽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고 온 것이 후회된다, 아무튼 거기서 바로 거리상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올려 처다 보이는 절벽은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봉의 훤출한 뒷 모습인가. 뛰어난 뒷모습을 보고 앞모습도 빼어 났을 것으로 생각하고 뒤 따라 가고픈 여인을 만나듯이, 이곳 모습은 기상이 범상치 않을 사내 대장부의 뒷 모습만 보고도 반하여 여인을 가슴 울렁이게 하는 그런 모습이라고 한다면 내 눈은 잘못 본 것인가. 북한산은 열하일기로 유명한 또 다른 박지원, 북학의 유명한 박제가 등이 북한산에 올라 그 웅장한 산세를 보고 즐기며 금강산과 비교하여 금강산이 올팍 졸팍 기기묘묘한 여성적인 산인데 비해 북한산은 웅장하고 장엄한 오히려 남성적인 산이라고 했다는 이와 비슷한 취지의 말을 남순대 회장으로부터 들었던 같은 데, 박지원인지 박제가인지 누가 했는 말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자세히 물어보는 수밖에. 어쨌던 숨은 벽 근처의 능선이라고 편의상 이름 붙인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는 길은 로프를 타고 절벽을 올라가야 하는 알피니스트의 위해 존재하는 길인지 모른다. 여기까지 오는 길도 나에겐 무척 힘들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른 쪽으로 가는 험한 길은 주행만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가 갈 길이 아닌 모양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비탈길을 지나가면 산행 길은 멀되 힘은 들 든다고 한다, 우이동 입구까지는 내리막 길만 있는 것으로 알고 이제 살았구나 하였으나 한참 하산하다가 다시 올라오는 마지막은 예정되어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도중에 평평한 곳에서 점심 겸 갖고 온 술 등을 먹기 위하여 자리를 찾기로 하고 아랫길로 내려섰다. 숨은 벽 근처의 능선에서 아래로 내려서는 길에는 지나가는 사람은 거이 보이지 안았다. 7. 7부능선 쯤에 자리깔고 “위하여”를 외치고 올라 오느라 숨이 차 힘든 길은 끝나고, 이제 내려가는 가는 길은 힘이 들지 않아 좋았다. 정상 쪽을 향한 병풍처럼 서 있고 한가운데 크다란 씹혀진 검(gum)이 붙어 있는 것 같은 큰 바위 근처 앞의 평평한 곳에 일행은 자리를 정하고 들러 않았다. 아마 12시 30분 경이 되었으리라. 자릴 펴고 배낭을 풀고 가져온 음식을 꺼낸다. 항상 동기들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해 오는 박창기 총무가 가져온 삶은 돼지고기, 삶은 계란, 김치 된장, 당근, 상추 등과 각자 알아서 조금씩 가져온 해물 부추전, 불고기 등을 안주로 꺼내어 상 없는 상을 차리고, 각자 앞에 놓여진 종이 컵에 장수 막걸리를 한잔 씩 채우고, 남 회장의 건배 제안에 따라 “위하여”를 큰소리로 합창한 후 주거니 받거니 한잔, 두잔 씩 걸치고 돼지고기를 씹고 뜯는다. 신경철 동기가 중국 사천성 여행에서 가져 왔다는 52도의 500mm 劍男(?)春 중국술은 고량주처럼 코를 확 찌르는 듯 한 냄새가 났는 데, 반잔 내지 반반잔씩 돌려가며 따라 마시고 흥취를 더 보탰다. 충분한 막걸리에 독주 검남춘의 때문인지 아니면 술을 즐기고 주량에서 비교적 세다는 동기 이진권이와 신인수 같은 프로급이 빠져서 인지 몰라도 2병의 소주는 여기서는 개봉도 못하고 다음 장소를 기다려야 하는 새로운 기록을 남기는 같았다. 8. 근황 /건강/추억 속의 고3 그때 그 순간 김종곤에게 전무 승진 턱을 내야 되지 않겠냐는 압력 성 발언도 나오고, 그 화답으로 오늘 상황을 봐서 여기서 마치고 반포 집 근처 노래방으로 가보자는 등등으로 갑론 을박, 장군하고 공격하면 멍군하고 응수하여 흥미진진, 친구들의 근황이나 건강에 관한 이야기로 총무가 가져온 삶은 달걀에 대해서는 하루 2개 이상은 특히 여성? 에게는 좋지 않다는 콜레스트롤 이야기, 여자 폐경기와 에스트로젠 호르몬 이야기, 남자의 전립선염 내지 여자의 요실금 이야기, 이러한 건강 상식에 관한 한 종곤이는 좌중을 압도하는 듯 풍부한 건강 상식도 갖추고 있었다. 야한 듯 노골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용어와 지식으로 포장하고, 함께 웃을 거리를 준비하여 친구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는데, 어떤 때는 프린트해 와서 배꼽 잡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였는데, 오늘은 산행 중 제일 힘들었는 숨은벽 바위를 올라오면서 들려준 익살 한 토막을 소개하면 한 밤중에 자다가 벌떡 깨어 일어나는 4가지 타입이 있다나 뭐라나 하면서 각 경우로서 1. 물 먹을려고 일어나는 자 2. 텐트치고 어떻고 저떻고 3. 정말 할일 없어 일어나는 자 4. 건강에 나쁜 손장난 운운 개그를 소개하여 일행의 배꼽을 잡게 하였고 그래서 엔도르핀을 솟아났는지 잠시 숨가쁜 고통을 잊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야기는 방향을 틀어 어느 덧 35년 전의 청운정 고3의 시절로 돌아가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들춰낸다. 그 중에서 오늘 모임에 3학년 3반 이?원집 산생님 반은 많은 것 같은 데 2반 김숙교 선생님 반은 내말고 없느냐고 물었더니, 누군가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영어 선생님이셨던 김숙교 선생님은 씨붤러(씨붤라이)제이션(civilization)의 발음을 씨발라이제이션처럼 발음하셨다는 한 친구가 지적을 하여 웃었고, 당시 3반 소속이든 이대용이는 2반 선생님 반의 친구와의 일로 교무실로 불려갔던 이야기며, 지금은 지방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한 친구가 담임인 김숙교 선생님이 상대를 원하는 제자의 의사와는 달리 법대 원서를 종용하여 고민에 빠진 친구를 돕기 위하여 김숙교 선생님과 약간의 마찰이 빚은 일화도 소개하는 등 여러 사람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고, 이야기와 술과 음식으로 좋은 분위기와 향기 나는 이 정취를 담아서 사이버 인터넷에 올려 모든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알릴 수 있는 소위 향기 나는 인터넷(aromatic ciber internet)의 기술이 아직 괘도에 이르지 못함을 아쉬워 했고, 이원근이는 이렇게 좋은 분위기를 참여하지 못하여 함께 공유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불쌍하다고 지적하며, 우리들 만이 즐기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 했다. 9. 예정에 없던 산중 열린 음악회 분위기는 무럭무럭 익어가고 흥에 겨운 이대용이는 산의 계곡물이 졸졸졸 반주하고, 친구들의 흥겹게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는 가운데 이희성이가 핸드폰을 마이크인양 받쳐 주고 흥을 돋우는 가운데 ‘콩밭메는 아낙네야……베삼방이 다 젖는다’의 “칠갑산”을 구성지고 멋들어지게 불러대어(남회장의 지적에 의하면 이대용이는 원래 음치였으나 한뫼회 3년에 가수가 되었다고 하면서 영환이 너도 실망하지 말라고 하면서 한뫼회 3년이면 가수가 되고 6년이면 제비가 된다나), 다른 사람의 노래를 자연스레 유도하였고, 이어 이희성이 가지마아아오오를 열창하고, 다음 타자는 근 1년 만에 산행에 합류한 벌로써 김여수가 지명되어 ‘오륙도 돌아가는 …..’의 “돌아와요 부산 항에”를 명가수 답게 감정을 넣어 불러 제꼇다. 마지막으로 홍일점인 김종곤의 부인께서 남편 전무승진 기념 겸해서 이태리 노래 “레 비오레테”를 원어로 불러 이태리어 실력을 과시했다. 중학교 때의 책에 있은 노래라고 소개했는 것 같은 데, 아마 현대 이태리 지사장 부인으로 현지에 있으면서 더 확실히 익혔을 것으로 생각되었다(노래 직 후 제목을 물어 보아 재목을 듣기는 했으나 엉뚱하게 기억하고 다르게 적은 실례가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아마 산타루치아, 오솔레미오와 같이 유명한 가곡인 것 같다고 옆에서 낭군께서 이야기한 듯 한데, 원체 까막귀에 기억을 바로 하지 못해서). 10. 내려가면서 지나친 경건한 여인의 독행 흥겨운 이야기와 노래자랑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한 후, 이어진 비탈 길을 김종배와 함께 내려오면서 혼자 배낭을 메고 서서히 우리가 내려가는 길을 거슬러 한걸음 한걸음 기도하듯이 경건하게 올라오는 여인이 보였고, 곧 지나쳤다. 이 호젓하나 만만치 않은 이 길을 혼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정말로 대단한 여자이다. 산행 경력이 보통은 아닐 터, 김종배는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탄복하는 듯 이것을 말로 표현하였고, 나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지나쳐간 여인에게서 어떤 성자 같아 보였다. 11. 고추 씻고 말린다는 계곡에서의 탁족과 굴원의 어부사 /펑퍼짐한 널찍한 바위 조금 더 내려오니 비 온지가 여러 날이 안되어서 이겠지만 흘러내리는 수량은 많고 물소리는 크고 청아하며 물은 너무나 맑고 깨끗해 보였다. 앞서 가는 자가 누군가 얕은 개울에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기 시작했고, 전염된 듯 너도 나도 지지 않을세라 발을 담그기 시작하였고 다들 시원함을 한참 동안 즐기고 있었다. 여기서 더 아래로 내려가면 우리 일행이 다 같이 앉아 쉴 수 있는 펑퍼짐하게 평평한 바위가 있으니 그기로 가서 쉬자는 제의에 모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구상교는 덧붙여 말하기를 이곳 계곡에는 원래 찾아오는 일행이 적고 물이 좋아 고추를 씻고 말리는 곳이라 했다. 그래서 청춘 남녀 등이 계곡 물에서 몸을 씻는 일이 있는데, 못 본채 모르는 채 하고 지나가는 것이 이런 곳의 에치켓이 아니겠는가 하기도 하고, 그렇치 아니하고 장난기가 발동하면 봉변을 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기도 하면서 내려왔다. 큰 바위로 이동하는 도중,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 검남춘 주를 약간 과하게 마셨는 지 기분 좋게 취기가 있어 뒤쳐져 내려오던 김종곤이와 만났는 데, 종곤이 왈 한시 중에 나오는 것인데 하고 소개하기를 ‘창랑지수….운운하고, “물이 맑으면 내 갓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라고 운치 있게 소개한 것은 바로 저 유명한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인이며 시인이었던 굴원의 고결한 청렴 결백한 성품을 주제로 했다는 어부사의 끝 구절 부분에 있는 내용을 소개한 것이었다. 그것을 내뱉은 깊은 뜻은 몰라도 일응 곱씹어 볼 만한 구절이라 생각되어 여기에 극히 일부인 그 부분만 적어본다.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滄浪之水清兮, 可以濯吾纓)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으리오, 창랑의 물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오 그래서 구상교에게 들은 대로, 이곳에서는 원래는 우리들이 방금 했던 것처럼 발을 씻는 곳이 아니라 고추를 씻고 말리는 바위 많은 계곡이라고 전해주었다. 한적하고 맑은 물에 햇볕이 잘 들어 말리기에는 고추(남녀 공히, 먹는 고추 포함) 말리기에는 발견하기 쉽지 않은 제대로 된 장소인 모양이다. 계속하여 아래로 조금 더 내려오니 펑퍼짐한 엉덩이 같은 널찍한 바위를 발견하고, 우리 전원 17인이 일부는 앉고, 일부는 반쯤 누운 자세를 취하여도 모자람이 없었고 그 밑에 얕은 바닥이 드러난 물 흐르는 바위에 다시 배낭을 풀고 여기서 과일과 위에서 남은 소주를 개봉하여 잔을 돌리면서 또 깍아 먹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과를 씻어 손으로 비틀어 반을 짜개어 껍질 채로 씹어 먹었다. 또 종곤이는 이렇게 큰 바위만큼 여자 엉덩이는 보지 못했다고 하여, 마치 여자 엉덩이를 오래 연구한 전문가처럼 말하여 또 웃겼다. 12. 육모정으로 다시 오름길을 타고 넙적 바위에서 영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육모정”으로 가는 길은 숨은벽 능선에서 이제까지 내려온 여기 넙적 바위에서 다시 완만하게 오른 길이었다. 곧장 더 내려가면 출발점이었던 밤골로도 연결되는 모양이나 우리는 계획대로 다시 방향을 꺽어 육모정(어거지 풀이 : 속살을 사모하는 정자???) 을 향하여 갔고, 이길에서 오늘 산행에서 두 번째 땀이 흘러내렸다. 급한 경사도 아닌데 먼저 숨은 벽 능선에 오르는 길에, 아니면 이미 버스에서 많은 힘이 소진 되었기 때문인가. 육모정을 지척인 2분 거리에 두고 앉아서 쉬어갔다. 뒤에 오는 자들이 추월을 바라보면서 늦게 오던 유철이와 함께 쉬었다가 육모정에 맨 마지막으로 올라섰다. 여기서는 인원 점검상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팻말에는 우리가 바로 올라온 이 길은 군사 통제 폐쇄구역이었던가. 그래서 인적이 드물었던가. 아니면 팻말이 그 효력이 없는 데 여전히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이동 공원 입구까지는 죽 내리막길이라 힘이 들지 않아 숨차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좋았다. 13. 용덕사와 우이동 공원입구/ 점심 겸 저녁 이제 내려오는 길이라 편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인지 길가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좁쌀만한 노란 꽃을 피운 야생화도 보이고, 아침 분수대에서 보았던 작동시키지 않았던 분수대 배관과 연결된 물조리개 같은 구멍통과 그 옆의 물 조명유리가 덮힌 구멍에 큰크리트가 깨어진 틈을 비집고 흙에 뿌리를 내린 올챙이 풀?처럼 이름 모를 야생초의 그 무서운 생명력에 장도석과 오중관, 유석종이는 앉아서 살펴보며 놀라워 했던 생각이 지나갔다. 내려오는 중턱 쯤해서 좌청룡 우백호처럼 생긴 작은 능선 사이로 작은 골짜기에 중간에 자리잡은 약수터를 보고 자연지리에 강한 유석종이는 그 약수터 자리 한 번 잘 잡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물 한 모금을 떠 먹어 본 후, 그 앞 길에서 모두 오늘의 산에서의 최후의 휴식을 취하였다. 기슭 가까이 내려오자 용덕사가 보였고 주변에 처진 개구멍 철조망을 비켜서 아래로 내려와 우이동 공원 입구 및 그린파크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왔다. 4시경이 되었다. 10시경부터 출발하여 오늘도 산행은 4시간은 족히 걸렸나 보다. 근 1년 만에 합류했다는 김여수가 자진하여 자기가 부담해도 되냐고 물어온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인 회장단은 칼국수를 하면서 대식구가 들어갈 만한 집을 찾아 들어 갔으나 그곳에서 없는 칼국수 대신 버섯 전골과 동동주/소주로 산행의 마무리를 하였고, 일행은 6번 버스와 28번 버스를 타고 각자 편리한 곳에 내릴 작정으로 버스를 타는 것을 끝으로 오늘의 모임을 마쳤다. 17:30분에는 열린 음악회 500회 특집방송이 있다고 하나 원래 나의 예정에는 없었던 것, 집에 가면 끝나 있을 것이니, 쓸데 없이 욕심내지 말자. 28번 버스를 타고 동대문에서 내려 1호선을 갈아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배낭에는 아침에 싸간 해물부침개와 불고기, 포도는 산에서 처분을 했으나 찹쌀 콩밥, 상추, 고추, 김치 등은 먹지도 않고 그대로 꺼내었다. 혼자서 밥을 먹기에는 마땅치 않았고, 그것을 꺼내는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고, 상추, 고추, 된장. 김치 등은 충분했으므로 꺼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14. 남순대의 시 소개 회장은 아침 구파발 역에서 오늘 나온 동기에게 일일히 시선사 발간 2003 가을 호인 “시선”이라는 책자를 한 권씩 안겨 주었다. 이 책 178쪽에는 시인 남순대의 시가 불꽃놀이 외 1편이 게재되어 있다. 여기서는 “불꽃놀이”만을 소개한다. 원래는 세로쓰기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편의상 가로쓰기를 하였음을 알려둔다. 슬래쉬(/)가 된 부분은 줄이 바뀌는 부분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불꽃놀이 외 1편 남순대 살도 뼈도/ 사방에 튄다/ 광란의 저 아수라장// 고통은 차라리 깨어 있는 여윈 실존// 낭자한/ 핏빛 끝에서 /피어나는, / 환한 웃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5. 여언 다음의 모임은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설계, 연구하며,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이끌 것인가 고민하고, 뭐 더 줄 것이 없는가 하는 회장단, 여러 타입을 주장을 받으면서도 갈등을 조율하며 다 포용하는 남자 남순대, 묵묵히 소임을 다하면서 뭐 도와줄 것이 없는가 마지막까지 챙기는 총무 박창기, 항상 밝은 얼굴에 긍정적인 사고로 덕담을 주는 밝고 포근한 남자 오중관, 우리보다 먼저 어른 되고 또 손자 손녀 다 보았다는 진짜 어르신 김세일, 조용히 뒤에서 도우면서 정작 필요할 때 나서 힘껏 도와주는 유철, 구상교, 이희성 학교와 친구만을 아는 순수한 여러 교수 친구들, 앞장서 나가면서 남보다 더 바람과 파도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잘 견더 낼 상급책임자로 있으면서 우리들에게 솔직한 친구들, 오늘의 모임이 있도록, 그리고 지금도 지탱해 나가도록 열심으로 도우는 전임 회장단들, 이들 중에는 주장이 강한 자도 있고, 한발 물러서서 빙긋이 뒤 따르며 협조해 가는 등 여러가지 형태의 사람이 있으나 자기만의 개성/품성을 가진 친구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독특한 각자의 향기를 맡을 수가 있어서 좋다. 이 세상에 한번 오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데, 이 세상에 와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을 더 귀하게 생각하면서 여러 친구들의 건강과 댁내의 행운을 기원해 본다. 2003. 9. 24. 동기 김영환 보냄 * 2003. 9. 21. 북한산 산행 참석자 명단 (17명) 구상교, 김세일, 김여수, 김영환, 김종곤 부부, 김종배, 남순대, 박창기, 신경철, 오중관, 유석종, 유철, 이대용, 이원근, 이희성, 장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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