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우쿵의 북상 영향인가. 그젠 흰구름 조각들이 듬성듬성 퍼져 있는 새파란 하늘이 새로왔다. 이제 힘들었던 더위의 기운도 아침 저녁으로 조금 누그러진 기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3일 일요일에 올랐던 수락산 산행을 생각하면 무덥든 더위가 떠오른다. 집합지 장암역에 도착하여 시원했던 전철안을 벗어나는 순간 더운 기운이 확 밀려왔고, 산행은 만만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당일 산행 참석자는 지난 달 청계산 산행시의 반 정도에 불과한 10명, 더운 날씨 탓 보다도 월요일을 끼워 토요일부터 연결되는 광복절까지 연휴에 해외로 시외로 멀리 휴가를 떠난 탓이 더 크리라. 중국으로 여행을 떠난 동기, 4박5일 일정으로 일본 오쿠히다 북알프스 트레킹을 떠난 동기, 설악산 산행을 간 동기, 어머님을 모시고 시골로 떠난 동기 등등, 거기다가 또한 산행에 자주 참석했던 4명의 동기들은 부부동반으로 함께 남해안 여행을 떠났다.
이러니 당일 출석한 10명은 따로 갈 데가 없어 배낭 매고 산행에 참석한 자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한 동기가 말한다. 아마 장기판에서 중요한 차, 포 다 떼고 남는 것은 별 볼일 없는 기물 상, 마, 졸처럼 비유하여 재미있게 한번 웃겨보려고 말해 본 것이리라. 색다르게 휴가를 멀리 떠난 동기들을 강조하다 보니 당일 산행 참석자만 애매하게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당일 산행에 참석한 동기를 두고 비록 농담이지만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비유하는 것에 대하여는 절대 사절이다. 스스로 그렇다고도 생각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한편 산행에 참석하는 우리들에 대하여 오히려 무척 부러워하는 동기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설명이 될까, 한 동기가 우리를 어떻게 부러워하며 왜 부러워 하는지 그 말을 한번 들어보자.
“나는 가끔 한국의 산들이 그리워질 때면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산속의 맑은 계곡물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보따리 싸고 싶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그럴 수도 없구나, 자네의 글을 읽으니 너거들이 정말 부럽더라. 복많은 친구들아! 다리 힘이 다 할 때까지 천복 만복을 누리거라”.
“이제 시간도 좀 나는 편인데 오래만에 안보던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그런데 제일 하고 싶은 게 등산인데 여기서는 그게 문제란다. 여기 오자 마자 근처에 있는 빠까야 화산에 올랐다가, 갑자기 용암이 흘러내리는데 시껍하고 내려왔다. 여기서는 산이란 게 전부 화산인데(34개) 대부분 활화산이다. 산이 가까이 가면 무지 공포감을 준다. 으르렁 거리는 소리하며, 산이 무서우니 볼짱 다 본 거지.”
위 말의 화자는 우리의 오랜 친구 박문송 동기이다. 동기는 최근 동기회 홈페이지를 통하여 이국만리 타국에서 우리에게 근황을 알려주며 향긋한 글로써 우리와의 그간의 시공을 메꾸고 있다. 또 이번 9월에는 딸 박소현양의 결혼을 앞두고 9월초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모양이다. 콰테말라의 산과 완전 딴판인 고국의 산, 고국의 동기가 더더욱 그리워 질 것이리라. 그러니 동기의 말마따나 “우리는 다리의 힘이 다할 때까지 천복 만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당일은 집합시간 후 15분이 지나면 산행을 출발하기로 지난달 산행 참여 인원 전체의 의사를 물어 결정한 출발시간엄수사항이 처음 시행되는 날이다. 장암역에 출구로 나오니 초행인 차용수 동기와 지난달부터 참가한 홍승로 동기를 포함하여 6명이 눈에 띄었다. 인사를 나누는 사이 곧 9명이 되었다, 예상 인원은 거의 다 온 것이다. 참석이 예상된 한 동기만이 나타나지 않았다. 전철환승소요시간 예측에 착오가 있었나 보다. 그래도 순위가 우선인 것은 15분이 지나면 출발하기로 한 전체와의 약속이다. 일행은 석림사로 향하여 먼저 떠났고, 동기는 빠른 걸음으로 뒤 따라와 석림사 일주문에서 만났다. .
석림사 한 모퉁이에서 만장기가 보이고 북소리도 들렸으나 우리는 보는둥 마는둥 조기 등산 조기 하산을 위해 발길을 서둘렀다. 석림사를 우측으로 돌아 올라서는 계곡 길을 얼마 못가 벌써 물가에 진을 치고 있는 일행도 보인다. 산행이 우선이고 차후 하산 시에 세족을 차선으로 삼는 우리와는 개념이 다른 것인가. 이런 더운 날 좋은 대안일 수도 있겠다.
아침 햇살은 덥고 따가웠다. 바람도 거의 없다. 오늘은 길을 안내하는 등반대장도 없다. 눈치껏 따라갈 만한 다른 일행도 보이지 않는다. 느낌으로 정상을 찾아간다. 발길조차 가볍지 못하다. 쉬고 또 쉬어가는 느림보 걸음이다. 한 동기는 컨디션이 좋지 못한지 걸음이 뒤쳐지고 버벅거린다. 1시간 길은 두 시간 길이 되었다.
선두는 자주 걸음을 멈추어 기다려 준다. 그대신 쳐진 자를 가지고 논다. 간밤에 예비산행(운우지정)으로 힘을 뺐으니 버벅거린다는 농을
이하 복원 2013.12.28.
받게 된다. 주목을 받게 되는 한참 뒤쳐진 꼴찌를 면하려면 나름대로 체력의 비축이 필요할 듯하다. 오늘 처음 참가한 차용수 동기도 산행을 위하여 나름대로 미리 테스트도 하고 워밍업을 한 모양이다. 오히려 쳐진 자와 보조를 맞춰준다. 이렇게 더운 날, 숨차 오르는 산길에서는 동기들이 추억거리를 들추어 내고 익살을 떨면 숨도 진정되고 발걸음도 가벼워지는 효용도 있다.
이제 아련한 추억 한 자락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며, 당시 조숙했던 동기들과 사귀었거나알고 지냈던 그녀 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도 하고 보고 싶다는 얘기도 나왔다. 더불어 사춘기의 가슴을 뛰고 설레게 했던 그녀들이 다녔던 여고 이름, 즉 치마에 흰 줄(칼)을 찼던 경북여고, 깨끗한 상의 흰 칼라에 바지 끝을 졸여 매어 교복이 특색 있었던 신명(SM)여고, 또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모교에 제일 가까웠던 방천여고가 그렇다. 그 밖에도 그간 세인의 화제에 올랐던 청와대 출신의 전직교수와 부장 판사 출신의 부적절한 행위로 소속 집단인 교수사회와 법조계에 누를 끼친 사태도 우리의 관심에서 비껴날 수 없었다.
석림사 출발 10:30분 높이 638m 정상까지 1시간 거리를 쉬고 기다리기를 반복하여 정상에 올랐을 때는 시간은 배 이상이 지난 12:50 이었다. 땀 흘리며 늦게 정상에 올라서니 힘 든 큰일을 마친 듯하다. 정상에서 진을 치며 팔고 있는 얼음 과자가 인기다. 드라이 아이스로 차갑게 유지되고 있는 맛있는 팥이 들어있는 ‘비비빅’ 얼음과자, 그 하나로 그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머무르는 동안 새 기운을 차리고, 소년시절에 좋아했던 아이스께끼 맛 인 듯 비비빅 하나에 기분 전환이 된다. 거북이 걸음에 점심 시간이 늦었다. 정상 바로 아래 계단 타고 내려가 밥 먹는 장소 물색이 시작되었다. 괜찮은 자리는 이미 선점되었겠지만 좀 펑퍼짐한 곳을 찾는다. 운이 좋으면 선점자가 일어나는 장소를 물려받고 좋아한다. 즐거운 점심 시간에는 한 동기가 차갑게 하여 가져온 매실주가 좋았고, 신문지로 잘 싸서 냉기가 남아 있는 시원한 막걸리도 한 두잔 걸친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웃고 떠드는 내용을 들어보면 누가 내일 모레 예순이 다 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겠는가 라고 자문하게 될 것이다.
하산 길은 청학리 계곡 길이다. 계곡의 물길은 졸어 있었다. 아래로 내려오면 뾰족한 수가 있을 듯 희망을 걸고 적당한 곳을 찾아보았으나 결과는 실망, 앞선 자가 일어나오는 곳에 재빨리 다가가 살펴보지만 망설임은 어쩔 수 없다. 담구어도 후회, 아니 담구어도 후회 그럴 바엔 담구고 후회하자. . 그래도 낙천적인 일부 동기는 이나마 다행이라고 긍정적인 태도로 발을 담구었다. 그러나 한계는 있었다. 발 은 담갔지만 얼굴에는 물을 묻히지 못했다.
청학리 유원지로 하산, 다시 당고개역으로 버스로 이동, 후끈한 아스팔트 길 위로 확 풍겨오는 더위가 괴롭다. 다들 뒤풀이는 에어컨 없는 삼계탕 집보다는 에어컨이 빵빵한 호프집을 선호. 그래서 시원한 생맥주 집으로 직행, 생맥주와 바비큐 치킨으로 뒤풀이 마무리.
더운 열기에 나뭇잎도 축 늘어진 더운 날, 더위를 뚫고 정상을 오르내리면서 내공을 쌓은 우리 10인의 동기들, 기환, 영환, 용휴, 순대, 경철, 강호, 원근, 도석, 용수와 승로가 그 면면이다. 천복 만복 만만복 행복하시라.
덧붙여 별볼일 있은 동기들, 여행으로 즐거움 한아름 안고 왔을 것으로 기대하며 앞으로 적극적인 산행 참여에 기여하시라.