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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국 백석산/공중초원 나들이 이야기
이름   김영환 등록일   2014-05-09 오후 9:49:00
e-mail   ywhkim@rhilaw.com
내용
들어가며- 끝나지 않은 백석산 여행

한뫼회는 2014. 4. 17- 4.20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 하북성(河北省) 래원현(淶源县)의 백석산(白石山)을 다녀왔다. 귀국후 2주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국 여행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귀국한 다음날 4월 21일 김용휴 회장으로부터 “글 좀 올려 달라는 숙제를 명 받았으나 아직 못 마쳤기 때문이다”.

회장은 자기를 염치없는 사람으로 만들면서 “틈 나면 글 좀 올려주시게, 피곤할 텐데, 염치없지만”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었다. 비록 틈 나면 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틈 안 난다고 언제까지 버티고 앉아, 평 회원이 높은 회장님의 말씀을 깔아 뭉개고 앉아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회장의 그 몇 마디 단어에 꼼짝없이 걸려들고 만 것이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느라 떠 올리느라 어린이날, 석가탄신일이 낀 황금연휴 4일을 소진했다.

4월 17일 중국 천진 공항에 도착, 같이 줄을 서서 입국 수속 중, 우리 일행에게 행선지를 물었다던 강원도에서 오신 나이든 한 아주머니 왈, “한국에도 산이 많은데 한국의 산 놔 두고 왜 중국 산에 가느냐” 고 묻더라고 김 회장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는 씩 웃고 말았지만, 그 아주머니가 던진 그 화두에 나/너라면 뭐라고 대답했을지?

이번에 다녀온 백석산은 황산의 기묘함, 화산의 험준함, 장가계의 수려함을 다 갖추었다는 산이다. 갔던 길 다시 되돌아보면 왜 중국산에 갔다 왔는지 그 대답을 할 수 있게 되려나.


1. 첫째 날 (2014. 4. 17. (목)) 출국하는 날


1-1) 인천 공항으로, 그리고 천진 공항까지

오늘 4월 17일은 중국 백석산 나들이 가는 날이다. 앞으로 한 사흘 동안은 만고 땡 이다. 놀고 먹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동기 동창으로 만난 지 어언 반세기, 허물없이 알고 지내는 그런 가까운 동기들과 함께 나들이다.

8시 30분 인천공항 3층 M카운터 앞에 집합하라는 임병호 총무의 공지 전화 메시지에 늦지 않도록 집사람과 이른 시각 6시 40분경 아파트를 나선다. 막 7시를 지나 애경 백화점 앞, 공항버스 613번을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마음은 가볍다.

차창 밖엔 날로 푸르러가는 가로수의 말간 이파리 색깔과 곳곳에 잘 정비된 꽃밭엔 흰 색, 분홍색 철쭉이며, 영산 홍, 보라색 라일락 등 꽃이 만발, 세상은 총천연색 찬란한 봄이다.

집합시각 10분전에 도착, 김 회장, 임 총무, 이원근 전임 회장이 보였고, 정각에는 멀리 창원서 온 이상봉 동기를 끝으로 20명(박재찬 부부는 천진 공항에서 합세) 전원 집합이다. 대구서 온 김문곤 동기 부부, 전희식 동기 부부 그리고 더 멀리 창원에서 온 이상봉 동기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일찍 출발 했을까.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여권과 승차권을 받고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는다. 단체 중국 비자 관계로 입국 사정 시 앞장서 명단(10명)을 제출할 조장과 후미에서 그 명단을 받아 챙기는 부조장이 정해졌다. 강창구/신경철 동기가 A팀의 조장/부조장이고, 유석종/김영옥 여사는 B팀의 조장/부조장이다. 우리는 중국 입국과 출국 시에 명단 순서대로 줄을 서서 조장을 따라가면 되고, 중국에는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가이드가 따로 있다나.

짐을 맡긴 후 출국 수속을 마쳤다. 핸드폰 로밍을 하고 인터넷 데이터 전송을 차단한다. 남는 시간 면세점을 둘러보며, 탑승시간 10시 50분을 기다리며, 번호가 바뀐 출구 앞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막간에 신경철 동기가 흰색 쵸크렛 몇 개를 건네준다. 입에 살살 녹여먹는 그 달콤한 맛에 기분 좋고 여유롭다.

탑승 후, 집사람의 좌석 옆자리에 자리를 양보 받는다. 기내식 깔끔 간단식 비빔밥을 먹고, 비빔고추장으로 나온 우리 쌀로 빚은 고추장 30g 튜브용기를 하나 챙긴다. 실 비행시간 1시간 남짓, 출국 후 2시간, 천진 시간 11:40 (한국시간 12:40) 천진 공항 도착이다.

조장을 따라 순서대로 줄을 서서 입국 수속을 마친다. 바깥으로 나오니 한뫼회가 적힌 종이 피켓을 들고 있던 곽씨 성을 가진 운전기사가 버스로 안내한다. 각자 여행 가방을 버스 하단 짐싣는 곳에 싣는다. 중국 거주 박재찬 동기/남순분 여사도 여기서 지난해처럼 동참한다. 백두산 생수 병을 몇 박스인지 충분히 가져와 대부분은 짐 싣는 곳에 싣고 일부만 앞 좌석 공간에 내려 놓는다. 한 개씩 집어 가져갈 수 있도록, 동기들을 위한 배려가 몸에 배인 듯, 마음 씀씀이가 남다르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순조롭게 되어가는 듯 했다.


1-2 ) 참 나쁜 여행사 - 래원(백석산 호텔) 가는 길은 멀고

트렁크를 싣고 다들 자리에 앉았는데도 버스가 출발하지 않고 있다. 알고 보니 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가이드를 기다리는 이색 광경이 벌어졌다. 순서가 바뀌었다. 입이 불퉁하게 튀어 나올 수 밖에 없다. 15분을 기다려 늦게 나타난 가이드가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말을 건넨다. 안녕하지 못한데요 하고 이쁜 대답이 나올 리 없다. 가이드가 북경에서 천진으로 오는 도중 교
통 체증으로 북경으로 되돌아가 다시 고속 전철로 갈아타고 왔다며 부득이하였음을 설명했다. 그러나 순간에 구겨진 첫인상, 한번 구겨진 첫인상 다시 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가이드는 자기소개로 이름은 김휘, 나이는 35세로, 독립군 활동을 했던 할아버지 탓으로 중국에 거주하게 된 조선족으로, 지난해 결혼 했고, 조선의 말을 잊지 말라는 조부의 유훈에 따라, 조선의 말, 문화를 알고 지키려는 노력해왔다나. 눈매가 곱고 조리 있게 말하고 사근사근하며 매너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유야 어쨌던 첫 대면을 지각을 하여 만들어 진 나쁜 인상과 첫 방문지 보정의 직예총독부 방문 일정를 두고 오락가락 했던 안내 혼선으로 실망을 했던 우리들로부터 한번 구겨져 나빠졌던 인상이 다시 괜찮은 인상으로 바뀌게 된 것은 며칠 동안 함께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가이드의 성실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리하여 헤어질 때는 수고했다,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덕담도 나누게 되
었다.

공항에서 출발 후이다. 가이드는 천진에서 점심을 먹고, 두 시간을 움직여 보정시의 직예총독부를 둘러 보고, 숙소 백석산 호텔로 이동, 저녁을 먹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너름(비행기로 8시간을 비행)과 많은 인구(13억 공식인구에 미확인 인구가 몇 억 된다는 나라)와 이곳 인구가 1300만명을 넘는다는 천진을 비롯한 중국의 4대 직할시로 인구가 3000만명이 넘는다는 충칭, 2500만명의 상
해, 그리고 2000만명이 넘는 원,명,청,중화민국의 수도 북경을 언급하고, 우리가 찾아갈 백석산을 개발/재개발하게 된 배경 등을 재치 있게 설명하는 가운데, 버스는 어느덧 시내로 들어섰고, 점심을 먹기 위해, 유미천채(濡味川菜)라는 음식 집 앞에 멈추었다. 기내에서 비빔밥을 간식으로 먹은 터라 출출하지는 않았지만 색다른 분위기, 별미 중국식 음식, 먹는다는 데 반기지 않을리 없다.

지역을 나타낸다는 유미(濡味), 천채(川菜)는 사천의 채소, 사천요리 정도일까, 사천요리는 향이 강하고 맵고 얼얼하다고 했다. 과연 말대로, 향미료 중에 재피인지, 산초인지 좁쌀 같은 알을 씹은 한 부인은 향이 강해 음식 맛에 비위가 상한 듯했다. 색다른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현지 점심을 했으니 일정대로 움직여야 한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올라섰고, 가이드가 보정시의 직예 총독부로 간다고 했다. 첫 번째 방문 지를 가는 도중, 버스 기사부터 무슨 말을 들었나, 교통체증 때문이 아니라 수리 중인 고속도로 사정상 직예총독부 구경을 접고, 바로 숙박지 래현으로 가야할 것 같다고 말이 바뀌었다. 참 좋은 여행사가 참 나쁜 여행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도로 사정의 문제라면 미리 체크하여 문제가 있으면 다른 대책을 세웠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도로 사정 운운하는 것은 버젓이 확정 일정에 올려 약속하여 일정을 다 믿고 있는 우리를 사기친 것과 진배가 없지 않느냐고 유석종 동기가 나서, 가이드 및 참 좋은 여행사를 성토하기에 이르렀고,

양해라면 출발이전 시점에서 미리 구했어야지, 이런 작태를 참 좋은 여행사 본부는 알고 있는지, 향후 다른 여행자도 유사한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면, 적어도 우리 회장단에서 나마, 추후 이를 알리고 따져야 한다는 것이 옆 좌석의 다른 동기들도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최정태 동기까지 잘못을 나열하며 가세하니, 가이드도 입장이 난감한지……, 한참 뒤 참 좋은 여행사 서울/천진 담당자와 연락을 취하여 이쪽 분위기를 전하고 상의를 하고 조언을 받았는지, 다른 길로 가는 길을 알아냈고, 1시간 늦추어 가는 것으로 하여, 방향 재설정, 방문예정지 관람 담당자와 연락 취했다고 발표를 했다. 다를 그렇게 진행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실제로 길을 바꾸어 버스가 갔는지도 의문이다. 한참 가던 도중에, 가이드는 다시 뒤집는 발표를 한다. 지금 속도로 가보았자 관람 약속 시간 5시(?)까지 맞추기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바로 숙소 래현 호텔로 가는 수 밖에 없다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가보기로 했던 첫 방문 지를 둘러보는 것은 물 건너 갔고,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가이드는 미안하고 죄송한지 마지막 날 돌아오는 날, 시간이 남으니 그 때 들리도록 하겠다고 최종 방향을 정리, 달리 방법이 없다. 아마 우리를 무마시키려고 수를 썼나 하는 마음이 없지도 않다. 의심하여 죄를 짓는 것인지도.

제대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익일 백석산 동문 입구에서 가이드가 단체 입장권 매표를 할 때다. 60세 이상 자는 입장료가 반값이라고 적혀 있었고, 현지 중국 산동성 연태에 거주하는 박재찬 동기가 앞으로 중국 여행을 오는 경우에는 미리 동기에게 상의하라고 내뱉는 말이 들려왔다. 어쩌면 이런 반 값 입장료도 일행의 여행 경비 산정에 제대로 반영되었나 하는 일말의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은 일정을 지키지 못하는 불신 탓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대충 넘어 갈려는 수작, 넘겨 뛴 일정, 지난해도 떠올라 속상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1-3) 숙박지 래원 호텔 도착, 배부르고 얼큰하니 기분이 최고다.
주흥에 가무가 없을소나,

래원에 가까워 지는 듯 하면서 많은 터널을 지났고, 그 것도 몇 km나 되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을 보면서, 중국은 터널을 만드는 기술이 세계 최고라는 말을 들으면서, 숙박지 래원으로 들어섰을 때, 시내로 접어드는 도시입구는 정비 중이었고, 아직 개발/성장 중인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숙소 백석산 호텔의 입구에 멈추어 섰다. 지루했던 하루의 버스 여행이 끝난 것이다. 버스 시계의 표시는 18:18, 씁쓸한 우리들의 마음을 나타내 주었던 듯, 하여 기억이 분명, 숫자가 요상해서 떠올랐다.

단체로 체크인을 하고 플라스틱 방 키를 받는다. 트렁크를 1211호실로 옮기고 손을 씻은 후 7시까지 2층에 모이기로 한다. 버스를 5시간이나 탔다. 피곤하다. 맛있는 저녁이 기다려 진다. 점심보다 한 단계 나은 호텔 식사다. 맛있게 먹고 즐기기만 하는 시간이다.

두 곳으로 나뉜 원탁 테이블, 주류 파와 비주류/부녀회원 파로 자연스레 나눠졌나, 주류 파 중에 는 김문곤 동기가 끼어 있다. 동기는 백발회의 주요 인물이면서도 한뫼회 회원들의 사랑을 받는 한뫼회의 특별회원이기도 하다. 동기는 술이 세고, 주당, 주선에 가깝다. 3년전에도 일본 다이센 산행에 동행했던 동기는 2년 전에 한뫼회 해외 여행에 끼워주면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을 대
령하겠다던 약속을 이번에는 지켰다. 작년에는 둘째 아들 결혼식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다. 김용휴 회장은 동기로 하여금 이 즐거운 회식에서 건배를 하게 한다. 마작을 빼놓고는 잡기란 잡기는 다해보았다던 동기, 유머도 있고 견문이 넓어 여러 가지로 해박하다. 옆에 있으면 많은 것, 유식한 것 귀 동냥도 하게 된다. 한시면 한시 영어면 영어, 똑 뿌러지는 김문곤 동기는 뮈라고 건배사를
올렸나. 다른 자리에 있어 자세히 듣지 못해 익일 버스 안에서 물으니 홈피에 나와 있다고 했다.

과연 주당, 주선의 격에 맞는 내용이다. 동기가 취막성(醉莫醒: 취하면 깨지말고)하고 외치면, 동기들은 성물수(醒勿愁: 깨면 근심말고) 하고 다 같이 크게 외치며 화답했나. 언제 한번 가까이서 다시 한번 들어볼 일이다. 이렇게 분위기는 익어갔다.

담백하고 푸짐한 중국요리를 즐기고, 홀짝 부어 마시는 이쁘장한 작은 양주잔에다 양주, 화주 한잔씩 걸치니 배부르고 얼큰하니 기분 좋다. 주흥이 있는 곳에 노래가 빠질 수는 없다. 애창회 소속 회원들의 뛰어난 가창력이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우리의 명가수 신경철 동기가 테이프를 끊는다. 원어로 부른 “오솔레미오”,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께 벨라 꼬사 나 유르나따 에 솔레(Chebellacosa e naiurnata e sole),

산행대장 김진희 동기는 “대관령”을,
-저기 물안개 소낙비 아련한 산을 ……,
-저기 빨간 단풍으로 색칠한 산을…..,

김용휴 회장은 “슬픔도 지나고 나면” (KBS 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 나오는 배경음악)을
-어디 쯤 와 있는 걸까, 가던 길 뒤돌아 본다……,
-그토록 아파하고도 마음 서성이는 건 ……,

이상봉 동기는 “번지 없는 주막”을 불렀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내리는……,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여, 어느 날짜…,,,,

제목도 가사도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전화로 물어 곡을 적었다)
다같이 박수 치며 장단 맞추며 덩실덩실 춤추는 신나는 우리가 익히 아는 유행가였다.

전임회장 이원근 동기의 “옛생각”을,
-뒷동산 아지랑이 할미 꽃 피면, 꽃 댕기 매고 놀던…..,
-그 시절 그리워 동산에 올라보면, 놀던 바위 외롭고 ……,

김영환의 “고향에 찾아와도”를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뇨, 두견화 피는 언덕에 올라……,
-흰구름 종달새의 그려보던 청운의 꿈을…...

어떻게 쨉도 되지 못하는 음치 김영환이 “고향에 찾아와도” 를 부르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명창 들 사이에 끼어들게 되었다. 이유는 부인들의 순서로 넘어가라는 회원들의 강한 요청을 받은 이원근 동기, 송여사가 한 곡 부르시라며 지명했고, 못한다고 빼는 집사람을 대신하여 분위기가 깨지는 것을 막으려고 대신 일어섰다. 한데 음치의 노래로 분위기를 망쳤나. 이 노래를 끝으로 첫날 호텔 회식은 끝났다. 9시경이었다.

익일 밤도 여기서 하루 밤 더 자기로 되어 있다. 급할 것 없다. 2차는 없는 것으로 생각, 각자 배정된 방으로 발걸음이다. 모닝 콜은 6시, 아침 식사는 7시, 버스 출발은 8시란다.

9시 30분경, 그래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 뭔가 더 있을까 싶어, 회장 방으로 다이알을 돌렸으나 아직 방으로 올라오지 않았는지 응답이 없다.

이튿날 아침, 식사 시간에 만난 얼굴들, 지난 밤 김회장/임총무 방에서는 밤늦은 1시까지 이야기하는 소리가 옆방까지 들렸고, 숙면에 방해기 되었다고 여러 분의 애교 섞인 중얼거림이 있었다.
나중 두 분은 한뫼회 장기 발전을 위한 미래 전략을 연구하며 토론하느라고 늦게 잠들었다고 해명 아닌 변명을 했다. 알아들은 듯하지만 알쏭달쏭 이해가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2. 둘째 날 2014. 4. 18.(금) (백석산/공중초원)

2-1) 백석산 트레킹 (둘째 날 오전).

2-1-1) 백석산 동문으로 이동

아침 5:30 모닝 콜이 예정보다 30분 일찍 울렸다. 면도를 하고 6:30 호텔 앞 대로를 둘러보러 호텔문을 나선다. 아침 식사가 되는 7시까지 한 30분 동안은 자유시간이다. 넓은 인도 여기 저기 남녀 수십 명이 무리 지어 맨손체조를 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부지런히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국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가에는 개나리, 벚꽃, 철쭉이 피어 있다. 여기도 봄 꽃이 한참이다. 호텔 오른 쪽으로 한 100m 걸음을 했을까, 유석종 동기 부부가 동네를 한바퀴 돌았는지 호텔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로 등이 보이는 첫 사거리에서 대로를 건너 주변 건물을 둘러보며 잠시 바깥 바람을 쏘이다 곧바로 호텔로 돌아오니 로비에서는 아침을 기다리며 허리를 돌리며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는 동기들이 보인다. 1층 식당, 몇 개의 원형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담아온 밥이나, 빵, 수프, 반찬 몇 개, 간단히 뷔폐식 식사다.

2-1-2) 비호협 트레킹(백석산 동문, 셔틀버스로 구채원 직전까지 승차, 구채원(부추정원)에서 비호협으로 걷다.)

예정대로 8:10 버스 출발, 백석산 동문에 도착한 것은 8:45 경이다. 동문에는 큰 돌을 좌우에 수직으로 세우고 가로로 올려 걸쳐서 만든 쌓아 만든 피읍(ㅍ)자 개선문을 닮은 문에는 白石山(백석산)이라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 글자로 적혀있다.

백석산은 세계지질공원, 국가지질공원, 국가삼림공원, 국가 A4급 유람풍경구로 명성을 쌓아왔고, 산 자체가 회백색 대리석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백옥, 초백옥이 많이 나는 데서 그 이름이 생겼다 한다.

돌로 쌓은 동문 앞에서의 단체로 사진을 찍은 후다. 입장권 매표 직전 가이드는 안내판 앞에서 트레킹 코스를 설명한다.

여기 동문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선운정에서 내려, 바로 옆의 해발 2000m의 구채원(韭菜園)에서 출발하여 비운구를 지나 케이블카를 타고 서문으로 하산 것인데, 구채원에서 비운구로 가는 길은

(i) 하나는 구채원에서 계단 길을 내려가 비호협까지 가서 그곳에서 케이블 카를 타고 비운구로 올라오는 비호협(飛狐峽) 유람길과
(ii) 다른 하나는 구채원에서 오른쪽 옆길로 비운구로 가는 쌍웅석(双雄石) 유람길로 두 코스가 있는 데,

이 중 백석산 구경의 백미는 전자 비호협(飛狐峽)을 구경하는 것이다. 비호협에서 비운구(飛云口)까지 비운구 케이블카 비용(미화 약20불)은 여행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 다시 올 것도 아니다. 각자 20불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최고의 볼거리를 빼 놓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비호협을 가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9시쯤 다들 셔틀버스에 오른다. 한 30분 꼬불꼬불 길을 올라 9부능선 쯤일까. 상운정에서 내려 경사가 거의 없는 시멘트 길 800m를 걸어간다. 태항노조(泰恒老祖)라는 청동 조각상이 있는 곳에 이른다.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표주박을 맨 태항노조(할아버지)가 두꺼비에 먹이를 주는 입벌려 크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사자 털기와 같은 수염을 달은 우락부락하게 생기긴 했어도 험상궂은 얼굴은 아니다. 이곳이 사람 키보다 더 큰 부추(전구치)가 자란다는 구채원(韭菜園) 근처일까? 집사람이 약간 힘들어 하는 것 같아 긴장하지 않게 끝에서 따라가다 보니, 앞장서 가는 가이드의 말을 귀 동냥하지 못했다.

전체가 또 인증사진을 박는다. 여기 2000m 높이에서 트레킹은 시작되는 것이다. 비호협은 1,600m 높이에 있다. 내려가는 길이라 힘이 들지는 않으나 소위 잔도(棧道)를 걷는 것이다. 가파른 절벽에 선반처럼 걸쳐있는 도로가 잔도다. 절벽에 붙어 있는 길이라, 걸음걸음 한발한발이 조심스럽기 짝이 없다. 천길 낭떠러지 계곡이 내려다 보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오금이 저려오며 간은 콩알만 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주변을 둘러보는 구경은 뒷전으로 밀린다.

산중턱을 휘돌아가며 이러한 아찔한 절벽에 계단 길, 회랑 길 잔도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그 발상과 암벽에 구멍을 뚫어 철근 심을 넣고, 돌/시멘트 길을 만든 그 대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구경 길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있었을까, 걷는 것 만으로도 떨려 오는데, 누군가의 고생덕분에 이렇게 편안히 구경을 하는 것이다.

굽어보며 올려보며 기이한 소나무와 괴상한 암석의 신비한 바위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에 구름과 안개가 피어 오르는 광경을 1600m 이상의 높이에서 보는 것이다..

피었다 흩어졌다 하는 운무로 골짜기 밑바닥까지 속속들이 눈길은 못 미쳐도 운해 속에 나타나는 소나무와 바위, 암봉과 협곡은 신비감을 더하며,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순간 순간마다 또 다른 한 폭의 동양화가 되어 펼쳐지는 것이었다.

내려가는 계단 길 곳곳에는 명소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게 관람을 줄길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었다. 쳐다 보이는 위 아래로 간혹 홍 매화로 생각되는 꽃나무들이 눈에 뛰었다. 봄기운은 이곳에도 가득하다. 부인들은 길섶 석벽에 앙증맞게 꽃을 피운 이름 모를 야생화를 소녀의 마음으로 찰칵하며 마음에 담아가고 있었다..

비호협은 글짜 그대로 여우가 날아다니는 골짜기다. 해발 1600m 정도에 있는 이곳을 찾아가는 길에는 여러 명소가 위치하고 있다. 가슴 졸이며 걷게 했던 석벽벼랑길에 만들었던 긴 회랑 절벽장랑(絶壁長廊), 신선이 신발(장화)를 벗어 놓고 떠났다는 선인쇄화(仙人晒靴) 바위는 작은 직육면체 바위가 큰 직육면체 바위에 얹혀있는 한자 법칙려(呂)를 닮았고, 나중에 본 태항지신이라는
바위는 히로시마에 터진 원자폭탄 버섯구름 모양인 양인 듯, 아니면 지지 석에 올려진 흉상 (가슴에 머리를 올려놓은 듯) 바위 3조각을 차례로 올려놓은 괴석 덩어리이었다.

2-1-3) 대단한 두분 동기 김진희와 유석종

산행대장 김진희 동기는 일행 중에서 백두대간을 주파한 유일한 동기다. 몸이 얼마나 날쌘지 거짓말 약간 보태, 물 찬 제비처럼 가볍게 훨훨 날아다닌다. 일반인이 지나가는 계단 길 한참 위로 군데군데 특별히 마련해 놓은 관망대로 올라가 사진을 찍고 있다. 놀랠 노자가 분명하다.

이곳의 이름 비호협, 날아 다닌다는 여우, 비호보다 더한 날아다니는 사람, 비인(飛人)이라는 평을 내리고 싶다. 동기는 9시경 이산 백석산 입구 동문에서 일행이 셔틀버스로 올라 갈려고 할 때, 자신은 혼자 걸어서 올랐다가 산행을 일주하고, 일행이 트레킹을 마치고 모이는 곳에서 늦지 않게 다시 합세하는 것을 생각하였는지, 자신의 의중을 회장에게 내비치었고, 그것이 일정 상 가능하겠는지, 가이드와 상의해 보겠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여기에 우리와 같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그것은 희망사항으로 끝난 모양이다. 그러니 수준이 다른 일행과 같이 걸음 하자니 속이 미어터졌을지도 모른다.

비호협에 도착하여 케이블카 타는 곳에 오자, 마침내 그 의중을 드러낸다. 중국 사람 시간 개념을 믿을 수 없다며, 케이블카가 곧 내려온다고 했다고 옆에서 지적함에도 불구하고, 그 중국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기도 하거니와 케이블카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차라리 계단을 걸어 오르겠다는 의사를 표시한다. 엄청난 발상이고, 보통 회원은 감히 엄두도 못 내는 일이다.

유석종 동기가 동행으로 나선다 동기는 힘들기로 유명한 유격대 교관 전력이 있는 동기다. 우리들이 해온 많은 산행에서 언제나 앞장서가는 대단한 친구다. 우리 일반 회원과는 수준이 다른 두 동기가 케이블카를 안타고 걸어 계단 길을 오르는 도전을 하러 먼저 떠났다. 두 사람이 동행 했으니 안심이 된다.
다만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케이블카를 타고 먼저 비운구에 올랐을 때 아득히 아래 두 동기가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보였고, 한 동기가 소리를 지르니 들렸나 보다. 올려다 보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나 너무 늦어 민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마음 졸이며 2000여개의 계단을 바삐 올랐을 것이다.

나중에 가이드만 남아서 두 동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오기로 하고, 일행은 먼저 출발하여 붉은색 표피 자작나무 숲을 지나서 서문으로 내려가는 케이블카 승차 지점에서 두 동기를 기다렸다. 가이드가 두 동기를 데리고 일행 곁으로 왔을 때는 고작 10여분 정도 밖에 늦지 않았다. 다들 장하다고 환영의 박수를 보낸다. 두 동기의 얼굴이 볼그스레 상기되어 있음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유석종 동기는 힘 들었다고 그 다음날 실토했다.

이제 모두 2인씩 케이블카를 타고 서문으로 내려간다. 그 고개 길은 내려다 보이는 산에는 숲이 울창했다, 한쪽에는 20m는 될 듯 싶은 흰색 자작 나무의 둥치가 많이 보였다. 나는 속으로 백석산을 생각하면 백색 껍질 자작나무 숲을 연상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케이블카로 이동한 거리와 시간은 한참이었고, 몇 개의 지지대를 지나서 내려왔다. 서문 근처에 내려왔을 때 보였던 나무는 낙우송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어느 곳을 생각하면 그곳에서 본 나무들이 먼저 떠오른다.

서문에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고, 12:30분 1시간 버스를 타고 래원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들었다. 중식에는 여러 가지 중국식 전통 음식이 이었나. 잉어찜을 닮은 초어가 나왔던 것도 이때 였던가, 중국 술 화주는 안 시켰나. 중국 음식은 그 종류별로 풍족하게 나와 좋기는 하였으나 우리가 다 먹지 못하여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2) 공중 초원을 둘러보다(둘째 날 오후)


2-2-1) 공중 초원으로 올라가며

백석산 구경 후, 래원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는 중이다. 가이드는 다음 예정지 공중초원, 그곳은 오전에 찾았던 백석산 2096m 보다 더 높은 2158m에 있다는 초원에 올라 섰을 때, 경마 잡히고 말 탈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묻는다.

별로 인기가 없는지 22명중 4명 만이 손을 든다. 성원 5명에 한 명이 부족한 시점에 전희식 동기가 나선다. 승마 희망자 중의 한 사람인 부인 김영옥 여사를 돕는 일이다. 동기가 농장에 대추나무 1500그루(?)를 심었다 했던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옛 드라마 제목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명품 대추 뿐만 아니라 사랑도, 풍성한 행운도 걸리기를, 이 참에 덕담 한마디 해두자.

버스로 이동이다. 구불구불 계곡 길을 달린다. 굽이 길에 다가설 때마다 빵빵울리는 경적소리가 짜증나고 귀에 거슬린다. 모퉁이로 오고 있는 차가 있으면 경적 소리를 듣고 서행하며 주의하라는 메시지다. 도로 모퉁이에 볼록 거울을 설치한다면 반대쪽에서 오는 차량을 볼 수 있을 텐데, 아직 거기까지 설치할 여유가 없나 보다.

초원으로 향하는 길은 옛 마방차도(馬幇茶道)가 나있던 길이란다. 운남성 보이현에서 생산된 차가 사천-섬서-하북을 거쳐 북경으로 들어오는 8천리 길이었다니. 지금도 래원 주변엔 마방(상인조직) 들을 위한 객잔(客棧), 식당시설이 남아 있다고 한다.

비호곡 도로이었을 것이다. 잠시 멈추어선 버스에서 내려, 우리가 올라탄 마차가 중국 전통 마차였나, 마차 세대에 나누어 탄 22명은 300m 정도 마차를 탔을까. 골짜기 바람과 햇볕에 검게 탄 얼굴의 노인과 어린 마부들이 몰고 있는 말들의 피곤해 보이던, 울먹일 것 같던 눈망울의 말이 끌고 가는 마차에 올라탄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어쨌던 색 다른 경험이고, 어릴 적 정미소 집 황소가 끄던 짐수레를 타고 싶어했던 그런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부수적 이득이었다. 또한 철제 마차의 부실한 의자에 놓여 있던 우리가 깔고 앉았던 받침대 마분지가 축축했던 것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버스로 옮겨 타고, 태항 8경의 하나인 여우가 계곡 사이를 날아다닌다는 골짜기) 비호곡(飛狐谷)을 빠져 나와 고원으로 치닫는다. 왼쪽 협곡 봉우리 능선 근처 아득한 곳에 있었던 네모난 구멍을 통하여 파란 하늘이 보였던 것은 신기한 구경이었다.

초원으로 올라가는 구비구비 길에서는 오른 쪽에 보이는 완만한 능선에 큰 풍력 발전 풍차가 곳곳에 설치 되어 있었고, 지지 기둥과 날개 길이가 100m가 될 것이라고 어림 짐작 해보며 저걸 어떻게 운반 설치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길 옆 왼쪽 산 기슭에는 양떼 들이 보인다. 그들도 초원행 버스가 보였을 것이고, 우리가 양떼 구경하듯 저들도 이쪽을 구경하고 있는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오른쪽 산 비탈 밭에서는 방목하는 듯한 돼지가 꿀꿀 되던 광경이 보였던 것도 생각 밖이다.


2-2-2) 공중초원에 오르다

드디어 고원 초원에 올라섰다. 이런 높은 곳에 탁 트인 광대한 초원이라니 신기하다. 그러나 4월18일 당일, 아직 싹조차 돋지 않은 초원은 황량하기 그지 없는 그냥 평지일 뿐이었다. 6월이나 그 후에 왔다면, 수백 종의 야생화의 군락지, 야생화 천국이라고 불린다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야생화를 꽃피운 푸른 초원을 만났을 것이나 지금은 아니었다.

말을 타려고 버스에서 내린 사람은 일행 22명 중 단 5인이었다.
최정태, 유석종, 이상봉, 전희식 동기와 그 부인 김영옥 여사가 그들이다. 승마를 좋아하는 유 경험 자이거나 아니면 호기심이 남다른 자일 것이다.

말 탈 5인이 내린 후, 버스는 17인을 태우고 초원 입구에서 저 멀리 초원 한 켠으로 이동시켰다. 거긴 승마자 들이 여기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반환점인 셈인 모양이다.

다들 내렸다. 운전 기사는 우리들 보고 손짓을 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과 표정을 보건대, 초원의 평지가 끝나는 저쪽으로 좀 더 걸어가보라는 듯하다. 귀가 솔깃하여 듣는 시늉하다가 100m도 채 못 가서 되돌아 서 버스에 올라타고 말았다. 바람불고 날씨가 찬 탓으로 몸이 자꾸 움츠러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서 말을 타고 이쪽 버스가 있는 이쪽으로 오는 말을 탄 자들을 보며, 삭막한 사방을 둘러보며 시간을 때운다. 달리 할 것이 없다.

저 말 탄 친구들은 말 타고, 떡 경마 잡히고 신이 나서 거들먹거릴 그럴 그런 친구 들은 아니다. 어쨌던 기분 좋게 여기 초원을 몇 분이라도 달려 보았을까. 아니면 말 등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천천히 조심스레 말을 몰고 있을까,

나중에 버스가 다시 입구로 되돌아간 후다.
최정태 동기와 전희식 동기는 말을 세워 그만 내리려고 해도 말이 말을 듣지 않아 제때 내리지 못하였는지, 마부가 다른 말을 몰고 가서 데리고 와야 했던가, 중국말을 좀 할 줄 아는 정태와 희식이도 중국 말하고는 의사소통이 안되었나 보다.

유석종 동기는 막상 말을 타고 보니 자기를 태운 말이 얼마나 힘들어 할까 하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영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정이다.

한 500m 더 나가 봤더라면 초원의 변두리가 나타났을까, 그 너머 저 멀리 아래 먼 곳에 무엇이 산 능선 아니면 산기슭, 낮은 들판이 보였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쉽지만 버스 떠난 후 손들기 꼴인 것을.

꾸불꾸불 길을 한참 내려 왔을 때다. 김성기 동기가 버스를 멈추게 한다. 차멀미에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모양, 부인 정여사도 부부일심 동체라더니 괴로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고, 심적 안정을 위하여 가이드가 비닐 봉지를 챙겨드린다. 이원근 동기가 구불구불 길에는 속이 편치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을 초원으로 향하는 길에 들었는데, 되돌아오는 길에 이를 증명이나 하듯이 김성기 부부가 차멀미로 고생을 하였고, 호텔의 저녁 회식에도 두 분이 기어이 빠졌고, 모두들 걱정할 때, 가이드가 죽을 시켜 방으로 올려 보냈다고 알려줘 다들 그나마 안심이다.

2-3) 호텔 저녁 식사 후 밤바람 쏘이며 주변 야경을 둘러보다.

2-3-1) 호텔저녁회식 –화기애애, 건배사 소취하 당취평

공중 초원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7시가 넘었다. 7시 30분에 회식 시작. 최정태가 중국 술 화주 2병을 쏘았고, 가이드가 생색을 낸다. “자기가 호텔에 말해서, 전날 나왔던 술과 값은 같으면서도 질은 훨씬 좋은 술이다.” 라고, 아무튼 우리에게 좋은 일이다.
구상교 동기가 좋은 술이라고 연신 칭찬이다. 거기에다 회장단이 준비한 양주, 부인들을 위한 맥주를 곁들여, 원탁 테이불에 올려진 음식을 입맛대로 골라먹으며, 느긋하게 식사와 대화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백석산을 다녀왔고, 초원을 다녀 왔으니 이번 여행의 제일 중요한 일을 마친 후다.

왁자지껄,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건배사로 소취하 당취평 (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즐겁고, 당신에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과 청바지(청춘은 지금부터)이 울린다. 아마도 사우디(사나이 우정은 디질 때까지)도 등장했을 성 싶다. 모임은 9시가 지날 때까지 지속되었을 것이다.

2-3-2) 바디랭귀지로 소통하며 양고치 집에서 또 한잔 한 친구들

내일은 이곳을 떠나니 호텔 주변을 둘러보며 바람 쏘이기로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정태, 재찬, 창기, 용휴, 원근, 병호, 상봉, 상교, 문곤, 희식이 등이 같이 호텔 문을 나선다. 문곤이는 벌써 호텔 바로 옆의 술집을 알아보고, 점 찍어 두었나 보다. 대로 변을 돌며, 간판을 보며 간자체를 공부한다. 무슨 영업을 하는지를 알아채고 간혹 모르는 간자체가 나오면 중국 글자에 밝은 옆의 친구에게 하나씩 물어보며 배운다. 당구장이냐 하고 다같이 들어간 집은 아래 층은 PC 방이었고, 위층은 포켓볼 치는 곳이었다나.

동네 한 바퀴 돌며, 아파트 촌도 지나며, 마을회관이나 관리사무실 비슷한 곳을 지나며, 양 고치 술집을 기웃거려보나 아직 배가 부르다. 가계에서 과일을 살려고 하는 유석종 동기부부를 발견하고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흥정에 도움을 주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유석종 동기는 샀던 수박한 통을 호텔에 맡겼다가, 다음날 점심 시간에 보시하였던가. 그 다음 날에도 멜론 맛 나던 망고도 맛보게 해주었던가, 동기들이 근처를 그냥 한 바퀴 돌자 10시 가까이 되었나. 경철이, 원근이와 같이 먼저 호텔 방으로 올라가며, 회장과 총무에게 주제넘게 한마디 툭 던진다. 문곤이와 상봉이가 양구이 고치 집에서 더 한잔한다는데, 회장님과 총무님은 동석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익일 아침 김문곤 동기는 과음했는지 아침 식사에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무용담이 쏟아졌다. 고치 집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았는지, 동기는 한문에는 강해도 중국 말에 약해서인지 손짓 발짓 다하며 바디랭귀지로 술집 웨이트와 서로 의사소통을 했나 보다. 영업을 몇 시까지 하느냐고 묻는 것은 두 손으로 셔터문을 잡고 위에서 아래로 확 잡아 내리는 시늉을 하여, 또 숫자는 손가락을 꼽으며 술잔을 시켰다든가. 이렇게 순발력 있게, 재치 있는 동기들에 대해서 우리는 배꼽잡고 웃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왜 중국에 왔는지의 대답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 세째날(2014. 4. 19) 네째날(2014. 4. 20)의 글은 별도로 올릴 것임


2014. 5. 9.

50회 동기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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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백석산/공중초원 나들이 이야기 2014-05-09 김영환 2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