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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국태항산 여행 후기
이름   김영환 등록일   2013-05-27 오전 11:31:00
e-mail   ywhkim@rhilaw.com
내용
중국 태항산 여행 후기

첫째날 청도에서 요성까지
둘째날(대협곡-도화곡, 환산선, 왕상암)
세째날(구련산과 천계산)
네째날 – 곡부에서 청도까지

동기들과의 여행은 즐겁다. 이파리 색깔이 좋은 신록의 오월에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훌훌털고 동기들을 따라나서기만 하면되니까, 이번 한뫼회 해외 여행은 땀흘리며 오르는 산행이나 트레킹보다는 버스로 장거리를 이동하고, 현지에서는 전동차로 움직여 천하절경을 둘러보는 유람이었다. 천하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이러한 행운은 자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같이 동행할 수 있게된 자신의 행운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동행을 할 수 있게 여행을 준비하며 신경쓴 회장단에 감사한다.

I. 한뫼회는 지난 5월 9일(목)에서 13일(일)까지 3박 4일 동안 중국 하남성 태항산 협곡을 다녀왔다.

200회 고지를 눈앞에 둔 이번 한뫼회의 195회 해외 산행에는 34명이라는 많은 인원이 참석했는데, 아마도 임원진의 독려와 기력이 있을 때 가보자는 동기들의 심정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느낀 것 두 가지는, 중국은 광활하다는 것과 다녀온 태항산은 웅장했다는 것이다. 이산에 갔다가 오기까지 우리는 버스를 많이 타야 했는데, 지루해질 때면 동기들의 얘기와 노래로 오고 가는 길을 지루함을 달랬다.


II. 중국땅은 넓었고, 태항산은 광대한 산맥이다.

꿈결같이 다녀온 동기들과의 나들이 일정을 되돌아 본다.

청도- 5.5시간 -요성(정태동방호텔)- 4시간- 임주(林州 대협곡) – 3시간- 휘현(輝縣 풍성중주호텔)-
(9일) (10일)
풍성중주호텔- 1시간- 신향(新鄕) 구련산- 청계산 -5시간- 곡부(영빈관 호텔) -5.5시간 - 청도
(11일) (12일)
,

태항산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산동성, 서쪽으로 산서성으로 나뉜다. 태항산 협곡은 억만년전 지각운동에 의해 형성되었다나.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이 무척 많다고 한다. 몽고 초원아래 산서성 북부에서 시작하여 산서성과 하북성, 하남성 경계에 남북으로 600km, 동서로 250km에 달하는 한반도보다 더 큰 광대한 협곡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찾은 곳은 하남성 임주의 대협곡(도화곡, 환산선, 왕상암), 신향의 구련산과 회룡의 천계산 유람지구였다

이번 여행에는 청도에서 목적지 임주의 대협곡까지 가고 또 신향의 천계산 구경를 마치고 청도로 돌아오는 거리가 길었다. 인천공항을 13:10 이륙, 1시간 30분을 비행하여 청도국제공항에 중국시간 13:45 도착,

4시 10분경, 청도의 해변가에 있었는 54정신을 기리는 54광장 중앙에 설치된 붉은색의 횃불구조물을 돌러보며 아편전쟁이후의 열강에 의한 중국의 침략 등 역사 공부를 한 후, 가이드는 일정에 나타난 소어산 공원이나 잔교 관광을 건너 뛰어 당일의 숙소 요성의 정태동방호텔로 바로 가자고 제안했다. 이유는 목요일 오후 그 시간대를 지나면 버스가 고속도로로 올라서는데 차량이 몰려 자칫하면 지체에 빠질 가는성이 크고, 지체되면 하세월, 달리 대책이 없기에, 소탐대실을 초래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바로 당일의 숙소 호텔로 직행하자는 것이다. 그래봐도 자정 근처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예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늦어지는 김에 더 늦어도 괜찮다면 익일의 일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할 것이니.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현지 사정에 밝은 박재찬 동기도 가이드와 같은 의견이었다.

가이드는 버스가 청도를 출발하여 얼마 안 가서 이런 말을 꺼냈다. 중국에서는 30km는 ‘잠깐 간다’고 하는 거리고, 300km나 더 가야 하는 거리를 두고는 ‘거의 다 왔다’ 하고, 앞으로 500Km를 가야 한다면 ‘좀 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스개 소리인지는 몰라도, 버스 타고 가는 도중에 조바심 내지 말고,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자꾸 귀찮게 묻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거이 다 왔다’는 300km 거리를 왔음에도 앞으로 2-3 시간을 더 가야 한다면 우리의 조급한 시간 개념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땅 넓이가 남한의 99배에 이른다는 중국 대륙, 이번 여행길은 그 대륙을 남북이나 동서로 종주한 것도 아닌, 그 일부에 불과하다. 그 너름을 실감했다. 중국의 설, 춘절에 고향에 오가는 시간만해도 며칠이 걸린다는 말을 좁은 땅 한반도, 그 반쪽 땅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겪어보지 않고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땅의 넓음을 표시한 것이던가, 지난날 교과서에 실렸던 ‘기차는 원의 중심을 달리고’ 라는 수필 제목이 들먹여 졌던 것도, 차창 밖으로 계속 보였던 서쪽으로 뻗어나간 고속도로변 산동의 단조로운 푸른 밀밭과 그 주변 곳곳의 미루나무 광경이 계속 펼쳐져 지루했던 것도 이또한 광활한 중국 대륙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탓이리라.

둘째날의 목적지, 임주의 도화곡에 10일 2시경 도착했을 때는 9일 오후 3시쯤 맥주로 유명한 청도를 떠난지 거의 23시간 만이었다. 버스만 탄시간도 10시간은 족히 넘은 것이다. 임주로 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새 차를 20여대 싣고가는 카케리어에 실린 아래와 위줄의 자동차가 부서져 있었고, 큰 트럭에 실린 돼지가 몰사한 광경을 목도하며 30분이상을 도로가 막혀 도로가에 내려 바람을 쏘인 기억이 난다. 당일 점심으로 예약되어 있는 삼겹살 잘먹기는 걸렀다는 말도 나왔다.

이번 여행동안 버스로 이동한 거리를 지체없는 시간으로 계산하더라도 최소한 24시간은 버스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청도를 떠나서 다시 청도로 돌아온 거리를 추정하자면 서울-부산 경부선 거리 460여km의 5배는 되겠다는 어림 짐작도 해보았다. 그 오차가 얼마일지는 몰라도. 사흘 동안 숙소 호텔에는 밤 12시 직후, 직전에서야 겨우 도착했고, 호텔에 빨리가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날 때면, 어김 없이 ‘갈 길은 먼데 해는 저물고’라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떠들며 즐겁게 하는 여행, 해가 저물면 어떠랴.

III. 임주 태항산 대협곡
(10일 임주 태항산 협곡에서 도화곡을 찾아 빵차를 타고 환산선을 올랐다가
왕상암으로 내려왔다).

1. 도화곡(복사꽃이 핀 골짜기)을 걷다.
5월 10일 오후 2시 조금 지났다. 여행 목적지의 시발점인 “임주 태항대협곡”이라고 붉은 글씨로 적한 고래 등만한 표지석 앞에 다같이 멈춘다. 기념사진 때문이다. 도화곡 마을까지 이동이다. 일부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걸어서 간다.

세분 고, 김, 김여사도 합세다. 출발지인 황룡담 연못 앞에서 멈춘다. 그 앞 징검다리 돌을 지나 절벽에 설치된 계단길의 나무/쇠 난간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한걸음씩 전진이다. 한 40분 소요된 도화곡 걸음은 처음 약간 긴장한 것 외에는 짧고 완만하여 힘이 들지 않았다. 걸음할 수록 아름다움은 점입가경, 위로 보면 단애의 암벽과 산세의 웅장함을 느낀다. 도봉산의 자운봉에서 본 Ww자의 암벽이 생각나는 멋진 W자 암봉이 보였던가.

비룡협, 함주, 이룡희주 등 용과 관련된 글자 들이 새겨진 것이 군데 군데 보였다. 콤프레셔로 절벽 바위에 구멍을 내며 새길을 만들고 있는 인부 들의 모습에 멈쳐서서 또 쳐져오는 자를 위하여 잠시 기다려준다. 후진은 막걸리 한잔도 사서 맛보는 여유도 부렸나보다. 한 30분 올랐을까. 도화곡의 마을이 보였고 그 직전에 복숭아나무 서너 그루가 눈에 띄었다. 삼발 지지대가 나무 줄기를 받치고 있어 심은지 얼마되지 않은 듯, 겨울에도 복숭아꽃이 피었다는 전설을 가진 이곳 도화곡을 상징하려는 뜻이리라.

하나 부언한다면 비룡협 입구에서의 일이다, 가이드가 길 좌판에서 팔고 있는 곧고 매끈한 나무 가지 막대기를 집어 들더니 채 300m도안가서 툭 던져버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얼른 뛰어가 주어 들고 기분이 좋다. 이후 당일 내내 나의 지팡이가 되어 주었고, 더구나 왕상암 내리막길 계단에 큰 힘이 되었다. 이튿날에도 요긴하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 지팡이를 휘현 호텔방에 깜박 잊고 두고 온 것이 내내 걸렸다. 그랬다면 다음날 서련촌 서련사 계단에서 미끄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2. 환산선을 올라 전망대에서 태항산 대협곡 절경을 보다
도화곡 마을에서 먼저 온 차량팀과 걸어온 발품팀, 전원 34명을 확인한다. 인원 확인은 중요 일이다. 가이드도 인원이 20명을 넘으면 인솔이, 인원 확인이 쉽지 않다나. 모두 소위 전동차 (빵차) 서너대에 나누어 타고, 다음 목적지 환산선을 올랐다.

눈이 부실정도로 하늘은 맑았고, 빵차로 구비구비 오르는 환산선 주변, 5월의 산색은 맑은 연초록 일색이다. 하얀 꽃을 피운 나무가 이따금 보인다. 순백의 하얀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 조팝나무, 산딸나무가 생각난다. 연한 보라색 꽃을 달은 나무는 오동이었던가. 구비구비 올라가는 길옆 산비탈에 반듯하게 돌로 쌓은 밭두렁과 씨를 뿌렸는지 고운 흙으로 갈무리된 이랑이 인상적이었다. 누가 저 높은 곳에서 밭농사라니.

빵차는 해발 1200m 높이의 전망대에 앞에 멈춘다. 다들 사방을 둘러 보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눈앞에 펼쳐진 이곳이 태항 대협곡, 중국의 대협곡이라 불리는 곳이다.

거대한 협곡 양쪽 절벽 단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칼로 자른 듯한 반듯한 절벽에 높이 별로 같은 색의 허리 띠를 두른 듯, 머리 띠를 두른 듯, 칼로 자른 시루떡의 단면에 보이는 층층의 떡 줄처럼 옆으로 흐트려짐이 없이 정연하게 뻗어져 나간 그 길이며, 계곡바닥에서 우뚝 솓은 절벽 바위 높이로, 장엄한 협곡의 모습에 다들 놀란다. 전망대 아래로 바닥까지는 300m는 족히 되리라 어림하며, 단애 아래로 쳐다보며 아찔해한다. 움푹 들어간 협곡 바닥 저 멀리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U자 계곡은 신비하였다. 이번 여행은 오르며 땀 흘리는 등산이 아니라 전동차로 둘러보는 천하 절경을 구경하는 유람이었다.

갈곳/볼곳은 많은데 시간은 적고, 일정 소화에는 달리 서두르는 수밖에 없다. 전일의 늦은 이동에, 늦은 숙소 호텔 도착을 생각하니 모두 잘 따른다.

3. 왕상암을 내려오며 그 비경을 맛본다.(왕상암(왕후장상의 약자인가 王侯將相)
상나라 왕인 무정이 피난하여 은거생활 중 노예를 만나 서로 문무를 가르치고 후에 왕이 된후 노예를 재상으로 삼았다는 전설로 이름이 생겼다나.

환산선 챠량 일주 중에 잠시 멈추어 두 번째로 멈추어 선 곳은 절벽 벽에 두꺼운 유리를 깔아, 놓은 곳으로, 발바닥 밑으로 보이는 천길 낭떠러지 계곡 밑바닥이 보여, 간담이 서늘해지는 곳이었다.

여기서 가이드는 저 쪽의 왕상암 지대를 가르키며, 급경사 계단을 따라 걸어서 아래로 하산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까지 차량으로 온 것처럼 챠량으로 하산할 것인지를 선택해달라고 주문한다.

압도적 다수가 없는, 의견은 거의 반반, 단체 행동으로 한쪽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자기의 근기에 맞추어 각자가 알아서 정하도록 방침을 정한다.

급경사 계단길, 88m 쇠기둥에 만든 나선 계단이 멀리서 보아 겁도 나기도 했지만 걸어보지 않으면 그 곳의 경치나 순간 순간의 느낌을 가져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도 걸어 하산 팀에 가세하기로 작정, 결과적으로 잘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숨겨진 이곳 비경을 맛보지 못했으리라.

내려오는 동안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경사있는 내리막 돌 계단에 조심조심, 옆으로 수평으로 이어지는 낭떠러지 바위 길에 머리 숙여, 허리 굽혀 조심조심 오리걸음 30분 정도, 철 기둥에 설치된 수직 나사 326계단을 빙글빙글 돌며 내려오며 어지러움과 아찔함을 느끼며 나무 지팡이로 균형을 잡으며 내려온 길로 내 혈압은 올랐겠지만, 아래로 내려올수록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흡족한 기분으로 기슭에 거의 왔을 때, 전동차로 내려 갔던 몇몇 동기가 마중 겸 구경겸 올라와 기다리고 있었다. 매너가 있는 회원이라고 추켜세우며 다같이 웃는다

이 왕상암 계곡을 밟아본 곳이 이번 여행의 백미라고 생각하며 뿌듯했으며, 총무 김용휴 동기가 이길을 동행하지 않았더라면 집에가서 경여사께(이번 여행지를 추천함) 보고할 거리가 없었을 거라고 농을 던지니, 부정하지 않는다. 5시가 조금지났나.

- 단체 전신 마사지/ 국민체조/별보이는 하늘
다시 임주로 나가다. 저녁 일정은 전신마사지로 정해졌고, 7시경 마사지를 1시간 반, 그리고 옆집에서 식사를 한다나. 팁은 1,000원만 주란다, 창기, 상교, 정태와 한방에 들었고, 처녀와 총각이 2인씩 들어와 성심껏 마사지한다. 자기들끼리 말하며 시끄럽다. 간혹 말을 부쳐오나 간단한 우리 말도 눈치껏 알아 듣는 것 같다. 정태는 중국어 회화를 하며, 그네들 일동의 사투리 억양을 보고, 사천성 출신인 것을 짐작하는 모양이다. 전일 정태 동방호텔에서 잤고, 당일 임주 삼겹살 점심때 근처에 정차한 차가 우진관광이었나, 아버지와 아들이 각각 , 호텔 오너, 관광버스 오너라고, 같은 이름에 부자 최정태라고 장난쳤고, 그 덕분인지 우리 4인의 팁을, 대신 내주는 적선을 했다.

시간이 나서 밖으로 나오니 비슷한 시간에 건물 앞의 인도에서 20-30명의 여인들이 희미한 불빛아래 밤의 체조를 하고 있다. 일종의 국민 체조라나, 박재찬 동기가 대답해 준다. 8시30분경, 바로 옆건물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9시 30분쯤 버스타러 나왔을 때 하늘의 별은 초롱초롱했던 것인가. 사정이 좋지 않은국도를 두어 시간 달려, 휘현의 풍성중주호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가이드로부터 방키를 받아 룸에 들어갔을 때는 어제처럼 12시가 다 되었다.

IV. 신향 구련산/천계산 둘러보기
( 5월 11일 휘현 풍성중주호텔-구련산-회룡 천게산-곡부(곡부영빈관))

1. 구련산 서천사
산의 정상에서 보면 9개의 연꽃이 피어 오르는 듯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구련산(九蓮山) 경내로 접어들다. 왼쪽에 보이는 깍아지른 절벽을 보며, 안개가 끼면 더 신비롭게 보일거다고 옆의 동기의 말에 동의한다. 높이 120m의 천호폭포 앞이다. 쬘쬘내려오는 수량이다. 나중에 보니 폭포 중간에 무지개가 피어 올랐다. 몇분이 사진을 찍는다. 바로 옆의 수직 홍암벽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명씩 오른다. 아니면 암벽에 지그재그 계단을 걸어 올라야 한다. 투명유리를 통해 협곡의 경치를 보며 엘리베이트를 내려, 저쪽에 보이는 소박한 원주민이 살고 있다는 서련촌으로 발걸음, 이곳에 유불선 삼교가 짬봉이 되어 있다는 가이드의 말처럼, 대웅보전, 옥황상제 편액을 볼 수 있었다. 대웅보전 문앞에서 향내 가득한 안으로 고개를 내밀자 안쪽의 스님이 얼른 향을 내민다. 향를 받지않고 뒷걸음질이다. 바삐 걷는 일행에 보조를 맞추어야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 조금 올라가면 계곡따라 폭포가 이어지는 선지협이라는 멋진 골짜기가 있고, 또 근처에는 웅장한 하늘문과 같은 천문구도 있다 하나 시간이 없고, 갈 길이 바쁘니 언감생심이다. 전일의 도화곡을 본 것으로 만족한다. 채 10분도 머물지 않고 곧장 되돌아 내려오는 길가에 세워둔 노랑색 깃발이 한가닥 바람에 나부낀다.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이런 곳에서 바람도 쏘이고, 햇볕도 쪼이며 멋진 구경을 하다니.

역순으로 엘리베이트를 타고 내려 다시 빵차를 타고 대절버스가 있는 곳으로 간다. 당일은 토요일. 중학생일까. 학생들을 태운 차량이 몰려 오고, 먼저 내린 학생들로 도로는 혼잡하다. 중앙선 넘어 올라오는 차량 행렬에 내려가는 버스는 한참 마술을 부리듯 겨우겨우 내려가는 길을 만든다. 낭떠러지 옆길에 얽혀진 차량을 뚫고 사고 없이 내려갈지 걱정이 된다. 차머리 먼저 내밀면 장땡인가, 그런 챠량이 더러 보였다. 다행이 간신히 씨름하며 다음 천계산 지구로 움직일 수 있어 휴 안심이다. G2에 진입한 중국, 교통질서로는 아직 멀었다. 올림픽을 한번 더 하면 질서가 좀더 잡힐 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2. 회룡 천계산/저녁
하늘과 땅의 경계라 붙여진 천계산, 태항산 풍경구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데, 기슭에서 있는 입구에서 케이불카를 타는 정상 가까이 광장으로 오르는 구불구불 올라 오는 도중에 보인 곡갱이로 바위암벽을 뚥어 만든 도로가 괘벽도로라는데, 우리가 전동카를 타고 올라오다 터널 입구 근처에 세워져 있던 노동자의 동상들이 세워져 있던 곳, 그곳이 맞는지, 전동카를 타고 산맥을 360도 돌면서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이 괘벽도로를 통하여 케이블카 타는 광장까지를 말하는 것인지 확인하지 못한 것이라 이글을 쓰면서도 찝찝하다.

케이블카 타는 광장에 올랐을 때 날씨가 무척 더웠다, 비라도 왔으면 좋겠다는 말이 들렸다. 익일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대구의 온도 30도 한여름 날씨라는 뉴스를 옆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이곳도 크게 차이가 안날듯 싶다. 2명씩 타는 케이블카였는데, 일행 34명 중 꼴지 17번째로 탓다. 바로 앞팀은 박재찬 부부였는데,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더 이상 가지 않겠다 한다. 집사람을 남겨두고 혼자 나선다. 앞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바삐 걸으니 마음이 급하다. 정상까지는 멀지 않은 500m 거리라 조금 더 가니 앞서가는 동기들이 보인다. 안심이 된다. 빨리 올라가서 노야정의 정상에 있는 사원(절)을 살펴보니 한구석에 폭죽소리가 요란하다.. 정태와 자호가 서로 단체사진을 찍고 있고, 막 뛰어가 간신히 합세한다. 석종이 내외는 아래로 내려가서 건물 구경을 하고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승우는 멋진 안내 아가씨와 사진을 찍어 달랜다. 마음이 급하면 손해다. 꼴지로 케이블카를 내려 서둘러 왔으니 여유롭게 둘러보고 풍경을 마음에 담을 여유가 없었다.

다시 케불카를 타고 원위치로 복귀다. 자호가 부부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언제 이런 곳이 아니면 부탁하겠나 싶자 얼른 집사람과 나란히 서본다.

운봉화랑(빵차로 관람) 봉우리를 넘나드는 운해가 그림 같은 화랑인 전망코스라 하는데 그곳이 어딘지를 지금 회상해도 알 수가 없다. 당시 내게는 그런 장소 개념조차 없었으니. 근처에 만선산 풍경구, 왕망령 풍경구와 이웃하고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나 욕심 낼수 없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살펴보지 않으면 남는게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되돌아 보는 이시점에서.

V. 돌아가는 길, 곡부로

이렇게 태항산 구경은 끝났고, 점심을 3:30 버섯전골로 먹은 후, 이제부터는 되돌아 가는 길이다. 숙소인 곡부로 간다. 5시간 이상을 버스로 달려 제남 근처를 비켜 공자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곡부로 오니, 야간 곡부를 알리는 표시등이 도로 가에 걸려 있다. 붉은 책자를 펼쳐 놓았던 모습이던가. 논어, 맹자를 상징하는 것인지, 알지 못할 일이다. 곡부 성내로 들어오니 복복(福)자가 수놓아진 복주머니 등이 도로 곳곳에 걸려 있었나. 10시 경일까, 곡부대반점(?)이라는 식당에 저녁식사가 예약이 되어 있었다. 이곳이 이번 우리들의 마지막 저녁 회식이고 여기서 마지막 종결 파티가 된 셈이다.

출출하던 터 전형적인 중국식 저녁은 맛이 있었고, 이날에는 윤병주가 가져왔는 대형 코냑도 두어잔 들며, 즐거운 회식, 회장도 해당화(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하게) 건배사로 마지막 이번 여행의 형식적 클로징을 한 저녁이었다. 회장은 박재찬 동기의 우정어린 도움에 감사 표시를 했고..... , 12시 못미처 근처의 호텔로 갔고, 겉은 그럴듯하니 속은 다르다.

VI. 끝날 돌아오는 길 .

아침 곡부 호텔에서 식사를 마친후 박재찬동기 부부는 그곳에서 헤어짐의 인사를 하고, 여유있게 청도에 도착할 수 있도록 버스는 7시 이전인가 일찍 출발이다.. 곡부에서 청도로 고속도로 주변에는 밀밭이 한없이 펼쳐지고, 갈때는 몰랐는데, 돌아오는 길에 본 미루나루(백양나무)는 모두 한국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서풍이 불어오는 탓이렸다. 돌아오는 길은 멀었고 버스안에서 우리들의 얘기는 갈 때처럼 계속되었다. 어느덧 세계 최장이라는 청도해상대교를 시원스레 지나며 다시한번 그 길이에 놀라고 여기 대륙은 스케일이 크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버스를 내려 한국인이 경영하던 집이던가, 고기도 같이 가져와 굽어먹을 수 있는 부페식당이었다. 이번 내내 중국 술 백알은 매식사 때마다 등장했고., 그 냄새가 지금도 나는 듯하다. 출국행 비행기를 타기전의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출국 수속을 마치고 청도서 인천으로, 인천서 다들 잘들 가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각자 알아서 떠났을 것이고 집사람과 나는 공향버스를 타고 애경백회점 앞에서 내려 다시 집으로 왔을 때는 저녁 8시 이전이었을 것이다.

VII. 끝마치면서

즐거운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오가면서 자신을 되돌아 본다. 몇가지 문제가 있었음을 발견한다. 인천공항집합시간을 10시 30분으로 착각하여 일찍 출발했더니 10시 50분보다 1시간 전에 도착한 것이며, 여권을 내 등산가방속에 다시 넣었던 것을 깜빡하고 집사람의 가방을 뒤지며 당혹하게 했던 일이며, 또 하나는 멋진 막대기를 깜박하고 호텔에 두고 나온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구련산 서련촌 서련사 에서 계단에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며칠간 시퍼런 흔적이 남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눈도 침침하니 안경을 안쓰면 글자를 착각하고, 조금 전에 했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기억력이 예전과 다르고, 다리의 균형감각도 떨어져 넘어지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육체적/정신적 건강은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낀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럴수록 우리의 해외 나들이는 건강할 때, 기력이 있을 때 다녀야 하는 것이니 해가 갈 수록 그 소중함은 더해가는 것이리라.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소중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건강을 잘 챙기자. 그래서 다음 다음에도 다닐 수 있도록.

함께한 동기들 모두 고맙고, 술이며, 먹걸이며 동기들을 생각하고 가져온 모두들 복많이 받으시라. 일일이 거명하지 않겠다. 이원근 회장이 올린 한뫼회 운영일지를 보면 자세한 이름이 보인다. 박재찬 동기가 화끈하게 우리들에게 한 특별보시는 특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이런 나들이를 기획하고 코디네이트하고 클로징한 회장 이원근동기와 총무 김용휴 동기 수고 많이 했으며, 감사하단 말 남긴다. 씰데 없는 소리가 길었겠지만 우리들의 하나의 흔적이라는 뜻으로 두서없이 끄적거린 것이다. 그럼 이만 총총.

나는 한뫼회가 좋다.
그리고 나는 한뫼회 회원이 좋더라.

2013. 6. 27.
동기 김영환.


2013. 5. 9 - 5.12 중국 하남성 태항산 대협곡 여행 참석자 명단:
34명 ((동기 26명(한뫼회원 22명 포함) + 부인 8명))

구자호, 김성기/정선희, 김영환/송희숙, 김용휴, 박창기, 신경철/최영숙, 오상식, 오중관/이영란, 유석종/김인선, 유철/고훈희, 윤병주, 이강호, 이대용, 이상현, 이승우, 이원근, 이찬욱, 이진권, 이찬욱, 임병호, 최연환, 최정태, 박오현, 박일환, 전희식/김영옥, 박재찬/남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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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태항산 여행 후기 2013-05-27 김영환 1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