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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왜 산에 갑니까? |
| 이름 |
김건우 |
등록일 |
2003-08-09 오전 10:33:00 |
|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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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 옮긴 글입니다.)
지리산을 종주하면서 연하천부터 세석까지 동행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산에는 왜 다닙니까"
"좋아서요"
"무엇이 좋습니까"
"산이 좋습니다."
소요산 의상대에서 사과를 나누어 먹은 아가씨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산에는 왜 다닙니까"
"산이 좋아서요"
"무엇이 그리 좋습니까"
"모두가 좋습니다"
물어 본 내가 잘못이다.
문경가는 차 속에서 만나 함께 주흘산을 오르고 정상주에다 하산주까지
같이 마신 내 또래의 사나이는 "산에는 왜 다니느냐"는 물음에 도인같은
말을 했다.
"산에를 가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먼저 그 산에 갑니다.
그래서 산에 오르는 것은 먼저 보낸 마음을 찾으러 가는 것이지요"
이해가 될 듯 말 듯 하다.
"다시 찾은 마음은 어떠하던가요"
"담백합니다"
000이라고 했다. 직업은 서로 묻지 않았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산로봉을 거쳐 국망봉에 올랐을 때 노인 한 분을 만났다.
큰 키에 허리가 곧았다. 국망봉을 100번이상 올랐다고 했다.
그것도 늘 같은 길이라고 했다.
"같은 산만을 오르시는 까닭이 있으신지요"
"마음이 안 익어서 그럽니다"
"몸이 늙으면 마음이 익어야 합니다.
몸은 늙었는데 마음만 젊으면 떫은 감과 같아요.
그뿐입니까, 마음이 익지 않은 늙은이는
썩지 않은 두엄처럼 쓸모가 없답니다"
노인의 춘추 일흔넷이라고 했다.
옛날 시인이 산을 노래했다.
三年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놓으니
半間은 明月이요 半間은 淸風이라
靑山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들 웅장하고 소박하고 섬세하고 화사한
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다 그대로 옮겨 놓을 수는 없다.
그러니 산에 가서 보아야 한다. 철따라 달라지고 낮과 밤에 다르게
들리는 산의 숨결을 음률로써 온전하게 실어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산에 가서 들어야 한다. 또한 구름과 안개, 눈과 비와 개울물,
그리고 풀과 나무들이 어울어져서 만들어 내는 변화무쌍한 산의 모습을
글로서 다 표현할 수도 없다. 따라서 산에 가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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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등록일자 |
등록자 |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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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에 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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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9 |
김건우 |
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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