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맥산악회 산행 200회 기념으로 동기들이 금강산을 다녀온 것을 알고 있다. 한 동기는 누가 다녀왔으며 그 산행은 재미가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전화를 걸어와 글을 올리라고 했다.
동행한 동기도 구룡빌리지 숙소에서의 야심한 시간에 동기들끼리 환담한 시간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고 인터넷에 올리라고 권했다.
나이 탓인가, 기억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한진희 같은 유명 탈랜트 이름도 기억해 내려면 한뭐진 또는 한진뭐이라고 이름을 떠올리려고 애를 써다 보면 집사람이나 아이들이 답답해 한다. 성명 3자중 2자는 입에는 뱅뱅 돌면서도 그 1자를 기억해 내지 못하고 끙끙거릴 때가 더러 있다.
한달 이상 지난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보고자 노력은 해보나 얼마나 근접했을지 모를 일이다.
지난달 중순 끝머리 6월 17일(금)밤부터 19일(일)까지 경맥산악회가 그 200회 기념산행으로 주관하여 동기들 9쌍 등을 포함하여 120여명이 참여한 경맥가족과 같이 천하절경이라는 금강산을 다녀온 것이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초등학교시절에 배운 그 노랫말이 아직도 너무나 생생한 그 산을 말이다.
II. 금강산 한 모퉁이 귀한 시간
첫날은 바쁜 산행 일정을 소화하느라 늦은 저녁 잠자리 숙소에 찾아들 때까지 우리에겐 숨가쁘게 지나간 고단한 하루였다. 첫날밤이자 마지막 날 밤인 그 날 밤, 동기들 부인들과 자리를 함께하며 서로 마음을 열고 정겹고 오붓한 환담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열심히 걸었던 낮 동안의 행보와는 달리 세상도 고요히 잠들기 시작한 이 늦은 밤 시간에, 같은 방에 배정되어 자연스레 가까워진 부인들끼리 한패가 되어 반상회 하듯 둘러 앉아 잠시 환담을 나누게 되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캔맥주를 한 모금씩 들이켜면서 웃으면서 떠들면서 함께한 그 시간 동안, 긴 삶의 여정 속에 이 금강산 한 모퉁이 방구석에서 뜻하지 않게, 참으로 귀한 시간을 공유하면서 동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다들 오늘 이것 하나 만으로 치더라도 이번 금강산 구경은 참 잘 온 것이 되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느끼는 그런 눈빛들이었다.
III. 초 여름 밤의 꿈결 같은 환담
경맥 가족 120여명이 단체로 뷔페 저녁을 들었다. 어둠이 내려앉는 그 시간에 셔틀버스로 온정리 구룡빌리지 숙소로 돌아왔고 공동 세면장에서 이빨을 닦고 얼굴을 씻은 후였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10평 남짓한 방에 부인들끼리, 남자들끼리 잠자리가 배정되었고, 중관, 석종이와 함께 한방에 세 사람이 들어갔고, 나중에 순대까지 참여도 했으나 최종엔 변동이 있었다.
방에 들어간 나는 목이 칼칼함을 느끼며 하나씩 갈라 마실 요량으로 편의점 패밀리마트에서 캔맥주 5개, 마른 안주와 짠 낙화생을 샀다.
이제 방에 들어가 11시부터 중계되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 브라질 팀과 16강 진입을 걸고 한판 승부를 벌리는 우리 청소년 팀을 응원하면서 편안히 반쯤 누워 TV를 즐기면 되는 시간이었다.
이틀 전이었던가, 나이지리아 팀을 만나 꽃 미남 백지훈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지는 게임을 되살린 3분의 기적을 연출한 축구천재 박주영의 활약에 큰 기대를 걸어보면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TV를 켰고 얘기 중이었다.
120명이나 되는 대식구를 이끌고 손발을 맞추느라 많이 시달렸을 산행팀장 남순대가 구자호를 앞세우고 몇 분 부인들과 방으로 들어왔다.
뜻밖의 손님에 캔맥주라도 하나씩 권하고자 슬리퍼를 끌고 나가 보았으나 편의점은 닫혀 있었다. 하루를 막 끝내려고 정리하고 있는 길가 간이매점에서 캔맥주 5개를 구했고, 부인 한 분이 어디서 챙겨왔는지 캔맥주 몇 개가 더 늘어났다.
양은 많지 않았으나 하나씩 목을 축일 수 있었으니 다행 다행이었다. 빙 둘러 마주앉아 쳐다보며, 한 모금씩 맥주를 홀짝 거리며,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고단한 일정에, 내일의 일정을 생각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을 서너 분의 부인들을 빼고, 다른 부인들과 함께 깨어 어울리고 있는 자기 부인과는 달리 일찍 자기가 배정된 방에 들어선 두 세분 동기만이 빠졌다. 북한 땅 금강산 한 모퉁이 이 초 여름 밤에 약간은 들뜨는 색다른 분위기에서 그냥 바로 잠들기에는 무언가 부족했을 것이다. 이게 다 이심전심 아니었겠는가.
저녁식사 전에 보았던 그 유명한 북한 제일 교예단의 고난도 공중회전기술은 아슬아슬 가슴 졸이게 한 만큼 박수도 열심히 쳤다. 그들이 공훈배우로 영웅대접을 받는지는 몰라도,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극도의 훈련을 위해 가했을 잔인한 인간성에 생각이 미치면 그 관람 뒷맛은 영 개운하지가 못했다는 이야기랑,
(이하 2012. 5. 26 복구함)
산행을 총괄한 금강산 산행 팀장 남순대는 여분의 방을 확보하고 있었는지 “원하는 동기는 부부 합방을 따로 마련해주겠다”는 반 농담이 이어지고, 말이 나온 김에, 그래 덕분에 금강산 정기 받고 하룻밤 만리장성 쌓으며 막둥이 하나 만들어 보시기요, 갱년기를 빗대며 밭이 불모지면 안되지요, 밭이 좋아도 씨가 부실하면 그것도 안되지요. 밭도 씨도 부실하지 않을지 그것이 문제네요. 기름진 농담에 와당탕 한바탕 웃음소리가 옆 동 숙소까지 넘어간다.
남편 품이 그리워도 이거야 원,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일찍 골아 떨어지는 동기들 정신 차리시고 앞으로 부인을 독수공방 만들기 마시기요 등등.
가끔씩 쳐다보는 TV를 통하여, 우승후보 브라질의 높은 벽을 실감하면서 역부족에 점수를 잃어가는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서로는 기탄없이 주고 받는 이야기에 깔깔거렸고, 평양 출신 어머니를 두신 어느 한 분이 이북사투리 말투를 흉내 내어 모두들 마냥 즐거워했다.
IV. 동기와 그 부인들
같이 동행한 동기들을 떠올려본다.
얼굴이 많이 닮아 부럽던 부부, 애인처럼 소근대며 정답던 부부, 안팎 모두 활달하여 밝은 모습의 부부, 많은 말 없이도 조용히 아름답던 부부, 마음이 닮아 행동도 비슷해진 부부 등등,
이번 산행 기회를 통하여 부인들 간에도 많이 가까워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우리 동기는 남편의 경북중고 동창이라는 것과 부인들은 남편의 동창의 부인이라는 동류의식을 빼고는 아니 1박 2일이라도 서로 가까이할 기회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출발지 테크노마트 옆에 도착하여 3대의 버스를 기다릴 동안 남편 동기와 부인들에게 의례적 인사를 나눈 것만으로는 일부 서먹서먹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3대의 버스 중에서 5년 차 이상의 선배들과 함께 탄 우리들은 호명을 받고 좌석에서 일어나 부부 함께 전체를 향하여 고개 숙여 인사하며 간단한 자기 소개 시간을 가지며 말문을 열면서,
밤새 달려오며 두어 번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같이 이용하며 얼굴을 익히면서, 조식이 예약된 동해안 고성의 황태 국밥 집에 너무 일찍 도착되어, 국밥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에, 할일 없이 버스 안에 앉았다가 식당 안에 앉았다가 아니다 싶어 밖으로 나와 보기도 하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새벽 찬 공기를 맞으며 버스 주변을 둘러보고는 철썩 대는 파도 소리를 들으러 근처 바다가로 발을 옮겨도 보며, 이리 저리 서성거리며 시간을 때우며, 눈짓하고 몇 마디 던지면서 분위기에 익숙해가며,
구수한 황태국 냄새를 맡으며 옆자리에 앉도록 자리를 비켜주면서, 구석진 먼 자리로 국과 밥을 옆으로 전달하면서, 이제 서로 다가서며 챙겨주면서 우리는 같이 왔고 같이 가야 할 한 식구임을 느끼면서 마음을 조금씩 열고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것이다.
7시부터 시작된 북측을 향한 출입국 수속을 기다리면서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며 꼼짝도 않는 차 안에서 또 지지부진한 차 바깥에서 지루한 수속에 차례를 기다리면서, 너와 나 우리들은 같은 버스를 탄 같이 움직여야 하는 하루 이틀 동안이라도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을 느꼈을 것이다.
빠듯한 일정에 예정된 코스대로. 일부 수정을 하면서
첫날 외금강의 계곡 미를 대표한다는 구룡연 코스 계곡을 되돌아오면서 물냉면과 맥주 한 컵을 들면서, 발가벗고 온천 욕을 같이 하면서
다음 날 가파르던 계단을 밟고 천선대를 가까이 오를수록,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아찔한 발 아래를 뒤돌아보며 기기묘묘 미려한 수만가지 형태의 만물상 코스에서 금강산의 절정인 진면목을 보고 느끼며, 더운 날씨에 일정을 소화하느라 애를 쓰는 같은 처지에 있는 끼리끼리 마음이 활짝 열려갔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돌아올 때쯤 해서는 서로들 알아보고, 남편은 누구이고, 아들 딸 자녀는 몇이며, 아들 직장은 어디며, 결혼은 시켰는지, 졸업은 했는지, 유학 중인지, 대학원이나 대학에 다니고 있는지, 군에 다녀와 복학 중인지 등등
조금씩 서로에 대하여 알아가면서 사람 살아가는 개인적 얘기를 조금씩 털어놓으면서 처음 만남의 서먹서먹함은 사라지고 훨씬 가까워 졌을 것이다.
이렇게 부부같이 여행을 왔으되, 부인들끼리 따로 자다 보니 부인끼리 4명씩 배정되어 한방에 들어간 인연으로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다가 심적으로 가까운 여고 동창생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자연스레 사귀게 되는 좋은 점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V. 첫날 산행
남측의 금강산 콘도에 7시 전에 도착하여 수속을 기다릴 때, 찌푸린 하늘에 빗방울 듣기 시작하자 날씨 걱정을 다같이 하면서, 단체 1,200명을 일시에 출/입국 수속을 밟고, 남방/북방 한계선을 넘나들면서 버스를 3번씩이나 갈아타며 9시 30분 경에 금강산 온정리에 도착했을 때까지는 수속 밟으며 대기하는 시간이 주행시간 보다 훨씬 길었다.
우리 차에 배정된 현대 아산의 소속으로 보이는 앳된 안내 팀장 미스 문은 북한에서 주의할 사항을 잘 전달했고, 일행의 기다리며 내는 짜증에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예쁜 얼굴만큼 사근사근 1박 2일 동안 한결같이 친절히 안내했다.
첫날의 산행은 베이스 캠프 격인 온정각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빠듯한 일정에 곧 셔틀버스에 분승하여 산행기점 목란관으로 출발했고 10시경에 출발한 계곡 길 산행은 구룡연을 종점으로 되돌아와 다시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식권이 배포되었다.
신록의 6월, 장엄한 계곡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수려한 금강산, 그 속살이라고 할 수 있는 계곡 중의 계곡, 구룡폭포에 이르는 계곡 길에는 금강문, 비룡폭포 등 물과 나무와 바위가 연출하는 아름다운 비경이 널려 있었다. 티없이 깨끗한 계곡물은 그냥 떠 마셔도 되는 바로 금강산 생수였다.
왕복 4시간 구룡연 코스에 목란관 근처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도착한 버스 40대 분의 일행 1,200명 가량의 인파 속에는 BTN 불교방송 표시를 한 일행이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것이 눈에 띄었고, 흩어져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인파 속에서 경맥산악회 파란색 모표 표시를 가슴에 달고 지나가는 경맥 가족을 만나면 반가움에 눈인사로 격려하고,
어쩌다가 동기 부부를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나가는 것을 보면 더욱 반가워 한마디 툭 던지고 지나가며, 조장이 알려준 시간에 맞추느라 한눈 팔지 않느라고 발걸음도 마음도 바빴다.
반환점 구룡연에서 남순대와 동기 몇 명을 잠시 조우하고, 서둘러 하산 길에, 옆길로 빠져 왕복 1시간 거리에는 ‘구름 위에 있다는 8개의 연못’을 뜻하는 “상팔담을 보지 않으면 정말 후회한다”고 하며 먼저 걸음하고 내려오는 행인의 악의 없는 말 유혹에 알면서도 빠져보며, 이외의 길로 까먹은 시간으로 그냥 직진 하산하는 일행의 끝을 놓칠세라 노심초사 애를 태웠으나, 다행히 산행에 관한 한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동기 두 사람을 만나고, 구자호 부부와는 바로 상팔담이 내려보이는 봉우리에서 만나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연못이 8개가 되는지를 손으로 가리키며 세워보고, 앞서간 유석종 부부를 하산 도중 또 만나게 되어 점심을 먹어야 할 목란관을 향하여 거의 꼴찌로 내려오면서도 안도의 걸음걸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앞면 큰 홀에는 먼저 도착한 경맥가족으로 꽉 찼고. 부득이 조용한 옆 홀에 늦게 자리를 잡고, 식권으로 주문한 평양냉면이 나올 때까지, 여종업원과 말도 걸면서 그 막간에 시킨 시원한 외국산 맥주 한잔을 곁들였다.
부근에 산악회장 선배가 보였고, 그래서 걱정도 않고 천천히 나왔을 때 우리는 일행을 잃어버린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었음을 알았다. 뒤늦게 셔틀에 동승하여 베이스 캠프 온정각 휴게소로 왔을 때는 일정에 차질을 빚어 지체되고 있는 앞 팀을 만나 큰 다행이었다.
일정을 변경하여 셔틀로 온천으로 이동하여 땀에 젖은 전신을 온천 물에 씻어내고, 몸을 푼 후 가뿐한 기분으로 먼저 로비로 나와 푹신한 소파에 앉아 동기가 사주는 아이스크림 콘을 먹으며, 부인들이 로비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바쁘지 않아 평온한 마음 여유롭다.
VI. 숨은 이야기
그 다음 날 오전, 천선대 구경만을 하였으나 망양대 구경을 배먹은 탓으로 남보다 먼저 온정각에 돌아와서 나물 싹 비빔밥 점심을 먹었다. 식후 일행은 마지막 코스 삼일포를 구경도 끝내고, 온정각 휴게소로 돌아왔고. 남쪽으로 되돌아 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4시 30분 쯤인가. 우리 일행 120여명을 포함한 버스 20대 이상이 이미 금강산을 막 떠나고 있었다. 그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고 한동기 부부가 온정각 휴게소에 남아있다. 출발 시간을 지켜야 하는 관계로 산행팀장 남순대는 저만치 보이는 동기부부를 데리러 혼자 내렸다.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동기는 가까이 오고 있던 남순대에게 “한입 비묵어라.”고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권했다. 그래서 “한입 비묵어라(베어 먹어라)”이 말은 동행한 우리 일행만이 알아듣는 하나의 은어가 되었다.
늦게 따로 출발하여 동기부부를 데리고 북한측 출국사무소에서 우리 일행과 만났던 남순대 팀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핸드폰을 강제로 전부 맡겨 놓지 안았어도 이렇게 확대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동기 오중관은 고3때 외운 실력을 발휘하며 정비석의 ‘산정무한’ 끝부분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마의태자”편이라고 할까. 되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감성적으로 읊조려 인상적이었으며 동승한 많은 선배와 동기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험산으로 들어온 것은 천년 사직을 망쳐버린 비통을 한 몸에 짊어지려는……중략…… 천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 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산정무한의 끝부분은 마의태자가 아니더라도, 마의태자를 빌려 말하는 작가 정비석이 아니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언제 한번 기회 오면 다시 청하여 오중관의 목소리로 한번 더 들어보기로 하자.
세월은 흘러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포성소리를 들으며 태어나 자란 사변 둥이 그 어린애 들은 몇 년 후면 회갑을 맞이하게 되는 그런 나이에 접어들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공산주의 맹주 소비에트연방 구 소련은 무너져내려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지가 한참이나 지났고, 통일 한국이 되지 않고서는 그 구경을 생각조차 못했던 노랫말 속에만 존재했던 그 금강산을 다녀온 것이다.
영원한 사람도 영원한 국가도 없다. 수명이 다하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금강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친구와의 술자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제목을 본적이 있다.
그렇듯이 이러한 금강산 산행에서 보듯이 동기 들과의 여행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한동기는 산행을 돌아와 무척 수고한 남순대를 비롯한 동행한 동기들에게 감사의 전화 메시지를 돌렸다. 다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중복을 지내며 일면 중 가장 더운 때다. 열대야로 끈적끈적한 날씨에 잠들기가 쉽지 않다. 동기들 모두 건강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